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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거룩한 말씀의 회 (상)
창립과 영성
「복음을 살며 기도하고 선교하라」
대전교구에 본원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거룩한 말씀의 회(총원장=박영옥 수녀) 모토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한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나눔과 봉사가 바로 이 수도회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회원들은 하느님이시며 말씀으로 강생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지키며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성령의 감도하심에 따라 주어진 상황에 맞게 각자의 삶을 주님께 봉헌하게 된다. 따라서 거룩한 말씀의 회 영성의 핵심은 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이 수도회는 동정 마리아의 『종의 정신-Fiat(루가 1, 38)』을 본받으며, 기도 안에서 겸손함.단순함으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3회 회칙을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끊임없이 따르며 복음을 전한다. 또한 교회의 뜻에 순응해 주님의 시녀로서 마리아를 본받고 성프란치스코의 겸손한 종의 정신에 따라 주님의 여종과 선교사로서 그리스도 왕국의 번영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아울러 이상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회원 각자는 이 회의 주보이신 성령께 그리고 특별 주보이신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와 복음 정신을 부흥시킨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거룩한 말씀의 회는 먼저 자기 성화를 위해 복음 삼덕인 청빈, 순명, 정결 서원과 공동체 수도생활을 일반 목적으로 하며, 복음 전파를 특수목적으로 해 창설됐다. 특히 복음 전파를 위해 영신지도 및 선교를 위한 사도적 소명 이행에 많은 비중을 두어 수녀들을 양성, 선교사로 파견함과 동시에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는 한국에서 최초로 여성 창립자 장화자(힐데갈드) 수녀에 의해 1964년 성령강림절에 창설된 방인 수도회다.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봉헌을 하며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창립된 이 수도회는 전후(戰後) 부산에서 6명의 동정녀들이 부산 동항본당에서 피난민 구제와 무의탁 극빈자들을 돌보며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로 공동체를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중 세례를 받은 장수녀는 자신의 삶을 선교에 투신키로 하고 몇 명의 협력자와 더불어 복음선포를 목적으로 하는 수도회 창립을 하게 됐다. 따라서 이 수도회의 정신은 하느님이시며 말씀으로 강생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 뜻에 맞는 봉헌된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해 세상 어디서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다.
1967년 대전교구 구 목동성당으로 옮겨와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이 수도회는 1974년 당시 대전교구장 황민성(베드로) 주교로부터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로 회헌을 승인 받았고, 1977년 10월 4일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에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회헌이 정식 인준됐다. 1983년 3월 「거룩한 말씀의 회」로 수녀회 명칭을 변경했는데 이는 시녀라는 어감이 현대어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이 회가 창설될 당시 교회의 상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해 교회 역시 개방과 쇄신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 국내 상황은 한국 전쟁 이후 아직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했으며, 경제적인 빈곤함이 극심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창설자 장화자 수녀는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란 말씀에 이끌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주님께 대한 사랑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톨릭신문, 2003년 5월 11일, 마승열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거룩한 말씀의 회 (하)
사도직 활동
거룩한 말씀의 회의 사도직 활동은 선교, 교육, 사회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주요 사도직 활동으로는 전국 11개교구 23개 본당에서 본당 사도직 활동, 대전교구 교도소, 효광원, 군종교구 연무대, 비성대에서 특수활동, 미국, 독일인들을 위한 해외선교 등을 전개하고 있다. 아울러 교육사업으로는 성언 유치원(대전), 대공원 어린이 집(서울) 등을, 사회복지 사업으로는 대전교구에서 성언 농원 양로원, 샘골 공부방, 인천교구에서 성언의 집(무료급식 및 쉼터), 전주교구에서 성언 복지원, 가정방문실(Home care), 대만 타이페이에까지 수녀들을 파견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룩한 말씀의 회는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랑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이 회는 지난 91년부터 불우 노인과 결식 아동 점심식사 제공을 위해 마련한 무료급식소 「성언의 집」(인천)을 비롯해 결손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샘골 공부방」(대전) 등을 운영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또한 영세민들 중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치료도 해주고 그들의 따뜻한 이웃이 되어주는 가정방문실(Home Care)과 의지할 곳 없어 소외된 노인들이 마지막을 잘 준비해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언 양로원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해외 교포 신자들과 현지 사도직 수행을 위해 미국, 독일, 등지에 수녀들을 파견했으며, 대만에서는 지체 부자유자들을 위한 시설 「성 안나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육사도직에도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이 회는 대전교구에서 자체 운영하는 유치원이 있는가 하면, 중고등학교에 강사를 파견하며 교회의 미래인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사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군종 사도직 수행차원에서 육군, 공군부대에서 지난 74년부터 군인들을 대상으로 교리와 성서공부를 실시하고 있으며, 68년부터 교도소 재소자 교화와 교도관 선교활동을 위해 대전교도소와 공주교도소에서 매주 교리와 영신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거룩한 말씀의 회 수도자들은 창립자의 정신과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에서 선교, 사회복지, 특수 사도직에 헌신하고 있다.
