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공포를 부추겨 이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비판을 종종 받곤 한다. 특히 처음 등장하는 감염병(전염병) 보도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 시발은 감염병의 이름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21일 국내 첫 중증열성혈소판증후군(SFTS) 환자가 사망한 사실을 공식 발표하자 언론은 앞 다퉈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 보도 속에는 치사율이 애초 알려진 것보다는 높지 않다는, 국민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에서부터 '살인 진드기'와 같이 무시무시한 말까지 극과 극이 병존한다. 신문들의 제목만 일부 살펴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살인 진드기 치사율 10% 미만, 무조건 감염되는 것 아냐" "'강원도 '살인 진드기'공포 확산-도 대책 부실, 불안감 해소 못해" "외출 자제, 여행 취소 봇물" "'살인 진드기' 공포, 한국에서도 확산" 등등.
이런 보도를 접한 국민들은 또 한 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 헷갈린다. 공포를 유발하는, 또 이를 위해 병의 이름에 자극적인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언론의 이런 행태는 과거 농촌괴질(렙토스피라증),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광우병(소해면상뇌증) 등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할 때마다 벌어졌다. 그 유구한 전통은 중증혈소판감소증후군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우리말 전문가는 신문 칼럼을 통해 일침을 가했다.
"'신증후군출혈열(유행성출혈열)'을 옮기는 설치류나 조류 독감의 하나인 'H5N1'을 옮기는 조류, 뇌염과 말라리아를 전염시키는 모기 따위를 두고 '살인 쥐', '살인 새', '살인 모기'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맹독을 지녔다는 이유로 '살인 뱀'이나 '살인 벌'이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살인 진드기 의심 1명 사망' 같은 기사 제목은 어색하고 '살인 진드기'라는 표현은 왠지 섬뜩하다." "'살인 진드기'의 따옴표를 드러낼 수 없는 라디오에서는 앞에 '이른바', '속칭'을 붙이고,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SFTS)이 길어서 부담스럽다면 영어 약자 '에스에프티에스'를 쓰는 것도 방법이다."지난해 숨진 환자에서 9개월이나 뒤늦게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분리해낸 것은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했을 때 이를 진단하는 능력이 아직 미흡하다는 것을 뜻한다. 국내 첫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환자로 기록된 50대 여성은 지난해 7월 중순과 하순에 강원도 화천 지역에서 서너 차례 텃밭에서 작업을 하다 알 수 없는 벌레에 물렸다.
그리고 일주일 내지 열흘 가량 지난 뒤인 8월 3일 벌레 물린 자리가 부어오르고 열이 나며 설사 등이 계속돼 지역 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차도가 없고 그 증상이 더욱 심해져 마침내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다. 환자는 38.7도의 고열에 시달렸으며 얼굴에 발진이 생기고 목과 오른쪽 사타구니에 림프절 종창이 생겼다. 혈소판 수치까지 감소했다. 이 여성 환자가 거주했던 강원도 지역에서 종종 발생하는, 그리고 증상도 상당 부분 비슷한 질환인 쯔쯔가무시, 말라리아, 신증후군출혈열(유행성출혈열) 등을 의심하고 관련 검사를 했으나 모두 음성이었다.
8월 10일에는 의식 저하가 생겨 중환자실로 옮겼다. 하지만 이틀 뒤인 8월 12일 다발성 장기부전이 와 결국 숨졌다. 이 환자는 원인 불명 열성 환자 사망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이 사례는 잊혀졌다.
최근 중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잇따라 작은소참진드기가 매개하는 감염병인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환자가 8명이나 발생해 이 가운데 5명이 숨졌다.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이 소식이 국내에도 알려지자 지난해 여름 무슨 일이 병원에서 벌어졌는지를 잘 아는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 팀은 이 환자 사례를 떠올려 마침 보관 중이던 이 환자의 혈청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바이러스 분리 작업에 매달렸다.
