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2.19~20] 雪國
물조차 숨죽이는 겨울산.
아무 소리도 없다.
가만히 귀 기울인다.
그제사 세상이 들린다.
바람이었구나.
그리 실려온 눈이었구나.
설국에 들고 난 겨울의 하루,
내 마음도 그 처럼 하얗게 맑아졌기를.
<산에 들며>
은세계다. 아름답다.
하지만 그저 아름다워서는 안된다.
와중에 내 마음 한 켠,
오롯이 비워내거나 하얗게 덧칠하거나
잘 말려진 고추가 소복하니 눈 옷 입었다.
저 옷 입으면 따뜻할까. 추울까.
일출식당서 황태버섯찌게로 속을 데우고
채비를 단단히 하여 산에 든다.
된비알의 세걸동릉,
하얗게 그려진 고샅을 자분자분 걷는다.
세걸산을 목전에 두고 트레버스 하여 세동치로 곧장 걸음한다.
묵묵한 걸음에 호흡도 이젠 가지런하다.
눈이 내린다.
소설가 김훈 그랬다.
'숲'이라는 글자는 모양 조차 숲을 닮아
들여다보기만 하여도 숲에 든 것 같다고.
눈 내린 숲을 걷는다.
그 속, 나도 한그루 나무가 되는 듯.
아무렇게나 엉킨 숲도
하얗게 눈내린 날엔 건듯 마음 닿는다.
소설가 송기숙은 피아골의 최고 유물은 연곡사 부도가 아니라
층층이 산을 따라 오르내리는 계단식 논(다랭이논)이라 하였다.
그 마음이 절절하여 공감도 깊은데
그렇다면 서부능선의 보물은 때로 봉(峰)과 치(峙)가 아니라 무명의 숲.
3시간 30여분의 거친 능선 산행이었지만
눈이며 숲이며 다음에 담느라 하나 힘들지 않게 야영지에 닿았다.
여전히 눈이 내린다.
차마 여유로운 은세계다.
밤 새워 눈 내리고 아침엔 맑아
능선 길 걷다 사방의 은빛 조망에 넋 놓았으면.
아니다. 그것은 욕심. 이토록 고적한 숲에서라면
오늘 하루 안분지족의 처사가 되어야 마땅하다.
눈 내리면 내리는대로
구름 낮으면 낮은대로
은세계에 동화처럼 초막을 짓는다.
근사한 느낌.
내 삶의 하루도 저와 같이
흑백 세상의 노란 한 점 같았으면.
공감한다는 것.
소주 한잔의 행복을 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른들의 동화(童話)
추워 못간다 눈 핑계를 대는 것과
취하면 혹 머무를까 술 한잔 더 권하는 것은
그러므로 김삿갓의 시심만은 아니다.
깊은 잠이었다.
밤 새워 눈이 내렸다.
토닥 토닥...
그 소리는 내 어메의 사랑.
유년의 어느 날,
열 오른 나를 어루어 밤을 새워 지켜내던 내 어메의 정성.
창 밖으로 눈이 하염없다.
따뜻하다.
겨울 바람이 차가웠던 것일까.
나무가 눈 옷 두텁게 껴입었다.
눈의 꽃
눈
박용래
하늘과 언덕과 나무를 지우랴
눈이 뿌린다
푸른 젊음과 고요한 흥분이 서린
하루 하루 낡아가는 것 위에
눈이 뿌린다
스쳐가는 한점 바람도 없이
송이눈 찬란히 퍼붓는 날은
정말 하늘과 언덕과 나무의
한계(限界)는 없다
다만 가난한 마음도 없이 이루어지는
하얀 단층(斷層).
봉긋 봉긋 눈아이스크림.
낼름 하나 집어 잎에 쏘옥 넣고 살살 녹여 먹을까보다.
아서라.
아까워 어이 먹을까. 아껴 똥된다 하여도 아서라.
이름도 희안한 약수는
추위도 잊은 채 졸졸졸 모진 목숨을 잇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아무도 가지 않았으니 길 아니라 할텐가.
서산대사 뭐라하실라.
정성을 다해 걸어야지.
눈길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마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저 길 가는 이 모두 즐겁게 걷길 기원하며
어귀, 눈사람을 두었다.
간혹 지나는 이 있어 눈길 두어주면
저도 외롭진 않겠지.
<산을 나며>
한치 앞도 못보는 주제가 섧다.
찬바람에 절로 고개 숙이고
흩날리는 눈발에 옷깃 여미어
산이 전하는 말을 보듬지 못한데서야.
고개는 약간 숙이고
배는 불쑥 내어 놓고 터벅 터벅 걷는다.
두렵거나 자만하지 않는 걸음.
그래서 기운차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러쎌하며 나아간다.
눈길과 인생은 그리 닮아 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고
포근한 날이 있으면 고추바람의 날이 있다.
이리갈까 저리갈까 고심의 갈래가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는 가야한다는 것.
길이든 길이 아니든 내가 선택한 그 길을 가야한다는 것.
그 길의 위, 얼음장 아래 샘솟듯
살아있는, 살아야하는 분명한 이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일상으로 가는 길,
눈이 여전하다.
조심조심 한발 한발 헤친다.
설국의 산이 내게준 교훈.
*******
은세계의 하루를 추억한다.
산의 위와 산의 아래 다름이 무언가.
그곳에도 애환이 있다.
선택은 오직 나의 몫.
날이 추운 만큼 체온은 더 따뜻했고
길이 험한 만큼 배려의 지혜 더했다.
그것 뿐.
그것이 인생.