말씀으로 강생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며 하느님 뜻에 맞는 봉헌된 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고 있는 거룩한 말씀의 회. 창립 당시 6명의 지원자로 시작해 현재 150여명의 회원들로 증가한 이 수도회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육화의 삶을 살아가는 시녀의 길을 걷고 있다.
즉 주님의 시녀로서 복음의 정신을 본받아 살며 기도와 봉사로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파한다는 정신으로 출발한 거룩한 말씀의 회는 복음전파를 위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의 선교활동과 외국에 나가 있는 교포들의 영신 지도 및 선교를 위한 사도적 소명 실천에 비중을 두어, 수녀들을 양성하고 선교사로 파견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선교지역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영육간의 자선을 베풀고 있으며, 가족이 없는 이들이나 장애우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봉사하고 있다.
1964년 장화자(힐데갈드) 수녀에 의해 창립된 거룩한 말씀의 회는 내년으로 수도회 창립 40주년을 맞게 됐다. 이에 따라 수도회측에서는 내년 4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의 활동사를 책으로 엮어낼 예정이며, 내년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역할과 활동을 다시금 조명해보고,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상)
창설과 영성
1633년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에 의해 설립된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는 회헌을 통해 『사랑의 딸회는 모든 자선의 모델이며, 근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며, 영적 · 물적으로 그들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하느님께서 사랑의 딸회를 설립하였다』고 명백히 존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만큼 사랑의 딸회 규칙은 가난한 이들을 복음화 하는 예수님께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또 예수님의 육화 신비는 수녀회를 창설한 성 빈첸시오와 성 루이즈 영성의 핵심이다.
『이제 알게 되겠지만 사랑이란 무거운 짐이란다. 국냄비나 가득 한 빵바구니 보다 더 무거운 거지…. 그래도 친절과 미소는 늘 지켜야 해. 국하고 빵을 나누어 주는 게 전부는 아니야. 그거야 부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 너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여종이야. 언제나 미소짓고 좋은 마음으로 지내는 「사랑의 딸」임을 잊어서는 안돼. 네 주인은 가난한 이들이야…』
스스로 가난한 이들의 종이 되기를 자청했던 자선 사업의 수호 성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가 「사랑의 딸회」 첫 수녀를 일터로 보내며 당부한 이 말은 수녀회가 지니고 있는 영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단순하면서도 강하며 침묵과 개인, 공동기도, 성사생활, 성모 마리아와 성체께 대한 신심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근본으로 한다.
이러한 정신은 창설자 빈첸시오가 『사랑의 딸들은 예수님과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기 위해 창설되었다』고 밝혔던 것에서도 알 수 있고 성 루이즈가 새롭게 창설한 사랑의 딸회를 샬츠의 성모님께 봉헌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1830년 파리 뤼드박의 모원 성당에서 당시 수련수녀였던 가타리나 라보레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것은 이와 관련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그 모원 성당은 「기적의 메달」 성당이라 불리며 세계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차 들르는 곳이다. 특히 성모님 축일 같은 경우 2만여명의 순례객이 전세계 및 교회와 그들 자신들의 지향을 갖고 기적의 메달 성모님을 공경하며, 청원하기 위해 방문한다.
이와 더불어 사랑의 딸회는 시대의 징표를 찾고 교회와 가난한 이들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 다양한 종류의 봉사에 유동성과 기동력을 발휘하도록 한다. 또 성 빈첸시오의 가르침과 영성의 토착화를 끊임없이 찾는다. 이것은 각 나라의 문화를 증진시키며 각 개인을 존중하려는 의미다.
또한 창설 당시부터 선교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성빈첸시오는 이런 면에서 수도회원들을 프랑스 밖으로 파견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사랑의 딸회는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있어 봉사의 우선권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돌린다. 성빈첸시오는 가난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고 고통 당하는 환자들의 비참함에 마음 아픔을 느끼고 이들과 함께 하는데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수도회가 운영한 병원은 그래서 가난한 이들의 「큰 벽」이라고 불렸다.
