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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배 교수-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부룩 캠퍼스 불교학과
글/김형근
박성배교수와 관련된 기사는 그동안 본지에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152호에 ‘미주불교 신행단체의 어제와 오늘’ 160, 161호에 ‘뉴욕의 한국불교,’ 163호에 ‘미주한국불교 40년 특집’ 등의 기사들이 모두 박교수 관련 기사들이다. 그러나 이번 호의 글은 박교수의 활동에 역점을 두고 쓴 글이다. 앞에 소개된 글과 중복된 부분은 간략하게 기술하였으니 앞에 글들을 참고하면 이 글에서 간력하게 기술한 부분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박 교수가 30여년을 미국불교학계에 있으면서 노력하였으나 겉으로 나타나지 않은 부분 등은 올해 안으로 박교수와 직접 인텨뷰를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박성배교수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한국인 불교학자이다.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한국에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박교수는 193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의과대학 의예과에 입학하여 의학공부를 하던 의학도였다. 그러나 그는 제도화된 대학교육에 실망하고 절로 들어갔다. 1955년부터 1956년까지 정전강스님을 모시고 참선 수행을 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철학과로 전과하여 학사과정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동국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에 있었다. 1962년부터 동국대학교에서 강사로 출발하여 부교수를 하다가 1969년 1월 미국으로 왔다. 미국 오기 직전에는 해인사에서 성철스님 지도로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참선수행을 하였다. 박성배교수는 1963년 <‘오’의 문제: 목우자의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중심으로>라는 지눌 선 사상에 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글이 지눌 사상에 대한 최초의 기념비적인 논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9년 1월 달라스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로 유학 온 박 교수는 1971년 까지 이 학교의 신학부에서 기독교를 공부하였다. 1971년부터 버클리대학교에서 불교공부를 하여 1978년 'On Wonhyo's Commentary on the Awakening of Mahayana Faith'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교수는 버클리에 재학 중일 때 부터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를 미국불교학계에 알리고 삼보사에서 설법하면서 미주한국불교계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이 글에서는 박교수의 미주한국불교계에서의 활동, 뉴욕주립대학교 교수로서의 활동, 그리고 한국불교의 거목 원효성사, 보조국사, 성철큰스님과의 관련된 활동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버클리에 재학 중일 때 박성배 교수는 한국에서부터 잘 알고 역시 1971년도에 도미한 이한상 거사와 다시 만났다. 이한상 거사는 버클리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카멜에 본격적인 규격을 갖춘 사찰 삼보사를 건립하고 1973년 1월 개원식을 했는데 이 행사에 박 교수가 사회를 맡으면서 미주한국불교계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박교수는 삼보사에서는 수도원부원장이란 직책도 맡았고 1977년 박교수가 버클리를 떠날 때까지 약 6년간 매월 한 달에 한 번씩 삼보사 정기법회에서 설법을 하였다.
뉴욕주립대 스토니부룩 캠퍼스에 취직이 되어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박교수는 1977년부터는 원각사에서 매월 한차례씩 10년 설법을 하였다. 박교수의 설법과 강연에는 뉴욕지역의 동양사상과 불교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또 당시 뉴욕지역의 이순배, 임원기, 김수곤, 김병석, 최무직, 양미자, 정효정, 필자 등의 요청으로 이들과 협의하여 민족불교연구회(처음 출범 때는 보현보살회 몇 달후에 이름을 바꿈)의 지도법사로 1986년 7월부터 1987년말까지 이 단체를 이끌면서 불교사상에 바탕을 둔 사회참여의 길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이 단체의 협조로 1986년 9월에는 뉴욕 총영사관 앞에서 뉴욕지역의 스님과 불교신자 150여명을 동원하여 ‘해인사 승려대회’를 지지하는 시위를 주도하며 미주한국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를 하였다. 당시 박교수는 한국학과 설립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 관리들과 자주 접촉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군사정권하의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대규모 시위를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한국학을 해외에서 열심히 한다 해도 군사정권하의 관리들이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대대적인 시위를 주도하는 교수에게 지원과 협조를 하겠는가? 1980년 초에 뉴욕에는 원각사, 조계사, 전등사, 연국사 등이 있었지만 박교수는 이 무렵 법안스님과 더불어 뉴욕지역의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중요한 지도자였고 박교수의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활동 외에도 미주한국불교계의 요청에 의하여 뉴욕지역의 미주현대불교 초청 강연을 비롯하여 시카고 지역의 불타사와 불교연수원, L.A.지역의 관음사와 정달법사, 하와이 대원스님의 초청에 참석하여 설법과 발표를 하면서 한국불교계 요청에 부응하려고 노력하였다.
