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9.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롬 1:18~23
*제목; 로마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2)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지 않습니까?
1. 복음이 복음이 되려면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이 진정 복음으로 다가오려면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 진노의 무서움을 알아야, 복음에 대한 감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두려움을 안 자들이 받는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예수그리스도)이 그 무서운 진노하심을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그 진노하심을 대신 감당하고 복음의 자녀에게는 은혜와 구원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그래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복음이 복음되고 있습니까? 이는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18절’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롬 1:18)
2.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일어난 이유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19~20절’입니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19~20)
하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인정하지 않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복종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을 살펴보니 다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심지어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핑계”할 수가 없는 자들인데,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 인정하지 않는 삶,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이럴까요? 그것은 죄를 사랑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경험하고도, 죄가 주는 달콤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즐기면서, 죄가 주는 달콤함을 마음껏 누리면서, 내 맘대로 살고 싶어서, 하나님을 분명히 알면서도 애써 하나님을 부인하는 삶, 인정하지 않는 삶, 순종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국의 시내버스에 무신론자들 단체가 이런 광고를 게시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안 계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의 인생을 마음껏 즐기십시오!”
이것이 죄의 출발점이요, 하나님을 부인하는 죄의 시작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잠시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매사에 그분을 인정하며 삽시다. 그리고 그 다스리심 가운데 살아갑시다.
인생의 죄의 달콤함을 잠깐이지만, 그 진노하심을 영원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고 있으니, “알면서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두 번째 이유입니다.
인기작가이자 국회위원을 지낸 김홍신씨를 아십니까? 그는 지독한 골초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37년 6개월 동안 피웠던 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스승의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쥐도 독약인 것 알면 먹지 않는데, 인간은 독약인 줄 알면서도 먹는다.”
인간이 이리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들은 김홍신씨는 ‘인간 실존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 순간 담배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담배를 끊자 사람들은 그를 ‘지독한 사람’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독극물을 삼키는 것이 독한 것인가? 버리는 것이 독한 것인가?”
우리는 참 독한 사람들입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입을 줄을 알면서도, 죄의 달콤함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고 죄를 삼키는 것입니다.
셋째, 알면서도 죄를 저지르고 있다면, 그는 이미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세 번째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의 종이 되니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마치 우리 자녀들이 나쁜 사이비종교집단에 빠져 집도 부모도 삶도 다 버리고 그 집단에 소속된다면 얼마나 개탄스럽고 안타깝겠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이라고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마귀의 말을 따르는 것이 바로 마귀의 종입니다.
결국 이런 자들은 모든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다 바꾸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우상들을 앉히는 우상숭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21~23절’입니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1~23)
한 번 죄를 따르고 나면, 더 이상 돌이키지 못하고 더 깊은 죄에 빠지게 됩니다. 그 이유를 ‘요 3:19~20’에서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밝히십니다.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19~20)
악한 행위를 따르고 나면 그 행위가 드러날까봐 빛으로 나아오지 못하고 더 깊은 어두움 속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종의 모습입니다.
넷째, 마귀의 종이 되면 이는 “죄의 종”이 되어버립니다. 죄만 쫓아가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롬 6:6’입니다.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결국 이런 자들은 ‘32절’처럼 되고 마는 것입니다.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32)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온 몸으로 맞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24~28절’을 봅시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4~28)
바로 “내버려 두심”입니다. 징계보다 더 큰 진노하심은 바로 “내버려 두심”인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범하고 아무 일 없는 것을 더 무겁게 여기셔야 합니다.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그 징계를 통해서 돌이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극도의 진노하심의 대상자들은 오히려 “내버려 두셔서” 돌이키는 기회를 박탈해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도, 알면서 죄를 지어도, 마귀와 죄의 종노릇하여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고 자랑하거나 다행스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진노하심의 대상자가 된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으로 우리의 어리석음과 다스리심 가운데 들지 못한 모든 것을 회개합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기회일 수 있습니다.
첫댓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자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살고, '알면서도 죄를 범하고', 결국 '마귀와 죄의 종'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 부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진노는 "내버려 두심"입니다. 회개의 기회까지 박탈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으로 회개합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