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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회장님은 죽어버렸어. 내게 남겨진 건,
회장님의 영정 사진과 언제고 눈 먼 채로 날 외면하는 민이 뿐이었어.
허탈하게 웃는 이선생.
진 (기가 차서) 그래서, 그 분풀이를 민이에게 한다, 이건가?
이선생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그 애는 죽고 싶어 했어.
진 죽고 싶어 하는 사람 따윈 없어. 절대로! 그건 단지 편하고 싶은 당신 이기심일 뿐이야.
진이 이선생을 쏘아본다. 이선생, 진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차가운 시선이 무섭게 부딪힌다.
오대표가 창밖을 바라보더니 깜짝 놀라,
오대표 (넋이 나간 듯) 민이씨가 왔는데요.
급하게 일어나는 류진. 이선생이 나가려고 하자,
진 (무섭게) 당신은 여기 가만히 있어.
진이 문을 열고 나오다, 꼬마와 부딪힌다. 손에 들고 있던 소형 녹음기를 급히 숨기는 꼬마.
78. 실외. 저택 정문 앞. 밤
택시에서 내리는 민. 뛰어 나오는 진.
진 민아. 어떻게 된 거야?
민 오빠.. (태연하게 웃으며) 집에 있었어? 아무 연락도 없이 가버리면 어떡해?
진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었다. 일단 집으로 들어가자. 날이 차갑다.
민이를 감싸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류진.
민의 방 창문에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꼬마.
민 저기, 있잖아.. 류진 말이야. 태어나자마자 쓰레기봉투에 버려졌다는, 그 얘기. 자꾸 생각이 나.
그 얘기만은 사실이 아닐까? 가만히 그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류진이라는 그 사람은
어쩌면 그렇게 외롭고 또 외로워서 슬픈 사람은 아닐까... 그렇게 외로움과 슬픔에 익어서 거짓으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가만히 미소) 오빠, 나는 그 사람이 따뜻한 사람 같애.
진은 민의 말에 묵묵부답. 그러자, 민은 발걸음을 멈추고 진을 붙잡는다.
민 오빠..
진 응?
민 (약 봉투를 꺼내서) 이 약, 정말 죽게 해주는 그런 약이야?
진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리가. 그냥 너한테 용기 주려고-
민 (대뜸) 그럼 먹어도 상관없는 거지? (하는 동시에 캡슐을 꺼내 입에 넣으려는)
진 (민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다급하게) 안돼, 민아.
민 왜?
진 아니... 그건..
민 나한테 거짓말 한 거잖아. 나한테 용기 주려고... 아니야?
진 (마지못해) 그래... 맞아.
민 그러니까.. 이 약, 먹어도 죽는 건 아니잖아.
진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아니야, 아닌데. 그래도 먹지 마.
민 (차분하게) 이거... 진짜구나. 먹으면 죽는다는 거 거짓말이 아니었네.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는듯 한 민의 눈동자. 진은 마주할 자신이 없다.
진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애써 태연히) 왜 그런 생각을 해. 그 약 이리 줘 봐.
민의 손에서 약을 뺏어 쥐는 진.
진 민아, 이건 그냥 감기약이야. 있지. 오빠가 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엄청난 약을 구할 수가
있어. 요즘 처방전 없으면 약도 마음대로 못 산다는 거 몰라?
재빨리 캡슐을 열어 약을 버리고 다시 캡슐을 닫는다.
민 민아, 그래도 니가 못 믿겠다면... 내가 먹을게. 민이 너한테 괜한 약 먹일 마음은 없으니까.
미안하다. 이런 걸로 신경 쓰게 만들어서.
약을 다시 민의 손에 쥐어서 자기 입으로 집어넣게 하는 진.
약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손가락에 힘을 주어 캡슐이 아까와 달리 비어 있음을 알게 되는 민.
하지만 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약을 삼킨다.
민 (체념한 듯) 그래. 오빠는 내 오빠야. 틀림없는 내 오빠 황보 진.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민의 뒷모습.
민이가 집으로 들어서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선생이 맞이한다.
‘민아, 어떻게 된 거니? 병원은?’ 하는 이선생의 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79. 실내. 민의 방. 밤
까맣게 닫혀 있는 공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그 외로운 공간 속으로 들어서는 민.
의자에 멍하니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오르골이 비친다.
가만히 손을 내밀어 오르골을 찾으려 더듬거리는 민.
