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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장 방심하지 마
이 홍사
괜찮아, 신 사장!
걱정하지 마! 요 정도 움직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
지금? 주유소에 갔다가 오는 길이야.
미얀마 의사는 이렇게 두면 관절이 굳는다고 이제부터 운동해야 한다며, 무릎 아래 위를 쥐고 이렇게 꺾는데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쭉 빠지더라고. 근데 저 강남병원 원장은 지금 무르팍을 구부리면 큰일 난다고 무르팍 못 구부리게 이걸 다시 메어 주는데, 처음에는 이만큼 길었다니까. 무르팍 구부리지 못하게 하는데 발목부터 엉덩이까지 대놓을 게 뭐야? 이게 엉덩이까지 올라와 있으니 이런 의자에 앉는 건 지장이 없는데 화장실 변기에 앉을 수가 있어야지.
간호사들한테 좀 잘라달라고 했더니 원장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거야, 얼마나 성질이 나는지, 타이어 가게, 임 사장한테 전화해서 톱날, 그거 있지? 쇠를 자르는 톱날, 작은 거, 그거 하나 사 오라고 해서 내가 뭉텅 잘랐지. 이렇게 잘라도 무르팍이 움직이지 않잖아. 본질에 충실하면 되는 거지, 뭐!
자르고 나서 그날 회진 도는 원장에게 이만큼 잘랐다고 했더니, 잘했다고 하더구만, 그놈의 간호사들은 융통성이란, 정말로. 그게 뭔 환자 입장? 무슨 환자를 생각해?
걱정하지 마. 요 정도 운전쯤은 장난이지. 주유소 사장이 보기에 딱했던지, 아주 환장을 하더구만, 외국에 있는 줄 알았는데 목발을 짚고 내리니 뭔 일인가 싶었겠지. 지난주에 주유소 한 달 치 기름값을 송금하면서 외국이라 했는데, 추석이나 되어야 들어오겠다던 작자가 목발을 짚고 나타났으니.
괜찮아! 이런다고 더 무리 가는 건 아니야. 통증만 좀 더 가라앉으면 마라톤이라도 나가겠는데?
주유소? 주유소야, 외상 카드 만들어야 마누라가 가더라도 카드로 외상 기름을 넣어줄 거 아니야.
저 차? 샀지.
귀국하면서 인천에서 끌고 내려온 거야, 아, 괜찮다니까, 인천공항에서 여기까지 끌고 온 마당에 주유소 잠시 갔다가 온 게 뭐 대수라고.
차에 타고 내릴 때를 제외하고는 불편한 게 없다니까. 달릴 때는 불편한 거 몰라, 밖에서 보는 놈도 모르겠지. 다리 다친 놈이 저렇게 빨리 달려? 알 게 뭐야, 밖에서 보이지 않으니, 다리를 다친 놈인지 카 레이스를 하는 놈인지.
미얀마에서 운전을 잘했어.
미얀마에 있는 차가 일제 토요타 마크 투인데, 그게 훨씬 편했어. 그래 신 사장 바로 그거야, 그 차는 우측 핸들이니 이 다친 다리부터 먼저 들어가잖아? 굽지 않는 이 왼쪽 다리부터 먼저 번쩍 들어서 브레이크 페달 밑으로 발을 밀어 넣고 엉덩이를 살짝 돌리면서 의자에 앉은 다음 오른 다리, 마음대로 구부려서 안으로 넣으면 간단하잖아? 그런데 들어와서 한국 차를 타 보니 영 어색한 거야. 오른쪽이 먼저 들어가고 굽지 않는 왼쪽 다리를 나중에 넣으려니 문과 의자 사이에 공간은 좁지. 의자를 뒤로 쭉 밀었다가 왼쪽 다리를 넣고 자리를 잡은 다음에 다시 의자를 운전하기 좋은 상태로 당겨서 자세를 잡아야 한다는 거. 한국 차에 맞추려면 오른 다리를 다쳐야 마땅했어. 뭐? 오른 다리를 다쳤으면 브레이크 페달을 못 밟는데 운전이나 되겠냐구?
그러네! 정말 왼쪽을 다치기를 잘했네?
다리를 이렇게 묶은 놈이 운전하니까 미얀마의 이웃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구, 다리를 다쳤는지 목발 짚고, 다리를 질질 끌고 온 놈이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 앉자마자 그렇게 달리니, 그게 신기하기도 했겠지.
통증?
통증이 왜 없겠어? 다리가 이만큼 잘렸는데, 집구석에 누웠다고 통증이 없나?
신 사장, 생각해 봐, 여기 무르팍 밑에, 그것도 쪼그려 앉았으니, 여기 살점이 어디 있어? 가죽 아래 바로 뼈고 인대고 슬개골 아니야? 여기가 이만큼 날아갔으니, 통증이 없을 수가 있겠어? 그런 놈이 다리를 끌고 와서 운전해서 가니 차가 출발하는데 야자수 그늘, 평상에 앉아서 보고 있던 어떤 새끼는 박수를 보내는 놈이 있었다니까, 나를 따라다니는 매니저, 그 새끼 매니저는 아니야, 매니저 새끼가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해서 자르고 통역이 필요할 때마다 용돈 조금씩 주며 불러 쓰는 놈이 있는데, 그놈이 묻더라고, 이 상황에 어떻게 일을 하느냐구?
대답을 내가 뭐라고 한지 줄 알아?
너 인마, 군데 안 갔다 왔잖아?
군대 갔다 온 한국 사람은 달라! 전쟁 중이라고 생각해 봐, 이 정도 다쳤다고 가만히 서 있겠어? 뒤에 총알이 날아오는데? 윗도리 군복 북 찢어서 묶고 피만 안 나게 질끈 묶어서 막 달려부러! 인마, 안 달리고 배겨? 뒤에 총알이 날아오는데? 전쟁 끝나고 저쪽에 가서 상처를 보고 픽 쓰러진다고, 여기가 뭉텅 잘려서 다리가 없다? 인마! 그래도 달려!
그 새끼 가만히 듣더니 나하고 말 안 하겠대! 독종이라고.
저 차?
그래 미얀마에 앉아서 카톡으로 흥정하며 샀어.
그렇지. 세상에는 카톡으로 흥정해서 차 사는 놈도 있어!
바로 여기 있잖아?
막상 해보니 그렇게 어려운 거 없든 걸? 그 나라에서 한국에서 가져간 일반전화는 오지게 비싸! 통화품질도 엉망이라 인터넷으로 차를 먼저 마음 속으로 찍은 다음에 문자 메시지를 보낸 거지, 전화는 한 통화도 안 했어! 내 전화번호를 찍어주고 카톡을 연결 좀 해라. 여기 미얀마인데 당신이 팔고자 하는 그 차량 외제 차에 관심이 있어 문의를 좀 하겠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니까, 이게 뭐야? 싶었는지. 바로 카톡이 날아오더라구, 그래서 이틀에 걸쳐 카톡을 주고받으며 샀어. 그 사람도 중고차 장사, 이십 년에 카톡으로 차를 팔아보긴 처음이라는 거야. 어려운 거 없이. 서로 믿고 하면 간단해. 흥정하고 거래하면서 모레 새벽에 인천 공항 2터미널로 차를 가져와라! 중고차 장사들 지방까지도 배달하면서 파는데 인천에 있는 차를 인천공항으로 좀 가져오라는데 그게 뭐 대수야?
아이고, 그러겠습니다. 여부가 있습니까?
그러겠지. 신 사장!
중고차 보러 사흘 돌아다니는 놈은 절대로 차를 못 사여.
이거 보면 저게 맘에 들고 저거 보면 아까 봤던 게 가격이나 색상, 모든 면에서 그게 더 좋은 거 같고, 어떻게 중고차를 사? 제 기준이 없으니, 차를 못 사지.
어떤 기종의 어떤 색상, 가격은 대충 얼마를 정도 예상한다. 이거만 확실하게 머리에 못을 박으면 사는데, 오 분도 안 걸리는 게 중고차야. 인터넷 중고차 매매 사이트,
그래 엔카! 신 사장도 잘 아네?
거기에 들어가서 같은 기종 같은 색상 그 연식의 차를 한 삼십 대, 일단 찜을 하면 그 차의 내력이 한군데 싹 모이거든! 그걸 대충 훑어보는 거야.
그래 그렇게 찜한 차들이 찜통 속에 모이는 거지!
그걸 들여다보고, 이 차는 킬로 수가 좀 많네, 이 차는 가격이 좀 비싸네, 보험 이력까지 나오잖아, 이 차는 여기 사고가 나서 범퍼를 교환했고, 이 차는 타이어 상태가 영 아니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사정없이, 미련도 없이 한 대씩 삭제하는 거야! 그러면 끝에 가서 두세 대가 남을 거 아니야? 그걸 가지고 이제 집중적으로 비교하는 거지, 그게 십 분이 안 걸린다니까, 그 서너 대 중에서 가격을 비롯해 전체를 비교하면서 마음에 드는 한 대, 그걸 찍으면, 그다음에 전화해서 얼마 깎아줄레? 미심쩍은 그 부분 사진 찍어 보내라, 사진 보고 나서 또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그거 사진 보내라,
사진? 바로 날아오지. 차를 팔아야 할 놈인데. 거기서 사진 안 날리면 직무 유기에 해당하는 거 아니겠어? 사진 안 날리고 뜸 들여?
그러면 등록비가 얼마나 나오는지 차량 가격 팍 낮추어서 예상치를 뽑아봐라, 자동차 보험 한 달 넣으면 얼마냐? 두세 군데 파악해 보고 얼마 나오는지 알아봐라, 바로바로 날아오는 거야!
간단하잖아? 신 사장.
그다음에 돈 부쳐주고 내 앞으로 이전해라, 이전비 부쳐주고 내 이름으로 등록된 사진하고 이전비 세부 영수증 날려라, 날아온 영수증 보고, 어? 몇만 원 남았네! 차액은 내 계좌로 쏘아라, 그다음에 내일 몇 시에 공항으로 차 가져와라. 해보니까, 외국에 앉아서 카톡으로 하루에 백 대라도 사겠더라, 카톡으로 했으니 어느 눔이 어느 눔인지 헉갈리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근데 문제는 마누라지. 저렇게 입이 한발 나와 있는 거야.
작년부터 쌍용자동차에서 나오는 거, 토레스가 뭔가 신청했거든, 계약금이야 십만 원밖에 안 줬지. 그게 지금 나오면 구모델이잖아? 쌍용은 이미 이름을 바꾸었고, 그 차 인기를 못 얻었으니 언제 단종될지도 몰라! 그걸 왜 사? 저 차 랜드로바, 세계 120개국에 수출하는 세계 명차야. 단지 중고차라는 흠은 있지만, 이미 이름도 사라진 쌍용, 그 국산 차하고 비교하겠어? 가격도 절반밖에 안 되는데?
그거 취소하겠다고 했더니 저러는 거야.
면허 취소당했던 여편네한테 차를 너무 쉽게 사주니까 입이 저렇게 나온 거라구.
그래! 중고차, 타기 싫으면 타지 말라지, 내가 타면 되지! 아니, 지금 끌고 다니는 차는 중고 아닌가? 내가 미얀마 나가고 잘만 끌고 다니네! 남편이 타든 차도 중고차잖아? 내가 안 탔더라도 저 차는 이미 중고를 산 거야! 저런 여편네는 이런 목발로 좀 맞아야 정신차린다니까!
내가 뭐라고 하며 달랜 줄 알아?
쌍용차 토레스는 동네 아줌마들이 끌고 다니는 거고 이 차는 사모님이 타는 차라고 했어.
신 사장, 웃을 일이 아니야, 이미 저 차가 현금으로 70만 원 벌어 준 차야.
인천공항에서 여기까지 콜택시 70만 원 달라고 하더구만, 알아봤다니까, 그걸 아꼈으니 70을 번 거 아니야? 아, 이래 목발을 짚고 한쪽 다리를 끌고,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공항 리무진 버스 타는 데까지 어떻게 가? 거기다가 캐리어를 끌고, 이 상태로 버스에 올라가지도 못할뿐더러 휴게소에서 다른 승객들 틈에 어떻게 내리고 타고 해? 그렇다고 담배 한 대 안 피고 너덧 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오나? 그렇다 치고 터미널에 내려서 어떻게 할 건데? 캐리어는 어쩌고?
미얀마에 앉아서 나름대로 궁리하고 심사숙고해서 산 거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기다리는 놈, 아니, 그 자식은 차도 한 대 팔았겠다, 기분 좋게 베트남 골프 치러 가고 그 여편네가 나왔더구만, 저거, 캐리어 끌고 가서 실어라, 실어줄 거 아니야? 그러면 키 받아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담배 물고 내려오겠다는 생각이었지.
