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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1902~1983
■ 실명,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나는 일곱 살 때 시력을 잃었다. 그것은 다섯 살 때 어머니와 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사고 때문이었는데, 어머니는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2년 뒤에 돌아가셨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이후 뒤이어 기억마저 잃어버렸다. 언젠가 아버지가 나를 보고 백치 자식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체구가 작고 늘 불안해하던 분이라는 것이 전부이다. 다섯 살이나 된 아들을 팔에 안고 다니셨던 것을 보면 나를 무척 사랑하신 게 분명하다. ~~
기억은 다 잃어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생생한 기억이 몇 가지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어린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때 어머니나 마르타가 나를 벽장의 서가에 붙어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독학한 가구 제조공이었는데, 영어와 독일어로 된 철학, 수학, 식물학, 화학, 음악, 여행분야의 책을 100권 정도 가지고 있었다. ~~
또 다른 생생한 기억 하나는 아홉 살 때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들었던 일이다. 그날 아버지는 나를 택시에 태워 뉴욕의 콘서트 홀로 데려갔다. ~~~ 훗날 내가 다시 시력을 회복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외롭고 버림받은 기분이 들 적마다 제3악장을 콧노래로 부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열다섯 살 때 나는 시력을 되찾았다. ~~~나는 삶을 여행객처럼 살아왔다.
■ 빈민가로 떨어지다
나는 세상에서 혼자 몸이었지만 두려운 것은 없었다.~~~로스안젤레스의 시립도서관 근처에 싸구려 방을 하나 빌리고는 한눈팔지 않고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그릇 닦는 일을 자원하여 한 끼를 때웠다.
■ 나 외에는 다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마음을 움직이는 요령을 터득하다
주립 무료 직업소개소의 홀은 차고를 급조한 곳이었다. 실업자들은 칸막이로 된 의자를 마주 보도록 배치해 놓은 여러 줄의 의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후에 마침내 잔디 깎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자리를 지킨 탓에 나는 입에 풀칠하기에는 충분한 벌이를 할 수 있었다. ~~
돈을 별로 쓰지 않고 살면서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수학이나 화학, 물리학, 지리학 등의 대학 교재로 독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돕기 위해 노트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는 일에 열중했고, 제대로 된 형용사를 찾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오렌지 행상을 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불만 없는 충만한 삶이었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이라는 동네는 영속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금융 공황이 있었고,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만 했다. ~~~남부 억양에 키가 호리호리하고 피부색이 검은 주인은 우리를 보고 빨리 와서 한번 해 보라고 재촉했다. ~~~그는 우리에게 오렌지가 가득 담긴 양동이를 두 개씩 주고는 집집마다 뒷문을 노크해 보라고 했다. 우리는 각각 주택 한 줄씩 맡았다. 첫 번째 집에서 문이 열리고 한 중년 부인이 나와서 네? 하고 말했다. 나는 얼어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저 양동이를 든 두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들어오세요. 들어와. 두 양동이 모두 내가 사죠. 나는 허둥거리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그 집 채소 상자를 비우고 깨끗한 종이를 상자 안에 깐 다음, 단단한 것은 밑에 넣고, 익은 것은 먼저 먹을 수 있도록 위로 채워 넣었다. ~~~오후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렌지는 동이 났다.
점심을 먹으려고 앉아서 돈을 셀 때 나는 깊은 회의를 느꼈다. 그것은 내가 결코 느껴 본 적이 없던 수치심이었다. 내가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물건을 팔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 경우에 장사는 타락의 근원임이 분명했다. 장사를 위해서는 거리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타락의 소지가 다분했고, 따라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내가 블래키에게 다시 오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버럭 화를 냈다.
■ 유대인과의 만남
어느 날 나는 산타페에 있는 파이프 야적장으로 급히 불려갔다. 그 야적장은 자영 석유업자들에게 중고 파이프를 파는 곳이었다. ~~~야적장의 일은 별로 힘이 들지도 않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20달러를 선불로 주었다.
그것이 나의 안정된 첫 일자리였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속죄의 날인 욤 키푸르 때에 야적장 문을 닫는 것을 보고 나는 샤피로의 유대인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들려주는 유대인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는 내게 유대인이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아는 인종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
샤피로는 나에게 르낭의 <이스라엘 민족사>를 읽어 보라고 권했다. ~~~1930년 나는 28세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샤피로와는 2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 마르타의 예언대로 내가 40세까지밖에 살지 못한다면 여생을 샤피로의 야적장에서 보내야 했으리라. 그러나 샤피로는 1930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 성서 속에서 진실을 상상해 내다
-생의 갈림길에서 다시 만난 도스토엡스키
나로서는 처음 맞는 휴가였다. 월요일에 나는 업무로 황망하게 질주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거리를 거닐었다. ~~~나는 개미 떼 속의 한 마리 무당벌레 같았다.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은 먼저 27세 때 자기 생의 목표를 찾아낸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말하면 27세의 시기는 위대한 인간들에게서 매우 중요했던 1년인 셈이다. ~~나는 함순과 라케를뢰프,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읽었다. ~~~
-구약성서에 빠져들다
그 즈음에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구약성서였다. ~~첫 구절을 읽는 순간부터 급습해 오는 감동의 격류에 무방비 상태로 휘말려 들었다. 장엄하고, 생생하고, 신선한 그 지각! 소박하고 옹색하지만, 대담하게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진지한 호기심으로 고동치는 그 원초적 정신성은 거대한 과학적 개념의 직접성과 정확성 그리고 투과성을 지닌 나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균형과 질서를 향한 그 열정! 그 대담한 정신은 지식도 도구도 없이 무수한 자연현상들의 카오스를 장악하고, 그것들을 하나의 패턴으로 서로 연관시키고, 조직하고, 배열하기 시작한다. 과학적 정신이 별들의 움직임과 눈먼 지렁이의 동작 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듯이, 원초적 정신은 하늘과 바다, 해, 달, 별, 사랑, 죽음, 해산의 고통, 뱀의 포복, 인간과 뱀의 적대, 노동의 필요성, 잡초와 가시의 존재, 유목민과 농경민의 적대, 무지개, 언어들의 무수함 등의 원인과 이유를 찾아 나선다. 언어들이 무수히 많은 것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11:1~9)
어디에나 일상적 현실에 대한 애정이 배어 있다. 선은 악과 함께 받아들여진다. 완벽함이라는 가식적인 모습을 빌려 주며 마무리를 짓는 법이 없다. 위대한 인물들도 과오를 저지르는데, 그런 것도 성취나 미덕과 마찬가지로 생생하고 자세하게 기록된다. 그들 이야기꾼들의 상상에서 나온 진실은 진실 자체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고 더 진실하다.
인간의 생명을 있는 대로 모두 받아들이고 생명의 강인한 본질에 몰두하는 사회는 감상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지 말고, 낯선 이를 구박하지 말고, 가난한 자와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박정하게 대하지 말라는 훈계에는 싸움이 나면 가난한 자를 편들지 말라는 냉정한 충고가 곁들여진다.
눈앞의 현세에 골몰했기 때문에 고대 유대인들은 내세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어떤 은총도 지상의 생을 능가하지 못했다. 최고의 보상은 수명의 연장이었다. 미래의 생에 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지듯 지하로 내려가는 자, 어찌 다시 올라오겠습니까?”(욥 7:9)
“사람은 누우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이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눈을 뜨지 못하고 한번 잠은 깨어 일어나지 못합니다.”(욥14:12)
구약성서의 역사에 나오는 상상의 진실은 맥박이 뛰는 육체와 같다. 영웅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살과 피로 된 현실의 인간이다. 그래서 20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우리 자신의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 심지어 워싱턴과 링컨보다 더 가깝고 친숙하게 여겨진다. 모세가 말을 하면 우리는 약속의 땅이 가까운 피스가산의 정상에 서 있는 그를 보게 된다. 바람에 그의 은빛 수염이 휘날리고 그의 목소리는 아래위가 바다 위로 고동친다.
