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들 속에서 믿음에 기초한 치료 모임은 재법률을 35퍼센트까지 떨어뜨렸다.
(의식 연구에 따르면)
12단계 원리는 외견상으로 가망 없는 대단히 다양한 인간 문제에 폭넓게 확산되고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복 모델과 훈련의 핵심은 물들거나 더럽혀지지 않았다.
그것은 상업화나 악용을 거부했으며, 세속적 상업화나 타인에 대한 통ㅈ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았다.
12단계 운동은 그것이 기반으로 삼은 영적 진실의 내적 규율에 따라,
'외부의 쟁점에 관해 어떠한 의견도 갖지 않았고',
부와 명망, 정치적 영향력을 거절했다.(Wilson, 'Bill W,', 1939,1953)
그것이 가진 힘의 바탕에 있는 것은 오직 무조건적 사랑과 사심없는 정직성이라는 ,
540으로 측정되는 그 자체의 의식 수준이었다.
오늘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은,
접근 가능한 사회적 지식의 보급이 항상적 인간 조건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는 점에서 순진하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정보는 극소수 특권층이 쥐고 있었고, 대중은 그것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인쇄술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교육받은 이들은 그 수가 극히 적었다.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박식한 학자들조차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도구나 수단을 갖지 못했다,
따라서 오류가 포함되는 것은 불가피했는데,
예를 들면 니케아종교회의 뒤에 벌어진 기독교 의식 수준의 심각한 저하가 그것이었다.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독점적 영역은,
그 다음에 그것으로 타인을 통제하려는 유혹이 되었고,
독점성에 대한 주장은 편협성과 다툼에 불을 지핀 바로 그 연료가 되었다.
게다가 논쟁적인 마음은 진실의 중심 요점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을 통일시키기보다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세부를 과장하는데 집착해서 사람들을 나눠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종교는 교회의 권위를 세웠다.
그것은 합의된 경전을 지정함으로써 분열을 야기하는 불일치를 예방하려는 것이었다.
합의된 경전의 신빙성은 그 다음에 정경화(政經化)과정을 통해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더한 남용으로
그리고 정교 신앙의 고수를 강제하려는 무시무시한 협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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