그녀의 손끝에 닿는 생소한 물건, 아까 꼬마가 들고 있던 소형 녹음기다.
그 앞에 놓은 점자 쪽지. <눈 먼 공주님.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가만히 녹음기의 버튼을 누르는 민의 손가락. 눈물이 그렁해진다.
80. 실내. 진의 방. 밤
아무렇지도 않은 능청스러운 표정의 꼬마.
꼬마 네. 전부 녹음 했어요. 그리고 선물했죠.
진 (황당한) 어떻게 그럴 수가..
꼬마 그렇게 안 하면 우리가 다쳐요. 이제 그만 하고 여길 나가야 되요.
진 왜?
꼬마 그럼, 여기 말뚝 박을 거예요?
진 (피곤한 듯) 아니. 난 왜 니가 그런 짓을 했는지 묻는 거야.
꼬마 더 이상 한심한 류진씨를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나한테 류진씨는 언제나 최고였어요. 나도
언젠가는 류진씨처럼 되고 싶다고 그래서 이번 일도 얼마나 기대하고 따라왔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돌아와요, 제발! 사랑을 보란 듯이 비웃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최고로 살아남는 그런 냉혈
류진으로 돌아오란 말이에요. 사람이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당신
이잖아요.
진 꼬마야, 넌 착각하는 거야. 그런 건 최고가 아니라 최악이야. 쓰레기지.
꼬마, 고개 돌린 진의 뒷모습을 보며 잔뜩 속상한 얼굴이다.
이게 아닌데, 이런 게 아닌데 하듯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다.
81. 실내. 거실. 밤
벽면에 걸려 있는 회장의 초상화를 올려다보며 회한에 잠긴 이선생. 낮게 한숨쉰다.
회한 섞인 그녀의 독백.
이선생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요...?
옆에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오대표. 이선생 차분한 걸음으로 오대표 곁에 와 앉는다.
이선생 당신은 시치미 떼고 결혼하도록 하세요. 회장님이 남겨주신 회사를 잘 이어가주길 바래요.
오대표 그렇다는 건... 당신 혼자서 모든 걸 뒤집어 써주겠다는 이야깁니까?
이선생 네.
오대표 원망하지 않으십니까? 저를...
이선생 사람을 원망하는 건 이미 질렸어요. (처연한)
82. 실외. 정원 연못 근처. 밤
수북이 낙엽이 가득 쌓인 연못. 그 주변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연못 근처 벤치에 멍하게 걸터앉아 있는 진. 담배를 피우며 올려다 본 곳에는 민의 방 창문이 있다.
진, 연못 안으로 퐁- 퐁- 작은 돌멩이를 던져 넣고 있다.
잉어들이 먹이를 던져주는 줄 알고 허겁지겁 달려든다. 마치 돈을 향해 아귀다툼 하는 사람들 같다.
민 오빠?
민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진.
진 민이니? 기다려. 오빠가 갈게.
일어나 걸어가려다가 멈춰 서서 눈을 감고 진 쪽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민을 본다.
천천히 눈을 감는 진. 조금씩 발을 옮기며 앞으로 나아간다.
진 민아...
민 왜?
한발자국씩 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진.
진 민아... 어디 있니?
민 (갸웃) 여기. 오빠, 나 여기 있어. (손 따위를 흔들어 보이는) 오빠?
진 (더듬더듬) 지금... 가고 있어.
진이 눈을 감고 걸어오고 있음을 알아챈 민. 팔을 뻗어 진을 찾는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힘겹게 민을 향해 가는 진.
지척에 서로를 두고서도 쉽게 닿지 못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안타깝다.
뻗은 손끝으로 겨우 민을 느낀 진. 그녀의 손을 잡는다.
천천히 눈을 다시 뜨자, 눈물을 글썽이고 선, 민의 얼굴이 보인다.
민 무서웠어?
진 조금.
민 오빠 나 보고 있는 거야?
진 그래...
민 나도 오빠 보고 있어. (미소 지으며) 오빠의 얼굴이 이제야 제대로 보여.
진 (애잔한) 민아.
민 그리고 나도 보여... 오빨 보고 웃는 내가 보여. (손을 놓으며) 고마워, 오빠.
진이 안타깝게 민을 바라본다.
진 (N.A.) 민아... 나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아.
83. 실외. 저택과 농원의 전경. 낮
청명하게 맑은 하늘. 가을은 성큼 다가온 듯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다.
