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때 할 대사를 쓰시오.
30 : 이제 나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을 느낀다. 20대와의 이별을 느낀다.
20 : 왜 이제야?
30 : 나의 20대를 대표하는 친구의 죽음과 좋아했던 누나의 결혼 소식 때문이다. 친구의 죽음은 말 그대로 종말을 뜻했다. 좋아했던 누나의 결혼 소식을 듣고서 그녀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내 모습을 보면서 느꼈다. 이제야 그 시절은 끝이 났구나.
20 : 너의 20대는 어땠나?
30 : 돌이켜보면 무지개빛 추억이다. 모든 것에 어설펐고 실수연발이었다. 촌스럽고 바보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모두 내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
이제 그 모든 처음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변변찮은 경험이지만 많은 것을 겪어버린 지금은, 무엇을 해도 처음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쉽지만 또 성숙했다고 느낀다.
20 : 돌아가고 싶은가?
30 : 아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저 지나간 기차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조금 기다리면 다음 기차가 올 것이고 다음 기차의 목적지 역시 앞서 달린 기차와 같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 : 무엇이 달라졌나?
30 : 많은 것이 달라졌다. 더 이상 급격한 성적 충동을 느끼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더욱 윤택해졌다. 청바지보다 정장 바지가 편해졌고, 이젠 밤을 새어가며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 부모님께 전화하는 횟수는 늘었고, 친구에게 전화하는 횟수는 줄었다. 조금 우울해졌지만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또 많은 것은 그대로다. 여전히 좋은 사람과 오래 함께 하고 싶고, 돈을 쓰는 곳도 그대로다.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고 주변을 걱정하는 소심한 마음도 여전하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20 : 나는 빨리 나이가 들고 싶다. 내 모든 것을 어설프게 보는 시선이 싫다. 어디에 가도 아직 학생 취급, 뭘 모르는 애 취급하는 것이 싫다. 빨리 서른이 되어서 인정받는 어른이 되고 싶다.
30 : 서두를 것 없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20 : 나는 너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다. 나의 하루는 매일 똑같은 것의 반복이다.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밴드 연습을 하고, 술을 마시고 게워낸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돈도 없어서 밥 먹는 것도 아껴야 한다. 그러다보니 옷 사는게 어려워서 더욱 촌스럽다. 미팅에서 만난 애에게 연락을 했지만 퉁명스러운 대답만 돌아왔다. 그리고 오후에 키큰 남자와 카페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조금 비참해져서 그 여자애를 속으로 욕했다. 나는 이정도일 뿐이야.
30 : 즐거운 날도 많았잖아?
20 : 그건 잠깐의 해프닝일 뿐이다. 보통은 지루하고 따분하다. 새로운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그건 잘 나가는 애들에게만 있는 일이다. 때때로 즐거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술을 진탕마셨을 때가 그렇고 밴드 공연날이 그랬다. 하지만 만취하면 실수만 늘 뿐이고, 밴드 공연은 1년에 서너 번 뿐이지.
나는 하루 하루가 눈부실 줄 알았다. 흥분, 열정 같은 것들이 나를 휘감을 줄 알았다. 영화에서 보는 모험이 가득 할 줄 알았다. 실상 흥분은 잠깐이고 생활은 하루종일이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해.
30 : 그것도 다 지나고 보면 추억이 아닐까?
20 : 그건 너도 마찬가지 일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