박성배 교수가 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미국에 한국스님과 한국불교사상의 소개 등 여러 가지 활동의 주무대는 뉴욕주립대 스토니부룩 캠퍼스였다. 그는 이곳에서 용화사 송담스님, 숭산스님, 서옹스님, 도문스님, 대원스님, 태고종 안덕암스님, 이 원오 군법사를 비롯하여 불교계의 많은 인사들을 직접 초청하였고 때로는 해외출국이 힘든 시인 고은씨 등을 국제행사에 초청하여 반체제 인사로 출국이 금지되어 있었던 고 시인의 미국 방문을 가능하게도 하였다. 박교수의 초청으로 온 스님들은 스토니부룩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참선지도와 설법을 하였으며 영어공부를 한 사람들도 있다.
박성배 교수는 1978년 뉴욕주립대에서 원효사상을 미국사회에 알리는 ‘원효사상세미나’를 개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행사에는 박 교수, 버클리대학교의 랑케스터 교수, 중국인 왈렌 라이 교수 등 불교학계에 중요한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3일 동안 계속되었다. 자연과학 중심의 대학으로 유명한 스토니부룩대에서 인문학과 세미나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 성공과 후의 한국학과 설립 추진 등이 잘되어 이 대학에 아시아학과가 성장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이 세미나의 성공에 자신을 가진 박교수는 ‘한국전통종교학과’ 설립을 추진하다 1978년부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한국학과 (Korean Studies)설립을 추진하였다. 이 일에는 모금이 중요하였는데 법안스님을 비롯하여 강자구, 고광재, 조일환, 김수곤, 김병석, 임원기, 최종일, 최수용씨등 많은 동포들이 설립운동과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 한국학과는 미국내 다른 한국학과와 달리 장기간 동포들이 앞장서서 모금하여 설립한 유일한 경우이고 이 후 스토니부룩 한국학과는 한국학과를 설립하려는 미국내 다른 대학들의 모델이 되었다. 이 한국학과를 통하여 박 교수는 불교학자들을 양성하였는데 현재 서울대 교수인 윤원철박사를 비롯하여 미국인 척 멀러, 박진영, 김종인씨등이 이들이다. 이들은 여기에서 박교수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미국, 일본,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1997년부터는 국제원효학회(Internation Association for Wonhyo Studies)결성하여 동국대에 한국본부, 스토니부룩대에 미국본부를 두었고 박 교수는 미국측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원효학회에서는 올해 원효전서를 영역하여 출판할 예정으로 있다. 박성배교수가 책임 편집인으로 있으면서 서울대학교와 스토니부룩대학교가 공동편찬하여 뉴욕주립대학교출판부에서 발행하는 한국학총서는 해마다 출판하는데 현재 약 20권이 나왔다.