“그런데 야훼께서는 너희 때문에 나에게까지 노여움을 품으시어 맹세하셨다. 나로 하여금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할 것이며,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유산으로 주시는 그 좋은 땅에 결코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리라고 하셨다. 나는 이 고장에서 죽어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건너가서 그 좋은 땅을 차지하여라”(신 4:21-22)
-생명의 숨결을 지닌 구약성서 인물들
역사를 쓰는 이들이 좋아하는 다윗 왕은 남성과 여성이 제멋대로 뒤섞인 매력럭인 인물이다. 그는 대담한 한편으로 교활하고 관용적이면서도 이기적이고, 음탕하면서 자상하고, 거만하면서도 순종적이고, 용서하면서도 보복을 하고, 쉽게 죄를 범하고 회개한다. 그는 간교한 외교관이자 조직의 전문가, 시인, 음악가이다. 그는 검과 하프 그리고 눈물 흘리기의 명수이다. 그는 찬사와 숭배를 받지만 우리는 과거의 그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수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적인 사울 왕은 볼품없는 농부의 신분에서 떠밀리듯 왕위에 올라 우울한 성격과 불길한 예언에 시달린다. 그는 음흉한 사무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공정하지 못한 이 싸움을 보며 우리는 그에게 동정을 보낸다.
야곱과 에서의 소개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이야기꾼의 종족의 아버지 야곱에게는 호의적이고 에서에게는 경시적인 태도를 취해도 그들의 독자적인 개성과 생멸력은 그 빛을 잃지 않는다. 역사를 쓰는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에서를 좋아할 만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는 붉은 머리의 난폭자이며, 솜씨 좋은 사냥꾼이자 야인이다. 배가 고프면 영혼을 한 끼의 식사와 바꾼다. 허기지고 지친 채 사냥에서 돌아오는 그를 보라. 그는 야곱-자신들의 어머니가 총애하는- 이 맛좋은 불콩죽을 끓이고 있는 것을 본다. 그는 불콩죽을 좀 달라고 한다. 야곱이 이에 응하지 않자 그는 실랑이를 그만두고 한 그릇의 불콩죽을 먹기 위해 상속권을 야곱에게 넘겨준다. 사실 눈먼 늙은 아버지 이삭은 혈기 왕성하고 납자다운 에서를 사랑했다. 이삭은 그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하여. “아! 내 아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야훼에게서 복 받은 들향기로구나“(창27:27)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사냥꾼 아들이 가져온 사슴 고기를 좋아했고, 사냥 이야기와 더 이상 자신이 볼 수 없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나는 왜 역사를 쓰는 이들이 탐탁지 못한 야곱을 종족의 아버지로 택했는지 의아했다. 용의주도하고 교활한 야곱이 무모한 에서보다 생존 능력이 더 높기 때문일까? 또한 대부분의 위인들은 강한 의지를 지녔던 어머니들이 총애하는 아들이 아니었을까?
이스라엘 북쪽 나라의 왕 아합 조차도 -그에 대해서는 “목숨을 내던져 가며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왕상 21:25)- 공정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훨씬 더 자세하다. 그 결과 사악한 아합이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농부의 자식이고, 들판과 포도원을 아끼는 사람이다. 그는 자상한 사람이다. 심한 가뭄이 왔을 때. “전국을 다녀 보자. 어쩌다가 풀이 있는 곳을 만날지도 모르니 모든 샘과 계곡을 샅샅이 뒤져 보자. 어떻게든 말과 노새를 살려야지 그냥 죽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왕상18:5)라고 말한다. ~~~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생명의 숨길을 지니지 않은 이는 하나도 없다. 왕과 성직자, 재판관, 조언자, 광인, 나병 환자 등으로 넘쳐 나는 이 생생한 주인공들의 수를 어느 누가 셀 수 있을까? 일찍이 이처럼 방대한 삶의 파노라마를 엮어 낸 문학이 있었던가?
■ 자살을 결행하리라
-기억에 남아 있는 세 명의 얼굴
일을 그만두고 하루의 시간을 온통 내 마음대로 보내다 보니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는 활동으로 분주한 것이 놀라웠다. 몇 년 동안 살았던 거대한 도시가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내겐 돈이 그리 들지 않는 약간의 식도락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싱싱한 고기 한 조각과 몇 개의 감자, 얇게 썬 당근, 방풍나물에 걸죽한 적갈색 육즙을 부은 비프 스튜였다. 힐 스트리트에 있는 카페테리아는 그런 스튜 요리를 하는 곳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나는 매일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도서관 출입과 저녁 식사를 위해 거리를 걸을 때 나의 감각은 시야에 있는 것은 무엇이건 건드려 보고 냄새를 맡아 보는 즐거운 강아지와 같았다. ~~~
산보와 식사, 독서, 공부, 낙서의 일상생활이 매주 계속되었다. 나는 여생 동안 계속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죽을 때까지 매일 일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피곤하게 했다. 내가 금년 말에 죽건 10년 뒤에 죽건 무슨 상관인가? 다시 일하러 가길 거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지나 도둑이 될까? 다른 선택은 없을까? 되돌아보면 그 무렵에 자살하겠다는 생각이 이미 내 마음 한쪽에서 움트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결심을 한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1931년 말이 되자 돈이 떨어지면 무엇을 할지 결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실제로 내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자살을 결행하리라. 내가 할 일은 세부적인 것을 정하는 일뿐이었다. 나는 신속하고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리볼버 권총이 이상적이었지만 경찰의 허가 없이는 소지할 수 없었다. 가스는 옆집으로 누출되고 이웃을 놀라게 할 수도 있었다. 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차에 치여 죽는 것은 참혹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독약밖에 없었다. ~~~나는 25센트를 주고 다량의 수산염을 샀다. 그래서 준비는 하루 만에 끝났다.
■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방랑자의 탄생
나의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었다. ~~~내가 그날 저녁에 죽으려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죽음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거나 듣는 것을 통해 공포에 휩싸일 그런 이미지나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날 밤에 나는 짧은 시간이나마 평화로웠다. 나는 생생한 디테일에 낄낄대고, 더할 나위 없는 스토리 전개에 감탄하면서 야곱과 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다시 읽었다. 이제 나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자와 같았다. 나는 내 침대를 떠날 용기가 없었다. 밤의 어둠이 창문으로 나타나 나를 나오라고 유혹할 때까지 서글프게 졸다가 침울하게 깨어 있기를 되풀이했다. ~~~
나는 물을 반쯤 채운 약병에 수산염 알갱이들을 집어넣었다. 일부는 녹고 나머지는 바닥에 가라앉았다. 병을 신문지로 싸서 손에 들고 거리로 나섰다. 도시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 곳이라면 괴로운 신음 소리가 들려도 누가 반응할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나는 피구에라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걸었다. 밝은 색깔의 보도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레스토랑들은 붐볐다. ~~~중년 남자와 소년이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가로등의 밝은 불빛을 받고 있었다. 나는 소년이 뒤발꿈치를 들고 서서 중년 남자의 타이를 고쳐 주고 어두운 빛깔의 양복 깃을 펴 주는 것을 보았다. 그 동안 소년은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끝나자 다시 남자의 손을 잡고 흥겨운 몸짓으로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보도의 모습들은 황량했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작은 레스토랑들은 인근에 사는 가족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청과 시장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섬처럼 느껴졌다. 나는 약병을 고쳐 들고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속으로 되뇌었다. ‘이 거리가 끝이 없다면 좋겠다. 영원히 걸을 것이다. 발은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초조해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초록빛으로 뒤덮인 들판과 과수원을 굽이굽이 돌며 푸른 바다로 달려가는 길을 생각했다. 배낭을 가볍게 흔들면서 팔다리를 움직여 길을 걷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왜 갑자기 생이 끝없는 길로 느껴지면서 은연중에 자살에 대한 반발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흙탕길을 걷고 있었다. 교수대 같은 유정 탑들이 어렴풋이 눈앞에 나타났다. 길의 왼쪽으로 펼쳐진 들판에는 키가 큰 유칼립투스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나는 울퉁불퉁한 땅바닥 때문에 계속 비틀거리며 그곳으로 향했다. 병을 감싼 신문지를 풀어 헤치는 동안 열병에 걸린 것처럼 갖가지 생각들이 이어졌다. 마개를 열고 한 모금을 마셨다. 무수한 바늘들이 입안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격정이 폭발했다. 나는 수산을 내뱉고 계속 침을 밭으며 기침을 했다. 그리고 입술을 닦으면서 약병을 멀리 날려 보냈다. 어둠 속에서 약병이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음식을 삼키면서 나는 생이 길이라는 비전 -어디로 가는지, 그 위로 무엇이 가는지 모르는 채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 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도시 노동자의 죽지 못해 사는 일상에 대해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대안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로 나서야만 한다. 도시마다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도시마다 자기 도시가 최고라며 나에게 기회를 잡으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지만, 그 일요일에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가 태어났다.
