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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중 비바람이 워낙 거세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고 몇 장 찍었으나 흔들려서 버렸
습니다. 전날(2012.4.20.)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찍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목련(木蓮, Magnolia kobus)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란
또다시 외롭게 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이더스 쉐이퍼 리더버그, 「사랑이란」(최재천 트윗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4월 21일(토), 종일 비, 바람, 안개, 추위
▶ 산행인원 : 10명(영희언니, 스틸영, 숙이, 드류, 화은, 감악산, 대간거사, 메아리, 도자,
승연)
▶ 산행시간 : 10시간 24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이동시간 제외)
▶ 산행거리 : 도상 20.7㎞(1부 14.0㎞, 2부 6.7㎞)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름)
00 : 56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4 : 28 ~ 04 : 57 - 여원재(女院峙, 해발 470m), 요기, 산행준비, 산행시작
06 : 58 - 668m봉
07 : 08 - 고남산(△846.5m)
08 : 51 - 봉낙골재, 515m봉
09 : 13 - 유정리(柳亭里) 만항마을, 유정삼거리
10 : 00 - △473.4m봉
10 : 27 - 채석장 위 능선
11 : 45 ~ 12 : 40 - 역적재, 1부 산행종료, 봉화산 철쭉동산으로 이동하여 중식
13 : 23 - 지지리(知止里) 지지계곡 광대동, 2부 산행시작
14 : 16 - 암벽지대
14 : 57 - 백두대간 길 진입
15 : 14 - 월경산(月鏡山, △980.4m)
15 : 49 - 중재(해발 650m), ╋자 갈림길 안부
16 : 04 - 지지계곡, 산행종료
16 : 40 ~ 18 : 40 - 장계(長溪), 목욕, 석식
21 : 30 - 강일동 도착
1. 수양(垂楊)벚꽃
▶ 고남산(△846.5m)
사방 캄캄하고 오가는 차량조차 뜸한 한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멀리 보이는 불 켠 휴
게소가 반갑다. 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휴게소. 태풍전야처럼 이슬비 흩뿌리는 우중충한
날씨다. 여는 때는 지리산 등산객들로 북적이던 휴게소가 오늘은 불순한 일기 때문인지 썰렁
하다. 먼 길 떠날 화물차 수 대가 잠시 눈 붙이고 있다.
여원재(女院峙).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였을 때 이성계의 꿈에 어느 노파가 나타나 적
과 싸울 날짜와 전략을 알려주었는데 그로 인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한다. 이성계는 꿈속
의 노파가 이 고갯마루에서 주막을 운영하다가 왜구의 괴롭힘으로 자결한 주모였다고 믿고
노파를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여원(女院)'이라 불렀는데 그때부터 이 고개 이름이 여
원재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백두대간 2구간으로 여원재에서 중재까지다. 대간거사 님, 영희언니, 나를 비롯한 다
수가 인원동원으로 나왔으니 주객이 전도된 산행이다. 여원재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가경이
어서 ‘여원낙조(女院落照)’라 하여 운봉팔경 중 하나로 꼽는다는데 이 밤사 아직은 조용한 강
풍특보 속 비 추적거려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여원재 고갯마루의 백두대간 길은 나뭇가지 휘어지게 주렁주렁 달린 산행표지기가 안내한
다. 백두대간 길. 어디고간에 대로다. 국어사전에 ‘백두대간 길’이 수록된다면 그 뜻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 길】
「1」백두산 병사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길이 약 1,470km의 산줄기에 난 길.
「2」신작로처럼 탄탄대로로 난 그러나 노선버스는 다니지 않는 산길
「3」늙어서 혼자서라도 마실 겸해 다니는 산길
그나마 565m봉을 비켜 장동(獐洞)아랫마을로 들었다가 산기슭의 폐가 앞마당을 가로질러 대
숲을 지난다. 어차피 이 근처의 모든 산등성이는 백두대간으로 수렴할 터. 과연 무덤 지나고
백두대간 길과 만난다. 장치(獐峙). 노루목이다. 진달래꽃은 밤에도 활짝 피었었다. 우리는 그
저 자고 있었는데 …. 꽃길을 간다.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차디차다. 손이 시리다. 언듯언듯 사선 긋는 굵은 빗발이 보이는 것은
갑자기 내 눈이 밝아서가 아니라 우박이 섞여서일 것. 비바람 서슬에 고개 숙이느라 합민성
(合民城)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오르고 내리고 굴곡이 꽤 심하다. 슬랩을 밧줄잡고 오
르고, 암릉을 데크 계단 세 차례로 올라 고남산 정상이다.
