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묘향산 보현사비와 음기입니다.
개인적 설명 덧붙이기보다 한국금적문종합영상시스템에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소개글로 대신합니다.
그 곳 홈페이지에는 이 비문 탁본에 대한 이미지를 준비중이라 하네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연혁 및 위상에 대하여 기록한 글. 이 글에 의하면 보현사는 화엄종 승려로서 묘향산에 은거하였던 탐밀(探密)과 그 조카이자 제자인 굉확(宏廓)에 의하여 창건되었고 이후 그 문도들에 의해 계승된 사찰이었다. 탐밀은 25세에 출가하여 화엄교관(華嚴敎觀)을 수학한 후 1028년(현종 19)에 묘향산에 들어와 수행하였는데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승려들이 많아지자 1042년(靖宗 8)에 대규모의 사찰을 창건하고 보현사라고 명명하였다. 탐밀이 입적한 이후에도 보현사는 문도들에 의해 계승되며 크게 발전하였고, 국가에서는 이를 인정하여 1067년(문종 21)에 토지를 내리고 탐밀의 문도들이 사찰의 주지를 계승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 기록은 이와 같은 국가의 결정이 후대에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탐밀의 문도들이 국왕에게 요청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이를 입증하듯 음기(陰記)에는 탐밀의 제자들의 명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김부식(金富軾 : 1075~1151)이 찬술하고 문공유(文公裕 : ? ~1159)가 글씨를 썼으며(1141, 인종 19), 비석 상단의 제액(題額)은 국왕 인종이 직접 쓴 것(1142, 인종 20)이다. 이 비석은 현재 묘향산 보현사에 남아있는데 일부 내용은 마멸되어 읽을 수 없다. (이상 한국금석문종합영상시스템의 설명글)
첫댓글 귀한자료 감사드립니다.
글씨도 좋고 탁본도 좋습니다. 감사한마음 가지고 스크랩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