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길을 걷다 보면 문득 내가 미국에 와 있나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간판 대다수가 영어를 한글로 쓴 것, 아예 알파벳으로 그대로 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명동이나 압구정 같은 번화가만 그랬는데 이젠 내가 사는 연신내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지기라도 하듯 경쟁하는 모습은 엊그제 (565돌) 한글날을 보내면서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요즘은 일반 간판뿐만이 아닙니다. 대기업의 상호도 알파벳으로 표기하느라 난리입니다. 한국통신이 KT, 농협이 NH, 담배인삼공사는 KT&G로 바뀐 지 오래지요. 기업이 국제화하려면 상호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위에 말한 기업들은 수출하거나 세계에 진출하는 업무보다는 국내에서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하는 회사들이니 더 문제지요. 오히려 세계에 상품을 팔고, 세계 여러 나라에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는 여전히 상호를 알파벳으로 바꾸지 않은 것을 보면 기업의 국제화와 알파벳 상호는 직접 관계가 없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세계 어떤 글자보다 뛰어난 글자라고 인정받는 한글을 제나라 사람들이 푸대접하고 남의 나라 글자 쓰기에 혈안이 된 모양새는 어쩌면 나라를 팔아먹는 망국적 모습이 아닌가 두렵습니다. 애국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나라 글자를 아껴 쓰는 일도 그 하나일 텐데 그런 기업들은 애국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닌가요? 지금 한국의 상징인 광화문 현판도 한자가 아닌 한글로 써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애국은 못하더라도 한글을 버리고 영어로 도배해가는 지금의 모습은 어딘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이 지나친 것일까요?
독자 신현숙 / 서울 은평구 갈현동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