해보니 불편한 게 전혀 없더라구,
기름도 셀프주유소 들어가서 앞에 기름 넣는 놈에게 벨을 좀 눌러달라, 거시기 머시냐, 주유소 종업원 호출하는 벨, 말이야, 그게 주유기마다 붙어 있거든, 그거 누르니 주유소 종업원인지 소장인지 늙수그레한 작자가 나오고, 목발 번쩍 들어 보이며 다리를 다쳐서 내릴 수 없으니 기름 좀 넣어달라, 카드를 내미니 가득 넣어주고는 다리도 불편한데, 물이라도 한 병 드릴까요? 시원한 물 한 병 얻어서 유유히 나왔지. 뭐가 어려워? 어려운 거 전혀 없어!
구미 도착해서 바로 강남병원 앞에 차를 세웠지. 거기서 확인 사살하고 그때 가서 집으로 오든, 수술을 다시 하든지, 치료 방향을 정하겠다. 이미 그 계획은 굳게 설정되었던 거야. 거기서 사진 찍어보고 괜찮으면 집으로 오고, 안 되면, 재수술이나. 후유증이 생긴다고 하면 입원하고, 그때 가서 집에 연락하겠다, 작정했던 거지.
요즘 의술에 요 정도 가지고 다리를 절기야 하겠어? 또 좀 절면 어때? 한평생 두 다리로 반듯하게 잘 살았잖아? 내 친구, 중학 동기생인데 그 놈은 소아마비로 평생을 절룩거리며 산 놈도 있는데, 이제 조금 절어봤자, 죽는 날까지 몇 년이나 절룩거리겠어?
그래, 집에서 모르고 있었지, 철저하게 숨겼지.
아니야. 신 사장, 그게 아니라. 연락을 끊은 게 아니고, 매일 카톡이야 주고받았지만, 매일 한 게 아니야, 와이파이만 잡히면 하루에 두세 번도 주고받았지만, 철저히 숨긴 거지.
알면 뭐 해? 대신 식구들이 돌아가며 아파줄 거야? 아니잖아!
다친 부위 사진 찍어서 날려라, 병원은 시설은 어떠냐? 밥은 먹고 있느냐? 경원이? 저 새끼 성질에 저그 아부지가 이만큼 다쳤다는데, 여기 가만히 있겠다? 그럴 놈이 아니잖아? 날아오겠다? 저놈, 비행기 타고 날아올 놈이야. 날아오면서 저 엄마까지 데려오겠지. 그럼 뭐해? 이미 비행기 못 탈 정도로 다쳤는데.
비행기?
아, 신 사장 뭘 잘못 생각하는데, 안 태워 줘! 더구나 대한항공은 절대 안 돼! 저들 회사 규칙에 없는 거래. 그런 선례가 있어. 코로나 터지기 전, 그러니까 사오 년은 넘었겠다. 미얀마에서 한 사람이 추락한 거야.
아니, 신 사장, 비행기 말고. 비행기에서 어떻게 추락해? 공장인지 공사장인지 일하다가 떨어진 거겠지.
그래! 한국 사람! 그 사람 스물일곱 군데가 부러졌대. 그 정도로 부러졌으면 그거 사람 아니야. 물컹물컹한 고무, 아니 가죽 자루지! 살려야 되겠다. 미얀마 한인회에서 나선 거야. 왜? 미얀마 한인회! 저거 이름이 빛나거든, 이 열악한 나라에서 뒤질 눔 한 놈 살렸다. 자랑스러운 한인회. 명분이 되잖아? 그때는 대한항공이 매일 떴거든, 코로나 전이니, 관광객이 꽉 차던 시절이었지, 지금은 코로나에 쿠데타까지 겹쳐서 일주일에 한 편밖에 안 뜨지만, 그때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야!
대한항공에서는 성지순례에 여행객이 넘쳐 나서 매일 만석이니 비행기를 더 띄우고 싶겠지. 그 한인회에서 대한항공에다 부탁한 거지. 이렇게 부러진 놈을 한국으로 후송하겠다. 도와달라!
그런데 회사 규정에 없다는 거야.
의자에 앉지 못하는 사람 하나 후송하려면 화물기가 아닌, 여객기에서는 일등석 뒤에, 일반석으로 들어가는 입구 맨 앞에 있는 의자 세 개, 나사를 풀어 뜯어내고 거기다가 침대를 박고 환자를 태우는 거야! 생각해 봐! 스물일곱 군데가 부러진 놈, 산소마스크까지 쓴 놈을 어떻게 의자에 앉혀? 대한항공에서야, 그 사람 죽고 살고가 뭐 그리 중요해? 만석인데! 저들도 영리를 추구하는 장산데. 계속 회사 규정을 들먹이며 거부한 거야.
한인회에서 하다 안되니 미얀마 항공에 부탁한 거지. 당시에 미얀마 항공은 일주일에 한 편이 인천공항으로 취항하고 있었거든, 미얀마 항공이 봐서야 좋지. 선전효과가 있잖아? 대한항공 승객을 좀 빼앗아야 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이렇게 사람을 살렸다. 미얀마에서 인천공항을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인이야. 미얀마 사람들? 한국, 이 물가 비싼 나라에 여행 못 와! 겨우 비행기 타는 사람이 취업비자로 날아오는 연수생 정도가 고작이지. 선전효과가 얼마나 좋아?
미얀마 항공에서 좋다고 허락하자, 매일 밤에 뜨는 대한항공을 두고 이틀을 더 기다렸다가 미얀마 항공으로 싣고 들어왔다는 거 아니야. 그 사실이 뒤늦게 미얀마 뉴스에 나온 거, 자랑할 만하지! 얼마나 좋은 미담이야? 사실과 실체가 아름답잖아?
그 사람?
글쎄? 그 사람, 살았는지 죽었는지 나는 몰라! 관심 없어. 내가 직접 아는 사람도 아닌데, 한국 의술에 스물일곱 군데 부러졌어도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숨만 붙어 있었으면 안 살렸겠어? 그런데 그 이후에 난리가 난 거야. 미얀마 뉴스에 나왔겠다, 한인회에서 들고 일어난 거지.
들고 일어나 바로 행동을 취한 게 대한항공 불매운동,
불매운동? 장사들한테 이건 치명적이지. 한인회 사람들은 대충 미얀마에서 봉제공장, 가발공장,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그런 공장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자기 밑에 전무나 상무로 있는 사람 한국에 가는데 대한항공 태우겠어? 미얀마 항공 일정에 맞추어 갔다가 오도록 표를 끊어주는 거야! 그게 더 싸거든, 평소에 미얀마 항공 끊어주면 싸구려라고 주둥이가 나오는 놈들도 그 사건을 이야기하면 당연히 미얀마 항공 타야 하는 줄 알 것 아니야? 거기다가 한인회 사무실 아가씨 두 명이서 매일 전화를 돌리는 거야,
어디긴 어디야? 미얀마에서 연결되는 한국인들이지.
그 소문이 장삿속이 그렇게 밝은 대한항공 귀에 안 들어갔겠어? 그래서 책임질 놈이 없다던 대한항공에서 책임질 놈이라면서 나타나서 공식적으로 사과한 거야. 몰라! 미얀마에 와서 사과했는지 서면으로 사과했는지 모르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싹싹 빈 거지.
그 사람이 죽었으면?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 신 사장 생각해 봐!
죽은 놈이라면 당연히 실어주지.
군대에서 전사하면 1종에서 바로 10종으로 밀려나잖아? 죽은 놈 시체는 실탄 한 발이나 건빵 한 봉지보다 못 해! 순번이 바로 밀려나잖아? 건빵이 7종으로 분류되나 모르겠는데 숨이 붙었을 때야 1종이니, 전우들이 제 이빨로 제 팔뚝을 물어뜯어 피를 먹이고 살리려고 난리를 떨지만, 숨이 멎는 순간, 바로 10종으로 분류해 창고에 넣어버리는 군대! 바로 그거야. 뒈졌으면 대한항공이 당연히 실어주지. 화물칸에 던져넣으면 그만인데? 장사가 그런 속셈 없겠어?
항공료?
모르긴 해도 무게로 따져서 운임을 받을 걸? 25킬로에 100불, 캐리어 무게가 그러니까, 다른 데는 모르겠는데 미얀마 거리로 따지면 그래, 사람 보통 60킬로 잡고. 나무로 된 관 무게까지, 넉넉히 75킬로 잡으면 대략 300불 되겠네!
뭐? 너무 싸다고? 아니, 돈이 되는 좌석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기내식도 안 처먹는 놈 그렇게 비싸게 받을 이유가 없잖아? 훔쳐 가는 물건도 아니니 도난 염려도 없고 제품 하자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도착하면 저들이 알아서 꺼내 가는데 비쌀 이유가 없지.
말하니까 생각나네!
신 사장, 왜? 있지, TV에서 그런 거 가끔 봤지? 순국선열 해외 유해 발굴단, 화장해서 뼛가루 상자에 담아서 태극기에 싸서 공항에 내려 국군 의장대가 목에 걸고 안고 들어오는 거, 그거 무게로 따지면 얼마나 되겠어? 그런 거는 돈도 안 받을 걸? 공항에 내려 국군 의장대 젊고 멋진 놈들이 마스크 끼고 소중히 안고 절도 있게 들어오는데 그 뒤에 대한항공 마크가 딱 붙은 비행기가 있으니, 그림이 되잖아? 저거 우리 대한항공이여, 모르긴 해도 장사가 그런 데 선전효과는 기대할 걸? 그것도 돈 받으려나? 잘 모르겠네.
하여튼, 그 상황에서 비행기 타는 건 포기 했어. 대한항공 가서 구걸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한인회에서 나설 것도 아니고. 비행기를 못 타는데, 경원이하고 마누라하고 날아오면 뭣해? 항공료만 부담이 되겠지. 그리고 그때 집에 말할 형편도 안 됐어. 셋째딸 희진이 있잖아? 그 애가 아들을 낳았다는 거 아니야?
그래 맞아, 그때! 바로 그때야, 마누라 한동안 해산 조리 돕는다고 딸네 집에 가서 집을 비웠을 때,
아기 사진, 눈 깜빡이는 신생아 동영상으로 찍어서 막 날아오는데 거기다 대고 초 치는 것도 아니고 외할아버지라는 작자가 어떻게 다쳤다는 소리를 해? 부정 타잖아?
아니, 신 사장, 나라고 왜 생각이 없겠어?
사고 나고 그날 밤에 차분하게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며 다짐했지. 일을 마무리하자. 뜯어 놓은 거,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마치자. 그게, 그러니까, 내일, 모레네, 7월 10일, 미얀마는 희한한 불교국가라서, 무슨 기간인지 모르겠는데 그날부터 10월 4일까지는 결혼식도 안 하고 이사도 안 하는 나라야, 그 안에 빨리 고쳐서 세를 놔야 했어. 세 사는 사람이 동시에 나가서 잘 됐다, 하고 집을 수리하려고 뜯은 거야. 그게 그래, 예전에 지은 빌라, 그 다 팔고 밑에 두 개가 남았는데 안 팔려서 세를 주고 있었거든, 코로나에 쿠데타, 내가 못 나가는 동안, 그걸로 매니저랑 가정부가 처먹고 살았잖아, 매니저 새끼가 그것도 다 떼어 처먹고 가정부에게 이만 원 준 딸도 있고 삼만 원 준 달도 있었고, 가정부가 그걸 다 적어놨더라구, 매니저에게 받은 돈, 나중에 내가 다 물어줬지. 월급을 못 받았다는데 안 주고 버틸 재간이 있겠어? 적어 놓은 거 다 주고 매니저란 새끼 잘라버렸지. 이 새끼 거짓말을 얼마나 하는지.
아무튼, 그 두 집이 동시에 비었는데 집 앞에 도로를 다시 포장했는데, 뭔 도로를 그따위로 포장하는지 몰라. 희한한 나라니 희한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헌 도로를 걷어내지는 않고 모래를 이만큼 돋우어서 그 위에 또 이만큼 도로를 포장했으니, 집이 낮아지는 이치야 당연하지? 도로보다 낮으니, 물이 차겠지? 집을 살펴보니 천정이 높아서 이만큼 돋구어도 문제가 없겠더라고,
그 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되었잖아?
그래 여기 무르팍, 여기서 여기까지. 깊이 이만큼,
그래! 종아리가 뭉텅, 안 떨어져 나간 게 다행이야.
왜 통증이 없어? 견디는 거지 뭐!