언론이 속칭 '살인 진드기병'라고 부르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evere fever with thrombocytopenia syndrome, SFTS)은 우리에게 아주 최근 알려진 진드기 매개 열성 감염병이다. 2009년 중국에서 처음 확진됐고 바이러스가 분리됐다. 그 유전자도 분석돼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2년간(2011~2012년) 2047명의 환자가 보고됐다. 사망자는 모두 120명가량이다. 해마다 1000명가량의 환자가 발생하고 60명가량이 숨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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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소참진드기의 성충과 피를 빤 뒤 몸집이 불어난 모습. ⓒ질병관리본부 |
우리나라 보건 당국과 의학계는 중국에서 발생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월 일본에서 이 감염병으로 사망한 환자가 나오고 그 숫자가 늘어나자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월부터 유사 사례 역추적 조사 등을 벌였다.
그 결과 최근 언론이 앞 다퉈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한 5건의 사례들은 사망한 제주도 70대 할아버지를 제외하곤 모두 다른 질환으로 판명됐다. 다만 제주도 70대 할아버지의 혈청에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바이러스 관련 유전자가 검출돼 이 할아버지는 사실상 이 감염병 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할아버지 또한 지난 2일 발병해 16일 숨지기까지 면 소재지 일반 병원~제주 시내 한마음병원~제주대학교병원까지 전전했다. 하지만 어느 곳도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을 의심하지 않았다.
진드기는 일반인들이 널리 아는 집먼지진드기를 비롯해 모두 500~600종이 있으며 이 가운데 참진드기는 약 30여 종이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이라는 신종 감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옮기는 진드기는 두 종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작은소참진드기(Haemaphysalis longicornis)이다. 암컷이 수컷보다 약간 커 3밀리미터 정도이고 수컷은 1~2밀리미터로 야외에서는 일부러 눈여겨 관찰하면 모를까 눈으로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풀 숲 등에 있다가 쥐나 고양이 등 야생동물에 달라붙어 피를 빨며 번식을 한다. 암컷은 피를 빨면 몸집이 엄청나게 불어나 10밀리미터까지 커진다.
다른 하나는 소참진드기(Rhipicephalus microplus)로 주로 양, 염소, 소, 돼지, 개, 말 등의 가축에 달라붙어 피를 빤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은소참진드기가 주로 분포하며 소참진드기는 상대적으로 적게 분포하고 있다. 참진드기 가운데에서도 소(牛)에 잘 달라붙는다고 해서 (작은)소참진드기란 이름을 붙였다. 첫 희생자가 이 두 진드기 가운데 어느 종류에 물렸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진드기는 한 번 숙주에 달라붙으면 강력 본드로 붙인 것처럼 피부에 몸의 일부를 박고 오랫동안 피를 빤다. 만약 진드기가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조심스레 몸통 전체를 떼어내야 한다. 암컷은 흡혈 후 지상으로 떨어져 흙 속 또는 돌이나 나무뿌리 밑 등에 숨어서 알이 성숙할 때까지 수 주 간 기다린다. 3000~8000개의 알을 수주간에 걸쳐 계속하여 산란하고 나면 이삼일 뒤 죽는다.
부화한 유충은 3쌍의 다리를 갖는 0.5∼1.5밀리미터의 크기가 된다. 활발한 움직임으로 숙주를 찾는다. 그리고 동물이 지나갈 때 일어나는 광선 강도의 변화, 동물의 체온에 의한 따뜻한 기류, 땅의 진동, 냄새 등의 여러 요인에 따라 숙주에 달라붙는다. 숙주 동물에 부착하면 3∼7일간 계속하여 몸의 일부를 피부에 꽂은 채로 흡혈한다.
