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숫자를 세야 할까요?
최광희 목사/신학박사
우리는 모든 것을 숫자, 수치로 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경제도 수치로 표현하고 성적도 수치로 표현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 가해지는 벌금 혹은 구속의 기간도 모두 수치로 공표(公表)합니다. 사람의 키와 체중, 나이, 건강 상태 등도 모두 수치로 표현됩니다. 혈당과 혈압, 그리고 체중은 주로 높아서 문제가 되고 성적과 계좌의 잔고(殘高) 등은 낮아서 문제가 됩니다.
모든 것을 인터넷을 통해서 처리하는 오늘날은 조회 수가 많은 것을 좌우합니다. 조회 수가 곧 돈이 되고 인기가 되어 성패를 좌우합니다. 조회 수는 사람들의 참여를 나타내므로 결국 사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숫자 중에 가장 중요한 숫자는 아마 사람을 선출하거나 찬반을 나타내는 숫자일 것입니다. 선거에서는 몇 표 차로 승자가 결정되기도 하며 일단 승자가 되면 100%의 권력을 가져갑니다. 또 의견에 대한 찬반 투표 역시 단 한 표 차이로도 정책이 결정되기에 이럴 때는 한 사람의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성도는 숫자에 민감해야 할까요? 둔감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숫자를 좋아하실까요? 오늘날 세상에 통용되는 숫자는 일명 아라비아 숫자인데 히브리어에는 알파벳 자체에 숫자 값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문자와 수치를 치환하는 게마트리아(גימטריה, gematria) 표기는 암호화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성경 언어인 히브리어 알파벳에 숫자 값이 있다는 이 사실만 봐도 성경이 얼마나 수치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새와 물고기와 짐승을 만드신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늘과 물과 땅 위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람을 만드셨을 때도 역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도 숫자가 많은 것을 좋아하십니다. 또 성경에는 백성의 숫자를 세는 이야기로 가득한 민수기도 있습니다. 민수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를 세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지파별로 집안별로 정확히 세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제자의 수, 교인의 수를 중요하게 세는 것을 봅니다. 12명, 120명, 3000명, 5000명, 허다한 무리.
잠언에서 하나님은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그것들을 잘 보살피라는 뜻과 함께 소유한 가축의 숫자를 잘 세라는 뜻도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숫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교회는 교인의 수를 잘 파악하고 재정의 상태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재정은 허술하게 처리하지 말고 정확하게 계산하고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금번 제108회 합신 총회에 보고된 교회 수는 997개이고 전체 교인 수는 129,491명입니다. 일 년 동안 많이 부흥, 성장하여 내년 총회 때는 교회 수는 1000이 넘게 되고 교인 수는 13만 명이 넘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숫자를 세는 것은 때로 불신의 표시이며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윗은 백성 곧 군인의 숫자를 세다가 큰 벌을 받았습니다. 그때 백성의 수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은 요압조차도 다윗에게 백성의 숫자 세기를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숫자 세기를 강행하였고 그 결과 다윗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백성이 7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물론 그 일을 통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제단을 쌓았고 1000년 후에 그곳은 메시아가 못 박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숫자가 많은 것을 좋아하시는 하나님께서 민수기에서는 백성의 수를 꼼꼼히 세라고 하시더니 왜 다윗의 백성 파악에는 이렇게 진노하셨을까요? 백성의 숫자를 세는 행동은 같았지만 그 동기는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세었고 다윗은 자기 백성을 세었습니다. 숫자 세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유권이 문제였습니다. 다윗이 거느린 백성은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의 소유와 세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숫자를 세었으니 그 얼마나 교만한 일입니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듯 이런 숫자 세기는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그러고 보면 소 떼와 양 떼에 마음을 두라고 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양 떼의 숫자를 세는 목적은 맡겨주신 사명을 잘 파악하고 청지기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잠시 맡겨주신 것을 내 것인 양 착각하고 그걸로 나를 내세운다면 그런 청지기는 즉시 해고감입니다. 성도는 숫자를 세어야 합니다. 내 것 말고 하나님의 것을 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