인간의 뼈는 부서지거나 잘리면 조골세포가 생기는 거야. 그래 뼈를 만드는 세포, 부러지면 바로 뼈에서 아교, 석회질? 아무튼, 접착력을 지닌 액체가 나와서 그게 서로 엉켜서 붙기 시작하는 거야,
그렇지, 바로 그거!
그라인더 톱날이었으니 두께가 이만큼인데, 딱 그만큼 날아갔겠지. 요런 정도는 뼈가 날아가고 없으면 굳이 이식을 안 해도 뼈가 생기는 거. 그걸 믿었던 거야.
통증?
있었지. 죽을 맛이지만, 이거 살아 붙는구나, 생각하고 견딘 거지. 밤이면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날 정도야. 무르팍에 전기가 찌릿찌릿 들어오는데, 아, 이거 조골세포가 서로 어디로 붙을까 탐색하며 붙는다고 이러는구나, 진통제는 계속 먹으면서 통증을 오히려 즐긴 거지.
아니, 그때 집에 연락하면 안 된다니까, 자꾸 그러네.
뭐 집에 연락한다고 통증이 완화되나? 매일 어떠노? 매일이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물을 거 아냐? 그럼, 여기 아프다, 저녁밥이 안 넘어가서 라면 처먹었다. 오늘 아침은 또 빵이네! 왜 이렇게 밥이 안 넘어가지? 몸무게가 쪽 빠네, 기운이 없네. 어지럽네. 식구들 애간장을 녹여야겠어? 그게 무슨 아버지야? 불한당 새끼지.
일단 강남병원까지는 왔어. 사진 찍고 원장 진료 보는데, 재수술해야 하겠다고 하더라구,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기운이 쫙 빠지더라구.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원장이 절대로 다리가 저는 불구는 만들지 않는다면서.
고쳐줄게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걱정하지 말라구, 하더라구. 그 정도면 된 거지 뭐. 원장만 믿고 입원 수속하고, 혹시 모르니까 MRI를 찍자고 하더라구, 그건 의료보험이 안 된대, 그까짓 거, 얼마 나오겠어? 그래서 찍고 병실에 올라갔는데, 바로 저녁이 나오는데 밥이 넘어가겠어? 침대에 얹어놓은 밥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옥상으로 올라간 거지.
그래, 담배 피우는 곳.
거기 올라가서 일단 담배를 두어 대 피우고 마누라에게 전화한 거지. 이젠 알려야 되잖아? 전화를 받는 저 여편네,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카톡으로 대화했는데, 직접 전화가 걸려 오니, 대뜸 통화료 걱정할 거 아니야. 어디냐고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바로 강남병원으로 오라고 했지?
어디 강남병원?
마누라가 그렇게 물을 거 아니야? 아, 이 여편네가 터미널 옆에 강남병원 몰라? 그렇게 내질렀더니, 당신이 왜 거기 있는데? 한국이야? 언제 왔어? 그 물음에 차분하게 대답했지.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져서 연락 못 했고, 꼭 문병할 사람이 있어서 강남병원에 왔는데 타고 갈 차가 없으니 태우러 오라고 했지.
금세 병원으로 와서 전화한 거야. 5층 어디야? 지금 옥상에서 담배 피우고 있어 옥상으로 올라와! 옥상에 올라와 보니, 나무 의자에 앉은 제 서방, 이게 뭐야? 그림이 이상하잖아? 옆에 목발 놓였지, 다리에 붕대 이만큼 감고 있지,
도대체 이게 뭐야?
상황을 인식하기까지 좀 시간 걸릴 거 아냐? 멀뚱하게 서서 눈을 씀벅거리는 여편네에게 한마디 했지,
다 나았어, 걱정하지 마!
그러니 난리가 난 거지, 당신 홀아비야? 가족 없어? 얼굴이 그게 뭔데?
얼굴에 살이 빠져서 주름살이 쪼글쪼글하다는 얘기지. 가족 없어? 거기다가 걱정할까 봐, 그랬지! 했더니, 여편네, 뭐라는 줄 알아?
걱정 안 해! 혼자 그렇게 잘하면 뭐 하라고, 왜 불렀어? 혼자 알아서 해! 나는 집에 갈 테니까,
그러고는 돌아서 뻐적뻐적 내려가는 거야. 이제는 뭔지 모르지만, 상황을 인식했을 거 아냐? 한 3층쯤 내려갔다 싶을 때, 전화를 했지.
왜 전화했는데?
마누라가 소리를 꽥 지르는 거 아니겠어.
아이구, 여사님! 갈 때 가더라고 그 뭐냐? 병원 모퉁이 돌아가면 세븐일레븐 마트가 있을 거야, 커피, 그래 밀크커피, 그거 한 두어 병 사다 주고 가! 나 걸음 못 걸어서 사러 못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전화를 확 끊어버리더라구, 한참 있으니, 커피를 들고 올라오더라고, 그 여편네에게 대고 소리를 질렀지, 들어가는 보험 싹 다 해약하라고, 엉뚱한 걸 가지고 걸고넘어지니, 황당했겠지?
나중에 암에 걸리면 우짜는데?
야, 이 여편네야, 암 걸려서 죽은 놈들은 보험 안 들어서 죽었어? 보험 가입한 놈들은 암에 걸려도 안 뒈지고 다 살아나?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데 옥상이니, 옆에 담배 피우러 올라온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야? 저녁을 먹었으니 담배 피우러 온 사람들이 많았겠지. 휠체어도 있고, 목발도 있고, 다 들었겠지. 옆에서 휠체어에 앉은 영감에게 물었지,
거기 아저씨! 요새 저승 가면 염라대왕이나 저승사자가 암 보험 들었나 안 들었나 그걸로 심사해요? 보험 들었으면 돌려보내고 안 들었으면 잡아간대요?
그 아저씨 웃을 거 아냐? 뭔지는 모르지만, 병원에 입원하려는 작자 같은데 아직 환자복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마누라하고 보험을 운운하며 싸우고 있으니, 그쯤 되면 왜 연락을 안 했느냐? 이런 문제는 뒤로 숨게 되는 거야,
신 사장!
그렇게 연막을 친 거지! 그러니 마누라가 왜 보험 안 되는데? 어느 보험 연락해 봤는데? 얼마나 다쳤는데? 자꾸 물을 거 아니야? 그럼 알 거 다 알았잖아? 뭔 보고를 해?
그래! 알아버리니까, 잠 못 자지. 잠이 오겠어? 아침에, 그래! 오늘 아침에, 재수술 각오하고 장기전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으로, 저 여편네에게 전화한 거지,
집에 있는 전기 코드 연장선, 그거하고 전화 충전기 좀 가져오라고,
병원에 전기 코드가 침상 저쪽 벽에 달려있는데 너무 멀어서 노트북이 연결 안 되었거든, 그러니 여편네 뭐라는 줄 알아? 밤새도록 못 잤으니, 잠 좀 자고 가져가겠다는 거야.
거봐! 알고 나니 잠 못 자잖아? 미얀마에서 내가 그 이야기를 했으면 당신 싹 죽었어.
그렇게 받아쳤는데, 생각해 보니 맞거든! 전화를 팍 끊어버리더라구.
아침에 원장하고 MRI 판독을 하며 원장 설명을 듣는데, 여기도 좀 나쁘고, 그러나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여기도 약간 미심쩍으나 역시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MRI 사진을 키우고 뒤로 밀고 당기며, 거의 30분 판독했는데, 의사가 뭐라는지 알아? 어디를 수술할까요? 결론은 수술할 곳은 없다는 얘기지, 요기 쪼끔, 요기 쪼끔 어디를 수술해?
얼마나 좋아? 재수술 안 해도 된다니
원장이 이 선생님 며칠 긴장을 풀고 쉬며 지켜보자는 거야, 며칠 입원하라는 소리가 아니겠어? 그 말에, 아이고 원장님, 제가 외국에서 사고 나고 나서 하도 못 먹어 쓰러질 지경입니다. 집에 가서 좀 먹으며 통원 치료 받으렵니다. 외국에서 고생했으니 그러라고 할 거 아니야, 원장실에서 나와서 전화했지. 전화 충전기 가져올 필요 없다고, 수술 안 해도 된다고, 당신 옆에 오니 단번에 싹 나아버렸다고,
마누라 한숨을 옹골지게, 포옥 쉬더라구,
최고지, 안 그래? 신 사장!
사고가 안 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 작전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거지, 퇴원 수속을 하는 데야 시간이 좀 걸렸지만, 기분은 최고였었지. 집에 오니, 여편네가 쇠고기를 어마어마하게 볶아 놓은 거야, 그동안 못 처먹었으니, 사고 나고 나서 밥이 안 넘어가더라고, 허겁지겁 먹고 있으니까, 마누라가 시비를 거는 거야, 대충 눈치를 긁었던 모양이야, 저 차 뭐냐구? 저거? 당신 차! 랜드로바잖아? 새 차 산다는 건 어쩌고? 그거 취소할 건데? 그랬더니 나하고 말 안 하겠대. 괜히 저러는 거야. 투정 부릴 데가 없으니, 내가 다친 걸 숨겼던 거,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니까 괜히 저러는 거야. 지금 주유소 외상 카드 만들어 왔으니, 저거 주고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새 차 사주면 평생 탈 건데? 뭐 그러더라고. 이 사람아 뭐 차 한 대에 평생씩이나 걸어? 중간에 싫증 나면 바꿔! 그게 지겹다 싶으면 또 바꾸고, 그랬더니 저렇게 삐진 거야.
지금 생각하니 다 잘 됐어. 병원에 재수술 없지, 집에 알리지 않아서 경제적 지출 줄였지, 식구들 편하게 지냈지,
신 사장! 얼마나 깔끔해?
사고는 이미 났던 거고 여기서 뭘 더 바라겠어? 깔끔하잖아? 이제 대한항공하고 보험회사 저거 죽이는 일만 남았어.
대한항공?
신 사장! 그게 궁금해? 저거 내가 싹 죽인다? 두고 봐라, 대한항공 너 뒤졌어! 각오해.
어제 대한항공 때문에 얼마나 성질이 났으면 한 끼도 못 먹었다니까, 약이 얼마나 올랐는지, 밤새 잠도 못 자고,
잠? 정말 한숨도 못 잤다니까,
그 얘기를 하려면, 신 사장 비행기를 얼마나, 몇 번이나 타봤어?
그래? 제주도 두어 번, 앙코르와트에 갔다 온 게 고작이라고? 대충 들어보니 앙코르와트는 신 사장이 직접 비행기표를 구매한 게 아니겠네?
단체여행이나 패키지로 갔으면 비행기표를 직접 끊은 게 아닐 거잖아?
그러면 상당히 상세한 설명이 필요해, 이 일련의 사건을 이해하기에는 신 사장 비행기 탄 경력이 너무 빈약하다는 얘기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차근차근 설명해야 알아들을 거야! 항공권 구매에는 다양한 법칙이 숨어 있거든, 그거 자꾸 해보면 노하우가 생기는 거지만 막상 닥치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너무 많아.
나 같은 경우에 대한항공의 모닝캄 회원이야, 모닝캄이 무슨 뜻인지는 나도 모르지, 저들이 만든 이름이니까, 아침이여, 오너라? 그런 뜻인가?
비행기를 많이 타면 대한항공에서 저희끼리 고객의 등급을 만들어 예우하겠다는 거지. 모닝캄 회원? 그 자격을 계속 유지하려면, 단순히 해외여행만 다니는 일반 여행객은 어지간해서 그 자격을 획득하거나 유지하기 힘이 들 거야. 일등석 승객이 아니고 일반석 승객으로 한 달에 한 번? 두어 달에 한 번? 그 정도로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순전히 여행을 위해서 모닝캄 자격을 획득하는,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전혀 없는 건 아니고 드물 테지, 아무튼 해외에서 사업을 하거나, 큰 회사 해외영업부에서 영업을 뛰는 사원 정도 되어야 그런 자격을 얻을 수 있을걸. 일반 여행객은 아무래도 어렵겠지.
그런데 중요한 건 타는 사람마다 항공료가 다 달라.
희한하지?
이 좌석의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 신 사장이 이해하기 힘들 테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면 같은 일반석에 양곤에서 여기까지 날아오는데 가격은 천차만별인 거 있지, 똑같은 좌석 바로 옆에 앉았는데 가격이 틀린다는 거, 심할 적에는 옆에 앉은 사람의 반 가격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는 거, 물론 기내식도 같고 서비스도 같아! 그런데 가격이 다르다? 고속버스야 서울에서 부산까지라면, 사만 칠천 원, 버스에 탄 사람들이 같은 가격에 탔겠지만, 비행기는 다르다는 거. 같은 일반석에 탔어도 요금은 천차만별이거든, 마일리지로 공짜로 탄 놈부터, 가격으로 따지자면 열 가지도 넘을 거야. 무슨 규정과 프로모션인지, 그걸 누가 다 알아? 기내 서비스하는 승무원도 당연히 모르지.
