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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것 |
천 영 대
성경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후서 4:16∼18)」
겉사람과 속사람
타락한 인간들은 물질적인 것만을 중요시 하는 가운데서 그러한 것들만 관심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한다. 인간이 오관을 가지고 제일 먼저 접하는 것이 물질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중히 여기면서 관심한다. 사람은 몸과 혼과 영으로 이뤄져 있는데(살전 5:23)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은 영이 죽은 상태에 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들)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한 것처럼, 타락한 인간들은 허물들과 죄들로 인해 영이 죽어 있는 상태에 있으므로 결국 혼과 몸으로 생활한다. 외부 물질세계를 접하는 몸과 지(생각), 정, 의로 말해지는 혼으로 생활한다. 이것은 주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겉사람은 외부의 물질세계를 접하는 몸을 기관으로 하고 지, 정, 의로 구성된 혼을 생명과 인격으로 하는 자를 말한다. 베드로전서 3장 3, 4절에서는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으로 외모를 단장하는 것은 단지 몸만 단장하는 것이 아니고 상기한 겉사람을 단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이러한 겉사람을 중히 여기며 사는 자들이 아니고 속사람을 중히 여기며 사는 자들이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말하는 ‘속’은 겉사람에 대비되는 속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겉사람과 속사람은 같은 한 사람 안에 있다. 그러므로 겉사람이 후패하지 않고 계속해서 왕성하다면 그만큼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지 못한다. 겉사람과 속사람은 함께 가는 것이 아니고 반비례로 가는 관계다. 로마서 6장 6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다. 이 내용에서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 곧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새사람으로 말하고,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영접하지도 아니함으로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옛사람으로 말한다. 에베소서 4장 21∼24절에서는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다. 이것은 각각의 사람, 곧 분리된 다른 사람을 두고서 한 사람은 옛사람, 다른 한 사람은 새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같은 한 사람을 두고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한 사람에 대해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한 것이다. 같은 한 사람을 두고 주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육신을 좇아 생활 할 때는 옛사람으로,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그를 생명으로 하여 살 때는 새사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을 두고,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 전에는 주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옛사람으로,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후에는 주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겉사람, 속사람을 말할 때도 각 각 다른 별개의 두 사람을 두고 한 사람을 겉사람, 다른 한 사람을 속사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한 사람을 두고 겉사람, 곧 몸을 기관으로 하고 혼을 생명과 인격으로 하는 사람을 말하고, 속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변화된 혼을 기관으로 삼고 거듭난 영을 생명과 인격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겉사람이 후패하면 할수록, 곧 혼이 자기 임의로 살지 않고 대신에 거듭난 영이 생명과 인격으로 역사함으로 날로 새로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사람이 후패하는 것을 속상해 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21∼25절에서는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했을 때 베드로는 그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는 대신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했다. 육신적으로 보면 베드로는 참으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위하는 것 같고 대신에 예수님은 너무도 매몰찬 것 같다. 그런데 베드로는 사람의 일을 생각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했다. 이렇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겉사람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혼이 생명과 인격으로 역사한 것이며, 겉사람의 역사인 것이다. 반면에 새사람, 속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함으로 주님의 뜻을 이룬다. 주님께서는 상기의 말씀을 하신 후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는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곧, 겉사람이 사람의 일을 생각함으로 주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고, 사탄의 역사를 따른다. 주 예수님께서는 상기의 말씀 후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목숨은 혼 생명을 말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아니 하는 자, 곧 혼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는다고 했다. 이것은 겉사람으로 사는 자, 겉사람이 후패하지 않고 강한 자, 혼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광을 얻지 못하고 해를 입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혼 생명을 잃는 자는 혼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는 데, 그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광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겉사람과 속사람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혼 생명이 왕성한 자, 곧 겉사람이 대단한 자는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지 않고, 반면에 겉사람이 후패하는 자, 혼 생명이 약해져가는 자는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진다.(물론, 이것은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의 경우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사람이 후패해져 가는 것에 대해 속상해 하거나, 낙심하는 대신에 주님 안에서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것은 그 만큼 더 속사람이 생명을 더 얻고 자라가는 것이다. 자라가는 것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이미 생명을 얻는 자들이 더 많은 생명을 얻는 것이다. 곧, 계속해서 자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의 생활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겉사람이 후패하는 것은 좋지 않거나 슬픈 일이 아니고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기에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다. 에베소서 3장 14∼16절에서는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했다. 사도는 에베소서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것은 계속해서 자라는 것이며, 또한 강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생명이 자라면 그것은 새로워지고, 또 강해진다. 주님을 믿고 거듭나서 주님 안에서 생활하는 자들은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고 있고, 그 생명이 자라고 있고, 강해지고 있다. 할렐루야!