■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의 용기
-인간에게는 희망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1931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10년 동안을 길 위에서 보냈다. 자살에 실패한 뒤 조그만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로스안젤레스를 떠날 때 내 마음은 가벼웠다. 사방이 탁 트인 시골로 나왔을 때 나는 이제야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활기차게 걸으면서 나는 시를 읊기 시작했다. ~~~첫 구절이 기억에 떠오른다.
“혼자 걸으니 가슴이 설레네
들판이 멀리 나아가 하늘과 만나고
산들이 꿈같은 푸르름 속에 떠 있고
속삭이는 바람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그곳은 어디인가“
에너하임에 도착하자 나는 조그만 도서관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도서관에는 괴테의 파우스트밖에 없었다. ~~~도서관을 나오면서 나는 레스토랑 창문에서 접시닦이 구함이라는 구인광고를 보았다. 나는 일자리를 잡았다.
■ 샌디에고로 가는 길
-마음속에 남아 있는 두 가지 에피소드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샌디에고까지 오는 데 얼마가 결렸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 길을 가면서 나는 흠잡을 데 없는 농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밭 갈고, 가지 치고, 농약 뿌리고, 건초 쌓고, 물 대고, 심지어 나뭇가지를 접붙이는 방법까지 배웠다. 그중에서 특히 묘목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
어느 날 오후에 넓은 역 마당이 있는 작은 마을로 들어섰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마을은 완두콩 재배의 중심지였고, 나는 완두콩 따는 일을 하러 그곳에 갔다. ~~~그날도 트럭이 올 때까지 나는 조그만 광장의 벤치에 앉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는 가지가 땅바닥까지 닿은 덤불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우연히 그 나무에 눈길이 머무는 순간 갑자기 덤불 사이로 셔츠를 입은 팔이 불쑥 나오는 것이 보였다. 소매는 때에 절었지만 진주 카프스 단추가 달려 있었다. 나는 엉뚱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 몸통이 나타났다. 금발에 면도도 하지 않아 지저분한 내 나이 또래의 황폐한 술꾼이었다. 그는 주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셔츠 주머니에서 작은 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상처라도 나지 않았나 살피면서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주치면 그가 민망해할 것 같아 나는 서둘러 광장을 떠났다.
다음날 아침에 완두콩 따는 인부들이 트럭에 오를 때 혼자서 쭈뼛거리며 서 있는 그를 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차에서 내려 그가 트럭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들판에서 우리는 같은 줄이 되어 완두콩을 땄다. ~~~저녁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는 나를 따라와 내 옆방을 빌렸다. 우리는 같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파트너였지만 우리는 말도 몇 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빌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일찍 일터에서 돌아왔다. 우리는 몸을 씻은 뒤 역 마당의 구경거리를 보려고 방을 나섰다. ~~~우리는 철망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 기관차가 한 객차를 바로 우리 건너편으로 옮겨놓았다. 뒤쪽 승강대에서 회색 머리의 남자가 젊은 여자와 부지런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차림새가 굉장했다. 여자는 보는 사람이 기절할 정도로 아름다웠다.~~~여자가 흥분해서 남자의 팔을 잡고는 철망 너머의 우리를 가리켰다. 그때 기관차가 객차를 끌고 가버렸다. 나는 빌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눈을 돌렸지만 그는 이미 옆에 없었다.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여관 여주인이 빌이 짐을 싸서 나가 버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녁때 내가 레스토랑에서 나오자 경관이 길 건너편에서 나를 불렀다. 당신을 보자고 하는 사람이 있소 라고 하고는 나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나는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차에서 내린 멋쟁이 두 사람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은 어디 있어요? 라고 남자가 물었다. ~~~~그녀는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갈색 눈을 들여다보게 되었을 때에는 그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빌을 만나면 아버지와 아내가 찾고 있고, 계속 찾을 거라고 말씀 좀 전해 주세요. 우리는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건설한 아메리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큰 부랑자 거리가 있는 해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저녁 때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나는 큰 트럭 두 대가 미끄러지듯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어느 건설 회사가 산 위에 도로를 낼 예정이었다. 회사 책임자는 인력 대행사에서 노동자를 공급받는 대신에 부랑자 거리에 트럭 두 대를 보냈다. 트럭에 올라타는 사람은 설혹 다리가 한쪽 밖에 없어도 채용될 수 있었다. 트럭이 가득 차게 되자 운전사는 뒷문을 닫고 우리를 동쪽으로 데려갔다. ~~~그때 나는 환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 중 하나가 노트에 연필로 이름을 적었고, 뒤이어 우리 스스로 일할 분야를 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중에는 목수와 대장장이, 불도져 운전기사, 착암기 기사도 많았고, 요리사, 응급요원, 심지어 공사판 십장도 있었다. ~~~우리는 부랑자 거리의 포장도로에서 퍼낸 한 삽의 진흙에 불과했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언덕 옆에 아메리카를 건설할 수 있었다.
■ 떠돌이 노동자에서 사상가로
멕시코 국경 위쪽의 샌디에고는 도로가 끝나는 곳일 뿐 아니라 세계가 끝나는 곳 같았다. 1930년대 초 샌디에고는 뱃사람들과 창녀들이 사는 보잘것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어느날 저녁, 걷다 보니 도매 시장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임페리얼 계곡에서 온 트럭에서 양배추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트럭 운전사는 나를 엘센트로까지 태워 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자정쯤 출발하여 달빛이 훤한 봉우리와 절벽들 사이를 달렸다. 운전사가 나를 엘센트로 외곽에 내려 준 때는 새벽이었다. ~~~
엘센트로의 임시수용소에 머물게 된 것이 나의 모든 사고를 물들이게 된 계기가 되고, 다음 50년 동안 내가 쓰게 될 모든 글의 씨앗을 키우게 하는 계기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개체가 자신의 재능을 인식하고 그것을 키워 낼 수 있었던 창조적 환경에 관한 수없이 많다.
나는 어느 온화해 보이는 나이 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날 그가 체커 게임을 하자고 하였다. 그때 체커판 위에 말들을 정렬하다가 나는 불구가 된 그의 오른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길이로 잘려 뿔 모양의 세 손가락만 남은 모습이 마치 닭발 같았다. 내 눈앞에 그가 잘린 손을 내보일 때까지 내가 그걸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해 부아가 치밀었다. 아마도 나의 관찰력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리라.
그때부터 나는 주변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하나 걸러 한 명씩 어느 부분이건 상하지 않은 이가 없는 것 같았다. 팔이 하나뿐인 사람도 있었다. 한 젊은 친구는 목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일부를 떼어 주고 기계의 날카로운 이빨로부터 간신히 벗어난 것 같았다. ~~~수용소의 우리는 곧 인간쓰레기 더미였던 것이다.