신 사장? 그걸 이해해야 대한항공의 횡포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가 있는 거야.
차근차근 설명할 테니 들어봐!
지금 7월이니까, 만약에 연말에 휴가 갈 비행기표를 지금 사는 사람과 연말에 가서 사는 사람의 가격이 같을 수는 없잖아? 지금 사면, 대한항공에서 보면 고정고객을 확보한 셈이고, 지금 돈을 내니 그동안 이자가 붙는 거고, 승객이 지금 사면서 비싸면 안 사고 안 가겠다는데, 어쩔 거야? 인심 쓰듯이 싸게 파는 거야. 그렇게 해놓고 연말 막바지에 가서 좌석이 다 나갔는데 급하게 표를 사겠다? 그런 사람에게는 오지게 비싸게 파는 거지. 앞에 싸게 팔았던 승객에게 못 건진 이익까지 덮어씌워서.
좌석 가격에, 대충 그런 차이가 있다고 치고,
미얀마의 통신 사정부터 먼저 얘기할게.
이놈의 나라 쿠데타 이후에 통신 사정이 얼마나 안 좋아졌는지,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며 로밍 센터를 찾으면 거기서도 미얀마라면 로밍을 안 해주는 거 있지, 통화품질에 자신이 없다는 얘기지. 통화 중에 끊어지기 일쑤고, 잡음이 심해 들리지도 않으니, 항의가 많이 들어오는 미얀마는 아예 로밍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지. 아무튼, 미얀마 통신 사정은 더럽게 안 좋은데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 초당 34원, 34원이라니 실감이 안 오겠지만, 내가 계산하니 1분에 2000원이 넘어,
그렇지, 초당, /Sec. 1초에 34원.
이거 써보면 장난 아니야, 지난달 요금이 39만 6천 원이 빠져나갔다니까. 순수한 통신 요금만. 이 정도면 적은 건 아니지? 요금이 이렇게 나오는데 ARS 전화를 하려면 환장하지. ARS 이거 써보면 굉장히 비인간적이거든. 요즘은 군대서 그 ARS 없앴잖아, 간첩 출현은 1번, 근무 교대는 2번, 건빵 수령은 3번, 이게 말이 되나? 간첩이 출현해서 2번을 누르면 다시 무장간첩은 1번 고정간첩은 2번, 기타는 3번,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
웃지 말고, 미얀마에서 그 ARS를 통해서 비행기표를 바꾼다고 생각해 봐. 환장하지. 대한항공 ARS 전화가 1588-2001인데, 전화를 딱 하면, 정성을 다하는 스카이팀 대한한공입니다. 국내선 서비스는 1번, 국제선 서비스는 2번을 눌러주세요. 거기서 국제선 서비스 2번을 누르면, 보이는 ARS 서비스는 1번, 음성 안내 서비스는 2번을 눌러주세요, 거기서 2번을 누르고 들어가면 또 대여섯 개로 분류된다구, 이걸 다 듣고 있어야 해, 환장하지. 초당 34원인데, 거기다가 그놈의 나라 통신 사정이 워낙 열악해서 중간에 끊기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거, 다시 하더라도 끊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이거 사람 환장 안 하겠어?
중간에 끊어지면 미치지. 대충 6000원 날아갔다 싶은데, 다시 ARS 음성을 다 들으려고 해봐! 이미 6000원이 아무 효과도 없이 날아갔는데, 똑같은 번호로 다시 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물론, 인터넷으로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나라에 와이파이가 안 잡히는데? 어쩔 거야? 일곱 번이고 여덟 번이고, 다시 시도해야 한다구. 또 급한 마음에 2번을 눌러야 하는데 3번을 누르는 실수라도 하면. 미치지 않겠어?
대충 대한항공에 전화 연결이 되려면 3, 4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구. 이건 연결까지 들어가는 요금이야, 그 담에 사람 간을 녹이는 소리가 또 있지. 겨우 연결되면, 지금은 통화량이 많아 직원 연결까지 약 4분 20초가 소요될 예정입니다,
이런 소리가 나오면 속이 타지. 그럼 퍼뜩 4분의 전화요금을 계산할 거 아니야? 사육에 이십사, 이만 사천 원? 이거 끊었다가 잠시 후에 다시 할까?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거야.
끊었다가 다시 하려면 그곳까지 들어가는 금액과 또 바로 연결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까딱하면 7-8분, 기다리라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끊어버리기도 힘든 상황,
그냥 기다리자. 여론조사 전화도 받는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맘 달랠 거 아니겠어? 이건 내가 걸었으니, 여론조사보다는 낫다, 여론조사 전화 받아봐. 정말 환장한다구. 통화료가 얼마인데, 전화를 받으면 무슨 여론 조사 기관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여론이라는 멘트가 기계음으로 나오고, 찬성하시면 1번을 누르고, 다른 생각이면 2번, 이렇게 되면 환장하지, 통화료는 내가 내는데, 이게 차분하게 들리겠어? 그 소리가 담담하게 들린다면 그놈이 이상한 거지.
신 사장,
사고가 나고 뭘 젤 걱정했는지 알아?
목발을 짚고, 때로는 인부들 등에 업혀 다니면서 걱정한 건, 귀국할 때 미얀마 공항에서 탑승 시간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 놀러 갔다면 모르겠는데 돈 벌러 온 나라에서 돈을 못 벌고 목발 짚고 돌아가는 제 신세를 들여다볼 거 아니야? 그 시점에 내가 허물어지지 않고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늘 그걸 걱정했거든, 그런데 공항에서는 흡연실에서 만난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길게 나누다가 바로 나와서 탔으니 그런 걱정은 피해 갔어. 다행이라면 아주 큰 다행이지. 괴리감으로 점철된 자기 성찰의 시간을 피했으니 아주 다행이지. 비행기 탑승순서가 몸이 불편한 승객이 젤 먼저 타고, 그다음이 일등석 승객이거든, 신 사장도 들어봤겠지만, 공항에 가면 비행기를 타기 전에 그런 안내방송이 나온다구. 탑승 시간이 다 되어 목발 짚고 나타나니 탑승을 돕던 공항 직원 둘이 좇아나오더라구,
괜찮습니다.
손을 들어 보이고 비행기를 맨 먼저 타서 자리를 잡았지. 누군지 모르지만, 옆좌석에 탈 사람이 타지 않았으니, 안전띠를 매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지. 한참 지나서 캐빈클로즈 방송이 나오더라구, 비행기 문 닫는 거 말이야. 사람이 다 탔으면 문을 닫아야지. 옆자리에 사람이 없는데, 뭐야? 그런 생각을 하면 눈을 퍼뜩 떴는데, 글쎄!
이게 뭐야? 정말 이게 뭐야?
비행기에 승개개 반도 타지 않았어. 전부가 빈자리야. 내 옆에는 아줌만지 아가씬지 일찌감치 좌석, 네 개를 깔고 누워서 벌써 담요를 덮고 있더라구,
만석인 줄 알았는데? 그때 옆 통로로 지나가면서 안전을 점검하던 아가씨가 안전띠를 매라고 하더라구, 그 아가씨한테 물은 거야.
오늘, 무슨 단체 승객이 왕창 펑크를 낸 거냐고?
단체로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거든, 대학교 무슨 봉사단이거나, 아니면 성지순례를 나온 불교의 무슨 단체, 그런 팀들은 백 명이 넘을 때도 있어. 그런 팀이 탑승하지 못하고 펑크를 낸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그 아가씨가 아니래. 요즘 비수기라 항상 이렇다는 거야, 그 아가씨도 매일 양곤으로만 가는 비행기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닐 터인데, 어떻게 알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이 모양이라는데.
그 말을 딱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거.
거기서 내가 미쳐버린 거야.
그 비행기를 못 탈까, 내가 어떻게 사투를 벌였는데? 그야말로 사투였지. 다친 부위 실밥 빼는 것과 집수리 대충 마치는 시점, 비행기를 탈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앉는 게 무릎이 안정된 시점이 서서히 드러날 때 한국으로 들어가서 병원에 MRI 찍어보고 재수술이든, 결정하겠다고 생각하니 맘이 바빴던 거지, 그래서 날짜를 보니 수요일 비행기를 탈 수가 있겠다 싶어 항공권을 변경하려고 대한항공에 전화했지, 한 번에 성공한 게 아니고 서너 번 만에 통화가 되었는데 거기까지 벌써 몇만 원이 날아간 거야. 그 정도 지출이야 각오했지. 그런데 내가 원래 돌아오려고 했던 날이 27일이었어. 삼 주를 당겨서 들어오려고 했던 거야. 그런 정도야 좌석이 여유가 있다면 전화, 한 통화로 끝날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니야.
동급의 좌석은 없고 당겨서 들어가려면 위약금을 내고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을 내야 한다는 거야. 위약금이 십만 원이고 좌석 승급이 오만 오천 원, 합쳐서 십오만 오천 원을 결재해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그 좌석 승급이라는 건 좌석이 질적으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 아까 얘기했듯이 저희가 나누어 놓은 금액으로 승급하는 것이거든, 그런 규정이 있다면 좌석 승급에 오만 오천 원은 인정하는데 위약금은 또 뭐야? 좀 이상하잖아? 내가 뭘 위약했는데? 위약금? 단지 삼 주 앞당겨 들어가겠다는 것뿐이잖아? 그런데 그게 날짜변경 위약이야.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걸 결재하려면 카드가 있어야 했어. 신용카드! 그게 없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결재는 불가능하다는 거. 주머니에는 돈이야, 달러도 있었고 한화도 있고 미얀마 돈도 있지만 전해줄 방법이 없잖아? 계좌번호를 알려다오, 계좌로 송금하겠다? 그렇게 해서는 그 자리에서 좌석 배정을 못 받아. 전화비가 하도 비싸기에 위약금에 대해서는 따질 형편이 아니었고. 그걸 따지면 위약금보다 전화요금이 더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사정했지. 내가 지금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조기 귀국하려 한다. 지금 카드가 없다. 좀 도와달라. 좌석을 확보해 주면 그날 비행기를 타며 공항에서 대한항공 직원에게 지급하는 방법이 없느냐?
별소리를 다 했지.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거야. 공항에서 직원에게 결재하는 방법으로는 지금 발권할 수가 없다며 한국의 가족들과 상의해서 다시 전화하라고 끊어버리는 거.
전화가 끊기고 가만히 생각하니 환장하겠더라고. 카드는 집에 있었거든, 출국하던 날 옷을 갈아입으며 집 화장대 위에 명함 지갑을 놓고 갔는데, 그걸 인천공항에서 알았어. 그래서 마누라에게 전화해서 화장대 위에 명함 지갑이 있냐고 물었고, 있다고 하길래 잘 챙기라고만 했지. 그 나라에서 카드가 쓰일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다시 대한항공에 전화했어. 카드가 없는데 어떻게 할 거야. 이게 또 연결되기까지 서너 번 끊어지는 거, 환장하지. 급한 마음에 ARS 버튼을 잘못 물러서 끊어지고 끊어질 때마다 육칠천 원 헛돈은 날아가지. 연결은 안 되지. 겨우 연결되면 또 6-7분 기다리라고 하지. 전화비는 초당 34원인데, 속이 타는 거지. 겨우 연결이 돼서 이런 경우에 내 마일리지를 공제하고 승급 좌석을 배정받는 방법이 없느냐? 그건 마일리지는 그런 데 쓰는 게 아니라는 거야. 내가 생각할 거 아니야? 그러면 이 항공권을 뒤로 쭉 미루자, 돌아가는 날짜를 잡지 말고 서너 달 미루자, 그것도 안 된다는 거야.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미루어 놓고 미얀마 항공을 타고 그날 들어와서 수술받고, 병원에 진단을 확실히 받고 나갈 적에 미얀마 항공을 타고 나가서 다음에 들어올 적에 대한항공을 타면 되겠다. 미얀마 항공이야, 여권하고 현금, 쥐어서 현지 직원 보내면 당장 표를 끊어올 것이다. 이 생각을 한 거지.
그런데 그것도 안 된다는 거야.