확성기 달린 산불감시탑과 초소가 있다. 초소는 잠겼다. 삼각점은 판독하기 어려운 원형삼각
점이다. 비바람이 워낙 거세게 몰아쳐 얼른 정상 아래 공터 근처의 사면으로 피한다. 큼직한
화강암의 고남산 정상 표지석을 너른 공터 가장자리에 세웠다. 사면에 웅크리며 바람 피하고
있자니 다시 바람 맞으려 선뜻 나서기가 겁난다. 생각을 바꾼다. 이런 백두대간 길은 다행히
날이라도 궂어 이렇게 산행하는 맛이 나는 것 아니겠냐고.
운동장만한 헬기장을 지나고 철조망 두른 고남산중계소를 왼쪽 사면으로 돌아 콘크리트포장
도로로 내린다. 고남산중계소로 들어가는 도로다. 산굽이 돌고 돌며 내리는 도로를 저대로 두
고 우리는 연거푸 직진하여 내린다. 등로는 걷기 좋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거나 진달래 꽃길
인데 즐길 여유가 없다. 숨 돌릴 겨를 없이 엄습하는 비바람과 맞서느라 정신이 없다.
2. 수양(垂楊)벚꽃
3. 맹아지에 핀 벚꽃
4. 개나리
5. 수양벚꽃
6. 수양벚꽃
7. 수양벚꽃
8. 수양벚꽃
▶ 역적재, 봉화산 철쭉동산
703m봉 내리고 가파름이 약간 멈칫한 ┤자 능선 분기봉에서다. 여기서 유치재, 매요(梅要)로
가는 백두대간 길을 버리고 왼쪽의 늘부재 쪽으로 뻗은 능선을 잡는다. 금세 오지가 그립기도
하거니와 산길 아닌 매요 동네를 지나는 게 마뜩찮아서다. 백두대간 ‘옆구리’(캐이 님 버전)를
치는 것이다. 스틱 치켜들고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간다. 산길이 험하니 비바람이 더 거센 것
같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와 영진지도에는 상사바위의 표시가 잘못 되었다. 이 근방의 무료
한 산릉에 유일한 볼거리인 상사바위는 703m봉에서 바로 왼쪽으로 뻗은 지능선 상에 있다.
카메라 들이대려니 안개가 가려버린다. 소나무 숲 사이 바윗길을 오르고 오른쪽으로 방향 확
꺾어 내리면 늘부재(영진지도에는 들푸재)다.
539m봉과 봉낙골재 지난 495m봉도 야산이다. 걸음마다 방심치 못할 명감덩굴과 산초나무가
흔하다. 전기철선 넘어 농장으로 들고 농로 따라 내린다. 만항마을이다. 비바람이 심하여 주
민들을 소개(疏開)한 것인가 의심하게 조용하다. 유정삼거리 반암3교(蟠岩3橋) 88올림픽고속
도로 굴다리 아래에서 비 피하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복성이재 가는 길. 차도로는 금방 가지만 우리는 차도와 나란한 그 위 능선으로 간다. 인적 없
는 산길이다. 저 앞 봉우리가 대단한 첨봉으로 보이더니만 겨우 △473.4m봉이다. 삼각점은
깨졌다. 함양 452.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비바람이 엄청 거세게 불어댄다. 광
풍이다. 빗발은 그에 부화(附和)하여 얼굴을 사정없이 때려대니 아프기까지 하다.
자욱한 안개 속이다. 강풍에 버티며 당당히 가다가도 강풍이 급작스레 방향을 바꾸면 대응이
늦어 자빠질 듯 기우뚱한다. 등산화 안은 이미 질퍽하니 젖어 아까부터 벌컥벌컥 소리 난다.
산을 반쪽으로 똑 잘라낸 채석장 위를 살금살금 간다. 나이프 리지다.
능선은 방화선처럼 벌목하여 지피(地皮)로 가시덤불이 한껏 위세를 부린다.
안개 짙어 634m봉에서 발로 더듬어 역적재(영진지도에는 복성이재)로 가는 방향을 잡는다.
약간 내렸다가 길게 오른다. 산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 있고 역적재로 내리는 도로가
나 있다. 이제는 살았다 하며 서둘러 역적재로 내린다. 역적재는 바람골이기도 하다. 힘주어
발걸음 내딛는데도 비틀거린다. 우리 도시락 실은 기사님은 역적재 바로 아래 봉화산 철쭉동
산에 있었다.
점심 먹을 장소를 찾아 복성이재로 가보았지만 거기도 비바람 세찬 난장이다. 봉화산 철쭉동
산에는 정자도 있고 화장실도 있더라는 기사님 말씀이 솔깃했다. 그리로 간다. 남자화장실보
다 여자화장실의 공간이 더 넓다. 화장실에는 전기는 물론 온수도 나온다. 여자화장실에다 점
심자리를 편다. 훌륭하다. 2열로 앉는다. 화은 님이 강화에서 가져온 부대찌개는 11명(기사님
포함)의 한속을 덥이기에 충분했다. 오늘 커피는 대마담이 타 준다.
