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가 희망인가?
정해경
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사회학으로 전과하여 3년의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 주제를 ‘국가폭력으로 인한 민간인피학살자를 사회적 재난 피해자로 인식을 전환해보자’로 정하고 연구계획서를 작성하였다. 그 후 3개월정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첫 번째는 대구10월항쟁을 연구하고자 생활기반을 옮겨서 대구로 왔는데 여러 여건으로 경산코발트광산에서 학살사건으로 중심축이 옮겨지면서 회의감이 들었다. 두 번째는 10월항쟁관련모임에서 유족도 함께 연구모임을 하고 있는데 유족 한 분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을 하였고 기각이 되었는데 이유는 자료가 없어서였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내가 쓴 석사학위논문은 진실화해위원회 신청에 필요한 자료가 되어 보내드렸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사회학논문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구가 희망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 마지막 ‘연구가 희망인가?’란 질문은 대학원 첫학기 마지막 세미나 시간에 나온 질문이었다. 대구에서 시민활동가로 활동한 학생이 ‘사회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우리가 이렇게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이야기되는 논의들이 과연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란 물음이었다. 교수님의 답변은 ‘본인은 학생운동을 했고, 노동자와 연대활동 끝에 감옥에 갔었고, 다시 공부해서 교수가 되었다. 교수님은 직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본인은 연구자의 정체성으로 노동, 소수자, 시민운동 등의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며 모든 사람들이 현장에서 운동할 수는 없다. 그 자리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연구를 다하면 답이 될 수 있는가?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가지고 사회학을 만났다.
그렇게 만났던 사회학이 어제 비판사회학세미나를 들으며 정리되는 부분이 있었다. 세미나내용은 80년대 사회학은 현실 사회의 모순을 밝히고 변화를 추동하는 학문이었다. 현재는 인문사회과학의 변화로 실용성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용역과 증거중심의 조사, 인문학의 대중화와 연성화, 문제해결 중심의 교육과 연구의 확산으로 인문사회과학의 순수한 이론적 탐구의 고유성을 강조하면서 학문에 실용적 쓰임 자체를 경계하는 태도가 있다. 이럴 때 학술연구의 장의 확대와 연구vs 실천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보다 ‘연구활동가’의 등장을 보면서 새로운 자기정체성이 필요하고 사회학의 쓸모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고 그 연구방법으로 ‘액션리서치’라는 방법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연구에도 새로운 방향성이 생기는 것이다. 연구를 통해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를 다시 연구를 통해 재인식하고, 그 연구가 현실(현장)에서 활동으로 움직이면 살아있는 연구가 되는 것이다. 사실 세미나모임에 나오면서 마음 한 구석에 ‘마르크스 원전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학생운동을 한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늦게 시작해서 석사학위받고 박사학위 과정에 있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홍승용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았고, 이현주선생님이 주시는 간식과 살뜰이 챙겨주는 마음이 좋아서 나왔다. 물론 같이 공부하는 세미나 팀원이 좋았지만 그 부분이 가장 컸다. 또한 대학원와서 느꼈던 ‘늙은 여자대학생’의 두려움도 있었다. 문득 드는 생각들, 많은 물음들을 여기서 묻는 것이 타당한가? 라는 자기검열로 작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질문으로 연구를 시작하고자 한다. ‘나의 연구는 어디에서 시작해야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