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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 주일에 찾으시는 사람들
마21:1-11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루살렘 백성
들이 호산나하며 환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벳바게 마을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면 매인 나귀와 나귀새끼가 있을 터이니 끌어 오라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일 누가 왜 나귀를 끌어가느냐고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귀를 끌어와 자신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예수님이 타시도록 하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했습니다. 온 예루살렘 백성이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하고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다른 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오신 사명과 뜻을 철저히 감추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 종려주일을 통해서 자신을 공개석상에 뚜렷하게 나타내시므로 그 동안 여러 가지
각도에서 숨겨져 있던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르므로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찾으셨는가가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
에게 귀중한 열쇠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에 "종려주일에 찾으시는 사람들"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과연 어떻게 이 종려주일에 나타나고 있는가 스스로 바라보시고 깊은 회개와 결단을
가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고난 주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자신을 백성들에게 인기있는 그리스도로 나타내신 첫 번째 이유는 예수
님에게 고난을 드러내 놓고 행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시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고 제자들에게 자
신이 그리스도이시고 세상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며 만인을 구원하실 뜻을 가르쳐 주시고도
비밀로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공개적으로 입성하시고 많은 이들의 환영
을 받아 온 성에 자신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이신 것은 지금까지 예수를 해하고 싶어도 결
단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위기 의식을 느끼게 하여 예수를 죽이도록 하는 뜻이 종려주일에
담겨져 있습니다.
과연 이일로 인하여 예수를 핍박할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 가룟 유다 였습니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회복을 기다리는 과격파 캐리옷 당의 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라 다닌 것두 예수님이 전쟁의 왕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기를 바레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전쟁의 왕
이 타는 말을 타지 아니하고 평화의 왕인 나귀를 타시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게 되었습니
다. 자신이 지금까지 바랐던 소원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때부터 예수를 떠날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은 30에 스승을 팔아 버리는 멸망
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2) 대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예수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더러 내 놓고 적대행위를 하지 않으셨고 많은 백성들의 호응으로
인하여 예수를 처단하는 일에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종려주일에 예수님이 나귀를 타
시고 예루살렘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시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를 이대로
두었다가는 온 백성들의 사랑이 예수에게 가게 되고 자신들의 입지는 작아지게 될 것이 두
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극적이든 이들은 적극적으로 예수를 제거할 생각과 결단을 가지게 되었
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찾으셔서 자신은 고난을 당하시지만 만민을 구원할 십자가의 고난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종려주일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때로는 반대자들의 손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그 피로 인하여 인류를 구원할 일을 이루시는 데에는 예수를 사랑
하는 이들로서는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이유없이 예수를 미워하고 그에게 고난을 줄
원수들의 손을 통하여 이 십자가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종려주일에 우리 예수님은 악하게 쓰일 사람들을 찾고 계셨다는 말씀이 됩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시 노릇을 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게 하실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우리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가시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는가?
금년 종려 주일에 내가 쓰이는 쓰이는데 가룟유다처럼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악하게 쓰임받
는 이들을 찾으시는 우리 주님의 눈에 바로 내가 선택되는 것은 아닌가?
이 시간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모진 바람이 불면 우리는 옷깃을 더 튼튼히 여밉니다.
남을 찌르는 가시가 있다면 찔리는 사람은 그것을 이기기 위하여 신앙의 옷깃을 더 튼튼히
여밉니다. 남의 신앙을 튼튼히 여미는 일에 내가 남을 찌르는 가시로 쓰임 받는다고 하면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에게 고난을 줄 사람을 찾으셨던 그 대상자에 바로 내가 해당된다는
불행한 결과가 됩니다.
이 뜻을 깨달으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은 남에게 고난을 주어 그 사람으로 더 큰 구원을 이루는 일에 쓰여
지는 자로 찾아지지 마시고 이 종려주일에 자신을 돌아보고 남에게 기쁨을 주는 성도의 길
을 걸어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헌신하는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종려주일에 자신에게 고난을 주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악역을 찾으셨던 예수님은 두
번째로 찾으시는 사람은 오히려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귀한 것을 헌신하는 사람들을 찾으셨
습니다.
1) 나귀를 드려 헌신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3)
본문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쓰시겠다 라는 말씀에 두말하지 아니하고 헌신한 아름다운 모습을 성서는 증
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나는 일이나 대신 무슨 이익을 추구하지도 아니하고 단
지 주님이 스시겠다는 말씀 한마디에 헌신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런 사람을 우리 주님은 오늘 이 종려주일에 찾으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한끼 밖에 없는 빵을 엘리야에게 헌신하여 3년 6개월 동안 축복을 받았습니
다.
