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방문했던 경험이 있는 경주 토함산 석굴암. 한국인의 자존심이라고 전문가들조차 당당하게 언급하는 이 작품을 불행하게도 유리 창문을 사이에 두고 먼발치에서 2~3분밖에 쳐다볼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석굴암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학자들이 언급한 우리 문화재 가운데 하나이지만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다. 대표적 쟁점은 석굴암에 나타나는 사상적 배경, 본존불 명칭의 문제, 입구에 기와지붕을 덮은 목조 건물의 유무, 동짓날 동해 일출의 빛이 통과하는 창문의 존재 유무, 석굴암과 불국사의 관계 등이다. 오늘은 이런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누구나 동의하는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 석굴암 본존불상의 전경
흔히 조각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많이 언급한다. ‘다비드상’의 다소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들 중 이례적인 것으로, 머리와 손, 특히 오른손의 크기는 전체 신체에 비해 유난히 거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상당히 균형이 잡힌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본래 대성당의 지붕에 위치할 것을 감안하여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고려해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다비드상’은 르네상스 조각 작품을 대표하며 젊은 육체의 아름다움과 힘을 상징하는 최고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양에 ‘다비드상’이 있다면 우리는 석굴암 본존불상이 있다. 석굴암은 종교, 예술, 과학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작품이지만 특히 그 가운데 본존불상은 석굴암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굳이 ‘다비드상’과 비교하자면 본존불상의 제작 시기는 다비드상보다 750년이나 앞서며 재료도 대리석보다 훨씬 조각하기 어려운 화강암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 본존불상은 작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을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석굴암 본존불상에 보이는 안정감 있는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인간이 느끼는 ‘ 착시현상‘에 있다.
관람객들은 석굴암 본존불상을 참배하면서 참배자의 위치에서 보았을 때 본존불상이 대단히 자연스럽고 안정감 있다고 느낀다. 이는 철저하게 인간의 눈이 지니는 착시현상을 알고 이를 고려하여 조각 작품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흔히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에서 보이는 배흘림 기법은 착시현상을 고려해서 만든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운다. 시험에도 출제된다. 그래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 건축물뿐만 아니라 석굴암 본존불상에도 그런 기법이 숨어있다
석굴암 본존불상이 완벽한 모습으로 보이는 3가지 이유
유리 창문 속에 갇혀 있어 직접 친견할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쳐다보았을 때 매우 안정감 있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신라시대 천재 조각가의 뛰어난 예지력의 소산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래에서 언급하는 세 가지 측면이 고려된 상태에서 석굴암 본존불상은 탄생한 것이다.
첫째, 본존불상의 위치이다. 석굴암의 평면도를 보면 네모난 전실에서 복도를 지나 둥근 전실로 들어가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이 평면도에는 불교에서 추구하는 세계관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도면에서 본존불이 좌정한 위치를 살펴보라. 둥근 전실의 중앙에서 약간 뒤에 본존불을 모셨다. 왜 그렇게 배치를 했을까? 석굴암 내부에 빛이 투영되면 본존불의 앞면은 햇볕을 받아 밝아지고 뒷면은 어두워진다. 여기서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어두운 곳은 물러나 보이고 밝은 곳은 앞으로 튀어나 보인다. 그러므로 약간 뒤로 물려 놓으면 실제로는 중앙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라인들은 본존불상이 최대한 중생의 눈에 완벽한 모습으로 보여 지길 원했다. 그래서 중앙보다 약간 뒤로 모셔 놓은 것이다.
▲ 1913년 석굴암 해체 수리 당시 무렵 촬영한 유리원판 각종 사진. /성균관대 박물관 제공
둘째, 본존불상 손의 크기이다. 석굴암 본존불상이 완벽하게 보이도록 노력한 것은 위치뿐만 아니라 손 모양에서도 나타난다. 왼손은 선정인의 자세로 단전 근처에 두고 오른손은 무릎을 짚고 있다. 참배객의 위치에서 보면 오른손이 가깝게, 왼손은 멀게 보인다. 여기에서 또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렇다면 석굴암 부처님의 양손가운데 어느 쪽이 클까? 당연히 왼손이 약 2cm 더 크다. 이로써 신라인들은 본존불이 최대한 중생의 눈에 완벽한 모습으로 보여 지길 또 원했다.
마지막으로, 본존불상 뒤편에 존재하는 광배의 모양이다. 석굴암 내부에서 착시현상을 교정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두광(頭光)의 위치 선정이다.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광배는 불상에 직접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석굴암 본존불상 두광의 연꽃 광배는 간격을 두고 멀리 배치하여 더 입체적인 조화를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광배의 둘레를 돌아가며 장식한 연꽃잎을 위로 올라 갈수록 크게 아래로 내려 갈수록 작게 만들었다. 실제 자를 가지고 재어 보면 좌우 224.2cm, 상하 228.2cm인 타원형이다. 이 역시 아래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착시현상을 이용하여 참배자가 서서 보았을 때 원으로 보이도록 설계한 경우이다. 즉, 실제 측량을 해 보면 타원형 광배이지만 참배자의 눈높이에서 보면 완벽한 원형의 광배로 보인다.
“문화재는 그 터를 떠나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라는 말은 참으로 진리이다. 착시현상까지 고려한 선조들의 지혜를 어찌 하나의 사물로서만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평할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입장료 4,000원을 지불하고 석굴암에 와서 두꺼운 유리 창문 너머로 우리 문화재를 감상해야만 하는 그 심정이 답답하기만 하다.
첫댓글 문화재..
삼국시대에 건축되었다고 하나, 과연 다비드상보다 750년이나 앞서서 만들어졌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