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장애인복지관 사회사업 글쓰기 모임이 열렸습니다.
한 복지관에서 두 명씩, 네 복지관 여덟 선생님과 공부했습니다.
산책도 하고, 차와 간식도 나누고.
덕분에 글 나누는 시간이 짧아졌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어나간 덕에
여덟 선생님 글 모두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읽은 박현정 선생님 글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습니다.
박 선생님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나눴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궁리하게 합니다.
박 선생님이 어느 소도시를 여행하며 늦은 밤 찾아간 숙소에 주차 자리가 없었습니다.
숙소 사장님은 장애인주차구역에 세우라 했습니다.
더는 찾아올 사람이 없다고, 또 신고할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박 선생님은 끝까지 거절하고 조금 더 찾아본 끝에 다른 곳에 주차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처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출한 원고의 내용이 짧아 앞뒤 맥락을 살필 수가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그 주차장이 숙소 사장님 가게 주차장이고,
더는 예약 손님이 없어 실제로 이용할 일이 없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그럴 때는 장애인주차구역이 절대 이용하지 말아야 할 성역이기보다,
융통성 발휘도 괜찮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서, 식사하면서, 씻으면서 생각해 보니,
어떤 이는 그곳 말고 다른 곳은 사용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 공간이 숙소를 이용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일 겁니다.
예약을 마감했다고는 하나 세상 일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곳에 반드시 차를 세워야 하는 손님이 약속 없이 올 수도 있고,
상황이 달라져 앞선 예약자가 숙소를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주차구역은 반드시 비어 있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처음 박 선생님 글을 읽고 떠오른 건,
융통 없는 원칙이 장애인을 특별하게 만들거나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과도한 원칙주의가 오히려 '장애인은 까다로운 존재', '불편을 초래하는 존재'라는
부정적 낙인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였습니다.
그래서 '융통'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궁리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만약 주차장 전부가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면,
처음부터 별도의 장애인 구역은 애당초 따로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특정 구역을 비워두는 건 유별난 일이 아닐 겁니다.
보편적 설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 장소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을 위한,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의식하게 하는,
최소한의 배려인 셈입니다.
이렇게 누군가는 배려해야 하고 누군가는 배려받아야 하는 사회적 구조 아래에서,
적어도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라면,
박 선생님처럼,
어떤 투숙객의 편의를 봐주기보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을 마음에 두고
그 '권리'를 끝까지 지켜주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예외를 만들기 시작하면,
장애인 주차구역은 '언제든 비어 있어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상황 봐서 써도 되는 곳'이 되고 맙니다.
오늘 전체 공부에서는 '원칙과 융통'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돌아보니,
모든 일에 원칙만 앞세우면 현장은 경직되어 숨이 막힙니다.
모든 일에 융통만 발휘하면 현장은 형평이 깨져 신뢰가 무너집니다
다양한 사회사업 현장에서, 어떤 일에는 원칙을 세우면서도 융통을 발휘하지만,
끝까지 원칙만을 지켜야하는 일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정리하면,
사회사업 현장에서 원칙을 지켜가며 일하지만, 융통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은, 사람 사안 상황이 달라도 변하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 정도로 오늘 공부 후기를 몇 자 남깁니다.
메모 정도로, 단상을 잊지 않기 위해 일단 써 내려갔습니다.
박현정 선생님, 고맙습니다.
때를 보아 다시 다듬고 정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