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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8일 서울에 올라가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A Collector’ Invitation)>전을 3시간 동안 관람했다. 보고 또 보았다. 그 중 매혹적인 달필로 쓰여진 다산 정약용의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을 소개합니다.
정효자전(鄭孝子傳)․정부인전(鄭婦人傳)
강진에서 유배 중에서 정약용은 정여주(鄭汝周)의 요청으로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아들 정관일(鄭寬一)이 생전에 했던 효행에 관해 글을 지었다 3년 뒤 정관일 장남의 요청으로 비단에 다시 글씨를 썼다. 같은 해 정여주는 자신의 며느리이자 정관일의 부인인 김씨의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을 담은 글을 정약용에게 청했다. 서로를 향한 가족의 애틋한 마음과 정약용의 필치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정효자전(鄭孝子傳)
丁若鏞(정약용)
鄭孝子寬一者 道康縣人也. 生有至性 酷愛其親.(정효자관일자 도강현인야 생유지성 혹애기친) 효자(孝子) 정관일(鄭寬一)이란 이는 도강현(道康縣) 사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매우 착하여 그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였다.
方六歲時 其父巡稼于田 夜寒. 孝子謂其母曰 田有廬乎.(방육세시 기부순가우전 야한 효자위기모왈 전유려호) 여섯 살 되는 해에 그의 아버지가 밭을 돌아보러 나갔는데, 밤이 되어 추워지자 효자는 그 어머니에게, “밭에 움막이 있습니까?”물었다.
曰無有 孝子勃然起而將出(왈무유 효자발연기이장출) 어머니가, “없다.”고 대답하자, 효자는 벌떡 일어나 나가려고 하였다.
母曰 莫夜孺子安往 曰父寒於原 兒煖於室 安乎哉 (모왈 막야유자안왕 왈부한어원 아난어실 안호재) 어머니가 말하기를, “늦은 밤에 어린아이가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하니, 효자는, “아버지가 들에서 떨고 계시는데 자식은 방에서 따뜻하게 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하였다.
母固止之 孝子兀然坐牕 下父反而後息焉(모고지지 효자올연좌창하 부반이후식언) 어머니가 굳이 말리니 효자는 창문 아래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온 뒤에야 편히 쉬었다.
後數年 其父遠服賈 寄家書曰平安, 孝子抱書泣(후수년 기부원복가 기가서왈평안 효자포서읍) 몇 년 뒤에 그의 아버지가 멀리 장사를 나가 있으면서 집에 보낸 편지에 ‘평안하다.’고 하였는데, 효자는 그 편지를 품에 안고 울었다.
其母怪而問之 曰家君殆有疾乎 字畫其不顫乎 及歸而問之 病則危矣(기모괴이문지 왈가군태유질호 자화기불전호 급귀이문지 병즉위의) 그 어머니가 괴이하게 여겨 까닭을 물으니, 효자는, “아버지께서 아마 병을 앓고 계시나 봅니다. 글자의 획이 떨렸지 않습니까?”하였는데, 그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물어보니 병이 위독했다고 한다.
其父又病氣痢殊死 憶園茶 忽有人指茶處 得瘳(기부우병기리수사 억원다 홀유인지다처 득추) 또 그 아버지가 설사병이 나서 거의 죽게 되어 차[茶]를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차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是日孝子夢其父病痢覓茶 覺而泣言 及歸而驗之 事若合符矣(시일효자몽기부병리멱다 각이읍언 급귀이험지 사약합부의) 이날 효자는 그 아버지가 설사를 앓으며 차를 찾는 꿈을 꾸고 깨어나 울면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온 뒤 징험해 보니, 일이 마치 부절(符節)과 같이 들어맞았다.
其父常從遠方歸 雖暮饎爨必豫具(기부상종원방귀 수모희찬필예구) 그 아버지가 먼 곳을 다녀올 때면 비록 밤늦게 돌아오더라도 언제나 따뜻한 밥을 반드시 준비하여 놓았다.
