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트레킹] 37. 불영사(佛影寺) 가는 길
고즈넉한 사찰 숲 지나 가을이 저만치 오네
울진 망양휴게소에서 본 바다 색깔이 영롱한 코발트색을 보이며 멀리 고깃배가 바다를 가르며 지나간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리다 잠시 쉬어가는 울진 망양휴게소에서 본 바다 색깔이
코발트 이상의 영롱한 모습으로 길손을 반긴다. 잔잔한 바다 가운데를 가로지른 고깃배가 긴 여운의 흰 거품
을 토하며 푸르디푸른 바다를 혼자서 누비는 평화로운 그림이 펼쳐진다.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성류굴IC에서
좌측으로 빠져 근남면사무소를 지나 36번 국도를 접어 들어 달린다.
너른 초지 가장자리에 앉은 부처님이 오수를 즐기는듯한 한낮의 불영사의 고즈넉한 모습.
이번 트레킹은 지난 12일 울진 명소 중에서도 살아있는 자연의 신비한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는 ‘불영계곡’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신라 천년고찰 ‘불영사(佛影寺)’를 가기 위한 여정을 담았다.
자동차로 2시간 남짓 거리지만 볼거리가 많아 예상한 시간보다 더 걸린 것 같다. 봉화로 가는 36번 국도의
좌측으로 난 ‘불영계곡’은 약 25억 년 전에 형성된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에서
근남면 행곡리까지 15km에 걸쳐 길고 깊은 계곡이 이어져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릴 만 하다는 설명이
붙어있는 기암괴석과 맑은 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빠져들게 한다고 한다.
솟아오른 봉우리위에 올라앉은 소나무가 주위를 압도 하는듯하고 아래로 바위를 휘감아 흐르는 계곡이 운치
를 더한다.
군립공원과 명승 제6호로 지정될 만큼 절경이다. 불영사가 이 계곡에 있어 ‘불영사계곡’이라고도 한다.
불영사 입구 너른 주차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불영사 일주문에 붙여진 편액이 멋스러움을 더한다.
마을사람들이 채소와 갖가지 산나물 등을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며 한담(閑談)을 나누는 한가로운 모습이 정겹
다. 일주문에서 불영사 본체가 있는 곳까지 2km가 채 안 되는 짧은 코스지만 숲과 계곡의 정취에 취하다 보면
그리 짧지 않은 힐링로드로 감흥이 넘치는 길이다.
불영사 경내에 등산 베낭과 음식물을 반입 할 수 없다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나붙어있다.
예전에 이곳을 출입할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는데 등산 배낭과 음식물 등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큼지막하게 안내하고 있다. 등산로가 아니라 불영사 경내라는 뜻으로 일체 반입을 금하고 있어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주차장 부근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허기를 해결하고 빈 몸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일주문에 붙어있는 편액이 멋지다. ‘천축산불영사(天竺山佛影寺)’라고 쓴 일주문을 들어서니 곧장 짙은 숲속
으로 너른 임도가 나 있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한무리의 적송이 길손의 눈길을 끈다.
우거진 숲 속에 키 큰 적송(赤松)들이 보란 듯이 기세를 올리고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다.
가을 햇살이 임도를 환하게 밝히고 저만치 탐방객들이 걸어간다.
불영교 교각에 연꽃 모양의 조형물이 이채롭고 뒤에 보이는 밤송이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처음 만나는 다리가 ‘불영교’다. 다리교각에 돌로 만든 연꽃 조형물이 예사롭지 않고 뒤쪽에 보이는 밤나무에
붉게 물들어 가는 밤송이가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여러 번 다녀 본 적이 있어 그리 낯설지 않지만 가는 길이
고즈넉하고 오르내림 없이 쉽게 접근할 수가 있어 노약자들에게도 편안한 길이다. 절집을 찾아가는 중생들에
게 편안함을 준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데 비구니(比丘尼)스님들만 계시는 곳이라 그런지 한결 마음이 부드러
워지는 것 같다. 시원한 그늘이 이어지고 맑은 물소리도 정답다.
솟아오른 기암 봉우리에 올라앉은 소나무가 주변을 압도하고 그 아래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이 온갖 바위들을
휘감으며 흘러내린다. 인적이 드문 숲길에는 가을이 오는 소리마저 조용하고 간간이 날아가는 산새가 세속을
떠난 속인(俗人)에게 딴 세상을 인도하는 듯 앞질러간다.
좁은 오솔길이 정겹게 나있는 명상의 길 모습.
느릿느릿 무상무념의 경지를 벗 삼아 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오고 출입이 통제된 ‘명상의 길’이라는 푯말만 우두
커니 서 있다. 길 가장자리에 데크길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명상의 길’을 새롭게 조성하는 모
양이다. 오른쪽 임도를 벗어난 지점에 ‘명상의 길’이라는 또 다른 이정표와 함께 숲 가운데로 오솔길이 나 있어
그 길로 접어든다. 길옆 숲속에 ‘불영사부도’와 부도비가 나온다. 조선시대 불영사 주지를 지낸 양성당(養性堂)
혜능선사(惠能禪師·1621년~1696년)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다. 앉은 채로 입적(入寂)하셨다는 설명과 함께 세워
진 부도비에 선사의 행적이 기록되어있다고 하지만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고 오래된 유적으로 경북 문화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다시 임도로 나와 불영사로 향한다.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돌탑이 의미를 되새기게 할 만하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자그마한 돌탑이 그저 무심히 보고 넘길 수 없는 무슨 연유가 있어 보이기도 한
다. 그렇게 숲속에서 명상을 하면서 걸어온 길이 훤해지면서 너른 공터가 나오고 절집 기와지붕과 가지런히
쌓은 담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초입에 제법 그럴싸하게 만든 돌탑이 길손을 반갑게 맞으며 가을볕 속 절마당
으로 안내한다. 기와를 얹은 흙담장이 길게 늘어선 진입로를 걸어 들어간다.
