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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과 조계사 불교대학총동문회가 공동주최하는 '53선지식 구법여행' 제42번째 법회가 진행됐다. '53선지식 구법여행'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등대로 보리심을 찾고자 53선지식을 만나 그들에게 법을 묻고 배우며 보리심을 일으켜 보현행원을 발원했듯이 우리사회에서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많은 이들에게 삶을 메시지을 전하고 있는 명사들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된 법석이다.
지난 4월 26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제42차 53선지식 구법여행 법회는 선재동자의 구법정신을 따라가는 법우들이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이신 영진스님을 모시고 " 재가불자들의 간화선 수행"이라는 주제로 법회가 진행되었다.
영진스님께서는 봄에 비가 오면 더워지고 가을에 비가 오면 추워지는 법인데 오늘은 비가 와서 쌀쌀하고 봄이 너무 빠른가 싶었는데 그동안 대지가 목말랐고 감로수 같이 내리는 비이기에 오시기는 불편해도 생명수 같아 반가운 비라고 하시면서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로부터 지난해부터 날짜를 조율하다가 이번 봄 4월에 날짜를 잡아 오늘 법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 오신날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새기며 부처님이 왜 오셨는가를 먼저 말씀하신 후에 간화선을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명호는 여래10호라고 하여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이 있는데 모두 좋은말이고 여래 십호의 처음 如來는 여여히 오셨고 여여히 가신 분이라는 여래여거의 줄인말이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1971년 금산사로 출가시에는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이 아니었는데 불교계의 노력과 종교의 형평성에 비추어 우리나라 대부분이 불자인 상황에서 공휴일로 지정하였고 그당시 이름이 불탄절, 불탄일, 석탄일 등 혼돈이 있었으나 부처님오신날로 쓰기로 하였다고 하시면서 왜 그랬을까를 보면 여래,여여히 오신분, 진리와 더불어 오신분이기 때문에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정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오고 감도 없지만 중생구제를 위해 오셨고 인도 성지 순례를 하다보면 인도에서는 부다가야를 가장 성스럽게 여기고 성도재일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나 우리는 4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중시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부처님 오신뜻은 법화경에 있듯이 부처님의 지견을 열고, 보이시고, 깨닫고, 들어가게 하는 佛知見의 開示悟入이 부처님이 오신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불지견이란 무엇인가, 진리의 내용은 무엇인가는 팔만사천법문이 있으나 한마디로 하면 緣起, 空, 無我, 中道라고 하시면서 연기란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는 것으로 다른 종교에서는 따로 최초나 종말이 있고 우주생성원리를 창고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불교는 창조나 종말이 없고 순환된다는 것으로 성주괴공이 계절의 순환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어디가 시작이고 끝이 없으며 독단적으로 혼자 살 수 없다는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오면 저것이 온다는 이 진리로 봤을때 육안으로 보아도 여기서 벗어난 것이 없을 것이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이치이고 음양이치도 이와 같아 은행나무를 보면 암수가 마주봐야 열매가 열린고 이것이 연기라고 하셨습니다. 