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콩의 줄기 감기
조혜경
‘그냥 둘까, 주을까?’
잠시 망설인다. 무딘 손끝을 떠나 콩이 쭈르륵 굴러갔다. 눈감아 줄까 망설이다가 낚아채기로 했다. 한 개라도 악착같이 주워 담는다. 처음 호랑이 콩을 만났을 때, 예쁜 얼룩무늬에 탄복했다. 힘차게 울타리를 감아 올라가는 줄기도 악착같은 나의 근성과 닮아 보였다.
새벽 공기에 눈 비비며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마당에 내려서며 어제 썼던 모자를 탁탁 털었다. 이슬에 젖을까 방수복을 입고 발보다 큰 장화를 신었다. 찬 기운이 어깨를 감쌌다. 순간 싸늘한 공기에 흠칫 놀랐다. 뙤약볕의 한낮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호랑이 콩 넝쿨도 몸을 곧추세우고 하루를 시작했다. 창공을 향해 뻗어 오르는 덩굴손에는 상상하지 못할 힘이 있다. 잠을 자는 밤 동안도 어제보다 한 뼘이나 더 키가 컸다. 울타리콩의 일종인 호랑이 콩은 포근포근한 맛으로 인기가 높았다. 부드러운 식감과 맛뿐만 아니라 호랑이 무늬로 더 귀한 품격을 드러냈다. 또 성인병 예방을 위한 영양소가 많다고 알려져 비싼 값으로 팔렸다.
추위가 막 지나가고 벚꽃이 질 무렵, 남편은 겨우내 팽개쳐 두었던 밭을 갈았다. 비닐을 씌우고 고랑에 부직포를 깔았다. 풀이 나는 것을 막으려는 담금질 방편이다. 밭을 갈아엎는 며칠 동안, 허리와 어깨의 통증이 나의 밤을 괴롭혔다. 땅을 비워두면 죄인 양, 해마다 남편과 나는 모종을 키우고, 밭에 옮겨 심었다. 지지대를 세운 후, 덩굴이 타고 오를 그물을 쳤다. 두 달 동안 나는 세수도 안 한 채, 새벽마다 콩밭을 오갔다. 그리고 한 달 남짓, 꽃이 하나둘 피어나면, 3주쯤 후에는 콩 꼬투리가 주렁주렁 매달릴 것이다. 더 똘똘한 열매를 위하여 넝쿨을 정리하고 돌보는 일을 나에게 주어진 천직처럼 여겼다.
허리가 더 시큰거리던 잔뜩 흐린 날 새벽이었다. 언젠가 싸 둔 작은 가방을 들었다. 꾸깃꾸깃한 지폐 몇 장도 바지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어둠을 더듬으며 차부로 나갔다. 아직 먼동이 트려면 한 시간쯤 남아있었다. 놀란 눈을 뜨고 쫓아올 남편의 얼굴이 스치자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겹쳐 입은 바짓가랑이를 진동시켰다. 눈앞이 희뿌옇게 보일 정도만 되어도 새벽 밭일을 나가야 했던 나날이 무성영화의 흐릿한 화면처럼 스쳐 갔다. 일 년 내내, 십수 년을 지속해 온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도시에 가면 편한 일자리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월급은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주말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도 말이다.
그때였다. 스미는 한기에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 올랐다. 엄마를 찾는 칭얼거림이 귓전을 때렸다. 남편의 당황스러운 얼굴도 떠올랐다. ‘엄마 없는 아이들이라고 놀림 받으면 어쩌나.’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손가락질받는 내 아이들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흐린 불을 켜고 첫 버스가 다가왔다. 버스 기사는 의아하다는 듯이 얼굴을 한 번 찡그리고, 빈 차로 정류장을 떠났다. 나는 그 길로 콩밭으로 달려갔다. 흐린 눈 때문인지 아랫 밭두렁으로 자꾸만 발이 미끄러졌다. 오늘따라 어둠 속에서 넝쿨을 감는 손이 더 날랬다. 해가 얼굴을 내미는지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넝쿨에 스쳐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아이들을 깨웠다. 남편은 “오늘은 왜 혼자 밭에 갔어? 같이 안 가고.” 곱게 투덜거렸다.
얼룩진 얼굴을 감추려고 바삐 부엌으로 갔다. 호랑이 콩처럼 귀엽고 앙증맞다는 감언에 홀려 스물세 살에 이곳 농촌으로 시집을 왔다. 시부모와 시누이, 시동생들이 함께 살았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대가족과 함께 사는 결혼 생활이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남편은 한 번도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식들이 태어나자 세월은 더 바삐 갔다.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밭과 부엌을 오갔다. 그 사이, 자식 같던 시동생, 시누이 그리고 시부모도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났다. 아이들도 제 나름의 길을 찾아 독립하였다. 미운 정도 정인가 보다. 육십이 넘자, 이곳이 나의 고향이 되어 있었다.
꼬투리 무게로 그물이 처지는 계절이 오면 새벽은 더 빨리 열렸다. 한 시간 남짓, 사라지는 이슬을 벗 삼아 콩을 땄다. 이 고랑에서 시작한 나의 손은 이미 가시가 몇 개나 박혔는지 모르고 꼬투리를 따기에 바빴다. 경쟁하듯 옆집 앞집 이랑을 흘깃거렸다. 낮에는 밭에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질척한 땀 냄새 밴 등은 모기떼들의 성찬 거리였다. 그래도 몇 걸음 만에, 어깨에 진 자루가 묵직해지는 계절에는 밭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람도 콩을 닮았나 보다. 제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을 산다. 모두 한 자루에서 나오지만, 개수도, 모양도, 크기도 제각기였다. 조금 더 크고 잘 익은 콩들은 일찍 능력을 인정받았다. 더 빨리 선택받지만, 더 빨리 생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잘난 채 뽐낸 결과는 참혹했다. 콩을 판 돈으로 냉장고를 새것으로 바꾸고, 에어컨을 설치하는 일은 수월해지겠지만, 신앙 같은 노동은 10주 남짓으로 그 거친 삶의 종지부를 찍었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과감하게 밑동을 잘랐다. 미련을 떨치는 행위이다. 3달 정도 생육 기간 새벽도 저녁도 없던 구속을 연장하지 않으려는 속셈이기도 했다.
택배 업체에서 왔다. 경매장으로, 아들딸과 친정, 지인들 집으로. 마당에 수북이 쌓인 상자 더미가 탑차를 타고 사라졌다. 밭일하지 못하는 더운 한낮에 배분해 놓은 것이었다. 딸을 제금 딴 살림 내주는 친정엄마처럼 시원섭섭하였다. 내일이면 아들딸네 밥상에는 촉촉한 엄마의 맛이 가득할 것이다. 그들의 웃음을 떠올리자, 욱신거리던 손가락 통증이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평상 위에는 까다 만 콩깍지와 허접스러운 꼬투리만 소쿠리에 널려 있다.
첫댓글 호랑이콩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새벽 힘든 일을 통해 수확한 콩을 나누고 가족 간에 정이 쌓이고..
호랑이콩이 아들네로 딸네로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고, 활이콩이 몸에 그리도 좋다고 하네요. 받아먹을 자식 생각에 밭일이 행복한 아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