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Form)
식당에 갔다. 종업원의 억양이 좀 이상했다. 알고 보니 외국인이었다.
요즘 한국 총인구의 4%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이제 대부분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살아가지만, 아무리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도 가만히 들어보면 억양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송에 나와 한국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조차 억양만큼은 쉽게 감추지 못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진짜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단어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악센트와 말의 높낮이라는 '소리의 폼'을 본토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사람이다.
억양은 한평생 살아오며 몸에 밴 말의 습관이기에 고치기가 무척 어렵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부산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사투리가 심하고 말도 빨라서 처음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4학년쯤 되자 그 친구의 말투에서 부산의 흔적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부단한 노력과 세월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말의 억양과 습관을 고치는 일에는 이처럼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평생 써온 내 익숙한 방식을 기꺼이 내려놓으려는 노력이다.
몸에 배어 있는 나의 '폼'
'폼생폼사'라는 말이 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폼(Form)'은 그 사람의 모양새나 형태, 혹은 태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모양새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이름은 희미하지만, 온화했던 여선생님의 모습만큼은 선명하다. 하루는 선생님이 나를 부르더니, 긴장으로 움츠러든 어깨를 부드러운 손길로 내려주며 말씀하셨다.
"재웅아, 어깨가 자꾸 움츠러드는구나. 어깨를 편안하게 내리도록 하렴."
그 후로 어깨가 움츠러들 때마다 의식하며 고치려 애썼고, 어느 순간부터는 긴장해도 어깨가 쉽게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폼'은 이처럼 누군가 짚어주고, 스스로 의식하며, 반복해서 연습할 때 비로소 고쳐진다.
폼을 고쳐야 더 깊어질 수 있다.
우리는 삶의 폼을 고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모양새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우리의 삶 속에 어긋나 있는 말투의 폼, 생각의 폼, 행동의 폼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고쳐가야 한다.
물론 폼을 고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다. 자세가 어정정해도 운동을 할 수 있고, 투박해도 말을 건넬 수는 있다. 그러나 더 깊어지려면,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폼을 고쳐야 한다. 만약 내가 여전히 긴장할 때마다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강단에 선다면, 말씀을 전하는 자세로서 신뢰감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봄 거리에서 열심히 달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양손을 독특하게 흔들며 다리를 옆으로 째듯이 뻗으며 달리는 모습이었다. 혼자 가볍게 달릴 때는 괜찮을지 몰라도, 만약 더 멀리, 더 빨리 달려야 하는 마라톤 선수라면 반드시 그 자세부터 교정해야 한다. 잘못된 자세로는 몸이 금방 상할뿐더러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 하나님 앞에서 폼을 다듬는 시간
프로 운동선수들은 이미 베테랑임에도 끊임없이 바른 폼을 연습한다. 운동에서 가장 좋은 자세는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길을 걸어온 선배들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연구하며 다듬어온 결실이다. 따라서 선수는 이미 몸에 익숙해진 오랜 습관이라 할지라도, 감독과 코치의 지도 아래 기꺼이 내려놓고 다시 배운다. 그렇게 새로운 폼을 반복해서 연습할 때 비로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온 삶의 폼도 한 번쯤 비워내고 교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신앙생활이란 결국 이런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내가 평생 고집해온 '내 삶의 폼'을 비워내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영적 폼'으로 나를 채워 넣는 묵묵한 시간과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