내가 산 그 항공권은 석 달이 만기이기 때문에 8월 3일 되면 자동으로 소멸이 된다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8월 3일까지 한국에 갔다가 오기도 빠듯한데, 그 항공권으로 다시 한국으로? 그건 무리가 있지. 어떤 방법이 없나? 없다는 거야. 그러면서 지금 동급 좌석이 두 개가 남았는데 그게 다 팔리면 또 오른다는 거야. 마음은 바쁘지. 이젠 위약금이고 승급 좌석 요금이고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 전화요금이 벌써 이십만 원 넘었을 건데, 내가 오죽했으면 그 비싼 전화기를 붙들고, 그렇게 무게와 돈을 따지는 사람들이 내가 지금 목발을 짚고 비행기를 탈 것인데 목발은 무게를 따져서 운임을 받느냐고 물었겠어?
그건 또 안 받는다고 하대.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하니 방법이 없어. 마음은 급했지, 두 좌석이 팔리면 또 금액이 오르고, 그것마저 팔리면 좌석이 없는데? 그날 토요일이 아니었으면 신 사장, 당신에게 부탁했겠지. 들어가기로 맘을 먹었는데. 옆집에 계량공사 홍 사장 저 양반한테 부탁하려니, 저 양반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는 거야. 아침마다 담 너머로 커피는 주고받지만,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그게 친한 이웃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더라구. 누구한테 부탁할까? 마누라에게는 연락할 수도 없고, 쭉 훑어보다가 저 위에 이발소 아저씨가 생각나더라구,
아니, 그 이발소 말고 플래쉬마트 뒤에 월남 참전용사 아저씨, 그래, 그 양반! 그 아저씨 전화번호는 내가 알고 있거든, 거기가 내 단골이야. 이발소 가기 전에 전화해서 지금 손님이 있느냐, 오래 기다려야 하느냐, 이걸 물으려고 전화번호를 받아서 저장한 거야. 그래서 그 양반한테 전화하는데, 서너 번 만에 통화가 됐는데, 사정을 얘기했더니, 지금 이발 중인데 십오 분 후에 다시 전화하라는 거야. 기다렸다가 십오 분 정확히 지나서 전화했더니 한 번에 연결이 되더라구,
내 사정이 이러하니, 지금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으로 좀 가라, 전화는 끊지 말고, 자전거 꺼내는 소리가 나고. 이 노인이 얼마나 굼뜨는지, 현관 비밀번호는 몇 번이다, 일러주고, 그 양반 연세가 있으니, 귀가 좀 어두운데 소리를 질러서 현관문을 열고, 그날? 마누라야 딸네 집에 있었지, 산후조리 때문에, 그 노인이 우리 집에 와봤나? 전화로 다 얘기해야 하는 거야. 거실에서 텔레비전 옆에 붙은 방이다. 화장대 위에 없으면 화장대 왼쪽 서랍에 있을 거다. 검은색 명함 지갑이다. 거기 위에 카드다. 여기서 카드를 사진 찍어서 메시지로 날리면 안 돼. 와이파이가 약해서 문자 메시지는 들어오는데 사진은 파일로 전송되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는 열리지 않거든, 카드 번호를 불러라.
근데 이 양반, 눈이 어두운지, 카드 번호를 서너 번 부르는 거야. 비싼 전화를 잡고 그 짓을 하니 미칠 지경이지. 마음은 바쁘지. 카드 번호를 제대로 받는 데만, 대략 삼사 분은 걸렸을 거야. 받아적어 놓고도 이게 정말 맞는지 맘이 찜찜하더라구.
카드는 사장님이 가지고 가세요. 내가 귀국해서 찾으러 갈게요. 문 닫고 가세요.
카드 번호를 적고, 대한항공으로 전화하는데, 또 서너 번 만에 연결이 된 거야. 좌석을 승급하겠다. 카드를 가지고 결재하려면, 번호 앞의 몇 자리는 불러주고 마지막 네 자리는 ARS 음성이 나오면 거기다가 직접 번호를 누르는 방식이야. 그리고 비밀번호 두 자리를 누르면 다시 상담원과 연결되는 방식이거든, 그게 또 남의 카드는 되지를 않아. 제 이름으로 된 카드만 되는 거야.
시간이 얼마 걸렸겠어?
그 난리를 쳤으니, 전화비는 얼마나 나왔고?
완전히 사투였지. 그런 사투를 벌이고 오지게 비싸게 먹혔는데 정작 비행기를 탔는데 빈자리가 반이 넘는 거야? 얼마나 약 오르고 환장하겠어? 그 비행기 타고 오면서 잠이 오겠어? 거기서 승무원들에게 따지겠어? 기내 서비스 승무원들은 그 결재 방식을 나보다 모를 터인데?
빈자리가 그렇게 많았으면, 내가 사정할 적에 빈자리가 많다, 공항에 가서 웨이팅을 걸어라, 아니면, 대한항공 양곤지사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상의해라, 그러면 뭔 문제가 해결될 거 아니야?
웨이팅?
웨이팅이 뭐냐면, 웨이팅이면 영어로 기다린다는 말이 아니겠어? 그걸 용어로 하는 시스템이 있어. 가령, 비행기 좌석이 만석인데 오늘 밤에 꼭 들어가야 하겠다. 그러면 공항으로 나가는 거야. 비행기 시간보다 일찍 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써 놓고 기다리는 거지. 오늘 타야 할 280명 중에서 한 명이라도 빠지면 그 빈자리에 타고 들어오는 거지. 웨이팅을 걸면 대충, 한두 명은 탈 수가 있거든, 내가 몽골에서 일할 적에 그런 방식으로 여러 번 들어왔어. 탑승 서너 시간 전에 공항으로 가면 웨이팅 1번을 걸 수가 있어. 운이 나쁘면 그날 타지 못하지만, 예약은 해놓고 빠지는 사람들, 그 자리에 타면 추가 요금이 없어. 그냥 남은 자리에 타고 들어오는 거야. 내일 들어갈 거 오늘 들어오는데? 좌석이 남는데? 그냥 빈 좌석으로 갈 건데? 무슨 추가 요금을 내? 오늘 펑크낸 고객의 좌석, 아깝잖아? 기다리는 한 놈을 태워서 들어오는 거야. 그럼 낼 비행기에 한 좌석 비었다는 게 확실시 굳어지잖아? 운 좋으면 내일 그걸 팔 수가 있는데 빈 좌석으로 들어오겠어?
그날은 웨이팅을 생각하지 못한 거야!
좌석이 백 개 넘게 남았는데, 그걸 알았으면 그날 공항으로 바로 나가지. 지금 두 좌석이 팔리면 더 승급 요금을 내야 자리뿐이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좌석 백 개가 남았다는 말을 왜 안 해? 좌석 백 개가 남는 걸 알았다면, 내가 전화통을 잡고 그 난리를 떨었겠어? 전화요금이 얼만데? 말하는 투로 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놈이 나가서 못 타고 돌아올 게 뻔한데 뭐 하러 공항에 나가?
비행기에서 생각하니 얼마나 약이 오르는지.
네 시가 넘어서 기내식 나오는데 그게 넘어가겠어? 잠깐 눈을 붙였나 모르겠는데 인천이더라구, 목발 짚고 앞에서 얼쩡거릴 수는 없잖아? 손님들 다 내리고 맨 나중에 내려서 나오는데, 몇 번 게이트인지는 몰라. 나와서, 에스컬레이터, 그걸 에스컬레이터라고 해야 하나? 복도 중간에 컨베이어.
그래! 옳지. 그거.
그걸 타고 입국장으로 가는데 바로 옆에 서 있던 전동 카트, 왜 비행기 타며 짐이 많거나, 불편하고 바쁜 승객 태워서 다니는 카트가 있어.
아니, 그냥 손으로 밀고 가는 카트 말고. 운전석에 핸들까지 달린 거 있어. 그 전동 카트에.
고객은 대한항공의 소중한 가족!
이렇게 적힌 거야. 그 밑에 대한항공 마크가 떡 그려져 있고,
그러려니 하고 눈을 돌리고 그냥 나왔어야 하는 데 이 다혈질이 그러질 못했던 거야.
이런 썅! 나, 나는 니들 가족 안 해!
고함을 치며 날린 거야.
뭘 날렸겠어? 목발이지. 카트에 맞고 와장창 소리를 내며 떨어졌는데, 이런, 목발이 점점 멀어지는 거 있지. 컨베이어, 이놈이 가니까 목발이 점점 멀어질 수밖에, 내가 맨 나중에 내렸기 때문에 주위에 아무도 없었어. 공항 빈 복도에 나는 컨베이어에 실려 밀려가고, 목발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는데. 움직이기는커녕, 일어설 수조차 없는데.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
아랫배가 살살 아파지는 거야.
그렇지! 화장실. 비행기에서 내려 나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화장실을 찾고 있었던 거. 집에서도 그렇지만, 나는 일어나면 화장실을 가거든. 거기서 느낀 건 조물주가 인간의 몸을 만들 적에 잠시 방심했다는 거. 소장, 대장, 직장 어느 곳이든, 밸브 기능을 하는 장치 하나 설치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건데. 컨베이어가 끝까지 돌아가니 서 있을 수도 없잖아? 다리가 이런데 어떻게 서 있어? 컨베이어에서는 난간을 잡고 서 있었지만, 끝까지 갔으니, 손으로 지탱하고 있던 난간이 바닥으로 쏙 들어가고 없잖아? 같은 속도로 돌아가던 손잡이가 바닥으로 쏙 들어갔으니.
그냥 털썩 주저앉은 거지.
주저앉아서 손으로 땅바닥을 밀며 엉덩이를 당겨 앉은 자세로, 필사적으로 목발을 향해 달리는 거지. 달린다고 하지만, 그게 속도가 얼마나 나겠어? 반쯤 가다가 포기한 거지. 그때부터는 화장실이 급한 게 아니었어. 어느 순간 전혀 급하지 않은 거, 다치고 나서부터 진통제를 먹고 있는데, 진통제 없이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통증인데 그놈의 나라에서 만든 진통제에 무슨 성분이 들었는지 계속 묽은 변을 보는 거야. 설사도 아니고 아주 묽은 변, 비행기를 타고 나서 눈을 좀 붙이려고 또 그 약을 먹었거든, 그 약을 먹으면 화장실을 가는데 느긋할 수가 없어. 화장실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급해지는 거야. 괄약근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그래! 맞아 싸버린 거지. 앉아서 벌레처럼 기어가는데 괄약근이 풀린 거지.
그 컨베이어 길이가 대략 삼사십 미터는 되었을 거야. 그래도 어쩌나 목발이 있어야지. 목발을 향해서 가는데, 거의 목발에 근접했을 때, 여승무원 대여섯이 나오더라구. 몰라! 내가 탄 비행기 승무원이었는지 다른 비행기에서 내린 승무원인지. 다른 승객은 없고 그 승무원 무리 중의 하나가 딱해 보였는지 목발을 집어 주려고 몸을 구부리는데 꽥, 소리를 쳤지.
목발에 손대지 말라고, 왜 남의 목발을 훔쳐 가려 하느냐고?
악이 얼마나 바쳤으면 그런 소리가 나왔을까? 이미 볼짱 다 봤는데.
미치겠더라구. 이게 인간이야?
이거 어디까지 망가져야 하나?
자존심은 얼마나 더 찢어져야 하나?
이게 인간이야?
자, 신 사장, 국제선 청사 복도에 똥을 싸고 주저앉아 제가 싼 똥을 갈아뭉개며 바닥을 기어가는, 정말 개보다 못한, 처참하게 무너진 인간 앞에, 어디서 존경받아 마땅할 할아버지의 위상을 찾아? 그래! 나도 누군가의 할아버지야! 두 공무원의 아버지고.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 그것도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책을 열 권도 넘게 쓴 중견 소설가야, 아버지의 위엄이 어디 있고 작가의 체면이나 사회적 지위를 어디서 찾을 수가 있어? 그냥 개였다니까. 제가 싼 똥을 깔고 뭉개며 기어가는 한 마리 벌레, 개보다 못한.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환장하겠더라구.
웃지마! 웃을 일이 아니야. 목발을 짚고 겨우 일어서니 처먹은 것도 없는데 양은 왜 그리 많은지. 팬티를 입었으면 그게 그 안에 있었겠지, 이게 흘러내리네! 미치지. 흘러내릴 정도로 묽었다니까.
상상해 봐! 더럽겠지만, 짐작이 가지.