불영사 절집 한 켠에 피어있는 상사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가을을 즐기듯 푸른 하늘을 향하고 길섶에 심은 상사화(想思花) 붉은 꽃무리가 자태
를 뽐낸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어 이름 붙여진, 어쩌면 슬픈 사연을 간직한 채 화려한 꽃으로 살아가
는 상사화의 일생이 아리게 느껴진다.
절집사람들의 먹거리인 채소들이 익어가는 텃밭위로 벚나무 이파리가 붉게 물들고 있는 풍경이 가을 정취
느끼게한다.
절집 사람들이 자급자족하는 텃밭에는 고추와 가지, 고구마 등 갖가지 채소가 익어가고 벚나무 이파리에 붉은
물이 조금씩 들어가는 가을의 문턱을 넘는다.
절집을 들어서는 입구에 너른 공터가 있고 기와지붕 절간에 햇빛이 반짝인다.
너른 초지에 동그마니 앉은 부처님이 가을볕에 오수(午睡)를 즐기시는 산사(山寺)의 한낮 풍경이 여느 절집
과는 사뭇 다른 듯 평화롭다.
불영지 연못에 철지난 연꽃이 수줍운듯 피어있고 연잎으로 덥힌 연못에 부처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불영사’의 뜻이 담긴 ‘불영지(佛影池)’에 때 늦은 연꽃이 수줍은 듯 피어있고 보이지 않는 ‘불영(佛影)’을 찾고
자 고개 들어 서쪽 산 안부를 바라본다.
불영사 서쪽 산 안부에 있는 부처바위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부처바위’가 시야에 들어온다. 자비로운 부처님이 꼿꼿이 서서 앉아있는
제자들에게 설법하시는 모습이 또렷이 보인다.
조용한 산사 앞마당에 있는 연못에 연잎이 뒤덮힌 틈으로 너른 초지에 앉은 부처님 뒷모습이 투영되어 신기
함을 더한다.
부처바위의 부처님 형상이 석양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워 절마당 연못에 내려앉는다는 설화로 절 이름이
‘불영사(佛影寺)’다.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랜 세월 현존한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5년(651년)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고찰로 울진 천축산(天竺山·653m)에 둘러
싸인 산태극, 수태극 형국의 길지에 자리 잡아 여러 차례 화재와 전란으로 인고의 세월을 겪어 낸 바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보물 1201호), 응진전(보물 730호), 후불탱화(보물 1272호) 등과 삼층석탑과 부도가
경북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요사채 앞에 가지른히 놓인 장독대와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에 잎이 무성한 모습.
1968년 이후로 비구니스님들의 선원수행도량으로 지정된 불국사 말사이기도 하다. 대웅보전 기단에 있는
돌거북 2기가 창건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 눈여겨 볼만하다. 요사채 앞 수령 600년 된 은행나무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햇빛에 반짝이는 장독간 모습도 정겹다. 불영지 주변 너른 초원에 앉은 부처님 뒷모습이 연잎
으로 뒤덮인 연못 사이를 비집고 투영되는 신기한 모습도 카메라에 담는다. 가을이 오고 있는 고즈넉한 불영사
를 돌아보며 부처님께 삼배 드리고 절집을 나선다. 뒤돌아 본 부처바위가 환한 미소를 보내며 작별 인사를 하는
불영사가 뇌리를 떠나지 않은 채 다시 세속으로 돌아간다.
‘불영사 가는 길’은 왕복으로 4km 남짓하지만 이런저런 잡다한 마음을 버리느라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오며
가며 때 묻은 번뇌를 씻어내는 데는 이만한 힐링코스가 드물 것 같다.
선유정에서 바라본 불영계곡이길게 이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찾은 불영사를 되새기며 36번 국도변에 있는 불영계곡의 수려하고 웅장한 계곡미를 감상할 수 있는
‘선유정(仙遊亭 )’과 ‘불영정(佛影亭)’에 들러 굽이쳐 흐르는 광천과 기암, 괴석이 한데 어우러지는 불영계곡의
절경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아 본다.
울진 망양정공원에서 바라본 해안 풍경.
돌아오는 길에는 울진 해안 절경도 볼 겸 ‘망양정공원’에 올라 탁 트인 동해바다와 해안의 수려함에 감탄하며
공원 산책로 등을 탐방하고 얼마 전 개통했다는 해상케이블카가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며 움직이는 모습도 볼
수 있어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울진에는 산과 바다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관광 명소가 많아 두고
두고 찾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울진 곳곳을 찾아 나설 다음을 기약하면서 ‘힐링 앤 트레킹’ 서른일곱 번째 ‘걸어서 자연 속으로’ 이야기를 여기
서 마친다.
글·사진=김유복 경북산악연맹 前 회장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前 회장 ㅣ 승인 2021.09.17 ㅣ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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