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집을 비운사이 현관 입구에 봉지가 놓여있다. 열어보니 ‘지난번에 고마웠습니다.’ 라는 쪽지와 함께 음료수 한 병과 쌀 한 됫박이 담겨 있다.
얼마 전 이층집 새댁이 아이와 함께 찾아왔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로 쌀을 꾸어 달라고 하였다. 같이 온 아이가 “엄마 배고파”하는 소리에 나는 상황을 눈치 채고 쌀을 퍼 담았다. 새벽미명에 일한다고 나가는 지아비에게 차마 쌀독이 비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며칠째 국수를 삶아먹고 저녁에만 밥을 지었다고 했다. 어린 것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배곯았던 지난날이 생각나 왈칵 서러움이 밀려왔다. 눈가에 맺힌 이슬을 새댁이 볼 새라 얼른 훔쳤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것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고 가난한 것보다 더 서러운 것이 배고픔 설움이라 하지 않든가.
위층에 어머니 친구가 사신다. 삼십대 중반의 큰아들이 대기업에 다닌다고 자랑하시는 할머니는 가끔 아들이 다녀가면서 친구들 대접하라고 하였다며 노인정에 음료수며 고기를 사서 여러 번 나누어 턱을 쏘아서 모두들 자식을 잘 두었다고 부러워하는 분이시다. 자식들은 출가하고 혼자 사시는데 주말이면 자녀들이 찾아와서 함께했다. 항상 넉넉한 웃음을 지으시며 아들이 곧 승진하여 중국에 책임자로 간다며 자랑을 하며 시원한 수박으로 한 턱 냈다. 그리고 얼마 후 낯선 젊은이가 들락거리더니 중국에 간다는 아들이 회사에서 실직을 하여 집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마른하늘에 벼락을 치는 일이었다.
같이 일하던 직원이 사고를 내어서 상급자로서 연대책임을 물고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살던 집의 전세 돈과 자가용까지 넘어가고도 모자라 집에 내려오는 차비조차 없어 그 소식을 전해들은 할머니께서 차비를 보내고서야 야밤에 겨우 몸만 내려왔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웃음을 잃어버리고 본인도 반쯤은 넋이 나갔다. 젊은이는 몇 달 동안 집안에만 칩거하였다. 승진을 눈앞에 두고 실직하여 겨우 몸만 빠져나온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동안 동료들이 위로 차 다녀가고 복직구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기다리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사이 집으로 날아드는 연체고지서 독촉장이 그를 세상 속으로 내몰았다. 몇 달 동안을 구인광고 안내판을 들고서 둘러보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전 직장이 너무 좋아서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핑계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새벽시장인 인력시장이다.
미명을 뚫고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들이 하나둘씩 모여드는 곳. 한결같이 운동화를 신었고, 손에는 갈아입을 작업복들이 담겨있는 두툼한 가방을 들었다.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사내들의 얼굴엔 생활고와 시름이 역력하다. 깊게 팬 주름, 술기운이 남아 있는 눈자위. 그리고 그것들을 서리서리 얽고 있는 피곤함. 인력시장의 모습이다. 여기서도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고 노는 날이 많아지면 지하철로 옮긴다고 한다. 인력시장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상처입고 실패한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미명부터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간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력이 필요한 사람들은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듯 일할 장소와 할일과 일당 얼마하면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고 그중에서 사람들을 마치 중전을 간택하듯 선출해서 일을 시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디에서든 남의 시선은 이미 잊어버리고 등만 부치면 잠이 쏟아진다. 그나마도 매일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직란이 치열하게 되자 용역회사라고 사무실을 차려놓고 용역회사를 통하여 사람들을 구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용역회사라는 것이 하루 종일 일터에서 땀으로 목욕을 하는 사람들의 일당에서 일부분을 떼어 제주머니에 챙기는 것이다. 부당함을 호소하며 항의라도 하는 날에는 일자리는 그날로 끝장이니 이래저래 약한 자만 서럽다.
