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매체의 보도에 의해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내년 건군 60주년을 기해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는 내용에 접했다. 이 보도 내용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해프닝이기에 평론 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여기 사이트 [박경석 서재]에 그 부당한 요점만을 제시한다. 1. 백선엽(일본이름-시라가와 요시노리-白川義則)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육군소위로 임관,만주국 간도 특설대에 근무, 만주 일대의 독립군 소탕작전에 참가했다. 2. 2009년 11월.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간한 '친일인명사전' 제2권 208P~209P에 그의 친일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중위로 진급 후 해방이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평안남도 도인민위원회 치안대장으로 일했다.이어서 친일파 소탕 기미를 감지한 그는 월남, 미 군정하 군사영어학교에 입교 국군장교가 되었다. 3. 북한 인민군의 6.25남침 당시 개성의 38선 경계중인 1사단을 지휘한 백선엽 대령은 춘천 전선의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6사단의 선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응전도 못하고 거의 모든 장비를 버리고 패주,수도 서울 조기 함락의 원인을 제공했다. 4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그의 공적은 일부 미군 장성과 자신에 의해 과장 되었으며 낙동강 방어선의 영웅적 방어는 미국과 워커 장군의 불퇴전의 의지, 그리고 미군의 절대 우세한 화력과 국군 장병과 유엔군 장병 모두의 총력 혈투의 결과였다. 5. 미국과 미군당국이 그를 한국군 최고의 영웅으로 대우하는 것은 그의 절대적 친미행위의 결과로 기인한다.가령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시절을 비롯한 군 재직간 자기의 미군 고문관인 하급자를 상전대우 하는 굴욕적 행태로 일관하였다.심지어 하급자인 미군 고문관을 상석인 찝차 앞자리에 태워 모시고 다녔다. 6. 대한민국 국군은 독립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독립군,광복군의 위대한 항일투쟁의 정신을 계승해야 하며 만약 만주군 장교 출신인 그를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면 국군 건군의 존엄성이 결정적으로 훼손된다. 7. 나는 일찍이 국군 건군의 정신적 기둥으로 6.25초기 한강방어선에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정규 중국군 장군 출신이며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을 '오성장군'으로 호칭,단행본 [오성장군 김홍일]과 단행본 [ 별 ]을 출간하였다. 8. [오성장군 김홍일]은 육군본부 추천으로 KBS TV 3부작으로 국민의 절대 호응하에 방영된바 있고 KBS라디오에서는 그 단행본 전문을 1년간 낭송 방송하였다. 9. 만일 국군 최초의 명예 원수를 추대하려면 김홍일 장군 외 대안이 없음을 역사 앞에 밝힌다.그렇게 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명예로운 정통성이 역사에 각인 될 것이다. 10. 특히 백선엽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자청,위촉받아 6.25전쟁 전 이적행위로 일관,비극을 초래케한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의 이적 행위를 감추기 위해 [채병덕장군 평전]을 출간케하여 이적 행위 하나하나를 변명 감쌓다. (참고 : 채병덕의 이적행위인 10대 불가사의 - 이형근 회고록 '군번1번의 외길 인생)제3부 6.25전쟁 / 50P~64P / 중앙일보사 발행) 11.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새 6.25전사 편찬 자문위원장을 맡아 전쟁 초기의 전사를 임의로 개작, 상당부분 기 발행된바 있는 [한국전쟁사]내용을 일본군 만주군 출신에 유리하도록 조종 기술케 유도하였다.이 문제의 1권과 2권 권말에는 본인 박경석이 마치 자문한 것처럼 전우신문사 회장과 군사평론가협회 회장 직함으로 인쇄되어 있으나 본인은 오찬행사에 참여 하였을 뿐 단 한 곳 자문을 요청받은 적이 없었다. 12. 국방부와 청와대는 미국과 미군 당국의 오판에서 연유,엉뚱한 한국전쟁 영웅설에 속지말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한국전쟁 4대영웅은 김홍일,김종오,맥아더,워커 장군이다.김홍일 장군에 이어 김종오 장군 전기도 육군본부 추천하에 출간되었으며 KBS TV 3부작으로 방영된바 있다. 13. 내 글에 이의가 있어 이 사랑방에 내용을 밝히면 토론에도 응할 것이다.한편 여기에 기술한 내용은 무한 책임을 진다. 14. 참고사항 / 박경석 홈페이지 들어오는 방법.naver를 제외한 모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박경석 서재] 입력 클릭하면 아이콘이 뜨고 다시 아이콘을 클릭하면 됀다. 추가 의견 : 백선엽장군은 국군의 원로 장성이며 국가에 기여한 바 크다.또한 나의 상관이었다.예의상 나의 결례임이 확실하다. 내가 밤잠을 설치면서 고뇌한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에 훼손된다는 명제 앞에서 나는 결례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맥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에 둘수 없다. 그렇게 하면 훗날 역사에서 북한 인민군이 정통성에서 우위가 될지 모른다.북한 인민군의 주력은 항일 투쟁 세력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장교 출신을 국군의 최초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면 훗날 역사가는 북한 인민군의 남침을 이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인민군의 남침이 민족의 원수인 일본군 만주군 잔당에의 공격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항일 전쟁을 중국군 육군 소장으로 지휘했고 광복군 참모장을 역임한 김홍일 장군을 대한민국 국군의 건군의 기둥으로 두고 싶어 두 권의 단행본을 썼다. 그 단행본은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 소설체로 기술했지만 내용은 전사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 세력을 이용할수 밖에 없었던 정치 상황에서도 국군의 정통성을 고려, 유독 김홍일 장군 단 한 사람 만을 국군의 유일한 장군으로 임관 시켰다.따라서 나는 중국의 별과 대한민국의 별을 합쳐 또한 일본군 만주군 출신을 압도하기 위해 김홍일 장군을 5성장군으로 호칭했다. 그가 명예 국군 최초의 원수가 되어야 한다는 이치의 배경이다. 독립군과 김홍일장군의 우국충정 그리고 항일전쟁 내막, 독립운동과 6.25전쟁에 관한 비사는 이 서재 외의 [박경석 문학서재] '전자논저' 에 전자책으로 입력한 [오성장군 김홍일]과 [별] 두 권의 단행본에서 읽을 수 있다. 2009년 3월 27일 참고 자료 4 2차 성명서 |
첫댓글 대단하신 분들께서
함께의 구국정신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