나는 떠돌이 동료들을 인간 물체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생애 처음으로 얼굴을 의식하게 되었다. 특히 젊은 친구들 중에는 일부 선량한 얼굴도 있었다. 그러나 손상되고 찌든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주름진 얼굴과 부은 얼굴, 씨를 뺀 건포도 같이 거친 얼굴도 보였다. 어떤 이의 코는 자주색에다 부어올라 있었고, 어떤 코는 찌그러져 있었으며, 털구멍이 확대되어 움푹 들어간 코도 있었다. 이빨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을 보며 나 자신에 대한 자기 비하는 사라졌다. 나는 실질적으로 모든 이들에 관한 본질적인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200명 중 70명만이 겉보기에 멀쩡하다는 것도 그 사실들 가운데 하나였다.
분명 우리들의 정신 구조와 생존 방식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대부분은 적응 불능자였다. 우리가 안정적 직업을 접한다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일부는 장애인이 되었고, 일부는 겁에 질려 달아났고, 일부는 술에 빠졌다. 확인된 알코홀 중독자만도 60명에 달했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저항이 가장 적은 쪽, 곧 길 위에 떠도는 쪽을 택하기 마련이었다. 우리는 질서 잡힌 사회의 하수구 속에 놓여 있었다. 정상적이고 안정된 것의 반열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어, 현재의 생존방식과 같은 수렁으로 빠져든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구미가 당길 만한 일거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맛을 알면 우리도 거기에 매달리고 불안정한 생활을 영원히 청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용소 생활은 약 4주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건초 일을 구했다. 뜨거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4월에 마침내 나는 침낭을 어깨에 메고 산베르나르디노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인디오를 빠져나오던 아침에 새로운 구상이 나를 사로잡았다. 인디오에서 갈라져 나온 고속도로는 대추야자 숲과 그레이프프루트 과수원, 무성한 알팔과 농장을 통과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하얀 모래의 사막으로 들어갔다.
농장과 사막을 가르는 경계는 아주 분명했다. 하얀 사막이 농장으로 바뀌는 것이 나에게는 마술 같았다. 그리고 문득 이것이 바로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도 뛰어들어 볼 만한 과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평균적인 미국인의 기술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에너지는 기적적인 면을 지닌 웅장한 과업에 의해서만 촉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막을 꽃피우게 하는 개척자의 과업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다.
-떠돌이 개척자 사이에서
■ 오브리언이라는 이름은 대단해
-군중 속에서 창조의 정점에 다다르다
엘센트로의 임시수용소에 머물렀던 4주일간은 내 일생에서 가장 생생하게 기억되는 기간이었다. ~~~내가 입만 열면 사람들은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사소한 경험도 매력적인 이야기로 바꾸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나는 리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수용소에는 세계 곳곳에서 벌인 여성 편력을 자랑하며 허풍을 치는 오즈라이언이라는 이름의 전직 선원이 있었다. ~~~
수용소를 떠날 때 나는 내적으로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여전히 캘리포니아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일거리를 쫓아다니는 떠돌이 군단의 일원이었다.
■ 인간과 개의 상호작용
-인간과 개의 상호작용을 보다
내가 처음 임페리얼 계곡에 머물렀던 시기는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충실한 생활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캘리포니아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화물 열차를 타고 다니는 생활을 시작한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던 것이다. 나의 일상은 세상에서 가장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처럼 반복적이고 단조로웠다. 나는 채광업자에게 투자할 충분한 돈을 모을 때까지 봄에 사탕무를 솎아내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7월부터 10월까지 과일과 채소를 수확하는 고정된 사이클을 따라 이동했다. 새크라멘토에서 한 주머니의 사금과 바꾼 돈은 내가 넉 달 동안 독서와 저술,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
어느 일요일 아침에 캐미노와 플래서빌 사이의 고속도로에서 푸른 가슴받이가 달린 작업복 차림의 농부가 모는 픽업 트럭이 내 옆에 멈추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트럭 뒤에 기름 한 드럼만 싣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일자리를 찾고 있느냐고 물었고, 난 빈털터리라고 대답했다.
배나무에 농약을 쳐 본 적이 있소? 아요. 당신은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오. 배나무 농약을 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찾았지. 그래야 내가 시키는대로 하거든. 그는 제7일안식일 예수재림교도였다. 그는 일요일에도 일하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 대신 우유를 넣고 끓인 곡식가루를 먹었다. 마당의 나무에 묶여 있는 그 집 개도 곡식 죽과 풀 끓인 사과를 먹었다.
나는 첫 품삯을 받을 때까지 그 농부와 함께 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곧 그의 독특한 식사 방식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 숟가락을 뜨고 나서 곧 접시를 핥곤 했다. 마지막 한 숟가락을 뜰 때쯤이면 접시는 깨끗해져 있었다. 첫날 저녁 식사를 마치자 그는 나에게 자기 집 개에게 곡식 죽이 담긴 접시를 갖다 주라고 했다. 먹을 것을 갖다 주는데도 개는 나에게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접시를 땅에 내려놓고 발로 개 쪽을 향해 밀어주었다. 나는 개가 곡식 죽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때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개는 한 입을 삼킨 뒤 다시 한 입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주인처럼 접시를 핥는 것이었다. ~~~개도 주인처럼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던 어느날 밤 농부가 새크라멘토에 가 있는 동안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 개는 내가 코앞에 던져 준 튀긴 베이컨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한 인간과 그가 기르는 개 사이의 상호작용은 삶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이다.
■ 자두 농장의 이탈리아인들
-자두 농장에서 생긴 일
자두 따는 시즌의 어느 여름 날 아침에 나는 일찌감치 서둘러 힐즈버그라는 조용한 작은 마을을 찾아갔다. ~~~그때 하얀 수염의 노인이 나타났기에 그에게 물었다. 그는 서툰 영어로 더듬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당신 자두 따는 일 원하는 거 아니야. 힘들고 지저분한 일, 여기 자두 농장의 일거리를 주지. 자두 씻는 일, 쉬운 일, 좋은 보수. 그는 나를 마을 외곽의 한 농장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한 무리의 이탈리아인들이 그날 할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잿물 수조 속으로 가득 자루들을 쏟아 넣었다가 다시 자두를 햇볕에 말리기 위해 건조판 위에 자두를 고르게 펴 널었다. 내 파트너는 장난기 있는 눈과 비비 꼬인 콧수염의 야윈 이탈리아인이었다. 그는 새 카키색 셔츠를 말쑥하게 입고 있었다. 공기가 아직 차가웠기 때문에 나는 겹으로 된 상의를 입고 있었다.
건조판은 대략 45kg쯤 나갔는데, 그것을 운반차에 18개씩 쌓았다. 땀이 나기 시작하여 나는 상의를 벗었다.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숨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나는 곧 셔츠도 벗었다. 낮에는 기온이 끝없이 오를 것 같았다.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내 파트너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주 시원해 보였다. 새 셔츠에는 땀이 밴 흔적이 없었다. 그는 마치 놀이를 하듯 일을 처리해 나갔다.
모두들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곧 주변에서 어떤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증권 시장에서 중개인들이 수신호를 하듯이 손가락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웃으면서 아주 빠르게 잡담을 하고 있었다. 내 파트너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동료들에게 윙크를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나와 관련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정신적 능력에 대한 신뢰가 정당화되려면 나는 그게 뭔지 알아낼 수 있어야 했다. 나는 내 파트너를 주의 깊게 살폈다.