차가운 바람이 / 최완희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첫댓글 선자령을 경험하고 보니 더더욱 와닿습니다. 눈덮힌 겨울산 곧 가볼겁니다. 팬다님의 후기 가슴속에 담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 바람이 제법 찹니다. 컨디션 조절 잘하세요^^
서북능 세걸산,부운치,고리봉,정령치를 다녀가셨네요....자주 드나들던 곳인데요...감하였습니다...비박한번 실천해보려는데...아직도 생각뿐....
차츰 기회가 있으시겠지요^^ 겨울 따시게 나세요~~~~~
경쾌히 걷는 가을날 걸음에서 느껴지는 생각과 심설 산중 겨울날 러셀에서 담아내는 생각은 많이 다를듯 하네요. 오늘도 좋은글 찬찬히 잘 보았습니다.
예^^ 케닌황님 말씀 듣고 보니 그런셈입니다. 집중의 차이... 사용하시는 쉘터의 느낌이 참좋더군요~~~~
반선쪽에서 오르셨나 봅니다. 초반 된비알이 호흡을 거칠게 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맞습니다^^ 반선서 세걸동릉으로 곧장.... 헥헥 대며 올랐네요~~~
저도 신년을 좀 한적한 세걸산에서 맞이해보려고 합니다. 세동치 샘 상태는 어떻던가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걸로는 알고 있는데.....
예~ 안그래도 일출 사장님이 혹시 얼지도 모른다 하여 수통을 1리터씩 채워 갔는데 졸졸 생기있게 흐르고 있더만요. 겨우내 얼지 않을 듯 싶습니다^^
일출 사장님 뵌지도 오래되었네요. 팬다님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너무..멋집니다^^
고맙습니다. 겨울 건강히 나세요^^
음악과 한 설국 이속에 제가 와있는듯......
곰배령님~ 겨울, 날이 찹습니다. 그 앵글로 멋진 눈세상 구경시켜주세요^^
팬다님 덕에 눈 구경을 다하고 가니 보는눈이 호강합니다^^
눈이라면 이제 지겨울만치 만나실테지요^^
아~~~하얀세상 넘 멋집니다 혹여 작년 그장소인가요 그때도 설국이었는데...^&^
작년... 아마도 금년 1월의 향적사지를 말씀하시는 듯^^ 고맙습니더~~~
하얀 눈나라의 어른들의 동화, 은세계의 동화, 내어메의 정성, 눈아이스크림 동화나라 이야기 같아요..*^^*
알콩달콩 동화나라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파빌리온4 중고 오늘 구매합니다. 다음주 동화나라 이야기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설국 그자체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
예^^ 눈 많이 내리거든 디에쎄랄로 담은 모습 구경 좀 시켜주세요^^
팬다님 후기는 볼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한편의 시같아요...^^
과찬입니다^^ 찍찍이님의 겨울도 포근하길요~
오캠의 음유시인...역쉬...팬다 님이시네요...덕분에 아무도 밟지 않은 신비의 눈세상 실컷 하구 갑니다...앞으로도 많은 구경...기대할께요^^
웬 음유...음료,라면 모를까요^^; 수퍼맘님 겨우내 멋진 추억 많이 만드세요!
팬다님따라 산행 하고 픈 욕심이 불끈 불끈...
비담님~ 고맙습니다. 별 것 아닌데 좋게 보아주시어.....
눈 속을 걸어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이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내가 지리의 품으로 들어가는군요... 항상 멋진 글과 음악... 그리고 사색을 전해 주시는 팬다님께 감사합니다... 좀 늦었지만 오늘 하루가 또 즐거워지는군요...^^
희망봉님~ 제가 고맙구요 겨울, 건강히 즐겁게 나시길 기원합니다^^
박배낭 메고 세시간이 넘는 산행이라는것은 제가 백미터를 지금 11초대에 뛰는것과 똑같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그렇지만 ...김훈작가 이름이 나오니 무진기행이 생각 나네요.
느릿 느릿 느리게 울림주는 김훈님의 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음.. 포토에세이 한편 읽은 기분.. 넘 조으네요
과찬인지라... 고맙습니다. 겨울 따시게 나세요~~~
후기를 보며 항상 느끼는건데요 팬다님 가시는 길에 아무 생각없이 한번 묻혀 가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샘솟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그럴 기회 있으면 좋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늘 시간이 문제이긴 합니다 ^^; 일주일은 아니어도 주말 2일이라도...
왕등재 새재 쑥밭재로 이어지는 동부능과 정령치 세동치 부운치로 이어지는 서북능길을 걸으면서 재와 치가 무슨 차이일까를 곰곰히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늘 그렇게 다니시는군요.
령, 재, 치...구분에 딱히 정해진 무엇 있지 않지만 큰고개는 대체로 령(嶺), 작은고개는 대체로 재(고개라는 의미의 우리말), 작은 고개이나 가파른 고개를 치(峙)로 구분하는 경우가 일반적인가 봅니다. 그리보면 동부능과 서부능의 재와 치의 이름이 그럴듯 하네요^^
과찬입니다. 고맙구요 겨울, 건강하게 나세요^^
눈 내린 지리산의 아름다움과 님의 멋진 글. 그리고 음악까지...환상적입니다. 함께 하신 님들 모두 행복하셨겠읍니다.
고맙습니다. 이젠 겨우내 하얀 추억 많이 만드입시더^^
순간 음악과 설경사진에 도취해보면서 그동안의 추억회상에 빠져봅니다 울컥 눈물이 날거 같아요 지금 이순간들이 너무 좋고 이런 배경을 주시는 팬다님의 후기가 있어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낼거 같아요
채식님의 감성이 부럽습니다. 따신 겨울 되세요^^
멋진 산행, 멋진 풍경,..감사히 보고 갑니다.
과찬... 건강하고 즐겁게 겨울 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