사르밧에 그 과부보다 풍족한 사람은 얼마던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과부는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 나를 택하여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빵을
달라고 하느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야속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하나 더 주셔도 시원찮을 텐데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빼앗아 가십니까? 하지도 않았습니
다. 그리고는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자신의 자식과 먹고 죽을 귀중한 빵을 엘리야에게 드
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이삭을 드려 헌신하였습니다.
다른 집에는 많은 자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이
삭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100세에 얻었으므로 이제는 더 얻을수 없는 귀중한 자식입
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3일길을 모리아 산을 향하여 걸어 가면서도 한마디의 불평이나
원망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자신의 가장 귀한 물건도 아닌 아들을 드려 헌신하는 모습을 발
견합니다.
이것이 헌신이고 이런 사람을 종려주일에 찾으시려고 이 종려주일을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님은 이 종려주일에 이런 헌신자를 찾고 계십니다.
종려주일을 맞으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아침에 우리 모두 여기에 여러분이 해당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겉옷을 드려 헌신한 이들을 찾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겉옷을 나귀위에 얹었고 백성들은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펴서 예수님을 환영
하였습니다. 겉옷은 신분을 상징합니다. 이러므로 겉옷을 드렸다는 의미는 자신의 명예
와 마음을 드렸다는 것을 표시하게 됩니다. 종려주일에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이런 헌신의 모습을 찾고 계십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제자이면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손으로 못자국과 창 자국을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를 향하여 내 손과 발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지키려던 자신의 고집과 자존심을 예수님 앞에 그 손과 발을 확인하
지도 아니하고 드린 참다운 헌신이었습니다.
그 뒤로 도마는 참 주의 일꾼이 되어서 인도까지 가서 전도하다가 예수를 위하여 헌신하며
순교했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며 나의 시간을 달라고 하십니다 !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며 나의 물질을 달라고 하십니다 !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며 나의 봉사를 원하십니다 !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며 겉옷같은 우리의 자존심을 원하고 계십니다 !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고,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것은 제가 먼저 써야겠다고, 이것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살면서 주님께 헌신하고 봉사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이 종려주일 아침 이 시간 우리는 나귀를 드린 이들을 생각합시다.
자신의 겉옷을 드려 자신의 명예와 마음을 서슴없이 땅에 깔아 버린 사람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모두 참다운 헌시의 자리에 서셔서 헌신하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의 눈에 띄어지
는 금년 종려주일 아침의 참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찬송하며 기뻐하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종려주일에 우리 주님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기뻐하는 이들의
속에서 만족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사랑을 감사할 표현
이 찬송과 기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찬양하는 이들을 사랑하셨고 당연히 여기셨습니
다.
성전에서 아이들이 호산나하며 예수님을 찬양하자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분하여 예수님
께 항의할 때,
그렇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고 반박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생애는 그의 작품처럼 아름답지 못한 고난의 연속의 삶이었습니다.
10살도 되기 전에 부모님을 여의었습니다. 그를 키워준 형은 그를 몹시 미워하였습니다.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었는데 결혼한자 13년만에 부인과 사별하였습니다. 재혼하여 두 부
인에게서 20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10명은 어려서 죽었습니다. 남은 자녀 속에는 20살이
넘어서 잃은 아들도 있고 정신박약가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노년이 되어 이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고 뇌출혈로 쓰려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 작곡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의 노래들
을 말입니다.
참으로 불후의 명작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면서도 비참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
까?
바로 독실한 신자로 세계 역사상 교회 음악가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인 바하입니다.
그가 이처럼 심오한 믿음과 찬양의 세계를 알수 있었던 원인은 그가 인생의 고난을 누구보
다도 더 깊이 체험했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로부터 나온 신앙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 살을 찢는 고난의 삶 속에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삶으로만
살았고 그래서 불후의 명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귀한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바하와 같은 진실된 마음으로 찬양하고 기뻐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찾으시려고 종려주일을 허락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정말 일어나 호산나하며 기뻐하고 있습니까?
할 수없이 호산나 찬송하고 할 수없이 성가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종려주일에 참다운 호산나의 찬양을 하는 이들을 우리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이주님의 눈에 발견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아침 종려주일에 헌신하며 찬양하는 성도들을 찾으시는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신 예
수님의 눈길에 한 분도 빠짐없이 헌신하는 성도, 찬양하는 성도로 발견되는 성도들이 되시
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사53:1-12
오늘은 고난 주일입이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번 주간에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신 고난의 절
정기를 맞으신다. 최후의 만찬, 가룟 유다의 배신, 겟세마네의 기도, 제자들의 도망,
베드로의 부인, 십자가에 죽으심과 장사되심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한 주간이다.