그는 어떻게 일을 그처럼 쉽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체구가 내 몸의 반밖에 되지 않았고 힘도 내가 두 배나 강했다. 바로 그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가 건조판을 자기 가슴 쪽으로 당기는 대신에 엄지손가락을 그 밑으로 넣어 내 쪽으로 밀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신은 그를 내 손아귀 속으로 넘겨주었다. 그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닥쳐올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건조 판을 그에게 밀었다. 그러자 그는 곧 뒤로 밀리며 비틀거렸고 물에 젖은 자루들이 그에게로 굴러떨어졌다. 그의 새 셔츠는 엉망이 되었고 동료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내 파트너는 엉망된 옷을 털면서 뭐라고 악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그를 도우며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이탈리아의 같은 지역에서 이주해 온 그들은 힐스버그 주변에 정착하여 여유 있고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집과 약간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땅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거나 닭, 젓소를 키웠다. 그들은 포도주를 직접 담갔다. 여름에는 자두 농장에서 가외로 수입을 올렸다. 누구나 바라는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술에 빠진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좀 단조로웠는지 그들은 자극적인 소일거리를 궁리해 냈다. 자두 씻는 시즌 동안 매일 그들은 외지인 떠돌이를 한 사람 데려와 건조판 쌓는 일을 시켰다. 그러고는 외지인이 얼마나 견디다 분통을 터트리는지에 모두들 돈을 걸었다.
나는 화를 내지 않고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에 특별 대접을 받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점심시간에는 이탈리아 요리로 배를 채웠다. 저녁때 나는 그들이 품삯을 받는 날까지 머물 방과 레스토랑의 식사 티켇까지 마련해 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여겼다. 나는 그들의 호의와 우정으로 인해, 심술굿은 무리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이 분통을 터트리는 불쾌한 광경을 타락의 한 예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 스틸턴 박사와의 만남
-식물학에 빠져들다
독학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 이유로 동물학과 식물학을 멀리했다. 나는 화학과 물리학, 광물학, 수학, 지리학에 관한 책은 제법 읽었지만 내 주변의 동물과 식물을 정밀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너무 복잡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닐스이 엤는 묘목장에서 해마다 몇 주씩을 보내곤 했다. ~~어느 해인가 토마토 모종을 마분지 상자에 옮겨 심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일이 너무 따분해서 오래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오후 배지로부터 모종의 잔뿌리를 떼어 내고 있을 때, 문득 왜 모종의 뿌리는 아래로 자라고 줄기는 위로 자라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왜 숨을 쉬고 잠을 자는가 하는 질문처럼 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나는 사무실로 가서 내 품삯을 챙겨 받고는 산호세 근처로 가는 화물 열차를 잡아탔다.
~~~나는 거처를 정하고 접시 닦는 일자리를 구한 뒤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날 나는 도서관 근처에 있는 서점의 헌책 서가에서 책을 뒤지고 있었다. 그때 염가본 장정의 얇은 책 한 권이 내 손에 잡혔다. 그것은 베를린 농과대학에서 식물학을 가르치는 뮤헤 교수의 독일어판 식물학 용어 사전이었다.
-백화 현상을 해결하다
어느날 나는 테이블 위의 빈 접시들을 치우다가 훤칠한 키의 나이 든 남자가 두 구너의 두꺼운 책을 나란히 펼쳐 놓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감귤연구소의 소장이었다. 당시 그의 연구소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레몬 재배 지역에 출현한 어떤 질병의 연구에 관여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 연구소의 일원이 되었다.
■ 누구든 혼자 힘으로
-마리오 몽테뉴의 에세이에 빠져들다
나의 독학은 내가 사금을 채취하고 있을 때 눈에 띄게 진전되었다.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쓰기를 익힐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해 나는 산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쌓인 눈에 오랫동안 발이 묶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동안에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읽을거리를 충분히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10000페이지 정도의 두꺼운 책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표지에는 <미셸 몽테뉴의 수상록>이라고 적혀 있었다.~~~나는 몽테뉴를 3번이나 읽어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나보다 수 백년 전에 태어난 프랑스의 귀족이 쓴 책이었지만 읽는 동안 내내 나는 그가 나에 관해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든 페이지에서 나 자신과 마주쳤다. 그는 나의 내면에 잠재된 깊숙한 생각들을 알고 있었다. 그 책의 언어는 정확했고 거의 격언에 가까웠다. 나는 훌륭하게 다듬어진 문장 속에서 독특한 매력들을 발견했다. 샌호아퀸 계곡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입만 열면 몽테뉴를 인용하곤 했다. 동료들도 좋아했다. 여자나 돈, 동물, 음식, 죽음 등 어떤 것에 대해서건 논쟁이 벌어지면 그들은 몽테뉴는 뭐라고 말했나? 라고 물을 정도였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 구절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다. ~~~특히 마리오라는 자그마한 이탈리아인은 내가 몽테뉴를 인용할 때마다 귀를 기울였다. 한번은 그가 나에게 멋쩍어하며 몽테뉴의 어떤 구절을 읽어 달라고 했다. 우리ㅐ는 목하를 따고 있었고 노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내가 먹을 것을 사기 위해 가게로 가고 있을 때 그가 나의 소매를 끌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건 좋지 않아요, 난 요리를 잘해요. 나와 함께 식사해요. 그는 간이 화로를 갖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요리를 해 주었다. 그래서 매일 저녁마다 나는 요리 재료들을 샀고, 그는 요리를 했다. ~~~~마리오 당신과 나는 파트너야. 이제부터 당신은 정오에 일을 마치고 요리하러 가요. 그동안 내가 나머지 일을 하겠어요. 품삯은 같이 나누고.
그리하여 나에게는 호사스러운 식도락이 시작되었다. ~~~마리오는 특히 채소 요리에 뛰어난 솜씨가 있었다. ~~~우리는 몇 주일동안 그렇게 보냈다. 그때가 1936년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 나는 무솔리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고상한 이탈리아 민족이 천박하고 골 빈 돌팔이가 자신들을 학대하게 놔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마리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자기 짐을 들고 가 버렸다. 그는 다시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 게으른 건달 조니 이야기
-홉을 따는 사람들
떠돌이 노동자에게 홉을 따는 시즌은 인간의 온기가 넘치는 오아시스였다. 줄에 매달린 덩굴에서 종이 같은 낟알들을 따는 것은 깨끗하고 쉬운 일이었다. 옆줄의 사람들과 일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농담을 할 수도 있었다. 홉을 따는 사람들의 직업은 참으로 다양했다. 전문적으로 홉을 따는 일꾼이 없었기 때문에 은퇴한 비즈니스맨과 공무원, 기능공, 학생, 가정주부 등이 그 일을 했다. 그들에게는 따뜻한 정이 있었다. 그들은 노천에서 함께 생활했다.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서 함께 요리하고 잠을 자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나는 산타로사 근처에 있는 트렌턴 부인의 농장에서 홉을 따는 시즌을 맞았다. 트렌터 부인과 그의 남편 그리고 키가 훤칠한 세 아들은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 버클리에서 헬렌과 만나다
-에드워드 몰과의 인간적인 만남
버클리에서 보낸 겨울의 몇 달은 수확철이나 사금을 채취할 때보다 인간적인 만남의 기회가 더 많았다. 여러 면에서 버클리는 엘센트로의 전설적인 임시수용소와 닮은 데가 잇었다. 두 곳 모두 창조적인 동요와 긴장이 있었다. 두 곳이 놀랄 정도로 닮은 것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면 창조적인 환경으로서의 소도시의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문명은 수메르 같은 소도시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이나 아테네, 플로렌스, 암스테르담과 같은 소도시에서 발전한다. 창조를 하는 것은 개체이다. 창조적인 환경에서 개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지만 또한 공동체적 현실과 살아 있는 연대를 갖는다. 작은 마을에서는 개체가 공동체에 파묻히는 반면, 대도시에서는 공동체적 연대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작은 마을이나 대도시에서는 인간적 만남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반면 버클리나 임시수용소는 모두 소도시의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버클리에서 내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겨 준 사람은 에드워드 몰이었다. 그때 나는 섀터크가의 어느 카페테리아에서 웨이터 보조로 일하고 있었다. 그 카페테리아는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었는데, 나는 마침 철야 근무였다. 나는 눈에 띄는 그의 용모와 권위 있는 분위기에 놀랐다. 그는 풍채가 좋았고 옷차림이 남달랐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식탁에 앉았다. 그는 카페테리아에서 식사할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다른 레스토랑이 문을 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쪽 바지 가랑이를 끌어 올렸을 때 나는 그의 양말 한 짝에 구멍이 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지하실로 내려가서 바늘과 양말에 맞는 색의 실을 갖고와 그의 식탁으로 갔다.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푸른색의 깊은 눈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나는 양말에 구멍이 났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 양말을 벗어 달라고 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양말을 벗어주고는 내가 양말 깁는 것을 지켜보았다. 양말을 다 깁자, 그는 지갑에서 2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거절하며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고 내 이름을 물었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새벽의 같은 시간에 그는 카페테리아로 찾아와서 멋진 금시계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에릭 호퍼에게.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E. M으로부터라고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따뜻한 감사의 말을 전했고,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들어보지 못했고. 그를 다시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헬렌과의 기억할 만한 첫 만남