그만 웃어! 웃을 일이 아니라니까, 팬티? 못 입었지. 무르팍에 붕대가 이렇게 감겨있는데 팬티가 들어가나? 그냥 반바지가 다야. 팬티 안 입었다고 비행기 안 태워 주는 건 아니거든. 겨우 목발을 짚고 화장실을 향해 가는데, 허벅지를 타고 내려온 게 무릎에 감은 붕대에 칠을 하고, 이 싼따루,
그래? 싼따루가 일본 말인가? 샌들,
발등이 부어 운동화도 안 들어가고 슬리퍼는 자꾸 벗겨지고, 이런 거라도 신어야지. 나 평소에 이런 거 안 신는 사람이라는 건, 신 사장도 알잖아? 샌들에 묻고, 무르팍에 감아놓은 붕대에 묻고, 더 흘러내려 더러는 그 타일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 시간에 도착장이니, 다른 승객들이야 없지만, 그래도 화장실 입구, 세면대에서 처리할 수가 있나?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수도꼭지가 있나? 그곳은 휴지통 없는 화장실이야. 비데가 있고 휴지가 걸려 있어 사용한 휴지는 변기에 넣고 내리는 방식이 아니야, 휴지통이 없는 선진화 화장실, 뭐 그런 화장실이었는데 똥 싼 놈이 그런 거 따질 계제야? 맘에 안 든다고 다른 데 화장실을 찾아갈 거야, 어쩔 거야?
엿 먹어라, 나 사람 아니다, 하고 손가방에 든 휴지로 대충 닦고 그냥 나와? 그렇게 못하지! 입국장 밖에 처음 보는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 냄새는 어쩌고?
여자가 누구긴 누구야? 새로 산 차를 가지고 나온 중고차 딜러 마누라지. 그 중고차 상사 사장은 그 전날 베트남으로 골프 치러 가고, 그 마누라를 내보내겠다고 했으니, 서로 카톡으로 연락했고 기다릴 거 아니야?
선진화된 그 화장실에는 수도꼭지가 없어! 손을 대면 센스로 적정량의 물이 나오는 시스템이야. 수도꼭지가 없다? 문을 잠그고 계속 변기에 물을 내리며 아랫도리부터 벗고 사람을 만드는 작업을 한 거지. 변기에 물을 거의 한 스물댓 번 내렸을 거야. 몸 씻고, 반바지 빨아 입고, 똥 묻은 붕대 일부는 잘라서 버리고, 샌들 빨아서 신고, 양말은 빨기를 포기하고, 여름이니까 그게 가능했지만, 휴지통이 없는 화장실이니 양발과 잘라낸 붕대를 어디 버리겠어? 그냥 둘둘 말아서 변기 뒤에 처박아 둔 거지. 그걸 변기에 집어넣을 수는 없잖아?
글쎄, 누가 처리하려나 몰라.
구미에 도착하면 바로 병원으로 간다, 집에 들를 시간이 없다, 어쩌면 입원해서 다시 수술할 수도 있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반바지와 팬티, 그리고 세면도구까지 준비했지만, 그런 건 캐리어 안에 들었으니, 별수 있겠어? 젖은 반바지에 젖은 신발에 맨발로 나선 거지.
거기서 입국 수속을 하는 곳까지 상당히 멀거든, 컨베이어 타고 걸어서 나오는데 다리가 아프기는 왜 그리 아파? 주저앉고 싶은 거야. 그런데 머리에 그려지는 건, 비행기의 빈 좌석과 고객은 소중한 가족이라는 글귀.
이런 아이러니가 어딨어?
고객? 고객이 뭐야? 높을 고자에 손님을 지칭하는 객, 높은 손님? 높게 받들 손님? 고객! 얼마나 고객을 남발했는지 고객이 땅바닥에 떨어져 상술에 차이는 세상 아니야? 그런 건 따지지 말자.
암튼, 약이, 약이 아니라 독기가 잔뜩 올랐는데 그 가까스로 참고 있던 게 폭발한 곳이, 축산물 검역 엑스레이 앞이었어. 인천공항은 수화물 수취대에서 캐리어를 찾아서 카트에 싣고 밀고 나오면 바로 축산물 검역대가 있거든, 거기서 폭발한 거지. 다리 저는 놈이 목발 짚고 거기까지 끌고 갔으면 그 검사하는 놈이 캐리어를 날름 들어서 엑스레이 앞의 컨베이어에 올려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검색하는 놈이 바로 앞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더라구,
너? 싹수가 노랗네, 욕봐라!
그 생각으로 캐리어를 안 얹고 개긴 거지. 뒷사람들이 밀릴 거 아니야? 내 뒤에 선 젊은 사람이 보기가 안 됐는지 자기가 내 캐리어를 얹어주려는데 소리를 지른 거지. 왜 남의 물건에 손대느냐고, 공항에서 남의 짐을 들어주면 안 된다는 거, 모르느냐고, 바쁘면 둘러서 검역하라고, 그 젊은 사람 먼저 보내고 죽친 거지. 그쯤 되니 앞의 의자에 앉은 놈에게 반응이 오는 거야,
왜 이런 시스템을 채택하느냐고 따진 거지.
수화물이 비행기에서 내려 수취대까지 나올 적에 이미 엑스레이 검사를 하지 않느냐? 공조해서 거기서 검색하면 되는 거지 왜 승객들에게 짐을 두 번이나 들었다가 내리게 만드느냐고. 이 새끼가, 저희들은 농림부 소속이고, 축산물 검역이라는 거야. 대답이 너무 빈약하잖아, 농림부고 관세청이고, 정부 산하 기관에 월급을 받아 처먹는 사람 아니냐고,
처먹는 놈? 그래 그렇게 뱉었어. 그때부터 반말이 시작된 거지.
그 자식 뭐라는 줄 알아? 저희들은 들고나오는 수화물까지 검색해야 하기에 여기서 해야 한다는 거야. 아, 공항에 가면 그거 있어. 축산물, 고기나 외국 소시지, 햄 같은 거, 거기서 묻어 들어오는, 거시기 이름이 뭐야, 광우병 이런 거 차단하려는 거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제가 일어나서 내 캐리어를 얹더라고, 이건 왜 검사를 안 해? 이것도 검사해야지. 이 안에 소시지 들었을지 모르잖아? 목발을 엑스레이 입구로 들어가는 내 캐리어 위에 냅다 던진 거지.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겠어?
누구에겐가 시비를 걸고 싶었던 거지.
목발이 차분히 엑스레이에 들어가겠어?
신 사장! 생각해 보라고, 목발이 엑스레이 입구 고무판에 걸려 털털, 거릴 거 아니야? 벌써 캐리어는 검색대를 통과해서 저쪽으로 넘어갔는데, 이 자식이 이쪽으로 나오시라는 거야.
야, 나 목발 없이 못 움직여!
별수 있어? 개기는데? 뒤에 사람들은 밀리는데?
털털거리다가 검색대 뒤쪽으로 떨어진 목발을 들고 오더라구, 자 캐리어 실어라. 카트 저쪽 모퉁이까지 말고 가라! 별수 있어? 그렇게 안 하면 카트로 또 나가는 입구를 막고 버티고 섰을 건데? 거기 엑스레이 검사 마치면 나오는 구멍이 좁거든, 임시 칸막이로 급조한 거라서 그래.
거기서 빠져나오면, 바로 입국장이지. 사람들이 기다리는 입국장, 젊은 아주머니가 카트를 밀고 목발 짚고 나오는 나를 보고 그 안으로 좇아들어오더라구, 그 아주머니 집이 인천 송도인데, 내가 새로 사는 차가 손에 익지도 않고, 운전하기가 겁이 나서 자기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고 그 아주머니 차를 끌고 나왔대.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 그 아주머니 차를 타고, 무릎이 굽혀지지 않으니, 뒷좌석에 탈 수는 없고 염치없이 앞좌석을 차지했지. 앞 좌석은 그래도 공간이 좀 있으니, 다리를 펼칠 수가 있잖아? 그 아줌마 계속 말을 시키는 거야. 작가님! 미얀마 사업은 어때요? 미얀마에 쓸 거리가 많겠죠? 그런 걸 넌픽션으로 쓰시나요?
그래, 그 아줌마 내가 소설가라는 걸 알고 있었지,
차를 사면서 돈이 오갈 적에 당신은 회사 상호와 이름을 걸어라, 나는 걸 게 없으니, 소설가, 작가정신과 내 이름을 걸겠다. 서로 믿고 해보자. 나? 소설가 누구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라.
그 친구 카톡으로 그런 말을 주고받았으니, 이름이 찍혔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을 거 아니야? 그러니 나가는 제 마누라에게 소설가 누구다. 잘 모시라고 했을 것이고,
금세 똥을 주무르다 나온 기분은 개떡인데, 계속 말을 거는 거야. 입고 있던 신발과 반바지는 다 젖어 있지. 봤는지 못 봤는지 몰라도, 내리면서 반바지를 보니 그 새 꾸덕꾸덕 말라가더라구. 송도까지 가서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 내 배낭에 있던 책 한 권 줬지. 그 상황에서 수고했다고 돈을 주면 받겠어? 그래서 준비했던 게 미얀마 거실에 굴러다니는 책을 한 권 넣어왔던 거야. 그래 내가 쓴 소설집! 자기 남편이 준비해 두었던 차량 인수증에 사인하고 헤어졌는데, 밤새 잠 못 잤지, 무르팍 통증은 더 심해졌지. 대한항공, 생각하니 약은 오르지.
내려오는 데 죽을 맛이더라구, 그런데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신 사장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할 거야. 내려오면서 휴게소에서도 그렇고, 간이, 그렇지, 졸음쉼터에서도 그렇고, 짬만 나면 계속 대한항공에 전화를 시도한 거야, 좀 따져야 하겠더라고. 그게 계속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안 되고 있는데 대한항공에서 카톡이 들어왔더라고,
이거 내가 화가 난 걸 어떻게 알고 카톡을 보내?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카톡을 열어보니, 내용이 뭐겠어?
웃기는 말인데. 대한항공 우수고객 자격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는 거야. 마감이 어제였는데, 코로나 기간을 고려해서 10회 이상 탑승하거나 탑승 거리가 15,000마일이 조건인데, 나는 16,500마일이 넘었으니, 우수 고객자격을 유지한다며 우수고객으로 모시겠다는 거야.
참! 더럽게 깔끔한 고객관리네!
전화통을 패대기치고 싶더라니까.
웃지 마! 웃을 일이 아니라, 그 기간이라는 게 어제가 마감이었겠어? 천만에. 추석이 넘어서 탔어도 마찬가지 카톡이 왔을 거야. 어제가 마감이었다고. 15,000마일이라는 것도 확인이 되는 거야? 내가 14,000마일이었으면, 13,000마일이 조건이라고 했을지 어떻게 알아? 그런 카톡을 받았으니 더 화가 나는 거야.
어쨌거나, 구미까지 내려왔어, 병원 앞에 차를 세우고 접수하고, 잠시 짬이 나는 시간에 강남병원 앞에 간이 녹지대 벤치가 있지? 거기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전화했지. 그래. 외래로 접수를 해놓고 기다리던 참에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왔던 거지. 짬을 이용해서 전화했더니 그때는 바로 연결이 되더라고,
정성을 다하는 스카이팀 대한항공입니다.
국내선 서비스는 1번 국제선 서비스는
정성?
무슨 정성?
누구한테? 그 소리를 들으니, 열이 더 받는 거야. 그 멘트가 나오면 바로 연결이 되거든,
예,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박 채이입니다.
그 아가씨가 박채이라고, 박채희라고 했는지 김채이라고 했는지 지금은 모르겠어. 아무튼, 전화를 끊지 못하게 붙들어야 했어.
박채이라고 하셨나요? 잠시 제가 이름을 좀 적고, 기다리세요! 전화 끊지 마세요! 전화 끊으면 여럿이 작살납니다. 박채이라고 하셨나요? 그렇게 물으니 박 채휘래.
내가 이름을 적는다고 했으니, 전화를 끊을 수가 없겠지. 무슨 일이냐고 묻는 거야? 티켓을 확인하거나 끊으려는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저도 뭔가 심상찮은 낌새를 팼겠지. 항의하겠다고 하면 그런 부서가 아니라고 할 거 아니야? 그래서 환불 받으려고 한다고 했지.
오늘 아침에 인천에 도착한 비행기, 어젯밤 미얀마에서 출발한 비행기 자료가 있을 터이니, 그걸 클릭하라고 했지.
조금 망설이더니, 고객님 성명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더라고, 그거야 당연히 묻겠지. 그걸 물은 다음에 주민등록번호에서 생년월일만 알려주면 바로 그 아가씨 입에서 영문으로 된 내 이름의 스펠링이 바로 나와, 그런 시스템 없겠어? 그러나 그건 표를 끊을 방법이고, 이게 주민등록번호 다 불러주니 스카이패스 회원 번호를 요구하는 거야, 그게 없다고 하니, 어젯밤 탑승한 티켓에 탑승 번호를 불러달라는 거야, 이미 그 아가씨가 생년월일로 컴퓨터를 클릭했으면 그 안에 내 자료가 다 있거든.