제망찰해라는 말의 제망은 제석천의 그물망이라는 뜻인데 그물은 정밀하고 코 끝마다 영롱한 구슬이 달려 있는데 구슬에 빛을 비추면 수많은 구슬이 서로 빛을 내고 이를 상즉상입의 중중무진의 연기를 이루고 있으며 불교의 연기란 심청전에서도 나타나는데 심봉사가 눈을 뜨니까 모든 사람들이 눈을 뜨는데 이는 중중무진의 화엄연기사상을 나타내고 이는 육신의 눈이 아니고 지혜의 눈을 뜬 것으로 부처님 한 분이 출현하시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을 떴는가를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며 불지견의 개시오입을 새겨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도라는 말은 이것과 저것 사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있다는 생각에 치우치면 常見이고 없다는 생각에 치우치면 斷見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생견해, 자기잣대로 아전인수격으로 자기의견을 말하는 것은 중도가 아니고 중도란 있다는 생각, 없다는 생각에 치우지지 않는 것으로 중간은 아니며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諸法從緣生 즉 우리가 보는 현상은 인연따라 일어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우리의 성품은 공하며 성품이 공하기에 우리는 비어있으며 그렇다고 이것이 허무한 것이 아니며 변화하고 있다는 것으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반야심경의 차원의 두 모습이 같이 있다는 것으로 두 모습을 같이 보면 고통은 소멸된다는 것으로 있는데 집착하면 변화는 괴로운 것이고 같이 보면 괴로운 것이 없는데 밤이 되면 낮이 잠시 해가 넘어간 것이고 구름에 해가 가린 것과 같다고 하시면서 이와 같이 보면 죽는 것도 순환의 한 모습으로 죽는 것도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1960년대에 조계사 법당에서 앉아서 돌아가신 분이 계셨는데 이러한 坐脫은 중국에서 많고 좌탈하신 분의 3년 건조된 분을 법당에 모신 절도 있고 6조 스님의 경우도 좌탈하신 후 법당에 모셨었고 광동성에서 3분의 보살의 좌탈하신 경우도 있었으며, 요근래로는 2003년 동안거에서 백양사 서옹스님,1982년 송광사 초대방장 구산스님이 좌탈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영결식에서 앉아 있는 관을 직접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분으로 1951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좌탈하신 방한암 스님도 계시고 그분의 은사스님도 좌탈하셨고 방한암스님의 좌탈사진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입망은 서서 돌아가신 것으로 이와같이 좌탈입망은 생사를 자유자재로 한다는 것이고 심장마비로 죽기 전에는 끝까지 서서 죽는 것이 어렵다고 하시면서 중국 당나라 때 은봉스님은 죽을 때 어떻게 죽을까 생각하다가 제자들을 불러놓고 내가 갈거다 너희들은 서서 죽은 경우 들어보았느냐하자 제자들이 들었다고 하고 앉아서 죽고, 잠자다 죽은 경우도 들어 보았다고 하자 그러면 물구나무한 채로 죽은 경우를 들어보았냐고 묻자 제자들이 못들었다고 하자 물구나무 선채로 가버렸는데 화장을 하려고 몸을 밀어도 쓰러지지 아니하여 모두들 탄복하였는데 은봉스님의 여동생이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는데 그 소문을 듣고 달려와 살아생전에 골탕만 먹이더니 죽어서도 골탕을 먹인다며 꾸짖자 몸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와같이 생사가 자유자재 한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스님께서는 죽는데 왜모양따지는가 라고 생각하셨는데 이는 스님생각이고 선방생활을 오래 앉아 있다보니 쉽지 않고 그 자체로 형상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고 돌아가시면서 까지 집착이 없으신 것이라고 하셨읍니다.
