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키스 다음 날은 비가 왔다.
입을 맞춘 자리는 이미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시멘트 바닥에 덕지덕지 벚꽃잎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화상 흉터 같았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말했지만,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나눴던 그 키스는, 그녀가 주는 내 감정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냥 추측할 뿐이다. 서로 마주보았던 그 순간, 산중턱에서 불어온 바람이 벚나무를 흔들었고, 꽃잎은 우리 위로 우수수 날아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거짓말처럼 그녀의 얼굴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불에 데인 듯, 온몸이 화끈거렸다. 간지러웠다. 그녀와 나의 이야기는 그 날 끝났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의 뒷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꼬마아이처럼, 나 혼자서만 그 찰나의 동화 속에 머물러 있었더랬다. 봄이 끝나가고 있는 있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수학 교과서 속 방정식 같았다. 1차를 겨우 이해하면, 2차가 날아들었다. 이윽고 함수의 그래프와 sin, cos, tan. 미분과 적분이 난무하는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감정을, 그녀는 그녀의 입장을 앞세웠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방인이었고, 그리하여 평생을 맞닿을 일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더듬거린다. 고대 문자를 해석하는 고고학자처럼.
골똘히 생각한다. 몇 안남은 오래된 단서를 앞에 둔 형사처럼.
뜻을 찾고 답을 찾는다고 해도 얻게 되는 것은 없다. 바뀌는 것도 없다. 어쩌면 나는 동화같이 찬란했던, 그러면서도 슬펐던 그 순간을 계속 곱씹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좀 더 소중히 느끼기 위해 머릿속에서는 시간 여행이 펼쳐진다.
서울에는 벚꽃이 많이 없었다. 적어도 내 기준엔 그랬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꽃잎이 바람에 휘몰아치는 분홍빛 세상에서 자란 나였다. 봄꽃이 늦게 피고, 꽃보다 빌딩이 많은 세상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때를 떠올릴 일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다시 북위 35도의 도시로 돌아왔다.
지금, 꽃이 폈다.
꽃이 바람에 날렸고, 아스팔트에서 꽃잎이 회오리친다.
그리고 비가 왔다.
봄비라 했지만, 왠지 서늘했다. 꽃잎은 꾸덕꾸덕 하수구에서 말라갔다. 흙탕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그렇게 그 순간 나는 열일곱이 된다.
꽃이 피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고, 그 열매를 아무도 먹지 않는다고 한들, 그 꽃이 의미가 없을까. 내 첫사랑은 짧은 한 철 벚꽃이었다. 그 다음 사랑도, 또 그 다음 사랑도, 그 어떤 꽃이었다. 수많은 꽃을 지나, 나는 이제 꽃을 피워내고 좀 더 단단한 열매를 영글게 하는 법도 안다. 다 수많은 꽃의 덕분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이 서려오는 것은, 그저 내 첫 꽃이 너무 짧게 져버려서, 그게 너무도 안타까워서. 나는 이 봄, 오늘 하루만 몇 걸음 뒤로 걸어보았다.
4월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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