이제 신경전이 시작된 거지.
탑승한 티켓 번호? 그것도 없다고 하니, 이메일 주소를 불러달라는 거야. 그래서 이메일 주소를 불러주었더니 틀린다는 거. 대한항공에 이메일 주소가 무엇으로 되었나? 생각하니 그건 카카오 통합하기 전에 옛날 메일주소였는데 그 순간 메일 주소가 순간적으로 생각이 안 나는 거 있지.
정말 그걸 꼭 알아야 하겠느냐고?
내 정보가 지금 컴퓨터에 나타나지 않았느냐고? 표를 끊을 때도 이런 방법으로 하느냐고 되물었지.
본인확인을 위해서는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러면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옛날 메일주소가 뭐였는지 찾아보겠다. 그랬더니, 됐고, 옛날 메일주소를 찾는데, 전화를 끊지 말라는 단서를 붙였으니, 저도 답답했겠지? 그냥 집 주소를 불러달래, 아니, 본인확인을 위해 메일 주소를 불러달라며? 기다려! 지금 집 주소는 생각도 안 나고, 내가 옛날 메일 주소를 찾을 거니까, 이제 시간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갔다는 걸 눈치챘는지 본인확인이 되었다는 거야. 거기서 이메일이나, 스카이패스 회원 번호, 탑승권 번호, 하나라도 틀리면 다시 확인하고 전화하고 끊을 판인데 내가 애초에 이름을 적어놨다, 하고 전화 끊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기에 전화를 끊지 못한 거 아니겠어?
신 사장, 종일 전화만 받는 지도 이런 고약한 상황이 되면 죽을 맛이었겠지. 내가 물고 늘어지니 전화 끊는다는 걸 포기했는지 무슨 조건으로 환불받고 싶은 거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어젯밤 그 비행기 승객이 얼마냐고 물었지, 한참 망설이더니 182명이 탔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그 비행기 승객 정원이 얼마냐고 또 물었지. 또 좀 뜸을 들이다가 280석이라 하는 거야.
280석이면 신 사장, 큰 비행기야, K303이나 K380. 정도 되는 최신 기종에 에어버스라고 불리는 큰 비행기야.
그렇다면, 몇 좌석이 남아서 돌아온 건지 계산을 해보라고 했지. 잠시 뜸을 들이더라고, 그땐 그 아가씨가 이미 내가 좌석 업그레이드해서 돈을 더 내고 탄 승객이라는 걸 알고 있지. 컴퓨터를 열었는데 내 정보가 있을 거 아니야? 그걸 모르고 대답하겠어?
자! 이 비행기에 다리가 부러져서 일정보다 앞당겨 귀국하는 사람이 왜 위약금과 승급금을 내야 하느냐? 박채휘씨가 대답할 수 있느냐? 이름을 막 거론한 건지. 박채휘씨 당신 임의대로 환급해 줄 수 있느냐? 책임질 사람을 바꾸어라, 전화 끊지 말고 바꾸어라, 그렇게 막 나가니 환장하겠지. 내가, 이거 지금 내 젆화기에 녹음되고 있다고 또 초를 쳤지.
통화녹음? 신 사장, 나 통화하면서 녹음하는 거 그런 기능을 몰라.
그 아가씨도 환장할 거 아니야. 뒤에 받아야 할 전화는 잔뜩 밀렸지. 뭐라고 딱 부러지는 대답은 못 하겠지? 나야 느긋하지. 미얀마 있을 때처럼 전화요금이 막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전화가 끊어질 일도 없으니, 나야 너그들 욕 좀 봐라, 그런 심보로 전화통을 들고 있었더니 지금 그 책임질 담당자가 없다는 거야. 좀 있다가 들어오면 전화를 해주겠다는 거야.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느냐? 물으나 마나 컴퓨터에 있겠지? 있으니, 카톡까지 날아오겠지. 또 내가 전화했으니, 그곳에도 내 전화번호 기록이 남아있을 거고, 그래도 내가 안 끊는 거야. 알고 있으면 내 전화번호를 불러봐라. 내 전화번호를 부르더라고, 이 아가씨야! 아까도 알고 있었을 건데 왜 그렇게 애를 먹였냐? 이제 이메일 주소가 생각났는데 불러줄까? 또 그걸 따지는 거지. 책임질 사람이 들어오는 대로 연락한다고, 지금 전화가 너무 많이 말려 있다고 하면서 제 이름을 말하고 끊더라구,
그 아가씨가 받은 그쪽 전화에는 이미 내 통화 내용이 다 녹음되었겠지.
책임질 사람이 나에게 전화할 적에는, 이미 그 통화 내용을 다시 돌려서 듣고 무슨 문제인가 파악하고 나에게 답변하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 한참 후에 전화가 왔더라구, 그때는 내가 CT를 찍고 있을 때였어. 전화기를 보니 대한항공 ARS 전화 1588-2001,
여자인데 듣지도 않았어. 지금 병원에서 사진 찍고 있는데 3분 후에 다시 전화하라는 말만 수화기에 뱉어내고 끊은 거지. 삼 분 후에 다시 그 번호로 전화가 왔더라고. 그래서 또 짜증을 냈지, 아, 이 전화로 전화하니 내가 전화할 수가 없잖아? 일반전화 없느냐고, 일반전화로 했으면 내가 전화할 거 아니냐고, 짜증을 한바탕 내고 오 분 후에 전화하라고 또 끊은 거지. 일반전화로는 못 하지. 그 번호를 알면 저들은 죽는 거지, 이런 경우에 누구라도 그 번호를 알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질할 거 아니겠어?
오 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더라고, 그런 문제를 책임질 위치에 있다면, 아가씨는 아닐 거고 나이가 좀 있을 거니까, 남의 집 새댁 아니겠어? 거기다 대고 대한항공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냐고 물었지.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고, 이 문제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래. 무슨 팀이냐고 물었더니, 서비스 품질 뭐라고 하는 데 모르겠고, 이름을 물었더니 손머시기라고 하는데, 역시 관심이 없고, 실장이냐고 물었더니 팀장이라는 거야, 팀장? 그게 뭐 그리 중요해? 나는 원하는 답변만 얻으면 그만인데? 나는, 대한항공이 아니라 대한중기, 거 뭐시냐? 포클레인 부품 중에서 그럴듯한 거, 그렇지, 쎈터쪼인트 역류 방지시스템 홍보이사, 이래도 제가 알 게 뭐야? 우리 회사는 그런 직책이 있다는데? 신 사장 얼른 들어봤을 때, 팀장이 더 높아? 아니면 이사가 더 높아?
지가 팀장이든 말든, 그거 아무 소용 없는 거야.
그래서 조목조목 따졌지.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내가 많이 다쳤다. 그걸 전제로 먼저 깔고 얘기하자.
비행기 빈 좌석이 그렇게 많이 남았는데, 왜 위약금을 내야 하느냐? 회사 운임 규정상 그렇대.
왜 좌석 승급만 종용했느냐? 그러한 경우에 대한항공 양곤지사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그쪽과 상의하라고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 아니야?
그 양곤지사가 발권하는 권한은 없다는 거야. 거기다가 뭐랬는지 알아? 그걸 알려주지 않았다고 환급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을 또 끌어다 붙인 거야.
그러면, 빈 좌석이 그만큼 비어 있다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
당신 같으면 좌석이 그렇게 남았는데 위약금 내고 타겠느냐? 공항에 나가서 웨이팅을 걸었으면 그 비행기를 못 탔겠느냐?
웨이팅 승객에게 위약금을 받느냐? 그렇게 따지고 들었더니, 웨이팅 승객에게는 위약금이 없지만, 그걸 알려주지 않았다고 환급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야.
이렇게 되면 얼마나 약이 오르겠어?
야, 남의 집 새댁 보고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내가 그 위약금 받겠다고 전화한 꼴이 되었잖아? 거기서 전화요금이 얼마나 나왔고, 공항에서 똥을 쌌고 그런 이야길 하겠어? 그런 소리 하면 나만 비참해지는데?
코드가 맞지 않았어. 나는 억울하다는 걸 피력하는데 이 아줌마 환급 규정만 들먹이는 거야. 코드가 영 안 맞는 거지. 그 아줌마 컴퓨터로 내가 얼마의 위약금을 내고 좌석 승급에 얼마를 냈다는 걸 보고 있었을 거야. 대한항공에서 그걸 환급해 주겠어? 선례가 없는데? 만약 그 회사에서 선례를 깨고 환급을 해주는 사태가 생기면 그 아줌마 그 자리에 붙어 있겠어?
그럴 땐, 내가 왜 전화를 했는지 파악하고 그런 경우가 있었으니, 진심으로 미안하다, 회사 규정에는 없지만, 인간적으로 제 돈이라도 물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억울하시면 계좌번호 불러 달라, 이러면 내가 계좌번호를 부르겠어? 또 불러준다면 입금 안 시키면 되는 것이고, 입금 안 시킨다고, 또 전화하겠어? 그 여자가 그런 직책에서, 그런 항의에 제 돈 물어주면 제 월급이 남아나겠어? 근데 이 아줌마, 그런 융통성으로 어떻게 그런 자리를 지키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회사 규정을 들먹이며 환급이 안 된다는 말만 하는 거야.
이야기가 그쯤 되면 내가 얼마나 약이 올랐고, 어떻게 힘이 들었고, 얼마나 다쳤고, 이런 이야기는 하면 안 돼.
신 사장!
다시 생각해 봐. 이미 인간이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만 더 비참해진다는 거지. 그래서 이제 돈의 논리로 돌아간 거지. 환급이 안 되느냐? 안 된대. 단호하게 안 되느냐? 또 물은 거지. 안 된다고 하겠지.
그럼 좋다, 내가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런 경우를 거론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고객들이 평가하도록 하겠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이 뭔지 알아? 그렇게 해서 맘이 풀린다면 그렇게 하세요, 이럴 줄 알았지? 아니야!
맘대로 하세요!
그런 여자하고 내가 통화를 더 해야 해? 이름이 뭐냐고 다시 물었지. 약간 머뭇거리더니, 손 머시기라고 했는데 모르겠어. 대답만 듣고 알았다고 하고, 지가 전화를 쥐고 있든 말든, 그냥 끊은 거지.
그때는 이미 병원 원무과장이 나와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거든, MRI 찍자는데 내가 찍을 차례인데, 내가 하도 열 받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니까, 뒤에서 듣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MRI 찍고 입원하기로 결정을 하고 병실에 올라가면서 캐리어에 있던 물건 전부 꺼내 들고 갔는데 밥이 나왔더라고, 침대에 밥이 있는데 그게 넘어가겠어? 어제 종일 굶었다니까,
저녁에 그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그 여자 ㅈㅇ말 큰소리 칠만 하더라고.
정말 맘대로 하세요, 큰소리 칠만 했어.
대한항공 홈페이지를 열어보니까,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항공권을 구매하는 화면이 전체에 버티고 있는 거지. 그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그걸로 뭔 딴지를 걸어? 영업하는 항공사 홈페이지니 그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어? 거기서 항공권을 팔아야 카트만두 공항에 대한항공 사무실 청소를 하는 네팔 아줌마 월급도 줄 거고, 프라하 공항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임시직 청년 일당도 줄 거 아니야?
그건 그렇다손 치고, 다른 회사 홈페이지처럼 고객의 소리, 뭐 이런 걸로 항의하는 코너가 없어. 뭐가 이래? 다시 찾아보니까, 맨 아래 고객 지원 센터에 고객의 말씀이라고 붙어 있었는데 그걸 열어보니, 글쎄 고객의 말씀이라는 코너가 있기는 한데, 거기에 들어가려면 스카이패스 회원 번호가 있어야 하고, 글을 올리려면 칭찬이냐, 불만이냐,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곳에 글을 올리면 담당 부서로 이관해서 파악하고 그 문제를 파악해서 이메일로 답을 해준다는 시스템이야, 또 비방이나 폭언은 통보 없이 삭제될 수도 있다는 경고문을 붙인 거!
거기에 뭐라고 올리겠어? 신 사장! 공항에서 똥 산 걸 어느 부서에서 담당해? 카트에 고객은 소중한 가족이라고 적은 홍보부서에서 담당해? 웃기잖아?
미쳤어? 내가 거기에 글을 올리게?