스님께서는 스님들은 농담을 해도 큰 농담을 하고 자질구레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내가 허공의 무착산에 산다. 우주법계에 산다라고 하며 통크게 노는데 금산사는 미륵부처도량으로 유명한데 그크기에 대한 이야기와 화장실을 측간이라고 하는데 이를 옮기기위해서는 의식을 하는데 그 이유는 범청 조물주 (조물주보다 위는 건물주라고 하시어 모두 웃음)가 신들을 불러모아 목신 토지신 등등 이름을 붙였는데 측간은 냄새가 나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대장신이 솔선수범 차원에서 맡게 되어 잘못 옮기면 사고가 난다는 것으로 해인사의 스님과 금산사의 스님이 진안고개에서 만나 서로 의사소통하며 해인사의 측간 깉이가 얼마인가 하면 섣달 그믐에 싸면 정월 초하루에 떨어진다고 하였는데 이말이 맞는데 그이유는 0시에 싸서 그런 것이라고 하였고 금산사에서는 3000명의 죽을 아침마다 끓이는데 이는 논을 타고 죽을 끓여서 그런 것이라는 등 스님들의 농담세계를 말씀하셨고 조선중기의 진묵대사의 天衾地席山爲枕(하늘 이불 땅 자리에 산을 베개 삼고) 月燭雲屛海作樽(달, 촛불 구름 병풍에 바다를 술통삼노라) 大醉居然仍起舞(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却嫌長袖掛崑崙(도리어 긴소매 곤륜산에 걸릴까 꺼려지네)의 오도송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있다는 생각 없다는생각을 벗어난 해인사의 측간, 금산사 부엌, 진물스님의 예는 있다거나 없다거나를 벗어난 일상사를 말하는 것으로 불지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중도정견에서는 고통이 사라지고 구할바가 없으며,허덕이지 않고 비굴하지 않으며 당당하고 그러면서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부처님처럼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불지견의 悟 즉 깨달음에 대하여는 여러분이 모두 다부처이고 일체중생 실유불성이고 부처님이 깨달으신 후 기특하고 기특하다고 하시며 본래의 부처인데 못보는 것이 중생이고 이는 설명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고 물맛은 본사람만 그맛을 알고 아무리 설명해봐야 모른다고 하시면서 깨닫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우선 看經이 있는데 간경은 아침에 보고 저녁에 볼때 마다 안목이 달라지며 念佛은 명호를 부르며 수행하는 것이고 奉事가 있으나 參禪은 직접 그런 말씀의 진리를 수행을 통해 몸소 체험을 하는 방법이라고 하시면서 부처님의 오신 의미는 이정도로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53선지식은 선재동자가 구법여행을 하면서 선지식을 만난다는 것인데 선지식은 세상사 아닌데가 없고 내 마음이 충만하면 선지식이라고 하고 있으나 선에서 말하는 선지식은 다른데 부처님, 제불조사들과 같이 모두 부처님 지견을 완전히 깨달으신 분을 말하고 궁극적으로 중생은 본래 부처이나 강의할 수 있는 자격을 전강이라고 하고 차도에는 다맥이 있듯이 선맥은 굉장히 신중하고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으며 전법에 있어서는 신중하고 은밀하며 받았다 안받았다고 말 할 수 없으며 조사들간에 은밀히 전해진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교화의 길을 가시면서 나름대로 사람보고 전하셨으며 서산대사는 禪是佛心, 敎示佛語 戒是佛行이라고 하였고 선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느냐는 삼처전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축산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은 법화경을 설하는 자리에서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나고 꽃비가 내리자 부처님이 꽃을 집으니 (염화, 잡을 첨) 모든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는 것이어서 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의 선법이라는 이심전심이 전해졌다고 하셨고 염화실은 조사들이나 방장실을 뜻한다고 하셨습니다.
多子塔前分半座는 법좌는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닌데 부처님은 가섭존자에게 자리를 나눠 이신전심으로 전달하였고, 부처님께서 사라수에서 열반하셨는데 불교의 3대나무는 탄생시의 걱정없는 무우수, 성도시에 보리수, 그리고 자는 듯 돌아가셨다는 사라수인데 스님들의 자는 자세는 옆으로 자는데 이는 똑바로 누우면 너무 깊이 잠들고 엎드려 자면 가볍게 보이고 하여 옆으로 자는데 이는 목탁의 물고기가 눈뜨고 자는것과 같은 이치로서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가섭존자는 뒤늦게 도착하여 우요삼잡하면서 (반드시 오른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이는 왼쪽으로 도는 것은 저주의 뜻이라고 함) 생사가 허망하다고 하였으나 부처님은 80세에 돌아가셔서 