父異之 母曰 兒言今夕父且還 我如其言而已(부이지 모왈 아언금석부차환 아여기언이이) 아버지가 이상히 여기니,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아이가, 오늘 저녁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고 하여 나는 그 말대로 했을 뿐입니다.”했다.
十二歲時父病 孝子露禱天得瘳(십이세시부병 효자로도천득추) 열두 살 때에 아버지가 병이 드니 효자는 이슬을 맞아가며 하늘에 기도하여 병이 낫게 하였다.
斯其幼年實行之百一也(사기유년실행지백일야) 이상은 그가 유년 시절에 보여준 행실의 백분의 일 정도이다.
旣壯力學 涉獵經史(기장력학 섭렵경사) 장성하여서는, 학문에 힘써 경사(經史)를 섭렵하고
旁及兵法醫家 以至鵊冶風鼓寄胲之餘 靡不汎濫焉 家貧賣藥以養親(방급병법의가 이지겹야풍고기해지여 미불범람언 가빈매약이양친) 곁들여 병법(兵法)ㆍ의술(醫術)에서부터 겹야(鵊冶)ㆍ풍고(風鼓)ㆍ기해(寄胲)에 이르기까지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집이 가난하여 약을 팔아 부모를 봉양했다.
及其死也 蓋微疾也 家人不以爲憂(급기사야 개미질야 가인불이위우) 그가 죽을 때, 경미한 병을 앓아 집사람들이 근심을 하지 않았는데
旣數日孝子呼其父而坐之(기수일 효자호기부이좌지) 며칠이 지나자 효자는 그 아버지를 불러 곁에 앉게 했다.
三呼三應而不言 良久而後語之曰 死生如晝夜 君子勿悲也(삼호삼응이불언 양구이후어지왈 사생여주야 군자물비야) 그를 세 번 부르자 세 번 다 대답만 하고 말을 하지 않더니 한참 뒤에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낮과 밤이므로 군자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兒知今年有此事 其日月所不知也 今脈已亂 非藥可救(아지금년유차사 기일월소불지야 금맥이란 비약가구) 저는 올해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 달과 날짜는 알지 못했는데, 지금 맥박이 이미 어지러우니 약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兒有二雛 願以慰心(아유이추 원이위심) 제게는 두 아이가 있으니, 원컨대 이들로 마음을 위로하소서.”하였다.
越三日而絶 年纔三十(월삼일이절 년재삼십) 3일 후에 죽으니 나이 겨우 서른 살이었다.
旣踰月葬于節度營之東七里甑峯之下負酉之原(기유월장우절도영지동칠리증봉지하부유지원) 한 달을 넘겨 절도영(節度營) 동쪽 7리쯤에 있는 시루봉[甑峯] 아래 유좌(酉坐)의 언덕에 장사지냈으니,
乃孝子舊所自占 手植松柞 欲以葬其親者也 (내효자구소자점 수식송작 욕이장기친자야) 이곳은 효자가 옛날에 스스로 보아두고서 손수 소나무와 떡갈나무를 심어 그 부모의 장지(葬地)로 하려던 곳이다.
父曰始攝 臨其壙而哭之曰(부왈시섭 임기광이곡지왈) 그의 아버지는 시섭(始攝)이라고 하는데 관을 광중(壙中)에 묻을 때 곡하며 말하였다.
汝一瞑而我有三失 失子焉失友焉失師焉(여일명이아유삼실 실자언실우언실사언) “네가 한 번 죽음으로써 나는 세 가지를 잃었다. 아들을 잃고 친구를 잃고 스승을 잃었다.”
外史氏曰 父子天性也(외사씨왈 부자천성야) 외사씨(外史氏)는 논한다. 부자(父子)는 천성 지친이다.
