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이야기
내가 어렸을 적이니 50년대 초가 되는데 그 당시 우리 동네(강릉 학산 3리) 화장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이야 아무리 강원도 시골 마을이라도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대부분이지만 당시를 되돌아보면 그저 웃음 밖에 안 나온다.
강릉말로 화장실을『정낭(뒷간)』이라고 했는데 지금처럼 시멘트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니 대부분 커다란 항아리를 묻거나 돌로 쌓고 진흙을 발라 수분(오줌)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했다.
변(便) 보는 사람의 발 받침을『구틀』이라고 했는데 통나무를 걸쳐 놓기도 하고 조금 형편이 나으면 판자 쪼가리를 놓기도 했다.
암(♀)기와 / 수(♂)기와 / 막새 기와 / 한옥 지붕과 담장
그리고 소변을 받는 기왓장 쪼가리를 앞에 놓는데 조금 낫다면 좁다랗고 앞이 막힌 막새기와를 구해다 앞에 비스듬히 설치하였다. 당시 화장실은 대부분 지붕이 없었고 둘레를 울타리처럼 둘러막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조금 나은 집은 볏짚을 이엉처럼 엮어서 둘러치기도 했다.
화장지는 대부분 짚단을 가져다 세워 놓았는데 조금 세월이 지난 후 신문지를 네모나게 잘라서 실에 꿰어 앞 기둥에 매달아 놓던가 한 장씩 떼어 내는 달력(日曆)이 인기가 있었다.
지푸라기를 쓸 시절에는 짚을 서너 줄기 뽑아 두어 번 꼬부려 접어서 닦았는데 아버지는 그 지푸라기를 변통에 넣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논밭에 퍼낼 때 거추장스럽기 때문이었다.
빗물이라도 들어가 똥물이 튀어 오르면 매우 곤란했는데 우리 누님은 튀어 오르지 못하도록 낙엽을 긁어다 집어넣기도 해서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곤 했다.
변소 뒤에는 항상 똥장군과 귀때동이, 똥바가지가 세워져 있었고....
똥바가지 / 뀌때동이 / 똥장군 / 정낭(뒷간)
똥장군은 옹기로 구워낸 것으로 위에 주둥이가 있는 구멍이 나 있는데 지게로 저 나를 때에 튀지 않도록 커다란 지푸라기 뭉치로 막아야 한다. 귀때동이는 물동이처럼 생겼는데 한쪽에 삐죽이 부어낼 수 있도록 귀가 달려 있고, 똥바가지는 바가지를 기다란 막대 끝에 매달아 퍼내기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우리 집 화장실은 처음에는 둘레를 돌로 쌓았었다.
높이가 고작 1m 남짓이어서 구부리고 앉으면 보이지 않지만, 머리를 들면 지나가는 사람도 다 보였다.
언젠가 누님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동네 꼬마 녀석이 지나가다가 얼굴이 언뜻 보였던지,
“안녕하슈?” 하고 인사를 했다고 해서 한참 웃던 일이 생각난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 우리 집 화장실이 동네에서 제일 멋진 화장실로 탈바꿈하였다.
조금 비뚤비뚤 하기는 했지만 네 기둥을 세우고 저릅대(겨릅대)로 외를 엮고 진흙에 볏짚을 썰어 넣어 섞어서 진흙 반대기를 만들어 벽을 발랐다. 굵지는 않지만, 대들보도 얹었는데 내가 서툰 솜씨로 대들보에다 상량문(上樑文)을 써서 붙이기도 했으니 제법 꼴을 갖춘 화장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별 희한한 변소도 다 있다며 구경을 오기도 했는데 사람은 여기서 살꺼냐는 둥 말도 있었으니 당시로는 최신식 화장실이었던 셈인데 화장지는 신문지 쪼가리를 면하지 못하였었다.
1969년도, 나의 초등교사 첫 발령지가 경기도 가평(加平)이었다. 지금은 춘천으로 가는 길목으로 도로 사정이 좋지만, 당시만 해도 가평은 오지(奧地)요, 벽지(僻地)였다. 처음 가서 제일 놀랐던 것이 화장실이었는데 60년대 말인데도 내 어릴 적 강릉의 화장실만도 못했다.
겉모양은 기다란 장대를 세모꼴로 맞물려 세우고 짚을 덮어 움집처럼 지었는데 바닥은 맨땅이었다.