그 서비스 품질을 담당한다는 손머시기, 그 아줌마가 큰소리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더라고, 그런 홈페이지에 무슨 글을 도배해서 고객의 공분을 사?
그렇다고 내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천만에.
홈페이지가 아니면 어때?
이거 신랄하게 소설로 써서 다른 매체에 발표하면 되잖아, 나 소설가잖아? 일 년에 여기저기 문예지 서너 군데서는 청탁이 들어온다고, 거기에 싣는 거지. 다른 건 다 소설인데 대한항공이라는 고유명사만 넣고 내가 탔던 날짜와 시간, 그리고 요금 형태를 그대로 박아버리는 거야. 그 과정에서 화자인 내가 더 처참하고 비참하게 묘사하면 할수록 공분은 더 커지겠지?
문예지 하나에 안 되면, 다른 문예지 청탁이 들어오면 또 그 글을 보내는 거야. 재탕? 아, 선생님, 이 글 전번에 저쪽 잡지에 실렸던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게 형편없어서 엄청나게 퇴고하고 손봐서 성격이 달라진 글이야. 그래서 좀 고쳐서 보내주는 거지. 안 실어주겠어? 여태 원고료 없이 청탁해서 실었는데? 또 그다음 다른 잡지에 싣는 거지, 실을 때마다 제목을 살짝 바꾸는 거지. 제목을 살짝 바꾼다면, 가령 지금 홍사의 귀국기라는 제목을 달고 한 번 우려먹고, 그담에는 턱도 없는 이니셜을 써서 K의 귀국 노트, 그담은 대한항공 거룩한 홈페이지, 이렇게 제목을 바꾸어서 또 발표하고, 더 신랄하게 꾸미면서 나를 더 처참하게 만들어서, 비행기는 날지 않는다거나, 좌석은 있어도 앉을 자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살짝살짝 내용을 조금씩 바꾸는 거야. 웃기잖아? 나를 고정 필진으로 여기는, 원고료도 못 주는 잡지가 대구에 두 곳이 있고, 서울에도 두엇 있다구. 그런 잡지사에서도 책들이 일 년에 두세 권씩 나온다고.
잡지사에서 재탕이라고 안 실어 줄 거 같아?
실어주기 싫어? 왜? 대한항공 고유명사를 거론하는데 출판사가 구설수에 휘감기기 싫어서? 그런 거 다 피해 가는 방법이 있어, 그 신문 같은데 나오잖아? 외부나 객원 필진의 글은 본사의 입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잡지사, 그런 글 실어도 다 피해 간다니까.
소설?
쓰는 거 간단하지, 그걸 뭘 어렵게 생각해? 이런 사건, 서사가 있는데 재구성만 하면 돼.
신 사장! 내가 지금 신 사장과 하는 이야기, 지문 없이 신 사장과 나의 대화만 그대로 녹음해서 실어 봐, 녹음이 안 되었으니 했던 말을 회상해서 재구성하면 되잖아? 이거 이야기되잖아? 내 감정은 넣지 말고, 격분하지 말고, 담담하게, 작가개입 없이 깔끔하게 서사를 시간대로 나열하면 소설의 형태에서 얼마나 실험성 돋보이는 작품이야. 그렇게 지문이나 설명 없이 대화로만 쓰인 소설도 많아. 소설 어려운 거 아니야. 지금 신 사장과 하는 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거 한 토막을 그대로 퍼서 실어도 소설이 돼. 소설은 서사, 이야기잖아? 이야기만 가지고 있으면 소설은 되는 거지. 시사하는 바 있고 고발성에 재미. 똥을 싼, 구린내가 나는 감동까지, 거기다가 다리 다쳐서 표를 구하는 그 처절한 사투까지 담으면 얼마나 훌륭하고 깔끔한 작품이야? 독자들의 분노와 공분을 천당에서 처참하게 여겨지는 지옥까지 마구 끌고 오르내릴 수가 있는 좋은 소재가 아니겠어?
이런 글이 활자가 되어 나타나면, 문학잡지 서너 곳에 실리면 대한항공 귀에 들어갈 거 아니야? 아무리 책을 안 읽는 세상이라지만, 저를 욕하고 비방하는 거야 금세 알겠지.
이게 뭐야?
우리, 정성을 다하는 스카이팀 대한항공이 이런 데, 왜 이따위 글이 실려?
어느 눔이 읽어봐도 읽어볼 거 아니야? 아니면 딴 놈이 읽고 너그들 회사, 그런 글이 어딘가 실렸더라? 이렇게 소스가 들어갈 수도 있는 문제고.
신 사장, 내가 너무 비약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그때 가서 대한항공에서 찾아보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그런 생각으로 광분하며 읽어보지만, 내가 거기에다가 날짜, 시간, 다 박아 놨으니 그래! 오늘 2023년 7월 5일 비행기, 양곤에서 인천, 저들도 비행 기록이 있으니 항의하거나 고발하기 전에 찾아볼 거 아니야? 찾아보니 사실이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서비스 품질 담당 손머시기가 도대체 어느 년이야? 이 년이 고객에게 뭐 이따위로 응대했어?
저들끼리 난리 떨 거 아니야?
그다음?
그다음은 나도 모르지. 내가 저렇게 큰 대한항공을 어떻게 상대해? 이런 방법뿐이잖아? 가만히 있자니 약이 올라 죽을 맛이고, 잠시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소설가가 이런 글 발표 못 할까?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러면 안 된다. 참아라! 무슨 개 죽사발 핥는 소리야?
그래서 펜이 칼보다 무서운 거라구? 두고 보라지. 당장 올라가서 신 사장하고 했던 이야기 그대로 적어서 소설적 요소를 가미시켜 볼까? 삼십 분이면 끝나! 그 시간이면 신랄한 소설이 완성된다구.
뭐야? 앞으로 대한항공 안 탈 거냐구?
왜 안 타? 당연히 타지. 신 사장 그런 소리 하지 마. 모닝캄, 십 년 굳었겠다. 공항에 라운지 이용권 빵빵하겠다. 내가 가진 지금 마일리지만으로 비수기에 미얀마 왕복은 갔다 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대한항공 안 타면 그런 나라에 가서 사업 못 해. 요즘 저가 항공, 방콕까지 가면서 물 한 잔 안 주고 생수 한 병에 2400원 받아 처먹는 그런 비행기로 다니며 일을 못 하지.
적어도 세계적인 항공사, 대한항공 정도는 되어야 다른 나라에 투자하고 들락거릴 수가 있지. 그거 요금 아끼거나 밉다고 가다가 경유를 두 번이나 하고, 6시간 걸리는 거리를 환승 대기 시간까지 합쳐서 23시간 날아간다? 이게 말이나 돼? 그런 걸 타고 여행도 아니고 무슨 해외사업을 해?
대한항공 큰 회사야. 항공업계에서는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걸? 세계 열 손가락? 그 정도야 충분히 되겠지! 큰 항공사가 뭐가 있나? 중국 동방항공? 그건 국내선이 워낙 많으니까, 비행기 보유 대수로는 당연히 으뜸일 거고, 중국? 국내 노선만 해도 얼마나 되겠어? 그 넓은 땅에. 그리고 뭐가 있냐? 오, 에어아시아도 있네? 에어아시아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태국, 세 나라의 합작품인데 비행기 보유 대수는 엄청 날 걸? 취항 노선도 많고, 그런데 그 에어아시아는 다 소형 비행기야. 그쪽을 다녔는데 대형 비행기는 못 봤어. 그게 대한항공보다 크다고 치고, 그 담에 유명한 게 뭐가 있나? 캐나다 항공, 에어캐나다? 이 항공사는 여객의 상대로 한 게 벌써 백 년? 구십 년을 넘었을 거야!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항공사인데, 지금 얼마나 큰지 모르겠고, 그런 거 따져서 뭐 하겠냐만, 대한항공이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분명히 들어갈 거야. 이렇게 큰 항공사 서비스 왜 이 모양이냐?
대답은 간단해. 채찍이 없다는 거지. 가장 좋은 채찍은 승객이 아니야, 바로 경쟁사 아니겠어?
대한항공과 버금가는, 그래 한국항공이라고 하자. 비행기 보유 대수와 규모가 비슷한 항공사 대한항공이 있어서 서로 품질 경쟁을 한다면 이런 일이 생기겠어? 거, 손머시기라는 서비스 품질관리 실장, 그따위로 고객을 응대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면 자르진 않더라도, 성질난다고 잘라버리면, 해고비 줘야 되잖아? 제가 사표를 던지고 나가도록 만드는 거지. 대한항공 그런 거 잘하잖아? 저기 뭐야? 아프리카 쪽 오지, 일주일에 비행기 한 번 뜨는데 그런 곳으로 발령 내면 견디겠어? 아이들하고 남편은 서울 있는데 그런 데 가서 근무하겠어?
대한항공이 정말 그런 건 잘하잖아?
미국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꼬락서니, 생긴 게 맘에 안 든다고 여객 전무 내리라고 하고, 그게 문제가 되니까, 자르지는 못하고 이상한 근무 방법을 제시해서 쫓아내고 근무 스케줄 나오는데 석 달이 넘게 오지 새벽 비행에 근무하라면 버틸 재간이 있어? 그 여객 전무라는 친구 근무 스케줄을 언론에 공개했잖아?
이게 다 너무 큰 탓이야? 비대해졌어.
경쟁사가 없다는 거. 어느 기업이든, 가장 무서운 게 경쟁사가 아니겠어? 기업이 가장 무서운 존재는 절대로 고객이 아니야. 경쟁사지. 그런데 대한항공은 이제 경쟁사가 영원히 없어. 얼마 전에 아시아나도 대한항공이 꿀꺽했잖아? 회장 죽고 저 가족들끼리 경영권 분쟁하다가 아시아나를 흡수하는 쪽이 유리하겠다 싶어 무리하게 흡수해서 경영권 가져갔잖아?
진에어? 티웨이? 또 뭐가 있지? 제주항공? 그런 회사 조그마한 중고 비행기 대여섯 대로 장사하고 있어. 세계 100개국이 넘는 국제공항으로 취항하는 항공사랑 무슨 경쟁을 해? 품질 경쟁? 가격 경쟁? 게임이 안 되지.
고객 편에서 보면 무조건 경쟁사가 있고 고객은 선택할 여지가 있어야 참신하게 고객의 권리를 찾는데, 이건 아니지. 당장 나만 해도 또 대한항공을 탄다고 하잖아?
그래 신 사장 말이 맞아. 일단 함 붙어보고.
나도 맷집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거야. 홈페이지 무시하고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 손머시기라는 그 새댁이 알기나 하겠어?
그 큰 회사하고 싸운다?
이거 입맛이 슬슬 당기네! 없는 사실도 아니고,
그런 회사하고 싸워서 돈의 논리로 이길 수는 없겠지만, 나는 잃을 게 없는데? 잃을 게 없는 놈이 젤 무서운 놈 아닌가? 그런 걸 소설로 써서 그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내겐 오히려 덕이 될 수도 있겠는데? 아, 무명 소설가 글이 내용적인 측면에서 법적 다툼이 되었다? 어쩌면 이런 건 무명 작가에게 하늘이 내린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붙으면 그 작품을 더 리얼하게 각색하는 거야? 급기야 그래서 인간적인 비애를 이기지 못해 자살까지 시도한다? 국제선 청사 화장실에서 자살 시도, 이거 얼마나 재미있어?
신 사장!
대충 여기까지 하고,
어제 종일 굶었는데도 밥 생각이 없네,
아침? 병원에서 두어 숟가락 먹은 게 고작이야.
절대 손해 보지 않는 보험회사 횡포, 이거도 마저 씹고 싶지만, 후딱 저 위에 이발소 월남 아저씨한테 카드 찾으러 가야 해!
그 아저씨, 심부름시켰으니, 내 카드 가지고 밥이나 사 자시고 하라고 했더니 발끈하며 오는 즉시 카드를 찾아가라네. 월남 아저씨도 그날 애 자셨을 거야. 국제전화라고 했지. 남의 집에 첨 가는데 비밀번호까지 눌러서 들어가야 했지. 눈이 침침해서 카드 번호는 못 읽겠지, 맘은 급하지.
일단 카드부터 찾아오고,
손해를 빙자해서 영업하면서 손해를 절대 안 보는 손해 보험회사 이야기는 담에 하자구,
신 사장!
야, 이거 왜 배가 고프지 않나? 처먹은 거도 없는데, 약이 너무 올라서 그런가?
신 사장,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야. 처먹은 거 없어도 똥은 엄청, 싸더라구. 먹은 거 없다고 절대로 방심하지 마. 처먹은 거 없다고 똥을 적게 싼다는 보장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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