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송년주일예배 설교문 / 눅 6:20-38 / 주는 사람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누가복음 말씀을 계속해서 나누고 있는데 누가복음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공급, 보호, 만족이 있어야 사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끊어지면 빈곤, 위험, 권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창세기 3장 이후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자 빈곤, 위험, 권태라는 악순환의 반복으로 살다가 결국 사망으로 가게 되는 것이 인생이요 인간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의 모든 필요를 아시기에 누가복음 4:18-19에서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희년은 죄에서 구원만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모든 질병의 고침인 신유, 돈·물질 등등의 눌림에서 자유를 얻는 온전한 에덴동산 축복(원복)의 회복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고쳐지며 심지어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평생 돈과 사람들의 따돌림에 눌림을 받았던 세리 레위와 삭개오가 자유를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사람은 공급과 보호와 만족의 누림을 얻는 것만으로 사람답게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영적 존재까지 전진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혼과 육으로 사는 것(짐승들도 이렇게 산다.)이 아니라 영에 속한 생명으로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우리가 영안에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만 인성(육신)에서는 사람이시기에, 사람인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도 영에 속한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을 것입니다.
12-13절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님도 인성 안에서는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셨습니다. 몰려오는 사람들(무리)을 정리하고, 그들에게 때가 되면 음식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물론 말씀을 가르칠 사람도 필요하고, 전도할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물질로 돕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돈을 관리할 재무를 담당할 사람도 필요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일을 함께할 제자가 필요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기에 제자를 능력과 필요에 맞게 뽑으시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혼자 결정하지 아니하시고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일을 처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을 위한 것이요, 그 교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구하고 알게 되어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가 빠진 영적 삶은 없습니다. 기도 할 때에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기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통하여 전진하는 믿음이 될 것이요, 온전한 공급, 보호, 만족을 받아서 풍성한 영적 결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우신 다음,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격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작은 예수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의 향기를 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27-2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선대한다는 것은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즉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며, 기도하라! 이것이 최고 수준의 도덕성이요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영적 삶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혹시 내 입에서 욕이 나가는 것을 보면 자괴감을 가지십시오. 아직도 난 멀었구나! 다시 기도하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영에 속한 생명에 거할 수 있도록, 마음에 평화가 임하고 천국이 되도록,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다스림 안에 거하도록 하십시오. 화내고, 욕하고, 저주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면, 내가 영에 속한 생명인지 확인할 수 있는 한가지 단어가 있다는 것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주라’는 것입니다.
31절
우리가 대접해야 할 상황에서 “국물도 없어.” 이건 안 주겠다는 뜻입니다. 31절을 복음의 황금율이라고 합니다. 대접하는 대로(주는 대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주는 사람’. 허락하신 말씀처럼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네 영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케 될 것입니다(요삼 1:2). 그렇다면 누구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지요?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1. 29절上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 - 덮어주라
뺨은 원어로 시아곤. 즉 턱뼈를 말합니다. 내 턱뼈를 때린다는 것은 수치를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강하게 타격하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오른쪽 잽을 날리는 자에게 왼쪽까지 대는 자는 아무 일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덮어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이제 로마군을 향해 군사적 혁명을 일으키실 줄 알았습니다. 근데 웬걸,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군인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제사장 보디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이름은 말고. 지금으로 말하면 경비대장입니다. 베드로가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경비대장 말고의 귀를 잘랐습니다.
요한복음 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베드로가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앞장서시고, 제자들은 무술에 능하고, 백성들은 다 예수님 편이니, 피의 혁명을 할 수 있었던 그 때에 예수님은 떨어진 귀를 들어 올리시면서 다시 붙여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2: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예수님은 덮어주셨고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내 승리가 되도록 덮어주십시오. 반드시 사랑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2. 29절下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 더 주라
평행본문인 마태복음에서는 속옷부터 나옵니다.
마태복음 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속옷이 먼저입니까? 겉옷이 먼저입니까? 무엇을 빼앗아 가든 헤아리지 말고 오히려 더 내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야고보서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헤아리지 말고 오히려 오래 참으십시오. 길이 참으십시오. 그리고 빼앗는 자에게 더 주십시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3. 35절. 꾸어주라. - 단 받지 않을 생각으로
주는 것 세 번째는 꾸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꾸어줄 것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꾸어주라는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꾸어줌” 즉 이자를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돈 꾸어주고 이자 받고 하면 나중에 큰 시험이 생깁니다. 교회 안에서는 바라지 말고 도와주십시오. 반드시 이김과 은혜가 찾아올 것입니다.
38절 결론입니다.
허락하신 말씀처럼 원수라 할지라도 누구든 덮어주고, 더 내어주고, 바라지 말고 도와주십시오. 따라 합시다. ‘주는 사람’
내가 주는 사람이 되었을 때 허락하신 말씀처럼 후히 되어 흔들고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주는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이요 에덴동산의 축복인 공급, 보호, 만족을 충만히 받아 천국의 누림 가운데 있는 자가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024년 많이 아쉽습니다. 누구에게도 주지 못하고 그렇다고 누림을 얻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새해인 2025년에는 주는 사람이 되어서 흔들어 넘치도록 복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