나의 기억할 만한 만남은 헬렌과의 만남이었다. ~~어느 이른 아침에 내가 카페테리아를 막 나오면서 섀터크 가에 붉은색 기차가 멈추는 것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기차 여행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때 두 여성이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제가 도와 드릴 일이 없을까요?~~
그녀들은 웃으며 식사를 했고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날 경계하지 마십시오. 난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낯선 이에게 먼져 다가가 인사를 하고 아침 식사를 사 주는 습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들이 기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자 다가가 말을 건네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뿐입니다.~~
■ 나는 헬렌을 깊이 사랑했다
-헬렌과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
그녀는 두 팔로 나를 껴안고 키스를 했다. 손을 잡고 우리는 식탁으로 갔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갈색 눈이 너무 그윽해 서서히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심장이 뛰었다. 운명이 나를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부디 우리 친구가 되어 주세요. 저녁에 오세요. 프레드가 멋진 저녁상을 차릴 거예요. 우리 함께 식사해요. 그 애는 뛰어난 요리사예요.~~
-길 위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다
개학이 되자 헬렌은 볼트홀의 대학 과정에 등록했다. 가끔 나는 캠퍼스에서 그녀를 만나 학생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다. 그녀에게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어느날 수학과 물리학과 사람들이 내가 고등수학과 현대물리학 과목을 청강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한 이야기를 그녀가 전해 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 버클리에서 우리와 함께 일 년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중에 당신이 원한다면 추수하고 채광하러 들어갈 수 있잖아요. 우린요 몇 달 동안 행복했어요. ~~
어느 날 저녁에 프레드는 목표에 관해 나에게 강의를 했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나의 대단한 재능을 허비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내용이었다.~~~나는 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수확철이 다가오자 나는 그녀들에게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버클리를 떠났다.
■ 앤슬리의 죽음
-사람은 자신의 이미지로 자신을 만든다.
그녀들과의 이별로부터 회복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렸다. 실제로 완전히 회복된 적은 없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 뿐 아니라 내 몸도 균형을 잃었다. 부스럼이 나고 눈이 침침해졌다. ~~~나는 버클리를 피해 새크라멘토에서 겨울을 보냈다. 내 생애에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모든 것을 잃고 포기한 사람은 자신이 오고 간 궤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에게는 역사가 없다. 나는 그 시절의 희미한 기억만 지니고 잇을 뿐이다. 나는 마음이 따뜻한 창녀 지니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의탁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자족적이지도 초연하지도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목화밭과 철도에서 일을 했다.
내가 조지 앤슬리를 처음 본 것은 프레스노 근처의 목화밭에서였다. 목화는 줄기 중간에 한없는 포근함을 느끼게 해 주는 커다란 방울 모양의 송이를 달고 있어 따는 사람들이 일하기 좋은 작물이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내 오른쪽 줄의 인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목화를 빨리 따기 위해 서둘지도 않았지만 속도를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의 손은 놀라운 리듬으로 재빨리 움직였고 헛동작이 없었다. ~~~몇 주 동안 우리는 한 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은 채 옆에 나란히 서서 일을 계속했다.
-두려움이 현실로 나타나다
어느 날 청부업자가 100파운드당 90센트에 초벌따기를 할 사람들을 뽑았다. 그러나 일단 현장에 도착하자 그는 우리를 재벌따기의 넓은 밭을 배당해 주고는 같은 수당으로 일하라고 했다.
■ 난 네가 천사가 아니란 걸 알지
-스톡턴에서 트레이시로
나는 지치고 멍한 상태로 병원에서 나왔다. 몹시 위축된 기분이었고, 수확과 사금 채취의 여정을 다시 시작할 의욕이 없었다. ···나는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고 스톡턴으로 갔다. 토마토 따기의 절정기여서ㅡ 부랑자 거리의 보도는 농장으로 데려갈 트럭을 기다리는 누더기 옷차림의 수확 인부들로 붐볐다. ~~~토마토 따기가 끝났을 때 나는 수확철이 가까운 트레이시로 옮겨가리라 마음먹었다.
■ 술고래 양치기 애브너
-양을 사랑했던 양치기, 애브너
애브너는 술고래 양치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에서 돌아온 애브너는 고향인 세인트루이스에 잠깐 들른 뒤 캘리포니아로 갔다. ~~~양떼를 몰며 15여 년 동안 애브너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큰 목장의 대부분을 거쳤다. 그는 원칙적으로 한 목장에 1년씩밖에 머물지 않았다. 매년 목장을 옮기는 것은 술에 대한 그의 탐닉 때문이었다.
■ 농장주 쿤제가 남긴 유언
-독특한 농장주 쿤제를 만나다
내가 운이 좋군, 건초 일을 도울 수 잇는 사람은 모두 타시오. 우리는 차에 올랐고, 그는 우리를 싣고 어둠 속을 달렸다. ~~~나는 큰제 농장에서 두 달을 보냈다. 음식은 훌륭했고 풍성했다. ~~~취사 오두막의 한쪽 구석에는 조그마한 서재가 있었다. ~~~왜 자네만 한 지성인이 인생을 허비하는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자넨 무일푼의 어찌할 수 없는 노인이 되고 말 걸세. 안정된 노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어떻게 그냥 살아갈 수 있는가? ~~~
큰제는 위스콘신에서 태어났다. 17세가 되던 1882년에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벌목장으로 일을 하러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목표를 좌우하게 할 한 장면을 목격했다. ~~~사건은 목덜미가 굵은 젊은 벌목장 감독이 목재 더미를 분류하는 수척한 노인을 거들고 있었던 데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때 노인이 짧은 목재의 한쪽 끝을 들고 있다가 갑자기 그것을 놓쳐버렸다. 손가락이 굳어 힘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목제는 쿵하고 떨어지면서 하마터면 감독의 발가락을 찧을 뻔했다. 감독은 버럭 화를 냈다. ~~~
그 사건이 있었던 날 쿤제는 벌목장의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곧 철물상의 서기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제 목표를 갖고 있었고 열심히 그것을 추구했다. 으르렁대는 감독을 보고 나서 그는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는 25세에 그 상점의 지배인이 되었고, 40세 때에는 큰 철물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는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마침내 안전한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
그러나 57세의 나이에 쿤제는 돈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성실하게 되었다. 독일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전후 인플레이션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뉴스가 쿤제를 심리적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던 것이다.~~~쿤제는 직접 곡식과 고기를 생각하는 사람만이 안전이라는 방책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같은 쿤제의 열정적인 안전추구는 그를 농부로 변신하게 했다. ~~
난 자네를 이해할 수 없네.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나? 어떻게 지성적인 사람이 안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믿지 않으실 테지만 제 미래는 당신보다 훨씬 더 안전합니다. 당신의 농장이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실 테지만 혁명이 일어나면 당신은 농장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떠돌이 노동자인 저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죠.