빈첸시오 성인은 회원들이 가난한 이들, 특히 비참하고 가장 버려진 이들을 만나고 찾아 나서기 원했으며 이러한 봉사는 항상 영적 물적 봉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가톨릭신문, 2003년 6월 8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하)
사도직 활동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는 사도직 수행에 있어 『온전히 봉헌된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 능력과 기쁨은 정의 안에서 우리의 주인이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무이다』는 빈첸시오 성인의 영성을 뿌리에 두고 있다.
사랑의 딸회는 1633년 창설된 이후 1655년 파리 대주교의 승인을 받았으며 1668년 교황 클레멘스 9세의 승인이 있은 후 전세계 교회에 본격적인 진출을 시도하게 된다.
현재 80여개국에서 활동중인 사랑의 딸회는 1978년 당시 안양 라자로 마을 원장을 맡았던 고 이경재 신부가 수녀회 일본 관구에 나환우 치료방법을 가르쳐줄 수녀 파견을 요청하면서 한국 분원 역사를 시작했다.
마침내 그해 4월 10일 미국 루이지애나 칼빌에서 오랫동안 나환우를 치료했던 콘스탄스 하멜(Sr. Constance Hummel)수녀가 일본 관구로 파견돼 쟌기나시수 녀와 함께 라자로 마을에 파견되었고 이후 수녀회는 1980년 11월 6일 김남수 주교의 승인을 얻어 한국분원을 정식 설립했다.
1995년 일본 관구에서 필리핀 관구로 한국 분원이 이관된 것을 계기로 자체적인 회원 양성이 시작됐으며 이후 경기도 양주군에 양성소를 건립하고 서울 안동교구 등에도 분원을 설립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나환우들을 위한 이동치료와 무료 양로원 빈첸시오의 집, 본당사목, 농촌사목과 안산시 위탁 본오 종합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회원교육 등을 하고 있다. 사도직의 우선적 선택은 창설자 지향에 따라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진다.
전세계적으로 이들이 벌이는 봉사는 우선 「인간적, 영적을 동반한 봉사」를 비롯 어린이 성인 노인 나환우 에이즈 환자 등 「나이와 병명을 초월한 환자 돌보기」등이며 또한 맹아, 농아, 정신지체자 등 심신지체아들을 문화와 장소에 따라 가정, 병원, 재활원, 전문치료기관 등을 통해 돌본다.
이밖에도 어린이들과 청소년, 특히 버려진 어린이들 위해 고아원, 유아원, 놀이방, 영양센터 등을 운영하기도 하며 △ 캠프지와 휴양지 △ 거리의 어린이 △ 사회부적응 현상을 겪는 청소년을 위해 기술학교 상업학교 등을 열고 있다.
교도소 사목분야에서도 사랑의 딸회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재소자 가족에 대한 사목도 포함돼 있다. 난민 수용소 운영도 이들 수녀회 활동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민자 난민들을 위한 병원, 학교 운영, 고아원, 양로원, 청소년을 위한 기관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거나 또는 위탁운영하고 있다. 원주민과 빈민촌을 대상으로 한 활동도 시도중이다.
사랑의 딸회는 사도생활단에 속하기 때문에 종신서원이 없고 수련기를 포함, 5~7년 사이에 첫 서원을 한다. 또한 정결 순명 가난 서원외에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서원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마리아의 딸 수도회 (상)
창설과 영성
1979년 「마리아회」 초청으로 일본 관구로부터 한국교회에 첫 발을 딛은 마리아의 딸 수도회는 1816년 프랑스 남서부 아장에서 아델 드 바츠 드 크랑꿸레옹과 윌리암 요셉 샤미나드 신부에 의해 창립됐다.
‘개인생활 규칙’ 실천
창립자 아델은 만 4세때부터 가르멜 수녀가 되겠다는 표명을 했을 만큼 아주 어린 나이일 때부터 하느님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사명을 느꼈던 것 같다. 아장에서 멀지 않은 퓌가롤의 트랑 꿸레옹 성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아델은 12세 되던 해 프랑스 혁명으로 폐허가 된 고국을 보며 특별한 부르심과 소명을 느꼈으며 그 이듬해부터는 「개인생활 규칙」을 실천함으로써 수도자로서의 준비와 완덕의 길을 향하는 구체적 준비에 나선다.
아델의 이러한 결심은 자신의 성에서 일하는 이들과 주위 가난한 이들에게 물심양면 도움을 주고 인격적 삶을 살도록 배려한 어머니의 신심 영향이 크다. 어머니의 그리스도인다운 깊은 신앙심과 애덕 정신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것으로 길들인 아델은 이를 통해 개인적인 사도적 삶의 기초를 세우고 또 오늘날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하는 마리아의 딸 수도회의 사도적 삶의 뿌리를 형성했다.
