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날아온 누군가의 말이 나를 후려쳤다. 아직 젊은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았으면 그런 병에 걸리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년 남녀 네 명이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웬만한 암은 초기에 발견해서 금방 고칠 수 있다던데. 백세시대란 말이 괜히 있나. 건강검진만 제때 받아도 아플 일이 없지. 요즘처럼 좋은 세상에 자기 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그 지경까지 안 갔을 텐데.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면서 그들이 주고받던 말. 아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네가 아픈 건 모두 네 탓이라는 그 말들. 그들은 어쩐지 뿌듯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절대 아프지도 병들지도 않을 거라고. 나는 지쳐 있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울 힘도 없을 만큼 고통에 묻혀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제발 말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싶었지만, 사지가 고통에 파묻혀 꼼짝할 수도 없었다. 그때 나는 잠시 지옥에 서 있었다. 인간들의 지옥.(p.26)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p.35)
나의 천국은 다음과 같은 것.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날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p.37)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 한 송이.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p.38)
- 이번에도 소설을 통해 사랑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강한 동력입니다. 죽어 가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남기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돕는지도 모르고 도와줍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방법으로 누군가를 돕고, 지키고, 응원하고, 살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 또한 이곳에서 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