그리고 그 아래 눈이 부시도록 펼쳐진 농원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민 (소리) 변호사님, 그럼 제가 부탁드린 대로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저희 집으로 와주세요.
84. 실내. 식당. 낮
불편한 침묵이 가득한 식당.
오대표, 이선생, 류진이 긴장한 채 앉아 있다. 이어, 변호사가 들어오더니 정중히 인사를 건넨다.
더욱 긴장하는 오대표와 이선생, 류진. 서로 말이 없다.
85. 실내. 부엌. 낮
지글지글 보글보글.
넓은 부엌을 오가며 서툴기만 한 민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그 옆에서 꼬마는 입으로 거들 뿐 구경만 하고 있다. 오히려 민이 움직이는 데 방해만 된다.
꼬마 아, 탈 거 같은데.
마음 급한 민, 그만 그릴에 손을 데고 만다. 짧은 민의 비명.
이선생이 화들짝 놀라 달려온다. 이선생이 민의 손을 차가운 물에 담가준다.
이선생 (차분한 음성으로) 뜨거운 것에 대이면 이렇게 곧바로 물에 씻어주면 돼. 좀 심할 땐 물에 더 오래
넣어두면 되고. 알겠니? (그러나 민의 얼굴을 보지는 않는다.)
86. 실내. 식당. 낮
정갈하게 차려진 민이표 만찬. 특히 진이가 좋아하는 생선 구이가 눈에 띈다.
어딘가 정리를 마친 듯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민에 비해 다른 모두는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
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생글거리며) 여러분, 제가 만든 첫 음식들이에요. 맛있게 먹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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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이도령을 바라보는 박찬호와 뻐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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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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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입에 물고 거울을 보며) 이소룡두 사망유희에서 압둘 자바랑 싸울 때 기습공격으로 급소를 노린 거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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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 나게 옷매무새를 만진 뒤 멋있게 담배를 쭉 빠는 이도령.
:
거울을 보며 씨익 웃고는- 몸을 돌려 카메라를 향해 담배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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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휙- 휙- 나는 담배가 화면과 충돌하며 팍! 하고 불꽃이 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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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과 함께 이어지는 메인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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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4. 피도 눈물도 없이 no blood & no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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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5. 유흥가 대로변 - 실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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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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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회복제와 박카스를 마시는 여자 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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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피곤이 느껴지는 무표정한 얼굴의 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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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문이 열리며 차에 오르는 술에 만취된 중년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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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동작으로 아무런 감정 없이 미터기를 켜고 기어를 넣는 경선.
: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경선의 차가 출발한다.
:
집안에 진열되어 있는 독불이의 복싱 신인왕 트로피와 선수시절의 사진들,
그리고 수진의 라운드 걸 시절 사진 등을 훑어내는 카메라.
침묵맨이 뒷짐을 지고 진열된 사진과 트로피들을 둘러보고 있다. 이 위로-
독불이
(소리) 요새 몸들을 좀 사리는 눈칩니다.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침묵맨.
수진이 화장실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전화기를 들고 나온다.
KGB
내가 웬만하면 싫은 소리 안 하려고 했는데…….
확! 던져버린다.
이때 독불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짜증을 버럭내며 발로 걸리는 것을 쳐내는 독불이.
독불이
(시선은 수진에게 고정한 채 전화 받으며) 예.
46. 달리는 독불이의 차 안 - 실외/낮
수진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있다.
수진
안가! 안가! 안 간다고 했잖아! (창문을 열고) 아저씨 사람 살려요!
퍽!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수진에게 펀치를 날리는 독불이. 힘없이 축 늘어지는 수진.
47. 단란주점 빅토리아 - 실내/낮
룸밖에 침묵맨이 서있고 이도령이 룸에서 쟁반을 들고 나온다.
꾸벅 룸 안에 대고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이도령을 잡는 침묵맨.
흠칫 놀라는 이도령. 침묵맨이 손가락을 비비자 이도령이 안심하며 담배를 꺼내 건넨다.
침묵맨에게 담배 불을 붙여주는 이도령.
KGB
(소리) 빠른 시간 안에 계약 게임 한판 벌려야겠는데 말야…….
48. 단란주점 빅토리아/룸 - 실내/낮
담배에 불을 붙이는 KGB. 그 앞에 독불이와 선글라스를 낀 수진이 앉아있다.
독불이
무슨 일인데 이렇게 갑자기…….