박 교수는 한국불교의 큰 흐름인 원효와 지눌에 대한 관심을 평생 한 번도 놓지 않았다. 1981년 성철스님의 선문정로(禪門正路)로 인해 한국불교계에서 ‘깨달음과 닦음’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 책은 성철스님이 보조국사의 돈오점수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박교수는 동국대학교 취직 논문으로 발표된 <지눌 연구>로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또한 한때는 해인사에 들어가 성철스님의 지도아래 참선을 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뉴욕에서도 선문정로를 널리 알리며 이에 대한 해설을 대중적으로 하기도 했다. 한국불교계의 송광사측에서는 성철스님의 보조국사 비판에 대하여 보조사상연구원을 결성하여 이 연구원의 불교학자들을 동원하여 보조스님의 사상을 집중 조명하여 널리 알리고 또 한편으로는 성철스님의 보조스님 비판에 반격을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90년 10월 역시 보조사상연구원 주최로 열린 ‘제 4차 국제불교학술회의’때는 박성배교수가 ‘성철스님의 돈오점수설 비판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성철스님의 제자였던 박 교수의 발표는 불교계는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 회의에 대한 기사와 박 교수에 대한 기사가 회의 시작 전 부터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 논문에서 박 교수는 성철스님의 보조국사 비판을 일리는 있지만 좀 무리라고 보았다. 박 교수는 주장했다: “지눌의 돈오점수설을 매우 넓은 의미의 종합적인 수행이론이라 말할 수 있다면 성철의 돈오돈수설은 오직 깨침 하나만을 위해서 사는 깊은 산속의 수도자들을 위한 수준 높은 수도이론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철스님은 선승에게 필요한 특수한 수도이론을 만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 만천하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일반적인 수도이론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보조스님을 마치 이단처럼 몰아붙인 것은 아무래도 좀 지나친 것 같다.” 이 논문 발표이후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논쟁의 정점에 항상 박교수가 있었다. 박 교수는 이 문제를 미국종교학회로 끌어들여 미국종교학자들의 정기 연례모임에서 이 주제가 채택되어 쎄미나를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원효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또 원효사상에 대한 많은 논문들도 발표하였다. <원효사상 전개의 문제점: 박종홍 박사의 경우>를 비롯하여 <교판론을 중심으로 본 원효와 의상>, <원효의 화쟁 논리로 생각해 본 남북통일 문제>, <원효사상이 풀어야 할 문제> 등이 이것이다. ‘돈점론’과 마찬가지로 원효사상에 대한 것도 미국종교학회 연례모임에 주제로 하여 쎄미나를 하는데 박 교수가 큰 역할을 하였다. 즉 1998년 11월에 플로리다 올랜드에서 ‘년례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에서는 'Philosophical and Doctrinal Significande of Wonhyo 란 주제로 박성배, 조은수, 해주 스님, 김용표 교수가 발표를 하였다. 이 모임에는 원효종 종정 법흥 스님, 비구니 회장 광우 스님, 진월스님, 랑케스터 교수도 참석하였다. 박 교수는 이렇게 뉴욕주립대에서 불교학자로 활동하면서 한국불교의 쟁점이 된 <돈점론> 그리고 원효, 보조, 성철스님 등의 사상을 미국종교학계에 소개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것이다.
박성배 교수의 이러한 활동은 미국 사회에서도 인정되어 1991년 뉴욕주정부가 주는 제1회 아시안 아메리칸상을 수상하였다. 이 상은 동양 이민자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뉴욕주 발전에 공로가 있는 8명의 아시안 아메리칸을 선정하였는데 한국인으로는 박 교수와 세계정상급의 성악가로 인정받는 홍혜경, 일본계로는 1973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레오 에사키 박사, 11세에 뉴욕필하모니와 바이올린을 협연한 당시 20세의 미도리 양, 중국계로서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현대 물리학계의 거목 CN YANG 박사, 인도인으로서는 New Yorker 지에 1959년부터 글을 써온 베타 교수이다.
박교수 저서에는 'Buddhist Faith and Sudden Enlightenment (SUNY Press 1983)-예문서원에서 나온 윤원철 교수가 한국어로 번역한 깨침과 깨달음' ,The Korean Buddhist Canon: A Descriptive Catalogue (Univ. of California Press, 1980년 루이 랭캐스터 공저),The Four-Seven Debate((1994 SUNY Press 공저) 등이 있다.
박교수는 스님이 아니었지만 사찰의 테두리를 넘어 대학을 근거지롤 하여 한국불교를 미국에 알리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신도들에게 불교전반에 대한 강의와 설법을 꾸준하게 계속하여 어느 스님 못지 않게 미국내의 한국불교 발전에 이바지 하였던 것이다.
200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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