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별
서 영 복
오히려 홀가분했다. 참 이상하다. 이럴 줄 몰랐다.
얼마 전 나보다 딱 십 년이나 선배인 언니는 며칠간 잠도 못 자고 밥도 맛이 없다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끝내는 눈가도 짓무르고 입술이 부르트며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처음으로 그때 못지않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이별이란 상대를 불문하고 아픔을 동반하는가? 그녀는 팔십 대 중반의 나이에 승용차와의 이별이 바로 그 원인이었다. 물론 그 언니는 여느 칠십 대처럼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맑아서 당신 나이보다 십 년쯤은 충분히 아래로 보인다. 매사에 경우가 바르고 자기관리를 반듯하게 하여 씩씩하였고 오래전 일이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도 승용차로 출퇴근을 했기에 어디든 운전하는 게 쉽다고 했다.
심지어 대전으로 옮겨온 후에도 그녀는 서울 장거리 운전조차 대중교통보다 편하다고 했었다. 그런데도 자녀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85세가 되던 생일을 기점으로 승용차를 없애고 자동차 면허증을 반납했는데 운전도 못 하는 노인네가 된 듯싶어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났다고 하였다.
그 얘기를 들었을 당시 나도 그럴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기준으로 친다면 언젠가 십 년쯤 후에 승용차를 없애게 될 텐데 많이 섭섭할 것이고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삽 십 대에 면허증을 함께 따고 곧바로 승용차를 샀다. 때마침 시골 벽지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게 되어 승용차가 아니면 출퇴근이 어려운 곳이었다. 아이들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가르쳐 보려고 큰 도시로 이사했던 해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었다. 도로 사정도 좋지 않던 80년대에 출근길은 두 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철 따라 풍경이 달라지던 산 고갯길을 새벽부터 조심조심 운전해 가면서 신혼 시절처럼 행복하였다. 자가용차가 흔하지 않아 아파트 주차장에 몇 대 안 되는 승용차를 보며 저녁마다 먼지를 닦아대던 일조차 즐거웠다.
어느 날 우리 아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엄마, 공부하다 쉬는 시간에 나 혼자 웃음이 나왔어요” 친구들이 왜 웃냐고 물었지만, 자가용 자동차 생각이 나서 너무 좋았던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나 좋았으면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을까.
우리는 여행을 좋아해서 결혼하자마자 방학 때를 기다려 집을 나섰다. 심지어 갓난아이들을 데리고도 여행을 다녔다. 버스도 타고 기차도 타고 때로는 배도 타보았다.
결혼 10주년 여행으로는 생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여행까지 했다. 기차에서 빈자리가 없을 때는 앉아있는 승객에게 아장아장 걷던 우리 아이들을 맡긴 후 나는 우리 아이들과 종종 눈만 마주치고 서 있으면 되었다. 만원 버스에서는 열린 창문으로 우리 아이들을 하나씩 먼저 태우기도 하였다. 그랬던 우리 가족에게 승용차는 또 한 채의 움직이는 집이니 가족에게 보물처럼 소중했다.
아이들이 커가고 학교 수업으로 하교가 늦거나 등교가 이른 때도 승용차는 맡은 임무를 성실히 했는가 하면 우리 부부의 근무지가 바뀌고 형편이 좋아질 무렵부터는 승용차를 따로따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점점 자동차의 배기량도 늘어나고 가격이나 옵션도 고급으로 바뀌면서 필수재산목록이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던 우리에게 승용차의 애정은 두 말해 무엇하랴. 심지어 내가 먼저 퇴직을 하고서도 우리 집에는 여전히 승용차가 두 대 있어야 했다. 고맙게도 큰 사고 없이 40년 가까이 차종을 바꿔가며 함께 잘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에게도 이들과의 이별이 시작되었다.
내가 사용하던 코란도 녀석은 정말 헤어지기 싫었다. 나와 함께 하던 다른 차들과 달리 가장 오랜 기간 아무런 말썽 한번 없이 16년 동안이나 동행해주던 고마운 친구였으니까. 그런데 남편마저 퇴직하고 우리가 장기간 캄보디아 생활 선교를 시작할 때 어쩔 수 없이 그 녀석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래도 그이가 사용하던 좀 더 괜찮은 승용차를 남겨두었으니 이별의 서운함은 참을 만했었다.
올해 1월 초 자동차세도 1년 치를 선납하고 자동차 보험 만기일도 가까워져 오니 보험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까이에 좋은 카센터를 알게 되어 타이어 4개도 고급으로 교체하고 엔진오일이며 제반 점검을 말끔히 하면서 꿈도 야무지게 이제 코로나도 끝나가니 슬슬 둘만의 여행이나 시작해볼까 생각하였다. 실버타운에 입주한 지 일 년이 돼가도록 여행다운 여행을 안 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갑자기 자동차를 없애라니…….
작년에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 교육점수도 상위점수를 받아 보험료 할인 혜택도 받았고 아직 다음 적성검사일이 4년이나 남은 시점이다. 운전을 취미로 하는 내 친구 하나는 70대 중반의 건강한 나이에 자동차를 없앨 시기는 아니라며 펄펄 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기가 반쯤 죽었다. 우회전하다가 직진하는 자동차와 접촉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은 기회다 싶었는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고령 운전자의 둔해진 운전 감각이 큰 사고를 내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사고를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면 엄마 성격에 평생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할 거라는 이유이다. 평소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던 딸아이마저 벌써 제 오빠의 의견에 손을 들었다.
최종 결정권을 내게 주었지만 나도 대세를 따라가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이는 승용차가 없어지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조목조목 얘기해 주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여느 때 보다 빠른 시간에 이것을 결정하게 된 것에 놀라웠다.
그러고 나서 단 며칠 만에 주행거리도 많지 않은 바퀴 달린 집 한 채를 떠나보내었다. 이제부터 건강을 관리하며 넉넉한 시간으로 기름도 없이 타는 자전거, 남이 운전해 주는 셔틀버스, 노인무료 시내버스, 지하철과 할인요금인 기차, 좀 비싸도 승용차보다 싼 택시, 고속버스 승객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인 최소한 내가 운전을 잘 못 해 누구를 다치게 할 걱정은 평생 안 해도 된다. 고맙다. 홀가분하다. 모든 이별이 다 슬픈 건 아니다. 이런 이별은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