KGB
최근에 내가 인수한 호텔에 좀 문제가 생겼어. (뜸을 들이다가) 자네 재활민주연합회라고 아나?
독불이
그럼 정치 쪽에서…….
KGB
아니 그건 자민련이고.
테이블 밑에 부착된 소형녹음기가 돌아가며 이들의 대화를 녹음하고 있다.
49. 지하 이발소 - 실내/낮
돌아가는 소형녹음기…….
KGB
(소리) 이번에는 그놈들이 문제야. 거기 지방 애들하고 붙어서 합동으로 권리금을 요구하는 거야. 나만 뒤통수 맞은 거지.
녹음된 내용이 흐르며 주의 깊게 듣고 있는 마빡과 최 형사,
그리고 이도령의 모습이 차례로 보여진다.
독불이
(소리) 법적으론 어떻게 안 되는 겁니까?
KGB
(소리) 다 알아봤지만 소용이 없어. 더군다나 내가 거기서 법적으로 나가면 역으로 나한테 돌아올 피해도 계산해야되고……. 결론은 현찰로 해결을 봐야 된다는 건데…….
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녹음된 소리가 지워진다.
마빡
(당황하며) 뭐야? 이거 왜 이래?
이도령
(녹음기를 들고 툭툭 치며) 어라?
계속 묵음만 들리자 마빡이 녹음기를 뺐어들고 이리저리 작동해 본다.
이도령
(마빡이 노려보자) 전 몰라요! 손도 안 댔어요!
마빡
너 이 새끼, 만약에…….
이때 다시 녹음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KGB
…….이번에 한 번 크게 벌리면 자네도 일어서야지. 언제까지 몸에 개털 붙이고 살 순 없잖아. (일어나는 소리) 그럼 빨리 작업준비 하라고. 시간 없으니까.
황당한 표정의 마빡 반장. 열 받아 책상을 탕! 치고-
최 형사
제가 뭐랬습니까. 이렇게 원시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는 마빡…….
50. 수진과 독불이의 집 - 실내/밤
마감뉴스가 텔레비젼에서 흐르고 있는 가운데 수진이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우고 있다.
독불이는 소파에 누워 자고 있다.
앨범을 꽂으려다 앨범에서 떨어지는 사진을 보고 동작을 멈추는 수진.
나레이터 모델 시절에 찍은 듯한 예쁜 수진의 모습.
옛 시절 사진을 보고 추억에 잠기는 수진. 앨범을 펼쳐본다.
각종 나레이터 모델 사진들과 라운드 걸을 할 때의 사진들을 지나,
젊고 혈기왕성한 독불이와 함께 찍었던 옛 사진을 본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멋진 독불이와 수진의 예쁜 미소…….
사진 속의 수진은 눈가의 흉터가 보이지 않는다.
앨범을 덮고 일어서려다 거울을 보는 수진. 눈가의 흉터가 유독 크게 보인다.
흉터를 만져보는 수진. 그러다 거울에 비치는 독불이의 모습을 본다.
돌아보면, 배를 내놓고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잠든 독불이의 모습.
독불이를 보며 한숨짓는 수진……. 페이드 아웃.
51. 달리는 경선 택시 안 - 밤
페이드 인. 운전하고 있는 경선. 백 미러로 뒤를 힐끔힐끔 보는데.
뒷자리의 노파. ‘불룩한’ 핸드백을 꼭 껴안고 있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눈.
일수 책을 넘기는 손길. 손가락의 반지들. 앞에 보이는 교차로 표지판.
경선
빠른 길로 갈게요.
노파
속이지만 말어. 노인네들 택시만 타면 덤탱이 씌울라구 난리들이야. 노인네들이 무슨 돈이 있다구…….
경선
아녜요 할머니. 이 길로 가면 10분은 절약되요.
한적한 도로로 빠지는 경선의 택시.
52. 공사장 부근 골목 - 밤
달려오는 택시. 인적 없는 골목으로- 갑자기 끼익, 멈추는 경선.
백미러로 마주치는 노파의 눈. 순간, 몸을 돌려 노파 목을 조른다.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노파. 손에 잡히는 뭔가로 내려치는 경선. 튀기는 피! 피!
자신도 놀라 경악하는데…….
노파
(소리) 아, 뭐해! 이 앞에 세워달라니까!
53. 달리는 경선 택시 안 - 밤
퍼뜩, 정신 드는 경선. 급브레이크를 밟고. 빠앙!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뒤의 차.