마태복음 26:39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시던 우리 주님의 이 기도에서 고난의 절정
기를 맞은 주님의 고통을 읽을 수 있다. 실상은 내가 당해야 할 고통인데, 주님이 대
신 당하시건만 우리는 이 고통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곧잘
잊어버리기도 한다.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선교하기 위해 배를 타려고 항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노예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흑인 모자가 경매에 붙여졌는데, 어린아이는 필
요 없고, 어머니만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서 어머니만 팔리게 되어 두 모자는 헤어지게
되었다. 두 사람 몫의 일을 하겠으니 어린 아들을 함께 데려가 달라고 새 주인에게 호
소했으나, 두 모자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두 모자를 강제로
떼려하나 말을 듣지 않자, 주인이 칼을 들어 어린아이를 향해 내리 찔렀다. 그때 선교
사님이 자신의 손으로 그 칼을 막아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
그 선교사님이 후한 값에 두 모자를 샀다. 그리고 자유롭게 살라고 했다.
그러나, 흑인 모자는 이곳에서는 언제 또다시 잡혀 노예가 될지 모르니 선교사님을 따
라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 선교사님께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함께
아프리카에 도착하여 선교사역을 감당했다고 한다.
아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자유를 주신 선교사님....
그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 흑인 모자는 선교사님의 손발이 되어 아프리카의 선
교사역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 흑인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화도 내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그때 선교사님은 아무 말씀도 않고, 손을 내밀어 아이
를 살리려 대신 칼을 맞았던 그 손의 흉터를 보여주면.... 그 흑인은 잘못했노라고 용
서를 빌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흑인 노예를 구한 선교사님처럼
주님이 가진 돈으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우
리를 사신 것입니다. 주님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심으로 우리의 생명을 사
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두 손과 두 발에 못을 박히신 주님, 그 주님의
못자국 난 손을 바라보세요. 흑인 노예처럼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소리칠 수밖
에 없는 세리와 같은 나입니다(눅18:13).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그 주님이 가시는 고난의 길을 너무도 생생히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600여년 전에
일러주신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의 모습을 살펴보며 날 대속(代贖)하신 주님의 은혜에 젖어보고자 합니다.
1.그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
본문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고난의 주, 수난의 메시아,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의 초라한 모습을 말해주고 있
다. 연한 순 같이 나약한 모습이요, 메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충실하지 못하여
무력한 모습이요,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어 그의 외모에서는 위인다운 큰 사람의 모습
이 없다는 말씀이다.
바로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는 말씀이다.
온 유대 백성들이 고대하는 메시아상으로는 영 아닌 모습이다. 적어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고, 해방의 기쁨을 주고, 메시아 왕국의 평화를 가져
다 줄 인물로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참으로 흠모할 만한 인물이 아니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그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
의 어린 양으로(요1:29) 고난의 주님은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온 유대 백성들이 고
대하던 메시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참으로 무언가 해 낼만한 걸출
한 모습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는 유대인에게 소망을 줄 수 없
는 나사렛 사람이었습니다(요1:46). 적어도 유대인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서는 "베들
레헴 사람"이어야 하는데.... 실로 그는 "베들레헴 사람"이건만, 사람들이 그를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그에게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삼상 11:24절/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이스라엘의 최초 왕으로 추대된 사울의 모습입니다. 모든 백성 중에서 짝할 이가 없는
걸출한 모습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
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고 했습니다(삼상9:2). 이런 사울을 향해.... 유대
의 모든 백성들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를 향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택하실 때.... 사람을 외
모로 취하지 아니 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현실이기도 합니
다. 「나는 예수보다 더 훌륭한 석가를 믿고 있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일깨우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우리 주님은 나의 죄뿐만 아니라 이들의 죄도 담당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
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하시던 주님(눅23:34).... 이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저들에게 전하고 일깨워야 합니다.
2.그는 사람에게 멸시를 받았다.
본문 3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
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고난의 주, 수난의 메시아,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 그에게는 흠모할 만한 아
름다운 것이 없어서 "만세!"를 외쳐 부르며 사울을 왕으로 맞이하던 모습과는 달리 유
대의 백성들이 그를 멸시했다.
그 멸시의 최절정이 십자가의 처형이다.