아델은 14세때 견진성사를 받은 친구와 함께 당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많은 젊은이들의 선종을 위해, 또 하느님을 잊고 가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작은회」라는 신심 단체를 만들게 된다. 이를 통해 아델은 회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또 아장 지역 사람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샤미나드 신부와 만남
이후 1808년 아델은 윌리암 요셉 샤미나드 신부와 섭리적 만남을 이룬다. 당시 「신심회」라는 이름으로 평신도 남녀 신심단체를 창설 지도하고 있던 샤미나드 신부는 두 회가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이 두 단체가 합류하기를 제안했다. 양쪽 회원 모두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같은 이름하에 기도 활동을 펼쳐나가게 됐고 모임이 성숙될 수록 회원들안에서 점차 자신들을 마리아께 깊게 봉헌하고자 하는 원의가 생겨났다.
선교적 열성의 삶살아
마리아의 딸 수도회는 이런 평신도 신심단체가 배경이 돼서 탄생했다. 아델은 이전부터 꿈꾸고 있던 수도회 창설이 구체화되면서 온 정열을 그에 쏟았다. 「단하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세상 끝까지 달려갈 각오를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로 수도회원들에게 사도적 열성을 불어넣으려 애썼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선교적 열성의 삶을 살았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요한 2, 5)라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가 하신 말씀은 마리아의 딸 수녀회의 정신과 사명의 상징이며 모토다.
샤미나드 신부는 『마리아에게 귀를 기울이고 믿음에 뿌리내린 생활을 하자』고 독려했다. 이는 샤미나드 신부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라는 모토에 밝힌 첫 번째 의미로 설명되어 진다.
또한 이 모토는 「선교적인 방향」으로 회원들에게 강조된다. 수도회의 고유 사업은 구체적인 사업 하나 또는 사업 형식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인 근원들 또는 사도적 활동의 정신으로 정의된다. [가톨릭신문, 2003년 6월 2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마리아의 딸 수도회 (하)
사도직 활동
1888년 교황 레오13세 칙서에 의해 회헌 승인을 받은 마리아의 딸 수도회는 창립이후 약 10년동안 프랑스 남서부에서 동북부 지역으로 진출하는 약진을 보였으며 1900년대에는 「단 하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세상 끝까지 갈 각오를 지녀야 한다」는 창립자 말대로 국경을 넘기 시작, 유럽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퍼져나갔다.
이들 활동의 특징은 마리아의 선교사로서 활동을 넘어 존재 자체로 복음화에 기여하는 「영속적인 선교」를 기억하며 정의롭고 형제적인 세상 건설을 위해 다른 이들과 연대, 교회 사명에 협력한다.
「무엇이든지 그가 이르는대로 하시오」라는 성모님 말씀에 따라 모든 사도직에 문호를 개방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믿음을 각성시키고 신자들을 배가시킬 수 있는 일」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 등 창립자들의 카리스마에 충실하기 위한 일들을 우선적으로 한다.
현재 마리아의 딸 수도회가 한국을 비롯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사도직은 그리스도인다운 교육을 목표로 하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학교교육이다.
그밖에 본당사목 마리아니스트 평신도 공동체 형성을 통한 믿음의 공동체 형성 및 신자재교육, 피정지도, 젊은이 모임, 어린이집, 빈민사목, 양로원, 순례자를 위한 숙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와함께 사회발전을 돕는 차원에서 정의평화를 증진시키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인천교구의 「아델 피정의 집」을 비롯 피정 기관을 운영하는 한편 어린이집 설립을 통해 유치원 교육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사도직 프로그램 마련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데 「젊은이 침묵 피정」「청소년모임」「마리아니스트 영성에 따른 침묵 피정」 등이 대표적인 젊은이 프로그램이다.
마리아의 딸 수도회 한국지구는 현재 2004년 한국 진출 25주년을 기념, 영적 쇄신 작업 및 한국 교회 사회 안에서의 수도회 카리스마 재정립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중이다. 신자들의 영성 증진, 재교육을 위한 「마리아니스트 센터」 건립이 그에따른 구체적 계획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인도선교 계획도 진행중이다.
지난해 8월 로마에서 열린 제29차 총회는 회원 모두가 선교사 되기를 바랬던 창립자 정신을 더욱 굳게 다짐하는 자리가 되는 한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새천년기」에 언급된 것처럼 『그 어느때 보다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얼굴에 고정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관상으로 이끌림을 받는 과정을 계속할 것』을 천명한바 있다.
마리아의 딸 수녀회는 독자적인 수도회 활동 뿐 아니라 마리아니스트 가족, 즉 마리아니스트 평신도 공동체, 마리아회(마리아니스트), 알리앙스 마리알과 함께하는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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