4대성인중 가장 오래 사신분으로 관밖으로 두발을 보이시는 곽시쌍부로 이심전심을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대조사는 아난존자로서 선종으로 보면 부처님 10대제자가 아니라 손자제자인데 부처님 당시에는 아직 깨닫지 못하였고 가섭존자의 지적을 받고 깨달아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법을 전했고 아난존자는 3대조사인 상나화수 존자에게 법을 전하였고 전전하여 28번째가 인도의 달마이고 달마는 인도인으로 수염과 눈이 퉁나오는 등으로 묘사되고 중국으로 선법을 전했으며 중국에는 불교가 서기 2년에 불상과 경전이 전해져 백마사가 건립된 것이 중국불교의 시작이고 달마는 500년대 6세기에 선법을 전할때 까지 중국에는 선법이 없었으며 달마가 선법을 가지고 중국으로 온 것은 중국에서 보면 인도가 서쪽이어서 如何是祖士西來義라는 말이 생겼으며 인도 입장에서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것인데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라는 영화를 일반인들이 보고는 표정이 희한했는데 그 이유는 보고나서 어려워서 그런 것으로 노스님과 동자승만 나오고 모르고 보면 아무런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이고 작품성은 뛰어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조사서래의의 祖는 할아비 조자로소서 불조, 조사 등 교단을 이끄신 분들을 나타내고 달마는 28대, 중국의 초조이며 선법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시대인연이 닿지 않아 불교는 무리하지 않는데 숭산 소림사에서 9년간 선을 행하였고 9년만에 혜가가 찾아와 위없는 불교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문을 닫았고 아침까지 혜가가 눈위에 서있었고 그 정도로 되느냐고 하자 머리자르는 칼로 팔을 잘라 바쳐 위법망구를 보여주자 달마는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혜가는 마음이 심히 불안하니 마음을 편하게 해달라고 하였고 달마가 마음을 가져오라고 하자 찾을 수 없다고 하였고 그러면 마음이 편해졌느니라라는 안심법문이 최초의 법문이며 혜가는 본래 마음은 편안하고 불안한 것이 없다는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조 승찬은 문둥병환자이고 처사로서 혜가를 찾아와 억겁다생에서 무슨 잘못을 했는지 천병인 문둥병이 걸렸는지 묻자 너의 염려를 가져오라는 말에 승찬은 찾지 못했다고 하였고 혜가는 너의 죄를 소멸해 주었다고 하여 부처님을 대신하는 조사를 문둥병환자에다가 처사인 승찬이 이었다는 것은 승속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말해주고 방거사도 스님들이 조사처럼 여기는 분이고 승찬이 쓴 신심명은 백미 중의 백미로 같은 면을 각각 다른 표현을 하였고 그 핵심은 중도이며 다양한 표현과 아름답고 완벽한 어록이라고 하셨습니다.
4조 도신은 대의학자로서 황제의 병을 치료하여 궁전으로 초정받았으나 가지않았고 이는 성철스님이 종정이 되어서도 산에 머물러 그분의 신년법어가 모든 매스컴에서 새해 화두가 되는 경우도 있었듯이 스님은 산에 머무를 뿐이라는것을 실천한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5조 홍인과 6조혜능은 혜능이 광동성 출신으로 중국입장에서 보면 오랑케와 같을정도의 변방사람으로서 남방무지렁이가 무엇때문에 왔는가라는 질문에 사람에는 남북이 있으나 위없는 불도에는 남과북이 어디있냐고 하여 홍인은 그릇을 알아보고 8개월간 방아를 찧게 한 후 6조를 삼았고 혜능은 16년간 숨어지낸 후 머리깎고 계를 받아 스님이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혜능은 전체로는 33조조사이고 중국으로는 6조로서 그 이후 내려와서 8조 마조 9조 서당지장 그리고 신라의 도의가 10조가 되었고 도의는 신라말 왕자 출신으로 설악산 진전사에서 지냈으며 손제자가 보림사를 개창하였고 조계종의 종조는 도의 국사이며 최초선법은 설악산에서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죽 내려와 78조가 송담이고 다른 맥의 79조가 종정이신 진제대종사로서 78대 79대 조사가 은밀히 전해지기 때문에 또 있을 수 있는 것이고 1대가 30년이면 2400년이므로 대충 맞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 수행은 무엇인가 조사스님 조사선은 당나라, 송나라 초기까지 조사 스님이 제자를 일깨워주고 탁탁집어 마음을 열게하는 순수선시대였으나 이것이 후기로 오면서 전승되는 과정에서 