노파
이런, 정신을 어따 두고…….쯔쯧……. 자, 지나왔으니까 삼천 오백원만 받아.
동전까지 챙겨 내고서 내리는 노파. 작은 세탁소로 들어가는 노파. 부부와 손자가 반긴다.
인자하게 웃는 노파. 불룩한 핸드백에서 꺼내는 사탕봉지.
멍한 표정으로 보는 경선. 핸들에 머리를 떨군다. 페이드 아웃.
54. 수진과 독불이의 집 - 실내/낮
화장실 문을 연 채 좌변기에 앉아 전화통화중인 독불이.
독불이
글쎄, 그건 염려마시고, 큰손들로 좀 모아주세요. 이번에 판이 진짜 크다니까 …….네, 네. 이쪽 짜바리들 분위기가 괜찮아요. 이런 기회 다시없어요…….
방에서 나오는 수진.
좌변기에 앉아서 전화하던 독불이가 수진을 보더니 슬쩍 화장실 문을 닫는다.
독불이로부터 소외 받는 느낌이 드는 수진. 뭐라고 한마디하려다 그냥 주방으로 간다.
식탁엔 쌕쌕이가 앉아있다.
수진이 물을 마시려 컵을 들자 쌕쌕이가 재빨리 물통을 들어 수진에게 따라준다.
물병을 거두며 수진에게 미소를 띄우는 쌕쌕이. 슬쩍 수진의 엉덩이를 만진다.
쌕쌕이를 보며 같이 미소짓는 수진. 마치 라운드 걸처럼 옆에 놓인 쟁반을 들어올린다.
<인터 컷>
“와아!!” 뜨거운 열기의 권투장 링 한가운데서
마치 챔피언처럼 라운드 판을 들고 서있는 수진.
깡!- 소리와 함께 화면 넘어오면,
수진이 들고있던 쟁반으로 쌕쌕이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 프리즈 프레임.
55. 칠성파 사무실 - 실내/낮
칠성이와 부하들이 나란히 서있는 가운데,
칠성이의 의자에 짱가가 앉아 거만한 자세로 장부를 넘기고 있다.
짱가의 뒤에 버티고 선 어깨와 눈싸움을 벌이는 칠성파…….
짱가
(인상 구겨지며) 선배님, 이거 뭐 하자는 거유-? 제대로 수금이 된 게 없잖어유……. 그 쥐새끼 같은 년은 아예 이자도 한 푼 안 냈잖어 이거?
칠성
(난처한 표정으로) 걔는 이번 주까지는 해결이 될 거야……. 내가 이번에 해결 안되면 사지를 다 찢어버린다고 한번 으악 죽였으니까…….
짱가
(장부를 책상에 탁! 던지며 일어나) 아니 무슨 아르바하는 애덜두 아니구 일 처리하는 게 왜 이 모냥이유! 그렇게 따지면 여기 장부에 올라온 애덜 몽땅 사지가 찢겨도 벌써 다 찢기고 내장까지 발라져 있어야 되는 거 아뉴?
칠성
………….
짱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만만해 뵈니께 이러는 거 아뉴 만만해 뵈니께……. 선배님덜 다니실 때하군 달러유. 요샌 사업 마인드가 흐리면 아무 것도 모데유.
문 쪽으로 가는 짱가. 어깨가 문을 열자 문 밖으로 나서다 돌아서며,
짱가
선배님, 마지막이유. 이 돈 이번 달까지 안 들어오면 전 끝장이유. 뭐, 아시겄지만 제가 절단나기 전에 선배님도 편하진 않을규. 제 말 뭔 말인지 알쥬?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문을 쾅! 닫으며 나가는 짱가와 어깨.
칠성이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와이프 아웃.
56. 달리는 경선의 택시 안 - 실외/낮
차에 손님을 태우고 달리는 경선. 핸드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는다.
경선
여보세요?
57. 칠성파 사무실 - 실내/낮
탁상용 달력을 손에 든 채 험악한 인상을 쓰고 전화를 하는 칠성이.
칠성
용건만 말하겠다. 나도 참는데 까지 참았어. 이번 주까지 원금 안 들어오면 우리 작업 들어가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이게 마지막…….
58. 달리는 경선의 택시 안 - 실외/낮
경선
(크게) 안 들리니까 다시 하세요!
59. 칠성파 사무실 - 실내/낮
벙찐 얼굴로 허탈하게 손에 들고있는 수화기를 바라보는 칠성…….