-쿤제가 남긴 놀라운 유언
1년 쯤 뒤에 사과 따는 시즌을 맞아 시배스토폴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사람들 틈에서 침낭을 멘 키 크고 나이든 남자에게로 눈길이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내게 아주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기억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쿤제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잠시 함께 다니다 내가 남부 캘리포니아로 가는 기차를 타면서 헤어졌다. 그는 좋은 짝이었다. ~~~그후 10년 동안 쿤제에 관한 생각을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프레스노 비지의 앞면에 실린 그의 부음 기사를 보게 되었다. 프레스노 비의 일요란에는 문제의 유언을 알리는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내게 그것은 환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해 병적인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쿤제였다. 새로운 쿤제는 성숙하고 현명했다. 가장 놀라운 항목은 유언의 마지막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음악을 비롯한 각 예술 분야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육성하기 위해 50만 달러를 프레스노 카운티에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
문제의 유언의 마지막 항목은 유머가 넘치는 것이었다. 프레스노 정거장으로부터 걸어올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대지 약 6만 705m2에 떠돌이들의 정글을 세울 수 있도록 4만 달러를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 유사성과 차이에 관한 단상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의 역사
샌호아퀸 계곡을 여행할 때에는 모테스토라는 마을의 특이함에 이끌리게 된다. 기후도 같고, 재배하는 작물도 같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부류도 같은 터록, 모테스토, 마테라, 메르세드 등으로 이어진 작은 그 마을들 가운데 모테스토만이 기독교권의 대단히 아름다운 잔디밭을 가지고 잇다. 마을은 가옥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거대한 잔디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주민들은 오로지 잔디 깎는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잔디가 시멘트 보도를 침범해도 아무도 그걸 막지 않ㄴ느다. 공원 관리소는 1주일 만에 잎이 다 떨어지는 회나무를 키우는데, 그것은 잔디밭이 죽은 잎의 그늘에 가려 시들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모테스토의 잔디밭은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며칠 동안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무덤을 보면서 나는 모테스토의 잔디밭은 에식스 지방에서 연유하여 고안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유사성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차이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차이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의 이름을 알 때도 있지만 내개의 경우 그런 사람들은 묘비도 없고 찾는 이도 없는 무덤 속에 묻혀 있다. 역사는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보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다
-돈이 가진 힘을 깨닫다
친숙한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창조적인 예술가의 힘이다. 나의 경우 예술가가 나의 운명이다.
■ 떠돌이 노동자에서 부두노동자로
-부두노동자로의 인생을 시작하다
진주만 공습 사건은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내 생활을 끝내게 해 주었다. 그 무렵에 나는 전쟁의 승리에 한몫을 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달려갔다. 운 좋게도 나는 주립 무료 직업소개소를 통해 부두노동자 노동조합으로 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연이 내 생활을 꾸려 오게 했지만 내가 부두노동자가 되게 한 데에 비교할 만한 경우는 없었다. 부두노동자와 떠돌이 노동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길에서나 부두에서나 안정적인 일이라는 것은 없었다. ~~~노조에서 일하게 된 첫날부터 나는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나의 부두노동자 생활 25년은 내 인생에서 결실이 많은 시기였다. 나는 글쓰기를 익혔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 내가 작가가 된 일은 노조의 어느 누구에게도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부두노동자들은 노력만 하면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 내게 행복의 순간이 있었던가?
-완전히 회복될 수 없는 순간들
내가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든가? 헬렌과 함께 한 생활은 진정 행복했다. 그녀가 자정이 지난밤에 카페테리아에 나타나 두 팔로 나를 껴안고 키스했을 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드문 행복의 순간을 맛보았다. 그럼에도 그런 드문 순간의 행복은 참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끊임없는 자격지심과 의혹으로 가득 찬 행복이었다.
아니다! 하퍼 출판사로부터 <맹신자들>을 출판하겠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오직 한 번 참된 행복의 순간을 맛보았다. 운명의 사랑을 받는 불멸의 존재가 평범한 인간 여정 위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
행복이란 거의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노년에 자신의 생을 되돌아본 많은 위인들은 자신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합쳐보아야 채 하루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완전히 불행했던 순간들을 살았던 것일까? 내가 헬렌에게서 달아난 아후로는 순간들이 아니라 몇 년 동안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별은 마음과 몸 모두를 해쳤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결코 완전히 회복된 적이 없었다.
■ 진정으로 용서한다는 것
-용서하는 마음은 용서를 낳는다
나는 불만을 품었던 적이 없다. 그리고 항상 글허다고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면 세상이 나를 실제보다 더 잘 대해 준 것 같다. 그것은 칼에 찔린 단 한 번의 경험에서 잘 드러난다. 술 취한 한 멕시코인이 내 넓적다리를 가랑이에서 무릎까지 칼로 그은 적이 있었다. 모두가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는 막사에서 나 혼자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화를 돋웠다. 내 기억에 그때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은 그 멕시코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즉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그 멕시코인을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이후에 나는 그가 감옥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달 뒤에 내가 달리는 유개차 위로 올라갔을 때 누군가가 어깨 너머로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다음 화차로 뛰어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계속 달리고 뛰어넘기를 반복했다. 바로 그 멕시코인 이었다. 나는 그에게 두려워할 것 없다며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이 나라에서는 앙갚음을 하고 보복하는 것이 남자다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체에 대한 공격이 자주 벌어진다면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도 내 체구 때문인 듯 다툼이 있어도 나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른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는 것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도가 될 수 있다. 내가 불만 품는 걸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은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부록[에릭 호퍼에 대하여]
▪ 에릭 호퍼와의 인터뷰1(셰일러 k. 존슨)
「이 글은 1974년 7월 21일 생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Eric Hoffer at Seventy-Two'라는 제목으로 실린 인터뷰」
은퇴한 부두노동자이자 철학자, 저술가인 에릭 호퍼는 7월 25일 이면 72세가 된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에 관한 다년간의 사색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에서 나이를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질문을 받고는 그 점을 시인했다.
그래요, 물론 미국은 나이 먹는 게 무서운 나라지요.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는 그런 점에서는 무서운 도시예요.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는 앉을 벤치가 없어요. 나는 한쪽 다리가 의족이어서 10블럭 쯤 가다가 몇 분씩 앉아서 쉬어야 해요. 그런데 벤치가 없어요. 그래서 난 소화전에 앉을 수밖에 없어요. 한번은 엘리오토에게 이야기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라고는. 음 위가 평평한 소화전을 설치해야겠군요. 라는 게 고작이었지요.
그리고 범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 날치기 강도들은 나이 든 이들만 노리고 있어요. 나는 습격당한 적이 없는데. 그들은 내가 한 명 정도는 잡고 늘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아마 내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난 싸울 거예요.
일생동안 거친 동네의 허름한 방에서 살아온 뒤. 그는 지난 3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부두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금 고급인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환경이 길거리 철학에 대한 미묘한 배신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노령에서 오는 초조감이나, 평온의 필요성에 굴복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두려운 듯 약간의 변명을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은 차이나타운이었어요. 소음이 나를 거의 미치게 만들었지요. 나는 소음을 내는 이웃의 아이들에게 병 같은 것들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릴리가 걱정이 되어 나에게 이곳을 찾아 준 거예요.’
-릴리, 에릭 호퍼의 가장 소중한 동반자
릴리 페이빌리를 뜻한다. 호퍼는 그녀가 동료 부두노동자 셀든 오스번과 결혼한 해인 1950년에 그녀를 만났다. 50대 초반인 릴리는 이탈리아 이민 출신으로 미모의 건장한 여성이다. ~~ 그녀는 호퍼의 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아마 그녀가 일을 하고 있는 유일한 경우일 것이다. 호퍼는 거의 매 주말마다 저녁식사를 하러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그에게 오는 연락을 분류, 정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호퍼는 전화가 없다). 그리고 걸어서 가기 어렵거나 버스를 타고 가기 어려운 디너 파티장이나 약속 장소로 그를 태워다 준다. 호퍼와 릴리는 서로에 대해 대단한 존경과 애정을 갖고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또한 입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호퍼의 집은 수도원의 독방처럼 질박하고 어제 이사 온 것처럼 보인다. 아파트는 방 하나와 입구 근처의 간이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정 의미 있는 삶이란....