문자선,의리선, 구두선으로 변질되어 송시대의 대혜종고 스님이 조사선 수행을 구체화하여 간화선을 시작하여 간단명료하게 선을 하도록 하였으며 조사스님들의 1700 공안중 하나를 가지고 참구하게 하였으며 이는 조주무자화두에서 보면 부처님은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님은 없다고 했다고 하여 물은자가 바로 깨달으면 되는데 깨닫지 못하면 어째서 이렇게 나오는 건가하며 참구하도록 하는것이고 그 자리에서 깨닫도록한 것인데 그렇지 않은경우 간화 즉 화두를 보는데 화두란 말씀 언전으로 말을 따라 가면 안되는 것으로 자기 생각을 넣으면 안된다는 것이고 불법의 올바른 뜻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똥막대기 간시궐 이라는말에 바로 깨쳐야지 깨치지 못하면 어째서 그런가하며 참구해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서 자기가 똑똑하다고 우주법계에 안계신곳이 없으니까 똥막대기에도 있다는 뜻이구나라고 하면 죽은 말이 된다는 것으로 유추하거나 미루어짐작하면 죽은 말이 되고 참구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화두에는 답이 없고 화두의 답이 궁금하면 알아서 무엇하려고 하는가 남의 대답은 궁금하지도 않고 스스로 답해야 하는 것으로 그런것이구나가 아니라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이고 큰 깨달음의 순간은 다 틀어막아 폭발하여 나오는데 풍선에 바람구멍을 만들어 놓으면 아무리 불어도 터지지 않는 이치와 같고 자기 생각을 넣는 것은 구두선이나 의리선 문자선에 머무는 것이라고 하셨읍니다.
경계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계를 타고 넘는 사람으로 시간에 매이지 않고 시간을 부리는 사람으로 우리 마음은 본래 부처이나 부처확인을 못하는데 내가 부처이어도 가만있으면 부처인가, 공무원도 시험공부하고 대학생도 공부하여 되는 것인데 우리가 부처가 되려면 놀고먹고 하는대신 그 노력으로 수행을 하여야 하고 그중 가장 빠르고 확실한것이 참선이고 조계종은 위빠사나나 관법이 아니고 화두 그중에서도 간화선이 방법이며 간화선은 앉거나 서서이거나 누웠거나, 말하거나 잠자리에서도 화두를 들고 화두랑 하나가 되는 것이고 화두의 생명은 의정에 있는데 의심이 없으면 안되고 어째서, 이뭐꼬, 전체가 의정에 들어서 일단 의심을 하고 저절로 들기만하면 의정에 들고 시도때도없이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대의단은 나와 화두가 경계가 없고 주관객관이 없어 혼연일체가 된 상태이고 꾸준히 하다보면 惺惺寂寂, 寂寂惺惺이 되는데 마음자리는 적적하고 바로 깨어있어 성성한 것으로서 걸어다니다가 돌부리에 채여 아야하는 경계가 되는 것으로 놀다가 걷다가 깨닫는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부처임을 확인하고 그러지 못하면 용맹정진하며 부처가 중생놀음하고 있으니 억울하지 않도록 남보다 나아서 스스로 수행하여 본래 존재모습을 참구하도록 하며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있게하기 위하여 음성공양하든지, 힘있는사람은 노력하고 재정있으면 보시하는 등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 가도록 발원하신다고 하시면서 법문을 마치셨습니다.
이날은 비가 오고 쌀쌀한 날씨임에도 많은 동문 선후배님들과 불교신문사 관계자들이 법당을 가득채울 정도로 많이 오셨고 조계사총동문회 찬불가 합창단의 '성불을 위하여', 사월의 노래' 음성공양 후 호연 장학회 이사장님의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으며 성해 장경태 총동문회장님의 영진스님께의 감사인사와 장학회의 청소년불자양성의 뜻 축원과 조계사 연등과 같이모든 동문들과 가족들에 대한 인연공덕과자비광명의 축원인사가 있었으며 밖에서는 따뜻한 보이차 공양과 화엄경 사경지를 배포하는 등 많은 동문들이 수고하셨습니다.[정리=총무부차장 보광 신종열]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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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진스님의 법문 상세히 정리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참못하신분들도 법회상황 눈에 그려질 듯 하네요😊🙏
스님법문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치 법회에 동참한듯 해요
보광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