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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도 거룩한 주의 날, 특별히 2024년도를 마무리하는 이 마지막 주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 주일날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의 분들과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눕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여정의 길을 걷다 보면 수많은 담을 만나게 됩니다. 담이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담은 때로 우리에게 보호의 역할을 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이라든지 학교라든지 건물을 세우고 밤을 세우는 것을 보게 되죠. 담은 이렇게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동시에 이 담이라는 것은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죠. 우리가 꿈꾸고 계획한 일들, 그것을 시도하려 할 때에 예상치 못한 담이 내 앞을 딱 가로막아 전진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는 고난의 담, 실패의 담, 환경의 담, 그리고 우리가 자신이 해나갈 수 있을 만큼의 그 정점에 이르러서 하지 못하는 그러한 한계의 담이 우리 안에 있게 돼 있고 우리의 삶을 멈추게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요셉을 가리켜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그렇게 표현해 주고 있다는 것이죠. 요셉의 인생에도 수많은 담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담을 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갔다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이죠.
오늘 우리 24년도를 마지막 주로 보내면서 25년도를 맞이하는 귀한 성도님들, 특별히 오늘 졸업과 승급을 하는 그래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우리 귀한 학생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고 목사님 가정 모두가 요셉의 삶을 통해서 담을 넘어가는 믿음의 원리를 배우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와 능력이 어떻게 담을 넘는지 묵상함을 통해 우리가 서로 피차 배우고 앞으로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 담을 넘고 또 넘는 그러한 은혜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죽음을 앞에 두고 아들에게 축복하는 유언의 말씀 중에 한 부분이죠. 두 아들을 다 모아놓고 그들에게 한마디씩 한마디씩 유언을 합니다. 축복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죠.
그 가운데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가리켜 무성한 가지 샘 곁에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는 말을 선포하면서 그의 삶을 담 넘는 가지로 비유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는 요셉의 삶 가운데 고난도 있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승리가 있을 것이고, 그 가운데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 확장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함께 담아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깨닫는 지혜가 있어서 저와 여러분들 앞에 있는 담이 우리의 인생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요셉에게는 어떤 담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의 삶 가운데 찾아왔던 담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난의 담이 있었죠. 요셉의 인생은 우리가 성경을 볼 때 평탄한 삶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죠.
물론 그의 시작은 사랑받는 자녀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평탄케 시작하기는 했습니다만, 그 가운데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예상치 못한 고난의 담이 순식간에 찾아와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형들은 그를 미워했고 옷을 벗겼을 뿐만 아니라 구덩이에 넣어버린 것이죠.
그 후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을 다했지만 그곳에서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일을 겪게 되죠. 이렇게 고난의 담이라는 것은 시시때때로 요셉의 삶의 앞을 탁 하니 가로막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환경에 담이 있었겠죠. 그는 어린 나이의 형제들에 의해서 이방 땅 애굽에 팔려가서 그곳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가정, 가족, 그리고 문화와 단절된 채 완전히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방 땅에 팔려감으로 인해서 요셉은 익숙지 않았던 낯선 언어와 함께 했어야 됐고요.
신분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분이 아니라 종의 신분으로 전락했고요. 이방 문화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요셉은 고난의 담과 환경의 담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그의 삶을 복제해 왔다라는 것이죠. 물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담들이 그의 삶 가운데는 그의 삶의 인생을 가로막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러한 요셉이 담을 넘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함께 그것들을 발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첫 번째는요. 샘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22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이 담을 넘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가지가 샘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샘은 무엇입니까?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있기 때문에 이 요셉은 어떠한 담 앞에서도 항상 하나님이라는 셈, 그 안에서 살았던 것이죠.
여러분 샘 곁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먼저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우리는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늘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쓴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창세기 39장 2절에 보니까 노예에 있을 때에도 성경은 이렇게 요셉을 일컫습니다. 우리 39장 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여러분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했는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함께하신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요셉도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했었겠습니까?
요셉도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 그의 삶을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부단히 노력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라는 신분으로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이라는 환경에 있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형통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 39장 23절에서도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동일한 말씀을 주시죠.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십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누명을 쓰고 지금 감옥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뜻하지 않게 죄수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죠.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범사의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떠한 고난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형통한 자로 살아가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1년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참 너무 힘들었다 하시는 분들이 왜 없겠어요? 그렇죠 지친다 하시는 분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내가 살 힘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현장이 되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의 앞으로의 인생 가운데 여전히 담들이 우리 앞을 떡하니 가로막을 터인데 그럴 때마다 우리 하나님께 뿌리내려서 하나님으로 인해서 형통한 은총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따라서 샘 곁에 있다는 것은요 하나님께로부터 공급을 받는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죠.
