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도 성 바오로의 회심(개종) 축일이다. 우리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역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사도이다. 원래 바오로는 열성적인 유대교 신자로서 크리스도교를 박해하는데 신명이 나서 앞장서던 사람이었고 사울이란 이름으로 최초의 순교 성인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어 박해하러 가던 어느 날 다마스커스 근처에서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받고 갑자기 길에서 쓸어져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묻는다.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예수다."라고 대답하신다. 사울은 다시 주님께 묻는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주님은 다시 "다마스커스에 들어가서 하나니아스를 만나라" 하신다. 이때부터 사울은 세례를 받고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개종하여 이방인 선교에 최선봉을 맡게 된다.
바오로 사도는 뒤늦게 주님의 뜻을 받아 선교에 열정을 쏟아 붓게 된다. 그는 선교에 혼신을 다하며 그동안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잘못을 완전히 반성하고 뉘우치며 새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떤 박해와 죽음도 불사하면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마침내 이런 말로 자기의 선교사명을 표명하기까지 하였다. "내가 만일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1코린 9,16)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유언으로 남기시며 하늘로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로써 복음 선포임이 확실히 드러난다.
아무리 불효를 저지르던 자식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며 유언하신 것은 중요히 생각하고 지킨다고 한다. 그래서 오죽하면 비오는 날 열심히 울어 제키는 말썽꾸러기 청개구리의 울음의 사연도 바로 어머니의 유언을 지킨 탓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도 청개구리 아들녀석이 말을 안 듣고 시키는 일을 반대로만 하니까 그 어머니가 죽으면서 유언하기를 "내가 죽으면 내 시신을 물가에 묻어다오" 했다는 것이다.
청개구리 어머니 생각에 얘가 분명히 내 시신을 물가에 묻으라고 하면 산에다 묻어줄 테지...하면서 산에 묻어달라는 말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 말썽꾸리 청개구리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니까 이번만은 말씀을 잘 들어야지 하면서 정말로 어머니의 시신을 물가에 묻었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맨날 비가 오는 날이며 어머니의 시신이 떠내려갈 것을 걱정하며 울어 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청개구리보다는 낫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매일 듣고 너나 할 것 없이 외치는 한 목소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계명이 바로 사랑이고 어느 종교든지 바로 이 사랑을 제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랑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랑의 실천은 이웃에게 가장 크고 기쁜 소식과 함께 행복을 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웃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어떻게 살면 영원히 행복하게 되는지를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 선포이다.! 그러니까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진짜 기쁘고 행복한 내용은 자기만 알게 감춰두고 남에게는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이기주의자이거나 아니면 아직도 진짜진짜 기쁜 소식 즉 복음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신자는 가짜 신자이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고 기쁜 소식이란 감춰둘 수 없는 것이 그 생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들이 서울 대학교에 수석으로 합격되었다고 하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한다면 아마도 미치고 환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기쁜 소식이란 이웃과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고 감추면 감출수록 작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슬픈 소식은 이웃과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지고 감추면 감출수록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응큼하게 진짜 좋은 것은 나 혼자만 갖고 지내려는 이기심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선포는 바로 사랑의 실천이다.!
내 입김으로 또는 나의 행동의 모범으로 이웃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한 일이 한번도 없다면 그는 진정한 사랑은 한번도 안 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앉으나 서나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면서 그것을 이웃에게 전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다. 미사가 끝날 때마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하면 누구나 예외 없이 긍정적으로 "하느님께 감사합니다"하면서 실제로 복음을 실천하고 전하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늘 거짓 약속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빈 약속만 하지말고 청개구리도 한번은 제대로 받아들였다는 주님의 유언적 명령을 받아들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