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 / 김석수
엠비(MB) 정권 시절 영어교육 강화 정책으로 연수원에 부서가 신설됐다. 직원은 부장과 연구사 네 명, 주무관 두 명, 원어민 교사 일곱 명으로 모두 열네 명이다. 내가 부서 책임을 맡았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 어려운 일이 많았다. 먼저, 외국어 교육 전용 연수관을 마련해야 했다. 예산에 맞게 시설을 설계하고 기자재를 사야 했다. 유능한 원어민 교사를 모집하는 간단치가 않았다. 영어 교사 연수와 학생 영어 캠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도 어려웠다. 그런데,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연구사 네 명 중 세 명은 영어 전공자이고 ㅊ 연구사는 다른 전공자다. 부서 특성상 영어로 소통하는 일이 많다. 원어민 교사가 참석하는 회의는 물론 연수생에게 하는 강의도 영어로 한다. ㅊ 연구사는 ㅅ 교육 지원청에서 근무하다 자원해서 이곳으로 왔다. 그녀는 처음 만나자마자 내게 도교육청에서 높은 직위가 있는 사람이 은사라고 했다. 조심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말했다. 약간 당돌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우리 부서 직원은 대부분 일이 많아서 주중에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까지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근무했다. 그녀는 불평이 많았다. 얼굴을 찡그리며 내 방에 들어와 원어민 교사와 함께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불평했다. 그럴 때마다 공감해 주고 잘해 보자고 했다. 일이 많다고 여러 번 하소연해서 다른 연구사를 설득해서 그녀의 업무를 줄여 주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는 이전에 근무했던 곳에서 대인 관계와 업무 문제로 다른 사람의 원성을 많이 샀다. 직장에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병가를 내고 가끔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원어민 교사와 함께 프로그램 운영 회의를 하던 중 쉬는 시간에 내 방에 들어와서 “부장님, 이제 영어로 회의 그만합시다. 원어민도 한국에 왔으니 한국말로 해야죠.”라고 불평했다. 의사 소통이 잘 안 되면 회의 끝나고 내용을 알려 주겠다며 달랬다. 다른 연구사는 그녀는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며 “그녀는 업무 중에 전화 통화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개인적인 일로 시끄럽게, 오래 통화한다는 것이다. 주무관에게 자주 호통친다. 원어민 교사와 의사 소통이 잘 안 된다.”라고 토로했다. 그녀가 불쌍하고 가련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와 다른 연구사의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영어 전공이 아니라서 업무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라며 다른 연구사에게 이해하고 잘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연구사는 “부장님은 왜 ㅊ 연구사 편만 드세요?”라고 따졌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른 연구사의 불만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들의 불만은 사실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대꾸했다. 내 처지가 중간에서 이렇게 하기도 저렇게 하기도 어려웠다. 산더미 같은 일을 일정대로 처리하려면 팀워크가 중요하다. 업무가 분담되어 있지만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이 많다.
어느 날 도교육청으로 출장 갔다가 우연히 그녀의 은사를 만났다. 그는 내게 잠깐 보자고 그의 사무실로 같이 가자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를 나무랐다. 그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직원 관리가 중요한데 사람을 편애한다.”라고 큰소리쳤다. 그 순간 그녀에게 품었던 연민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분노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녀가 사실을 왜곡해서 고자질한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해도 그는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자기 말만 계속했다. 그런 일이 있고서 그녀가 ‘미운 오리 새끼’로 보였다.
부서가 신설된 지 1년이 지나서 ‘외국어 연수 전용 건물’이 완공됐다. 우리 부서는 물론 연수원 전 직원이 완공 기념행사를 준비해야 했다. 도지사와 교육감은 물론 국회의원과 도의원을 초청하는 큰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행사 며칠 전에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했다고 통보해 왔다. 다른 직원이 수군거렸다. “ㅊ 연구사, 근무하는 기관에 큰일 있으면 항상 병원에 입원해. 그 얼굴 안 보니 좋네. 같이 있으면 시끄럽고 피곤할 텐데.” 행사가 끝난 뒤 그녀는 당당하게 출근해서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참 얄미운 사람이다.
그녀와 헤어진 뒤 ㅈ 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할 적에 지역 교육장이 함께 식사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는 ㅊ 연구사와 ㅈ 교육청에서 함께 근무한다면서 그녀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직원과 갈등이 많고 공문서 처리를 잘못 한다. 회의하는 도중에 생뚱맞은 말을 한다. 일을 저질러 놓고 뒤처리를 못 한다. 직장의 문제를 상급 기관에 고발한다고 협박한다.”라고 했다. 그녀는 예전에 근무했던 곳에서 했던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내게 어떻게 대처했으면 좋을지 물었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받는 불이익과 미묘한 차별 즉, ‘자기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증거를 차곡차곡 수집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억눌린 감정을 부정적으로 발산한다.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은 ‘미운 놈’이 전체 분위기를 흐리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그녀는 교장으로 승진해서 타도로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학교에서 ‘미운 오리 새끼’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