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2] 최봉춘(崔奉春) - 일본 개척의 감회 3. 밀항과 수감 - 2
10 나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하루 세 차례씩 정기 기도회를 가졌다. 주일에는 조반은 금식을 하고 낮 예배 시간에 맞춰 서울 쪽을 향해 조용히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함으로써 혼자 마음속으로 예배 시간을 가졌다.
11 8월 31일 내가 구치된 지 40일이 되는 날이다. 이 40일을 중심으로 사탄을 분별하여 오는 9월 4일의 공판을 맞기 위해 4일간의 금식을 결심했다. 9월 4일 첫 공판에서는 간단한 인정신문만을 끝내고 9월 18일에 다시 열겠다고 했다.
12 18일의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이 구형되고 세 차례의 연기 끝에 선고 공판이 10월 9일에 열렸는데, 예상과는 달리 구형량 그대로 징역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13 10월 12일 수인번호 84번으로 2층 33방으로 이감됐다. 10월 14일에는 히로시마의 요시지마(吉島) 형무소로 옮겼다가 한 달 후인 11월 14일 다시 야마구찌(山口) 형무소로 이감됐다.
14 형무소 생활을 시작할 때 신체검사를 하게 됐다. 당시 나는 몸이 허약해서 담당 의사가 말하기를, 당신은 몸이 약하니 형무소에서 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면서 6개월 동안 병원에 있다가 출소하면 된다고 했다.
15 그러나 나는 제일 힘든 노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일본에 와서 일본을 위해 일하고 싶으니 나를 병원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했더니 의사는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려고 내가 일본 땅에 왔는데 어찌 내가 편안히 지낼 수 있을까.
16 나는 한국인이면서 일본인이다. 일본 땅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일본 사람이 아니고 일본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 일본 사람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17 나는 일본 사람보다도 일본을 더 사랑하고 일본 사람보다도 일본 문화와 산천초목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날부터 제일 무거운 짐을 지는 공장에 보내 달라고 해서 자랑스럽게 죄수 생활을 했던 것이다.
18 선생님께서, 사탄 세계의 제일 밑창에서 사탄을 축복시켜야 된다고 하셨기에 나는 죄수 중에서 가장 열심히 일함으로 말미암아 사탄 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