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화분에 가라앉은 흙을 더 채워 주는 작업을 마쳤다. 무리해서 몸이 여기저기 아팠지만, 한 가지 공정을 마쳤다는 안도가 컸다. 이젠 잣껍질을 올려야 봄맞이가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 초에 가지치기를 해야 했는데 우린 이번에도 또 적절한 시기를 맞추지 못하고 늦어지고 있다.
우선, 쌓아 놓은 잣껍질을 비닐하우스까지 옮겨서 화분에 올리는 일도 만만치 않겠다 싶었다. 농장 안쪽까지 25t 트럭이 들어갈 수 없어서 입구에 쏟아 놓았기 때문이다. 궁리해 낸 것이 왕겨포대에 담아 트럭으로 옮겨서 리어카로 골목까지 이동해 삽으로 화분 위에 퍼 올리기로 했다.
왕겨를 포대에 담다가 놀랐다. 잣껍질을 쌓아 놓은 겉 부분이 하얀빛으로 말라 있었는데, 겉에 한 겹만 말라 있고 바로 아래부터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던 탓이다.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옮기기도 힘들 것 같아 포대에 절반씩 밖에 담지 못했다. 한 곳에서 담을 수 없어서 윗부분의 마른 것들만 걷어내서 담았다. 전체를 한꺼번에 작업할 수 없어 잣껍질이 마를 때마다 윗부분만 골라 담아서 화분의 한 두줄 씩이라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올해 수확을 할 수 있는 큰 나무가 두 줄이라서 그 화분부터 돋아 난 풀들을 뽑아내고 잣껍질을 올렸다. 다음 줄들은 잣껍질이 마르는 대로 작업하기로 했다. 아직 덜 자란 나무라서 아랫부분에 잔가지가 많다. 그래서 가지치기를 먼저 한 다음에 잣껍질을 올려야 한다. 몇 날 며칠 비가 내리고 있어서 잣껍질이 잘 마르지 않는다. 일이 언제 마무리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번 봄은 정말 빛나는 해를 만나기 어려운 날들이었다.
전문가를 모셔서 블루베리 나무의 가지치기를 처음으로 배웠다. 수확할 두 줄은 꼼꼼하게 가지치기를 해야 되었다. 나머지 줄들은 열매를 맺지 않도록 강전정을 해야 된다고 알려 주셨다. 전문가는 전정가위를 들고 내 키보다 훨씬 더 크게 자란 나무들을 싹둑싹둑 잘라 냈다. 애지 중지 키워 온 나무들을 자꾸만 잘라 내라는 것이다. 내 팔을 잘라내는 것처럼 나무들의 아픔이 느껴졌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이런 말들이 하나도 위로되지 않았던 것처럼 야속한 말들이 이어졌다.
"과감하게 잘라야 해요."
복숭아나무처럼 블루베리 나무도 그래야 한단다. 약할수록 더 짧게 잘라야 한단다. 아까워서 어떻게 자르나 걱정하고 있는 내 마음을 아는지 "아깝다고 놓아둬도 여린 가지는 커지지 않아요."라며 경험상 지혜를 알려 주신다.
나무가 크고 풍성한 두 줄의 화분은 안쪽으로 파고드는 가지, 아래로 심하게 처진 가지, 짧고 얇은 가지, 복잡하게 얽힌 가지 등 햇빛이 잘 들 수 있도록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가지 끝에서 한 뼘 정도에 꽃을 남기고, 한 가지에 두세 개 정도 남기고 자른다. 나머지 화분의 나무들은 모두 아래서 30~40cm 정도 남기고 일정하게 자른다. 지난해에 자라 난 가지들에는 맛보기 용으로 꽃눈을 남겨 두기로 했다.
아이들을 키울 때, 온갖 육아교육서를 구입해서 읽었다. 책 속에는 내가 하고 있는 여러 행동들을 하지 말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도 일정한 공식과 순서가 있을 수 있을까? 개별 아이들의 특성이 다르고, 환경도 제각각 다른데 말이다. 공식대로 키우면 일정한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개성 없이 비슷한 아이들로 성장하는 게 아닐까? 성인이 되었어도 독립시킬 수 없는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나뭇가지를 잘라내면서도 내가 어렸을 때나 아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어릴 때는 몰랐다. 부모님의 강압적인 교육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내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님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내 눈에는 몇 발짝만 더 나가면 엎어질 것이 뻔한데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도 오 남매를 애지중지 키웠고, 나도 아이들을 애지중지 키웠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나무들도 내 맘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지를 자를 때마다 내 마음도 아프다는 것을. 모두가 크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궁여지책으로 가지를 잘라내는 것이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사흘 연휴 동안은 서둘러 가지치기라도 마쳐야 한다. 그 후에도 줄줄이 일들이 밀려 있다. 잘라낸 나뭇가지들 치우고, 돋아난 풀들 제거하고 잣껍질을 올려야 한다. 복숭아밭에서도 우리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첫댓글 블루베리 재배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잘라내기를 잘 해야 튼실한 나무로 성장한다니 어쩔 수 없겠지만 마음이 아프겠어요.
끝이 없는 농사 일은 날마다 진행 중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너무 수고가 많은데 그래도 보람 찾아 가는 과정이니 이겨내야지요. 응원할게요.
가지치기를 잘해야 나무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가지를 살리느냐... 아이를 키울 때나 내가 살아가는 방향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블루베리!!
곧 수확의 기쁨 맛보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