피 빨기가 끝나면 땅에 떨어져 소화한 후 탈피하여 4쌍의 다리를 갖는 어린 벌레(nymph)가 된다. 이 어린 벌레는 다시 숙주를 찾아 7∼10일간 흡혈에 성공하면 은신처에서 소화 후 탈피하여 성충이 된다. 성충이 되면 1주일간의 휴식 후 다시 숙주를 찾아 흡혈한다. 성충은 흡혈시간이 길어 1∼4주간이 필요하다. 흡혈 뒤 3∼5일 후에 산란을 한다. 흡혈 후의 암컷은 흡혈 전에 비해 엄청나게 커지나 수컷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첫 사망자와 바이러스 분리로 그리고 언론의 대대적이고도 잇따른 보도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에 대한 의료인과 일반인들의 인지도는 크게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첫 사망자와 두 번째 사망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제주도 70대 할아버지 사례에서 보듯이 의료진이 그 원인을 몰라 갈팡질팡하거나 쯔쯔가무시 등 다른 감염병 진단만 하고 마는 일은 앞으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민들의 막연한 공포심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 공포심을 자극하고, 또 그 영향을 받아 일반 국민들도 공포심을 느낀 데는 치사율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8명 환자 가운데 5명이 죽었다는 보도와 치사율이 30퍼센트에 이른다는 보도를 접한 사람들이 공포심을 가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대개 감염병이 처음 등장할 때는 사망자 사례가 부각되고 신고 또한 사망자 위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유행 또는 발생 초기에 역추적 조사를 하게 되면 치사율이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광범위한 조사를 하게 되면 치사율이 10퍼센트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에서 지난 2년간 2047명 환자 발생에 120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치사율은 6퍼센트 가량 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중국에서와 같은 수준으로 감염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하고 이를 인구 비례(중국은 한국의 27배)로 대비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37명의 환자가 발생해 2~3명이 숨지는 것으로 계산된다.
물론 이 감염병으로 가족을 잃게 된다면 이는 그 가족에게는 청천벽력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연간 2~3명의 사망자를 내는 이 정도의 결과를 가진 감염병에 대해 언론이 앞 다퉈 '공포심'을 유발하는 보도를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 감염병은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다.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진드기가 아니라 바이러스다. 만약 누군가 총을 들고 쏘아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총 때문일까, 사람 때문일까. 사람이 살인자이다. 진드기는 단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사람(원래 흡혈 대상은 동물이었는데 최근 인구 증가와 개발 등으로 사람도 흡혈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의 피를 빨았을 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못된' 바이러스가 작은소참진드기 안에 들어 있어서 불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진드기는 결코 사람을 살인할 의사가 없는 동물이다. 결코 살인 진드기가 아니다. 언론에서 '살인 진드기'라는 말을 더는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첫 환자가 발생한 강원도나 두 번째 사망자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한 제주도 등에 초점을 맞추거나 "충주서 '살인 진드기' 의심 환자, 충북서는 처음"처럼 특정 지역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는 경향도 있다. 이 또한 적절하지 못하다.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대로라면 올해 2~3월 진드기 감염 확인 조사 결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을 매개하는 작은소참진드기는 국내에도 전국적으로 서식하고 있고, 이 감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진드기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은 전국 어디에서나 환자가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이다.
첫 사망자가 나온 뒤 일반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당연히 어떻게 하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가이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늘 예방에 힘을 쏟는다. 그리고 이를 위한 소통에 열성을 다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산이나 들판, 숲으로 가지 않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마라'고 하는 격이다. 다시 말해 이는 예방 대책이 아니다. 질병관리본부가 제시하는 예방 대책은 다음과 같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과 이 감염병을 옮기는 진드기가 무서워 야외 활동을 삼가거나 산과 숲을 찾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 사회가 아니다. 죽은 사회다.
- 긴 팔, 긴 바지, 양말 등 피부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옷 착용. - 등산, 트래킹 등 야외 활동 시 기피제를 준비해 뿌릴 것. - 야외 작업 및 야외 활동 후에 즉시 몸을 씻을 것. - 야외 작업 및 야외 활동 후에 옷이나 작업복, 양말 등을 세탁할 것. - 풀밭 위에 옷을 벗고 눕거나 잠을 자지 말 것. - 풀밭 위에 펼쳐둔 돗자리를 사용 뒤 잘 씻어 말릴 것. - 논밭 작업 중에 풀숲에 앉아서 용변을 보지 말 것. - 풀밭이나 덤불에서 작업을 할 경우 소매와 바지 끝을 단단히 여미고 장화를 신을 것. |
/안종주 건강 디자이너
자료원: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