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재물 때문에 슬퍼진 사람
(막10:17~22)
갓난아기에게는 엄마만 있으면 대만족입니다. 다른 것은 일절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걸어 다닐 때쯤이 되면 아버지의 손길도 필요하고 장난감도 필요하게 됩니다. 유치원에 갈 때쯤 되면 친구도 필요하고 놀이기구도 필요해집니다. 대학생 쯤 되면 취직을 걱정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결혼 걱정을 그다음에는 직장에서 승진을 걱정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고, 학원에도 보내야 합니다. 아버지는 밖에서 어머니는 집안에서 정신없이 뛰어야 합니다. 이러다가 나이 50이 너머서면 퇴직을 걱정해야 하고, 또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을 해야 합니다. 또 그때부터는 몸이 서서히 고장이 나기 시작하다가 얼마 후면 자리에 눕게 되고 그리고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이것이 과연 ‘사람의 일생’이 되어야 할까요? 저는 장례식을 치룰 때마다 항상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모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 장로님이 강사 목사님을 자기 집에 꼭 모시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사 목사님이 장로님의 얼굴은 보니까 얼굴은 50대로 보이는데 머리는 하얗게 세어있더라는 겁니다.
“한약을 잘 못 드셔서 그렇게 되셨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장로님의 대답이 “그게 아니고요, 제가 광산에 손을 댔는데 될 성싶어서 계속 돈을 꾸어다가 투자를 했는데 결국은 부도를 내고 집도 날리고 빚쟁이들한테 엄청나게 시달렸습니다. 밥맛도 잃고 잠도 자지 못하고 일주일을 보냈는데 그때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그다음에는 흰 머리카락이 나고 그래서 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러시더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이 백발 때문에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장로님. 인생 방향을 잘 틀었지요.
출세하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부자가 되면, 인기 있는 사람이 되면 행복해질 것 같습니까? 대통령이 되고도 슬퍼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떠나면서 슬퍼하셨고,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부하에게 총에 맞아 죽으면서 슬퍼했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수갑을 차고 법정에 서면서 슬퍼졌던 사람들입니다.
왕하5장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전쟁의 영웅으로 성경은 그를 ‘존귀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이 썩어 들어가는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전쟁영웅이면 뭘 하고 존귀한 자가 되면 뭘 합니까? 문둥병으로 슬픈 자가 되고 말았는데요.
강원도 태백에 가면 카지노 도박장인 강원랜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 근처에서 앵벌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한 때 사업가로, 대학교수로, 대기업의 간부로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도박으로 10억, 20억, 50억을 날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앵벌이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한 때는 자신들을 그렇게 즐겁게 만들어주었던 도박이 지금은 자신들을 슬프게 만들어 놓고 있는 거예요.
행복하려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때문에 슬퍼진 사람들도 있고, 자식을 낳아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 자식들 때문에 슬퍼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슬퍼진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17절에 나오는 사람인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보면 그 사람은 젊은 엘리트 관원으로서 부모로부터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부자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늙어서도 영생에 대해 눈을 못 뜨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젊은이는 젊어서 영생의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얼마나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청년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영생의 문제에 대해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이 젊은이를 테스트해보았습니다. 19절입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이것은 십계명 제6계명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이것은 제7계명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이고, “거짓 증언 하지 말라”는 제9계명이고, “속여 빼앗지 말라”는 제10계명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입니다.