십자가의 처형은 그 당시에 가장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죄인에게 내리는 극형이다. 그
래서, 성경에서도 십자가에 달린 자를 저주받은 자라고 했다(갈3:13). 물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나무에 달리셨지만,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지 않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협박하여(요19:12)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한마디로 그는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그를 오히려 더 멸시했
습니다(눅23:35). 십자가에 매달고 그를 조롱했습니다(막15:31). 「이 사람이 마리아
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
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러하거늘,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하였습니다(막6:3).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지금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주님을 향해 침을 뱉으며 조롱했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십자가에 달리시어 멸시를, 천대를, 조롱을 당하신 주님....
그는 실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거늘,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3년간 함께 하며 주님의 사랑을 남달리 받았던 제자들.... 가룟 유다는 스
승을 팔아먹었습니다. 수제자라 자랑하던 베드로는 스승을 욕하고, 저주하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 모두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그는 십자가에 달리시어 멸시를, 천대를, 조롱을 당했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향해
침을 뱉는 자나, 스승을 팔아먹는 자나, 스승을 욕하고 저주하며 모른다고 하는 자나,
"죽기까지 따르오리라" 약속하고서도 나 몰라라 도망친 자들이나.... 무엇이 다를까요
? 아니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요?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3.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셨다.
본문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
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는 실로.... 지금까지의 고난의 주, 수난의 메시아,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의
초라한 모습과 멸시 천대는 그의 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실로.... 그의 진
정한 모습은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셨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셨다는 것이다. 그
는 실로.... 그의 겉모습만 보았지, 그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여기의 "질고(疾苦)"는.... [호리(ylij?)]란 단어로 "질병, 근심, 재난"을 뜻한다. 그
리고 "슬픔"은.... [마크오-브(baok]m')]란 단어로 "슬픔, 고통, 괴로움"을 뜻한다.
곧 질고로 인한 괴로움을 대신 우리 주님이 당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질고와 슬픔"....
그것은 죄로 인한 것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롬6:23). 이 사망이 죄인에게 이루어지
는 과정이 "질고와 슬픔"이다. 다시 말하자면, "질고와 슬픔"은.... 죽음을 향해 달려
가는 과정인 것이다. 곧 죽음을 대표하는 말이라 하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그의 모습이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 주님의 참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대
신 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참 모습입니다. 이 참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알
지 못하기에....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는 실로...." 하시면서, 그의 실상을 알려주
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
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 유대인들뿐만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오늘 본문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롬5:8). 그러나, 실상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
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
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본문5절)」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
셨습니다(본문6절). 이것이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의 확증이라고 했습니다
(롬5:8).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지 못하는 자는 말합니다.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았다"고 합니다. 이들을 일깨워야 할 사명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고 일깨워 주어야 합
니다.
그는 실로....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요1:29).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
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본문6절). 여호와께서 그로 질고를 당하게 하셨습
니다(본문10절). 그래서, 그는 실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본
문11절). 그는 실로.... 많은 사람의 죄를 지셨습니다(본문12절). 그 주님이 지신 죄
속에 "내 죄"도 포함되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롬5: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그는 실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지고, 곤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습니다(본문 7절). 실제로 우리 주님은 대제사장들과 장
로들의 고소에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같이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마27:14).
히브리서 4: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를 가리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자"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
해서 우리와 한가지로 질고를 지고 곤욕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서 주님이 대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그는 실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
께서 그에게 우리의 죄악을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의 확정으로
하나님은 그를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를 먼저 사랑하신 사랑입니다(요일4: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그로 인해 여호와의 뜻이 성취되어졌습니다(본문10절). 우리 무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
하시고(본문11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
루셨습니다(히9:12). 이것이 바로 대속의 은총이요, 우리 주님이 당하신 고난이었습니
다. 그 주님의 고난을 되새겨 보는 고난 주일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흑인 노예는 아무리 화가 나고, 불평스러워도.... 선교사님이 보여주는 손의 흉터를
보고,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들의 생명을
구해주고, 자유를 준 그 은혜를 다시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 주님은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대속의 길을 가셨습
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그 대속의 은총을 압니다. 그는 실로....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
자를 위하여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본문12절). 아니 나의 죄를 대신 지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 대속의 은총에 힘입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압니다.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
그 사랑에 감격하여 늘 찬송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 사랑에 감격하여 늘 다짐합니다.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의 발자취를 따르리라, 해처럼 밝게 살
면서 주의 이름을 전파하리라,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의 사랑을 나누리라....
이런 다짐이....
오늘 고난 주일을 맞아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 길, 지치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짐하는 우리 모두의 다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