환난과 영광
타락한 육신은 안일과 영광을 좋아한다. 반면에 환난과 수욕은 언제나 싫어한다. 그러나 환난이나 수욕 없이는 어떠한 영광도 없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내신 것이다.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하나님에 의해 지극히 높히움을 받으셨다. 또, 히브리서 5장 7∼9절에서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했다. 주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서 생활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 또한, 그는 아들이시라도 하나님을 경외했고, 또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아들이시라도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수욕을 당했다. 로마서 8장 17, 18절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요 1:12) 우리 주 예수님과 함께 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영광이 먼저 있고 그 뒤에 고난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고난이 먼저 있고 그에 대한 상급으로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난도 우리 주님과 함께 받고, 영광도 주님과 함께 받는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위한 고난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고, 영광도 주님이 함께 함으로 참으로 존귀한 영광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 받는 고난은 잠시 받는 것이고, 그로인해 받게 될 영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존귀하고 영원하다. 주님과 함께 받게 될 영광은 주님과 함께 받는 고난과는 비교가 되지 아니할 정도로 크고 존귀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6, 7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잠깐 동안의 시험으로 근심하지만, 믿음의 시련으로 인해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고 했다. 마태복음 16장 25절에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목숨은 혼 생명을 말하고, 또 목숨을 잃는 것은 혼의 기쁨이나 즐거움, 곧 세상의 영광이나, 육신의 욕망이나, 정욕 등을 포기 하는 것을 말하고, 목숨을 다시 찾는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그 고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관대하신 분으로서 참으로 놀랍고도 복된 것으로 갚아 주신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을 그러한 것들을 잃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 혼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들은 혼 생명을 잃게 되지만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그의 뜻을 행하는 자는 혼 생명을 얻게 된다고 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된다고 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서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했다. 사랑이 풍성하시고 관대하신 주님께서는 잠깐 고난을 받은 우리를 친히 온전케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며, 그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했다. 주님께서는 그를 위해 잠간 고난을 받은 자들을 복된 자가 되게 하신다. 참으로 놀라운 것으로 갚아 주신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는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거듭나서 믿음의 삶, 주님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받는 환난이나 고난을 대단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못 견딜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잠시 받는 환난이라고 했고, 무거운 것이 아니고 경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그 결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광은 지극히 크고, 영원하고, 중하다고 했다. 주님을 믿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그로인해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광은 참으로 위대하고, 영원하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했다. 우리 주님을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받은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놀라운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 우리는 잠시 잠간 당하는 환난, 경한 환난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고 피하는 자들이 아니라 지극히 크고, 중하고, 영원한 영광을 소망함으로 끝까지 주님의 길을 가야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주님을 믿지 않고 생활하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주님을 믿고 생활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을 좇는 가운데서 물질적인 것들, 보이는 것들을 중히 여기는 가운데서 이러한 것들을 관심하면서 그것들을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우리가 관심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우리의 몸, 병들고, 죽고, 썩는 땅에 있는 몸이 아니고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아니하는, 하늘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신령한 몸을 관심한다고 했다. 그리고 신앙인은 믿음으로 행하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히브리서 11장 1, 2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재라고 했다. 실재는 근원, 근본, 존재 자체 등으로 해석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을 실제화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실재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시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베드로전서 1장 23∼25절에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마르고 떨어진다고 했다. 이렇게 세상에 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은 마르고, 떨어지고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영원하다고 했다. 로마서 8장 19∼25절에서는 “피(창)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창)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창)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창)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했다. 세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생물들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다 고통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 곧 하나님의 아들들의 몸의 구속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물론, 주님을 믿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는데 그 소망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 하늘에 있는 영원한 것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는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다. 땅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에 있는 보이는 것을 중히 여기면서 이를 관심하여 주님께서 주신 중요한 시간이나, 물질이나, 에너지를 소모하는 자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속한 것들을 관심하면서 주님의 길을 가야 한다. 땅에 있는 것들을 중히 여기면서 세상을 사랑하며 육신을 좇는데서 나와서 하늘에 속한 것을 중히 여기면서 주님의 길을 가야 한다. 우리의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지만,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관심하고 기뻐하면서 끝까지 주님께 순종하면서 그의 길을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