한 일년 그렇게 지났을까 어쩌다 마주치면 땀 냄새가 가득 베인 작업복에서는 냄새가 나고 술 냄새를 풍겼다. 아프리카 난민이 따로 없었다. 할머니는 고생하는 아들이 안쓰럽고 속이상해 매일 눈물이었다. 여름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젊은이가 보이지 않았다. 포항에 포장마차를 하러 갔다고 했다. 어머니는 잘 되었다며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새해가 되었다. 떠나있는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준비하고 밤새워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날이 밝자 할머니는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다. 여러 차례 전화를 하였지만 신호음만 갈뿐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꿈자리가 어지러웠다며 아들에게로 갔다. 주소를 가지고 물어물어 찾아가니 폭설이 내린 퇴근길에 리어카와 함께 빙판길에 미끄러져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담이 결려 며칠째 누워있는 상태였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는 젊은이를 보며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았다며 목 놓아 우셨다. 서둘러 할머니가 먹을 것을 준비하고 의사를 모셔 와서 침을 맞고 정성으로 간호한 덕에 젊은이는 다시 일어났고 할머니는 젊은이 밥을 해준다고 주거를 옮겼다.
집을 비우는 사이 우편물 보관을 해달라고 하시며 수시로 안부를 물어오셨다. 일년쯤 지나서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돌아오셨다. 우편물을 찾으러 와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답답한 이야기뿐이었다. 더위가 시작되자 포장마차가 잘되지 않아 집 짓는데 전기공사일을 맡아서 했다. 공사대금을 받기로 한날 일을 시킨 사람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찾아갔더니 사무실은 모두 비어있었다. 서둘러 건물주인에게 찾아갔더니 대금은 모두 지불한 상태였다. 그 돈이 자그마치 천만 원. 그동안 신용은 vip고객이어서 카드로 재료를 사서 일을 마쳤다는 것이다.
눈이 뒤집힌 젊은이는 공사를 맡긴 사람을 찾는다고 돌아다녔지만 작정하고 꼭꼭 숨어버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희망이라는 신은 용케도 젊은이를 비켜가며 숨바꼭질을 하였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그렇게 힘들기만 한지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안타깝고 가슴이 답답했다.
세상을 원망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는 젊은이를 할머니가 다시 데리고 온 것이다.
수입이 끊어지자 독촉장 연체고지서가 우편함을 가득 채우더니 그때부터 젊은이는 신용 불량자가 되었다. 본인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자와 같았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은 호흡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자식 때문 걱정하고 신경을 쓰시든 할머니는 평소 앓아오던 심장병이 악화되어 치료차 딸집으로 들어가시고 혼자 남은 젊은이는 자주 술 취한 모습에 아무리 살려고 노력해도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현실이 너무 기막혀 힘들고 서러워 주위가 잠드는 한밤중에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언제부터 인가 울음소리가 그치고 새댁과 어린아이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이의 가족이었다. 두 눈이 똘망똘망한 귀여운 아이의 모습을 보노라면 주저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죽을힘을 다해서라도 살아야한다. 가족들에 대한 가장의 책임을 느끼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가며 일자리를 알아보았으나 더욱 나빠진 경기침체로 취직은 하늘에 있는 별 따기보다 더 까마득했다.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였지만 산입에 거미줄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얼마 전부터 새벽시장으로 출근을 한다.
하루는 열어놓은 창문소리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턴가 나지막이 부르는 노래는 쨍하고 해뜰 날 이었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던 쨍하고 해 뜰 날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꿈을 이룬다는 희망찬 삶이 노래가사에 담겨있어 온 국민의 애창가요가 되었던 인기 일 순위 유행가였다. 나는 그 노래 가락을 들으며 한줄기 희망을 보았다. 다시 용기를 내어 준 것 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
젊은이의 해도 언젠가는 쩅 하고 떠오를 것이다.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밝은 미래를 그려보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부르는 노래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쩅 하고 해가 떠서 그동안 고생한 것 마음속의 상처들을 모두 말리고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많은 실직자들에게 병상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우들에게 그리고 죽어라 공부하여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힘들어하는 수험생들에게 쨍하고 해가 떠서 한줄기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