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프랑스 산악영화 <산이 부른다> 후기..
10월 1일, 국군의날 저녁 뉴스의 무료함을 피할 요량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1973년 생 토마스 살바도르 감독이 주연까지 겸한 영화 <산이 부른다 : La montagne>를 한마디로 평한다면, 설산 생존기라는 산악영화의 전형에서 벗어나 초자연 현상에 주목한 SF산악미스테리 장르를 (다소 생뚱맞게) 개척한 시도는 가상하나 특별한 매력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영화에서 리얼리즘이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면 산악영화는 특히 더 그렇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알프스 산맥의 3대 북벽 중 '죽음의 빙벽'으로 불리는, 스위스 '아이거 북벽'을 무대로 한 독일 산악인의 사투를 그린 2010년 영화 '노스페이스'를 떠올린다. 세계적 고산 등반의 치열한 역사를 재해석하는 영화가 기획될 법도 하건만 그러지 못 하는 건 무슨 연유인가.
히말라야 14좌 또는 16좌처럼 극한의 산행이 아니더라도 산을 주제로 한 괜찮은 이야기는 꽤 풍부하리라 보는데, 영화 시장의 문법과 이해관계가 만만치 않은 탓인가. 인문학의 산실이라 할 산을 향한 21세기 세계시민들의 상상력과 탐사 의지가 부족한 건 아닌지. 혹, 지리산을 사랑하여 지리산 시를 적잖이 남긴 고정희 시인의 부재이련가. 그럴 수도 있다.
조선 3대폭포 중 하나인 설악산 대승폭포(한계폭포)에 오르다보면 산길 주변에 옛 산악애호가들이 설악산과 대승폭포의 절경을 향한 헌사가 전시회를 이룬다. 과연 그들의 호방한 풍류정신은 현 시대로 면면이 계승되고 있는지. 왕년의 산객들의 고적한 시적 감각을 탑재한 이들이 도통 뵈지 않는 경향이다. 그래도 "큰 산은 큰 덕"이라는 화엄경의 핵심 사상을 품은 이가 어딘가 존재하리라 믿으며 그같은 산악영화의 등장을 고대한다.
<산이 부른다> 영화 중 특히 주목했던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몽블랑 산악지대 카페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여자 주인공 레아(루이즈 보르고앙)가 산에 오른 후 연락이 되지 않는 남자 주인공 피에르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빙하 지대와 낙석 구역을 무릅쓰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고 부럽기도 했다. 평소 독일 여자가 강인하다고 여겼는데, 스위스 등 유럽 여자도 대체로 그런 편인가. 산행 중 위기를 맞이했을 때 나를 구조하러 올 여자 친구가 존재한다는 건 상상 만으로도 황홀한 일!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을 거머쥔 사나이가 바로 피에르이다. 이같은 이유로 언젠가 어느 조붓한 산길에서 간결한 눈빛을 지닌 인연을 만날 거라고 여긴다.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굳게 믿고 또 믿으므로.
산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 귀결은 산이다!
첫댓글 영화 평론가 못지 않은 글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