9. 수양벚꽃
10. 수양벚꽃
11. 메타세쿼이아
12. 수양벚꽃
13. 수양벚꽃
14. 수양벚꽃
15. 수양벚꽃
▶ 월경산(月鏡山, △980.4m)
2부 산행.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반란이 일어났다. 백두대간도 다 싫다. 우선 살고 보자. 산행
그만하고 가까운 찜질방에 가서 몸이나 녹이고 서울로 가자고 한다. 대간거사 님과 감악산
님, 나를 제외한 7명이 요지부동이다. 어떡할까? 여기 오려고 밤으로 왔다. 더구나 백두대간
종주 중이라는 대자연산악회도 대형버스 타고 이 구간(그들은 사치재에서 중재까지)을 왔다.
그들은 지금 산에 있다.
이왕 금 간 사발인데 깨진들 어떠리. 백두대간 2구간을 찢어발긴다. 광대동에서 월경산을 올
랐다가 중재로 내려오기로 타협한다. 그 시간을 나머지 일행 7명은 중재(중치) 아래 지지계곡
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지지계곡 광대동으로 이동한다. 대간의 북쪽 사면 아래여서인지 바람
은 상당히 누그러들었다. 찬비는 여전히 내린다.
광대교로 지지계곡 계류를 건너고 산기슭 왼쪽으로 도는 임도 따라 이슥 가다 지계곡의 희미
한 인적을 쫓는다. 고로쇠 수액 채취하는 검은 파이프와 함께 간다. 너덜 지나 골 깊어 파이프
도 인적도 끊기고 왼쪽 생사면으로 붙는다. 되게 가파르다. 흙이 물러 자꾸 뒤로 주르륵 미끄
러진다. 낙엽이나 돌을 섞어 딛어도 마찬가지다. 땀난다.
능선에 올라서도 인적은 있는 듯 없는 듯 산죽 숲 헤친다. 산죽 숲과 잡목이 교대로 나타난다.
산죽 숲을 지날 때는 아닌 게 아니라 신가이버 님이 염려한 대로 물안경을 가져와야 했다. 역
영한다. 옷은 속속들이 젖어 척척 감긴다.
성벽처럼 길게 두른 암벽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돌아 암문으로 뚫린 암벽 틈을 비집는다.
능선에 서면 비바람은 사납게 돌변한다. 904m봉에 올라서자 가파름은 수그러든다. 날이 좋
다면 장안산 백운산이 지척인데 안개로 다 가렸다. 독도가 까다로운 지점이다. 965m봉을 오
르다말고 왼쪽으로 꺾어야 한다. 골로 갈 듯 조마조마하게 뚝뚝 떨어지더니 살 통통한 능선이
어슴푸레 드러나고 임도가 나온다. 임도 따라 한 굽이 돌기보다는 나지막한 봉우리 직등하여
백두대간 길로 든다.
월경산이 여기일까? 저기일까? 눈 부릅떠 안개 헤집어 본다. 월경산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러나 월경산 정상은 마루금에서 오른쪽으로 230m 떨어져 있다. 다니러 간다. 월경산 정상.
너른 터에 정상 표지석은 없고 싸리나무가 듬성듬성하다. 삼각점은 함양 315, 1981 재설. 안
개 아니라도 사방 나무숲 둘러 조망은 없겠다.
월경산 이정표에 중재까지 1.9㎞. 줄달음한다. 암봉 돌아 넘고 줄곧 내림 길. 내리쏟는다. ╋
자 갈림길 안부인 중재. 임도가 지난다. 왼쪽 지계곡 소로로 내린다. 길 좋다. 저 아래 우리 차
가 보인다. 말이 없어도 마냥 오붓하던 산길이 끝나고 알뜰하던 긴 생각 접는다. (끝)
16. 소나무 숲 사이로 본 벚꽃
17. 목련
18. 수양벚꽃
19. 맹아지에 핀 벚꽃
첫댓글 빨치산도 아니고 그 장대같은 비와 바람에... 존경합니다...세분이 왕입니다요...갈수록 회춘을 하시니...
두분이 짜고 치시남??? 산행도 같이 글도 같은시간에 올리시고...반란(?)이라구여??? 배탔으면 사형감인데 ㅎㅎ
와...수양벗꽃 첨 보네요...신기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세분 형님들 정신에 부합되도록 열심히 몸관리, 정신관리해야겠습니다. 회사일이 좀 어느정도 정리되면 조속한 시일내로 오지산행 참석토록 하겠습니다. 저녁에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술도 끊었습니다. ㅎㅎㅎ 오지산행 붙으려면 몸관리해야지요.
술은 끊으면 안되는데....... 거시기주 앞에서 누군 고문 당하실 일 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