발 받침으로 납작한 돌멩이를 두 개 놓고는 땅바닥에다가 변을 본다.
화장지는 지푸라기.... 앞에는 말뚝(부짓대)을 박아 놓았는데 노인네들이나 술 취한 사람들이 붙잡고 중심을 잡으라는 듯.... 옆에는 아궁이의 재를 받아다가 쌓아놓고 그 옆에 나무로 만든 자그마한 고무래와 가래도 있다. 변을 본 후 가래로 재를 퍼서 변(便) 위에 끼얹고는 뒤적뒤적해서 고무래로 뒤편으로 밀어 놓는다. 따라서 뒤편에는 재를 뒤집어쓴 똥(便)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여기서는 똥장군이나 귀때동이, 똥바가지가 없고 소쿠리를 얹은 지게가 있는데 이 재를 묻힌 똥(便)을 소쿠리에 지고 밭으로 나르는 모양이었다.
우스갯소리인지 사실인지, 화장실 안쪽 한편에 새끼로 줄을 매어놓고 엉덩이를 깐 채 줄을 타고 왔다 갔다 하며 닦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ㅎㅎㅎ
2012년 4월, 3주 정도 혼자 인도(印度) 배낭여행을 했는데 인도의 화장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인도의 대부분 시골가정은 아예 화장실이 없으니 숲속이고, 들판의 수풀 속이고 모두 화장실인 셈이다. 아침 일찍 들판에 나가보면 물병을 들고 밭둑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변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다.
인도는 휴지를 쓰지 않고 물로 닦는 것이 특이한데 엉덩이를 깐 채 일어서서 엉거주춤 구부리고는 오른손으로 물병을 등 뒤로 들어 올려 부으면서 왼손을 사타구니로 집어넣어 닦는다.
그런 다음 바지를 올리고는 앉아서 다시 물로 손을 씻는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도 아랑곳하지 않고 볼일을 보는데 지나는 사람들 또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지나친다.
소도시나 시골은 마을 가운데 길도 온갖 짐승들의 똥(便)으로 길을 가기가 어렵다.
특히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아무 데나 똥을 내깔겨서 걷기가 곤혹스러운데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똥을 밟기가 십상이다. 나도 조심을 했는데도 몇 번이나 소의 똥을 밟았던지....
길거리에 널린 소똥, 개똥, 돼지똥.... 거기에 그것을 쪼아먹는 까마귀 떼까지....
치우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래도 길거리에서는 변을 보지 않으니 짐승보다는 나은 셈인데..... ^^
인도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밥을 먹는 것은 모두 아실 터.
변을 처리하는 손인 왼손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밥과 카레 등을 섞어서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도 따라 해보았는데 잘 안된다.
인도사람들은 왼손은 부정(不淨)한 손이라 하여 절대로 다른 사람을 만지지 않으며 가급적 보이지 않도록 감춘다. 여행객이 무심코 귀엽다고 왼손으로 어린아이들 머리라도 쓰다듬으면 인도사람들은 화를 낸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인도사람들은 긍정일 때 머리를 옆으로 살랑살랑 흔들며 예스(Yes) 한다. 우리가 부정할 때 머리를 옆으로 흔드는 것과 반대이니 헷갈릴 때가 많다.
인도 탄자부르(Tanjavur)에서 1박에 200루피(5천원) 짜리 호텔에 들었는데 물이 안 나와 항의했더니 침대 두 개짜리로 옮겨 주는데 널찍해서 좋기는 했지만, 여기도 물이 나오다 안 나오다....
아침에 호텔 창으로 보이는 지극히 인도다운 진풍경 하나.
호텔 바로 길 건너 엄청난 쓰레기 더미가 있는데 길옆에서 한 노인이 물통을 들고나와서 변을 본다. 다 본 후 엉덩이를 올려 구부정한 자세로 오른손에 물통을 들고 등 뒤로 돌려 물을 흘리며 왼손으로는 닦는다. 그 앞을 자전거를 탄 젊은 여성이 무심히 지나가고, 서너 마리의 개와 돼지들이 모여들고... 이런 것이 매우 일상적인 인도의 풍경이라 하겠다.
인도는 소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까닭에 길거리를 배회하는 소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시골 장터에서 소가 아주머니들이 팔려고 내놓은 야채를 우걱우걱 먹으면 아주머니들은 그냥 얌전히 그냥 ‘저쪽으로 가시라고’ 소를 밀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