예수님은 왜 하필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마지막에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6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하지 말라”는 계명은 내가 안 하면 그 계명을 100%지키는 것이 됩니다. “살인하지 말라”... 내가 살인을 하지 않으면 그 계명을 100%지키는 것이 됩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도둑질 안했으면 그 계명 100% 지킨 거예요.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계명은 얼마만큼 부모를 공경해야 100%지키는 것이 됩니까? “공경하라”는 이런 적극적인 계명은 사실 지키려고 하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섬기는 문제만큼은 한도 끝도 없이 해놓은 이유는 항상 부족한 마음으로 부모를 섬겨야 잘 섬길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놓은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젊은이의 대답이 20절에 나옵니다.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허풍이지요. 다른 계명들은 다 지킬 수 있었다 할지라도 부모 공경만큼은 100% 지킬 수 없었을 겁니다. 허풍에 대해서는 충격이 약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젊은이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2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아주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이에 대한 젊은이의 반응이 22절에 나옵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말씀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말씀이 걸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술술 넘어가야 하는데 넘어가지 못하고 체했다는 것이지요. 왜 체했을까요? 많은 재물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보물이 있는 그 곳이 네 마음도 필히 따라간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대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보물은 돈입니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 젊은 관원 즉 엘리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생보다 자신이 붙들고 있는 돈과 재물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사실은 이게 첫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 쯤 되어야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돈, 집, 땅, 건강, 친구, 취미 등등은 잠시 붙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붙들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부득불 다 포기하고 가야합니다.
중국 청나라의 절대 권력자였던 서태후는 죽을 때 자신의 보석들을 모두 무덤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 보석의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 보삭들은 당시 청나라가 지고 있던 빚을 다 갚을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합니다. 빚을 갚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보석이었는데 그걸 무덤으로 가져간 거예요. 그녀가 무덤으로 가져간 그 보석들은 3년 후에 모두 도굴당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도 내가 그 보석들을 붙들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아리마대 요셉. 마가의 모친 마리아... 이 사람들은 다 부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재물 때문에 슬픈 사람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재물을 아주 가치 있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재벌들에게 “당신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대부분은 ‘기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재벌들 중에는 지금까지 사회에 기부한 돈이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보다 더 많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청교도의 신앙유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욕심을 다스려라. 만일 네가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욕심이 너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욕심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지요.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찾아왔던 이 젊은이가 왜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갔습니까? 자신이 붙들고 있는 많은 재물 때문이었습니다. 그 손으로 영생을 붙들었어야지요. 이웃 사랑을 붙들었어야지요.
1960년부터 80년까지 20년간 하버드대학 MBA 과정을 졸업한 1500명을 조사했습니다. “나는 먼저 돈을 벌고 그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A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니까 A그룹은 돈이 먼저입니다. 인생에서 최고는 뭐니 뭐니 해도 돈입니다. B그룹은 “나는 먼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그러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A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무려 1245명이나 되었으나 B그룹에 속한 사람은 255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A그룹과 B그룹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했습니다. 이들 중 백만장자가 101명이 나왔는데 1245명이나 되는 A그룹에서는 단 한 명이 나왔습니다. 255명의 B그룹에서는 무려 100명이나 나왔습니다. 결국 무엇을 붙들고 사느냐가 자신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영국에 ‘캐리’라고 하는 부자가 있었는데 장남은 죠지였고 차남은 윌리엄이었습니다. 두 아들은 모두 명문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는데 장남 죠지는 사업을 잘해서 재력가가 되어 훗날 국회의원까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 대해서 매우 흐뭇하게 생각했습니다. 작은 아들 윌리엄은 인도 선교사로 가길 원했습니다. 당시 인도는 후진국 중의 후진국이서 아버지는 만류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은 인도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죠지와 윌리엄은 모두 죽었습니다. 세계적인 백과사전인 대영백과사전에는 이 두 형제의 이름이 모두 올라와 있습니다. 동생 윌리엄에 대해서는 무려 한 페이지 반에 걸쳐 그의 업적과 공헌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형 죠지에 대해서는 ‘윌리엄 캐리의 형’이라고 단 한 줄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선택을 잘 했습니까?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잘 선택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습니다.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모두 연습이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돼요. 한번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앞으로 남은 삶이라도 선택을 잘해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 때문에 슬픈 사람이 되서는 안 됩니다.
지식 때문에 내가 슬픈 사람이 되서도 안 됩니다.
재능 때문에, 재산 때문에 내가 슬픈 사람이 되서도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치 있는 삶! 세상의 빛 된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