어떤 사람은 부두노동자들을 볼 수 있게 망원경을 하나 구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대포도 하나 장만해야 할 거예요. 왜냐하면 일하지 않는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고 싶어질 테니까요. 거기에는 요즘 사람들 거의 모두가 포함될 거예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어린 시절에 눈이 멀게 되었다가 다시 시력을 되찾았을 때 나는 끊임없이 소설을 읽곤 했지요. ~~~내게 글쓰기는 육체적으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나는 좋아하는 거을 느끼기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D.H. 로렌스는 글을 쓰는 동안에는 노이로제와 같은 질병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했지요. ~~~책을 한 권 쓰게 되면 계속 쓰게 됩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더 나아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두에서는 은퇴할 수 있었지만 글쓰기에는 결코 은퇴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내 책은 모두 짧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지요. 최근 호퍼는 에세이집을 쓰고 있는데, 그 에세이들은 500자를 넘긴 것이 한 편도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득이 되는 그런 일이 있을까? 예를 들어 뛰어난 젊은 철학자 같은 그런 것이 있을까? 호퍼는 한탄을 한다. 산타야나는 당신이 철학자라면 노년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한 바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진다고 믿는다면 그건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이란 서서히 쇠퇴하는 것입니다. 난 내 정신이 지금도 20년 전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머릿속에서 여러 갈래의 복잡한 생각들을 동시에 할 수가 없어요. 내 기억력은 전만 못해요.
▪ 에릭 호퍼와의 인터뷰 2 (셰일러 존슨)
1970년대 초에 나는 UC버클리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때 남편 체일머스 존슨은 같은 학교의 정치과학부 교수였다. ~~~남편은 세미나에서 호퍼의 <맹신자들>과 <변화의 시련>을 선정해 가르치고 있었다.
▪ 에릭 호퍼의 생애
미국에서 독학한 부두노동자-철학자이며 1960년부터 30년간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는 자서전<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가 2003년 출간되어 알려지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태어나 5세 때 어머니와 함께 계단에서 떨어진 사고의 후유증으로 2년 후에는 실명, 그리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15세 때 시력을 회복 한 후 독서에 열중하였다. 1920년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그는 미국 서부의 해안지역으로 이주해 레스토랑 웨이터 보조와 농장의 품삯 일꾼, 사금채취 등을 전전하며 1941년 까지 길 위에서 살아왔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두노동자로 25년간 일하는 동안 독학을 했다. 그 때 그의 추종자인 릴리라는 여성을 만나 글을 세상에 알리게 되면서 대학에서 강의하고, 전국 200여개 신문에 동시에 실리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다가 1983년 81세로 사망했다.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의 후버연구소 기록보관소에는 호퍼의 친필 원고와 미발표 원고, 육성 기록물, 사진,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수상한 훈장 등이 보관되어 있다.
(Review)
요즘 성공한 세대는 지난날처럼 혹독한 가난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얼마 전까지 사회에 유행하던 흙수저, 금수저 라는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사람은 대개 27세 때 인생의 행로가 정해진다고 한다. 첫 직장을 갖거나 배우자를 만나는 시기로 그 이전에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준비 했는가가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인 ‘에릭 호퍼’는 다섯 살 때 모친이 그를 안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로 시력에 장애가 생기고, 일곱 살에 완전 실명의 불행을 겪었다. 설상가상 모친마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목공일을 하며 그를 돌보았지만 큰 애정은 없었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이후 뒤이어 기억마저 잃어버렸다. 언젠가 아버지가 나를 보고 백치 자식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본문)
다행히 열다섯 살 되던 해 시력을 되찾고, 막 노동 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계절에 따라 수확 시기가 다른 농산물 농장을 전전하며 거리에서 행상을 하고, 레스토랑, 공사판, 동물농장 등 가리지 않고 떠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독서를 하고 사색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돈을 별로 쓰지 않고 살면서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수학이나 화학, 물리학, 지리학 등의 대학 교재로 독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돕기 위해 노트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는 일에 열중했고, 제대로 된 형용사를 찾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본문)
열아홉 살 되던 해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전국 각지로 유량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유대인과의 만남을 통해 구약성서에 심취하면서 그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고, 인생의 깊은 회의 빠졌다.
“산보와 식사, 독서, 공부, 낙서의 일상생활이 매주 계속되었다. 나는 여생 동안 계속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죽을 때까지 매일 일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피곤하게 했다. 내가 금년 말에 죽건 10년 뒤에 죽건 무슨 상관인가? 다시 일하러 가길 거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지나 도둑이 될까? 다른 선택은 없을까? 되돌아보면 그 무렵에 자살하겠다는 생각이 이미 내 마음 한쪽에서 움트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본문)
자살은 실패로 끝났다. 그는 우연히 보게 된 인생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다시 삶의 용기를 얻었다. 타인의 행복이 절망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중년 남자와 소년이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가로등의 밝은 불빛을 받고 있었다. 나는 소년이 뒤발꿈치를 들고 서서 중년 남자의 타이를 고쳐 주고 어두운 빛깔의 양복 깃을 펴 주는 것을 보았다. 그 동안 소년은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 끝나자 다시 남자의 손을 잡고 흥겨운 몸짓으로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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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숱한 노동자들의 무질서, 비도덕인 틈바구니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는 버클리의 카페테리아에서 겪은 평생에 잊지 못한 일로 두 가지를 술회했다. 한번은 어떤 노신사의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을 보고 바늘로 꿰메준 일로 그가 20달러의 사례를 하려고 하자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말했다.
“다음 날 새벽의 같은 시간에 그는 카페테리아로 찾아와서 멋진 금시계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에릭 호퍼에게.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E. M으로부터라고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따뜻한 감사의 말을 전했고,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들어보지 못했고. 그를 다시 보지도 못했다.” (본문).
또 한 번은 미모의 젊은 여인 헬렌과의 만남이었다. 대학 등록을 위해 버클리에 찾아온 헬렌을 처음 만나던 날, 호의를 베풀어 준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헬렌이 대학에 등록한 후 함께 공부하자고 하였으나 자격지심으로 홀연히 버클리를 떠났다.
호퍼의 인생 전환기는 늦게 찾아왔다. 194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두 노동자로 안정적인 일을 하면서 독학을 계속하던 중 조력자 릴리라는 50대 초반의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호퍼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와 사회에 그의 모습을 드러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전국 200여개 신문에 동시에 실리는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다. 그 후 25년간의 부두 노동자 삶을 끝내고, 전업 작가로 살다가 1983년 사망했다.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의 후버연구소 기록보관소에는 호퍼의 친필 원고와 미발표 원고, 육성 기록물, 사진,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수상한 훈장 등이 보관되어 있다.
“나의 부두노동자 생활 25년은 내 인생에서 결실이 많은 시기였다. 나는 글쓰기를 익혔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 ”(본문)
혹자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고 했다. 똑같은 강가에 서 있어도 내 몸을 스치며 흘러가는 강물은 다른 강물인 것처럼, 각자가 경험하는 세상은 다르고 소중하다. 호퍼는 전형적인 흙수저의 삶을 살았다. 막노동 현장에서 여러 부류의 불행한 사람들을 만나며, 세상을 비관하며 호퍼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살의 충동, 술주정뱅이, 야비한 속임수에 자신을 내어던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산허리를 깎아 도로를 내는 위대한 일을 해내는 소중한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모습도 보았다. 호퍼 자신도 그들 중 하나였다.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개척하고 늦은 나이에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으로 특별히 철학적이기보다는 생활의 현장에서 깨달음을 얻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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