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의 부지깽이 (외 2편)
조소영
부지깽이나물만 부지깽이가 아니다
한 시절 훈육의 연장
부엌살림과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엄니의 한풀이 도구였다
삭정이도 아닌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가
불을 어르고 다루며 불에 데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불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그의 힘이었다
밥이 끓어 넘치고 뜸 드는 소리에
가슴 달그락거렸던 시절
소죽 끓는 애달픈 노랫가락이 스민 지휘자
피카소가 되기도 하고
때론 길을 묻는 곳을 가리키기도 했다
눈코 뜰 새 없던 추수의 계절
콩단을 털거나 깻단을 털어내는 도리깨질로 바빴다
묵을 쑤고 쩡쩡 얼어붙은 겨울 엿을 고고
음력 섣달그믐,
명절 준비로 처마 끝까지도 바빴을 시절
안 쓰는 방에 군불을 지피고
부엌 뒤란 솥뚜껑에 누름적 부칠 때도
얼마나 분주했을지
엄니의 머리에 쓴 하얀 수건이
그을린 자국으로 말해주듯
검게 탔을 엄니의 속
어느새 새해는 정지문 앞에 와 있고
그 시절 아궁이는 그리움으로 활활 타고 있는데
엄니의 부지깽이는 약해질 대로 약해져
키가 반으로 줄었다
하지감자 사랑
아버지는 밭을 갈아엎고
씨 좋은 감자를 골라 조각을 냈다
속살이 드러난 감자
하얀 지혈제 가루를 뿌리듯
상처에 아궁이 재를 굴리고
언덕 너머 가마골, 골밭 이랑마다
아버지의 희망을 넣으셨다
아버지의 나이가 된 지금
한 입 베어 문 찐 감자는
그 시절 보릿고개를 넘던 가족처럼
찌든 가난을 함께 나눈 감자는
가족의 사랑이었다
칼에 베이는 아픔을 견뎌야 했을
잘라낸 반쪽감자
빗물로
손길로
상처는 그 시련을 딛고
땅 밑 어두운 곳에서도 몽돌처럼 둥글게 여물어
세상 밖으로 어엿이 꽃대를 올렸다
하얀 꽃 보라 꽃
어두운 곳의 식솔들을 위해
꽃을 버려야 하는 애처로운 감자꽃
숱한 밤, 가족의 배를 채워줄 사랑으로 거듭나
어두운 곳에서도 아버지의 열망은 통했을 것이다
여름 한낮, 아팠던 살점은 아물어
까만 눈동자를 줄줄이 달고 나오는 식솔들
가슴마다 뜨겁다
구절초 아침
보슬비 그친 후 밖으로 나온
아침의 햇살
들꽃 방울방울 맺힌 잔등으로 내려와 앉았다
밤새 우려낸 시와 음악을 닮은
보슬비에 세수하고
그윽하게 다가선 구절초의 아침
그런 중에도
삶이란 녹록지만은 않아
물구나무로 쇠똥 밭을 구르는 쇠똥구리
집채만 한 살림을 데리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길을 가는가
설혹, 그렇다 할지라도
대문 앞을 지키는 대추처럼
땡볕과 태풍도 다 넘어와 지금이 있노라 말해준다
그새, 들꽃 잔등에는
풍뎅이가 날아와 흠칫 멈춘다
밤새 마음을 쓸며 나왔을 생명
향기라도 맡는 것처럼
밤새 비워낸 가치에
고요한 가치에
충만한 가치에
풍요로운 가치에
밤새 우려낸 들꽃 풍경을 가슴에 담아
구절초의 아침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