60. 권투 체육관 - 실내/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독불이. 썰렁한 체육관엔 관장과 청년 둘 뿐이다.
청년의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는 관장. 독불이를 보더니 차갑게 외면한다
독불이
요샌 체육관이 조용하네요…….
관장
(청년에게) 오늘 그만 하자. 체육관 문 닫아라.
돌아서 사무실로 향하는 관장.
독불이
(관장을 잡으며) 관장님.
독불이가 자신의 팔을 잡자 다짜고짜 독불이의 따귀를 때리는 관장.
관장
무슨 염치로 여길 찾아 와!
<인서트 플래쉬 백>
권투 시합장. 격렬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독불이. 갑자기 날리던 펀치를 멈춘다.
상대와 짧은 시선이 오간 후 상대가 독불이를 향해 어이없는 펀치를 날리고-
독불이는 힘없이 다운된다. 링 아래서 독불이를 향해 고함치는 관장.
슬며시 눈을 뜨는 독불이. 미친 듯이 소리치는 관장. 그 뒤로 조명 이동하면,
게임을 관전하던 KGB 가 묘한 미소를 띄우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눈을 감고 완전히 바닥에 늘어지는 독불이.
링 아래의 라운드 걸 수진이 이런 독불이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61. 수진과 독불이의 집 - 실내/밤
수진이 소파에 앉아서 리모콘으로 이리저리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본다.
수진
뭐 이렇게 재밌는 걸 안 해?…….
이때 삐빅- 휴대폰 메시지 전송음이 들린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수진. “오늘 늦는다”. 휴대폰 닫는 수진. 잠시 멍하니 있는데,
점점 수진의 의식 속에서 텔레비전의 소리가 잦아든다.
아무생각 없이 핸드폰의 1번 버튼을 누른다. 뚜-
액정화면에 “집”이란 글자와 함께 전화번호가 뜬다. 집안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계속 전화기를 바라보는 수진. 어느새 텔레비전 소리는 완전히 사라지고-
전화기를 보고있는 수진의 옆으로, (수진, 전화기 액정, 수진의 의식, 세 개의 분할화면)
집안에서 수진에게 수작을 부리던 침묵맨과 쌕쌕이의 화면이 펼쳐진다.
휴대폰의 2번 버튼을 누르는 수진. 뚜- “독불이”란 글자와 함께 전화번호가 뜨고,
술에 취해 수진을 구타하는 독불이의 모습이 펼쳐진다.
다시 3번 버튼을 누르는 수진. 뚜- “KGB"란 글자와 함께 전화번호가 뜨고,
KGB
(집) 참, 산다는 건 힘든 거야. (느끼한 미소) 안 그래? (점프/단란주점 룸) 빠른 시간 안에 계약게임 한 판 벌려야겠는데 말이야…….
분할화면 걷히며 4번 버튼을 누르는 수진.
액정화면엔 “빈 번지입니다” 라는 글씨가 생기고,
5번, 6번, 7번……. 이후의 번호들 모두 빈 번지라고 표시된다.
핸드폰을 끄고 한숨을 쉬는 수진……. 뭔가 생각에 잠기는데…….
치이익- 다시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에 KGB의 모습이 나타난다.
KGB
빠른 시간 안에 계약게임 한 판 벌려야겠는데 말이야……. 급하게 큰 현금을 좀 돌릴 일이 생겼어.
넋 나간 사람처럼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수진…….
62. 권투 체육관 - 실내/밤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소주를 마시는 관장과 독불이.
관장
요즘 누가 권투 배울라구 그러냐? 좋은 시절 다 갔지……. 니가 멍청하게 부정시합만 안 걸렸어도……. 김금복이는 잘 해 주냐?
독불이
그냥 먹고살게는 해 줘요.
관장
당연히 그래야지. 아까운 선수 하나가 지 놈 때문에 쌩 양아치 됐는데…….
독불이
저도 조금 있다가 독립하려구요……. 이런 체육관 하나 운영하면서…….
관장
하겠다. 얘. (세워진 앞머리를 보며) 참 유행도 드러운 유행이야. 이러다 앞머리만 쏭땅 다 빠지면 어쩌니?
어리둥절한 나난.
재호,나난: 정말 걔 무섭다. 결국 파혼하고 돌아와? 그럴 거, 왜 진작 못 그랬대?
동미: 실장님이 계시는 한 회사 짤리는 일은 없겠군요?
마실장,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동미 어깨에 손을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