또한 삼겹에 있다는 것은 여러분 그 잎이 우리 마련은 가뭄이 와도 풍성한 가시를 나타낼 수 있다라는 놀라운 은총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요셉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는 힘으로 살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죠.
여러분 예레미야 17장 7절에서 8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은은 혜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서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되셔서 그 뿌리가 강변에 쭉 뻗어내려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는 인생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잎이 청청한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이 결실을 맺어 살아가는 존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샘 곁에 있다는 것은요. 여러분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죠. 즉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된 상태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샘이 항상 물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그 나무는 주변에 가뭄이나 폭풍이 아무리 흔들어 될지라도 여전히 청청한 잎을 내게 되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 역시 억울한 배신을 당했죠. 환경의 압박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 자신의 믿음과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갔다는 것이죠. 한 농부가 마을의 가뭄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나무들이 메말라가고 있는데 이상하게 한 나무가 청청하게 잎을 잘 맺어가고 있는 거예요. 유례 없는 가뭄이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나무들은 다 말라버렸습니다.
근데 유독 그 나무만 너무나 싱싱했던 것이죠. 그래서 농부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알아보았더니 그 나무의 뿌리가 깊이 아주 깊이 뻗어서 저 깊이 흐르고 있던 지하수와 연결되어 있었던, 그러니 비가 오지 않아도 그 나무는 지하수에서 보내주었던 이 물의 공급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성장하고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적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 마치 광야를 살아가는 것 같지요.
그러나 그 광야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샘에 뿌리를 내리기만 한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왜 신앙의 위기가 없겠습니까? 그렇죠. 그러나 그 위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가 있다면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기쁨이 있다면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이 이 주님께로 오는 이 공급의 은총이 날마다 날마다 풍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샘곁에 산다는 것은 실제 무엇을 하는 것이 샘곁에 사는 것일까요? 우리 한번 따라해 봅시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자 빈 소리로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자. 샘 곁에 있는 가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기도,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거룩해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통한 순간에도 또한 억울한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그분과 함께했기 때문에 그는 형통한 삶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위기 가운데 있던 다윗도 동일한 마음으로 고백하지 않아요. 시편 1편 2절에서 3절인데 우리 한번 같이 읽어봅시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은요. 우리의 뿌리를 샘 곁에 주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여러분 삶의 고난과 장애를 넘을 수 있는 힘은 바로 말씀에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셔서 오늘 졸업을 하는 우리 귀한 학생들 모두 또한 25년도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 되어서 2025년도에는 올해보다 더 형통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삶 가운데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샘 곁에 살기 위해서 따라 합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자. 여러분 요셉은 자신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라는 사실을 믿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보디발의 집, 감옥, 그리고 그가 총리의 삶을 살 때에도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라는 것을 신뢰하고 고백하며 살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빌립보서 4장 19절은 우리에게 이런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함께 고백합시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세우시리라.
할렐루야. 샘 곁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풍성한 대로 세우시는 은총이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25년도 우리가 살아갈 때에 주님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 간증하며 살아가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뿐만 아니라 샘 곁에 살기 위해서 따라 합시다.
환경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자.
다시
환경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자.
요셉은요. 환경의 담을 넘어가면서 자신의 힘이나 지혜를 의지하지 않았어요. 항상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이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다는 거예요.
우리 잠언 3장 5절 6절 말씀 우리 믿음의 고백으로 함께 합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러분 요셉이 밤을 넘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삶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생이 그 뿌리 가운데 연결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올 각종 담 앞에서 요셉처럼 샘곁에 뿌리를 내려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지혜의 힘을 공급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원래 오늘 세 가지 말씀을 나누려고 했는데 한 가지만 해야 될 것 같아요. 시간이 벌써 50분. 첫 번째 샘 곁에 있어야 된다는 것만이라도 우리 여러분 잘 기억하시고 나머지는 다음에 이제 시간을 내서 이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두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어찌하든지 간에 우리의 인생 가운데 그 누구도 변함없이 찾아오는 당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이 붕괴되고 무너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되어서 하나님께 더 깊이 가까이 가까이 나아가 뿌리를 우리 주님의 샘 안으로 넣어서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그 놀라운 샘물을 통해서 사는 은혜 할렐루야 살아내는 은혜 삶을 통해서 생명을 선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