<인터뷰> 시각장애인 최초로 백두대간 종주하는 김진중 씨
‘산’은 여러 얼굴을 지니고 있다. 사철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경관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험준한 절벽, 그 위의 준봉을 보노라면 정상에 발을 내디디고 싶다는 욕구가 솟는다. 그렇게 등산을 하다 어느 산에서, ‘그들’을 만날 수도 있겠다. 한 손으로 앞사람의 배낭을 잡고 다른 손에 든 스틱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산을 오르는 이들. 혹은 앞사람에게 묶인 줄을 잡고 바위를 넘는 이들. 앞장서 안내하는 사람은 비시각장애인,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시각장애인으로 이뤄진 한 쌍의 산악인들. 그중에서는 ‘사랑이 머무는 어울림 산악회(이하 어울림 산악회)’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는 어울림 산악회 회원인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이용술 씨와 2007년부터 10여 년간 산을 타온 김진중 씨가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들 중 김진중(남, 56세, 시각장애 1급) 씨를 만나 백두대간 종주와 등산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산이 좋다, 그저 그 이유 하나로 산에 오른다!
어울림 산악회의 시작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복지관 프로그램을 통해 등산을 경험했다. 그러나 단발성 프로그램으로는 등반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회장 이종만 씨를 비롯한 시각장애인들과 봉사자들이 의기투합해 동호회를 결성했다. 그것이 ‘어울림 산악회’다. 그러나 개인이 모인 취미 동아리다 보니 초반에는 운영이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인과 동행해 줄 봉사자 모집이랑 회비 마련이 가장 어려웠어요. 사비로 조금씩 갹출하기도 했고 봉사자를 구하기 위해 일반 산악회에 공문도 많이 발송했죠.”
김진중 씨는 그렇게 우여곡절을 회고했다. 그는 창단 멤버는 아니지만 동호회 회원으로 산을 탄 지 10여 년이나 됐다. 지금은 베테랑 산악인이지만, 처음에는 말도 못 할 정도로 형편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지인의 권유로 동호회에 첫발을 들였지만, 당시 건강도 좋지 못했고 모든 것이 익숙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첫 산행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돌이켜도 민망하기 때문이다.
“저 때문에 등반이 2시간 가까이 늦어지고, 등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거든요. 회원 중에 제가 어린 편이었는데도 말이에요.”
그때부터 오기가 생겼다. 더욱 동호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차츰 산의 매력에 빠졌다. 이제는 거의 매주 휴일마다 산을 찾는다. 김 씨가 초보 산악인에서 베테랑 산악인이 될 그 시간 동안 어울림 산악회도 발전을 거듭했다. 현재 시각장애 회원만 100여 명, 봉사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원은 30여 명이다.
“정안인들은 보이니까 정상에 다 왔다는 걸 조금씩 눈치채잖아요. 그런데 시각장애인들은 보이지 않아서 정상을 고대하며 등산해요. 그만큼 정상에 올랐을 때 느끼는 감동이 크답니다.”
산을 좋아하는 공통분모 하나면 장애와 비장애의 벽도 없다. 어울림 산악회는 ‘토요 북한산 산악회’와 ‘대한장애인체육회’ 등을 통해 봉사 인력과 활동비를 지원받는다. 4월 21일 발대식을 가진 백두대간 종주도 사회적기업 ‘SK행복나래’의 후원과 ‘좋은 사람들 산악회’의 협조가 있었다.
* 시각의 부재는 무언가를 포기할 이유가 아니다!
김진중 씨는 지난 4월부터 격주 휴일마다 이용술 씨와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고 있다.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의 도전이다. 물론 각자의 동행인도 함께한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현재 백두대간 중간에 휴전선이 지나기 때문에 종주할 수 있는 구간은 남한 백두대간뿐이다. 그러나 남한만 해도 지리산 천왕봉부터 설악산 향로봉까지 700여 km가 넘는다. 더구나 평지가 아닌 산맥이니 코스의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 씨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데 2년 정도가 걸릴 거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대체 왜 도전하게 되었을까? 김진중 씨는 ‘산악인의 로망’이라는 말로 운을 뗐다.
“시각장애인이기 이전에 산악인이니까요. 눈이 보이지 않을 뿐, 다리 튼튼하고 팔도 멀쩡하잖아요. 정안인보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김 씨는 4월 22일 21구간 갈령삼거리~문장대를 시작으로 5월 13일 33구간 저수령~묘적령까지 종주한 상황이다. 거리로 보면 이제 막 첫발을 뗀 것과 같지만 이번 종주의 의미는 작지 않다.
“시각장애인이 등산을 한다고 하면, 불편해하는 분들이 계세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걱정하고 불안해하시는 거죠.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등산을 마냥 어렵게 여기곤 하죠.”
그는 그런 시선을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이것은 어울림 산악회 전원의 소망이기도 하다. 시력의 부재는 일상생활에서 많은 불편과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시력의 부재가 그 무엇인가를 포기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백두대간 종주를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
“등산을 비롯한 활동적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고 시각장애인 스스로도 그렇게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뭐 어때, 눈이 불편한 게 무슨 문제야’라는 가벼운 마음으로요. 산에 오르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어울림 산악회에 문을 두드려보세요(웃음).”
인식의 장벽은 어떤 산봉우리보다도 높다. 그리고 백두대간보다도 험준하다. 그렇지만 넘기 힘들 뿐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용술 씨와 김진중 씨는 ‘사랑이 머무는 어울림 산악회’의 응원을 받으며 오늘도 산에 오른다. 그런 그들의 종주가 결실을 맺는 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2018. 6. 1. 제10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