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의 서사
내 손은 당신의 손을 타면 꺾인다,
꽃처럼
바라보지 말아요
꽃이라면
피를 먹고 자랄 수 있겠어요?
나신의 어깻죽지로 나비를 불러들여 볼까요?
등으로
박물관 유리 속에 박제된 나비가
언젠가 날아내릴지 모르지만
당신의 손이 어깻죽지에서
등으로
등에서
허리의 굴곡까지 타고 내려가며
사건을 적어 내려간다 피의
서사가 생기고
당신이 솜에 알코올을 묻혀 방금 일어난
사건을 하나씩 닦는다
지운다, 덮는다
오늘은 겨울나비가 날아오르기 좋은 날이에요
피를 먹은 나비가
죽은 꽃 위에서 태어난다
방금 덮어버린
사건처럼
엄브렐러
하루분의 빛을 접는다
우산처럼 접으면
시간에서 분 단위로 분에서 초 단위로
생활이 살대처럼 접히는 밤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일 때마다
불면과 수면 상태에 따라 펴지고 접히는 우산처럼
빛줄기가 너무 일찍 접히거나
빗줄기가 너무 늦게까지 펴지는
우기와 건기처럼
좀처럼 펴지지 않던 우산이 오늘은 초저녁부터 활짝 펴졌다
꿈속의 기류에 흔들리면 뒤집힐 때도 있어서
오늘은 꿉의 살대를 잡고 버텼다
꿈속에서는 불면도 꿀잠이겠다,
믿으며 맞이하는 새벽
오늘 아침엔 어떤 우산을 쓸까
잠을 편다
우산처럼 펼치면
말과 말
내 말들은 부드럽습니다
혀보다 부드럽고
내 발보다 빠릅니다
울타리 밖을 내다보던 습관으로 목이 길어진
이 말들은 목초지와 방사도 좋아하지만
안전한 축사에서 보내는 하루 대부분의 잠을 즐깁니다
맨손은 부끄럽지 않은데 맨발은 왜 부끄러울까요?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말을 타고 가는 예의
어려서부터 교육받아서일까요?
밖으로 나가 볼까요?
서랍 안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말들을 고릅니다
오늘은 바람이 부는 날이므로
갈기가 휘날리면 좋겠습니다
보푸라기 일어난 말을 고릅니다
신으면 목이 늘어나는 말
신발과 맨발 사이에 있는 말
온종일 타고 다니다 집에 와 풀어주면
발목에 생긴 가로 줄무늬는
말에게 내린 채찍이 내 발목에 찍힌 까닭일 텐데
내가 길들인 것은 말일까요?
겨우내 말고삐를 조여도 말은 흘러내립니다
말을 씻기고 다시 서랍장에 넣습니다
돌돌 말아 던지면
양이 되는 말,
혀보다 목이 길고 얌전한
내 말들의 짐은 동글동글합니다
최현선
2019년 <<발견>> 등단
시집 <<펼칠까, 잠의 엄브렐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