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이기붕을, 이기붕은 이정재를, 이정재는 나 임화수를 부렸지. 당시 서울에서 제일 센 주먹이 이정재였어. 국회의원 해보겠다며 자유당 감찰부 차장 직함까지 달고 애를 썼는데, 이기붕 눈밖에 나니 소용없더군. 이정재는 쫓겨났고 내가 자리를 채웠지.나 같은 빈농 출신도 출세할 날이 오다니. ‘반공’이란 말만 붙이면 만사형통이던 시절. 1959년 1월에 주먹패를 긁어모아 반공청년단을, 3월에는 연예인을 모아 반공예술인단을 만들었어. 이승만이 멋지게 나오는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이란 영화도 제작했지. 높은 양반들 비위도 맞추고, 미리부터 선거 운동도 해준 셈이야. 이듬해가 대선이었거든.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1960년은 뒤숭숭했지. 부정선거라며 마산에서 들고일어났어. 4월에는 서울도 들썩이더군. 겁을 주면 움츠러들 줄 알았지. 4월18일, 데모를 마치고 돌아가는 고려대생들을 습격해 쇠망치로 때려눕혔어. 웬걸, 이 소식을 듣더니 다음날 4월19일에 사람들이 우르르 들고일어나더군. 내가 민주혁명을 부추긴 셈이 됐네.그나저나 저들이 나를 처형한다고? 그저 하수인이었을 뿐인 나를? 저들도 예술가를 관리하고 정권 찬양 영화를 만들려면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