然世蓋有拊心歐血 以愬其子于天者矣(연세개유부심구혈 이소기자우천자의) 그러나 세상에는 대개 가슴을 치고 피를 토하며 그 아들을 하늘에 호소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或位隆貲高 丐諛辭以崇飾者曰(혹위륭자고 개유사이숭식자왈)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아 아첨하는 말을 빌어 훌륭하게 꾸며
雉雊于竈 鯉躍于氷 可悉信哉(치구우조 리약우빙 가실신재) ‘꿩이 부엌에서 울고 잉어가 얼음에서 뛰어나왔다.’고도 하는데, 모두 믿을 수 있겠는가?
雖血指臠腓 綽楔相望 又非曾閔之攸蹈也(수혈지련비 작설상망 우비증민지유도야) 비록 손가락을 잘라 부모의 병을 치료하고 장딴지를 저며 부모를 봉양하여 작설(綽楔)이 즐비하다고 한들, 역시 증자(曾子)ㆍ민자(閔子)가 했던 일은 아닌 것이다.
若鄭孝子者 死而使其父狀其孝 以乞言于薦紳(약정효자자 사이사기부상기효 이걸언우천신) 정 효자는 죽어서 그 아버지가 그 효를 기록하여 진신(縉紳)들에게 말을 빌게 되었는데
一唯夫孩提之愛 而藹然情見于色 斯無怍矣(일유부해제지애 이애연정견우색 사무작의) 한결같이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빛이 애연히 얼굴에 나타났으니 이는 정말 부끄러울 것이 없겠다.
子固孝矣 乃其父亦慈父也哉(자고효의 내기부역자부야재) 아들은 정말 효자이며, 그 아버지 또한 인자한 아버지였다.
孝子旣死之越六年 嘉慶辛未之秋 茶山樵者(효자기사지월륙년 가경신미지추 다산초자) 효자가 죽은 지 6년이 지난 가경(嘉慶) 신미년(1801) 가을에 다산초자(茶山樵子)가.
정부인전
書道康鄭氏婦語(서도강정씨부어) 道康縣 鄭婦人의 말을 기록하다.
鄭寬一之妻(정관일지처) 曰金官金氏弁辰首露之遐裔也(왈금관김씨변진수로지하예야). 鄭寬一의 처는 김해 김씨로 弁韓 首露의 후손이다.
性柔馴(성유순) 善事舅姑(선사구고). 성품이 부드럽고 시부모를 섬기기를 잘하였다.
及旣寡(급기과) 育其二孤(육기이고) 午演卯演(오연묘연). 과부가 되어서는 아비 없는 午演과 卯演 아들 둘을 키웠다.
循循然和而不流(순순연화이불유). 자상하게 가르쳤으며 온화하면서도 엄격하지 않았다.
氵+自二子年踰毁齔(자이자년유훼츤) 則金性忽强毅(칙금성홀강의) 嚴酷二子(엄혹이자). 아들 둘이 7, 8세가 되자 김씨는 마음이 다급해져 생각을 굳게 먹고 아들 둘을 엄격하게 키웠다.
惑有過誤(혹유과오) 卽厲聲色撾而數之(즉려성색과이수지) 受者莫敢小動(수자막감소동) 旁觀無能解者(방관무능해자). 잘못이 있으면 즉시 소리를 높이고 안색도 엄숙하게 하여 회초리로 자주 때렸는데, 벌 받는 아들은 감히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였고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해결할 수 없었다.
一日卯演受撾(일일묘연수과) 至流血(지유혈) 聲如殺猪(성여살저) 辯呼兄與祖求救(변호형여조구구). 하루는 묘연이 회초리를 맞다가 피가 흘렀으며 목소리는 마치 돼지를 잡을 때처럼 꺽꺽거렸으며 형과 할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호소하였다.
午演長跪頫首(오연장궤부수) 泣漣鼻涕(읍련비체) 長三尺(장삼척) 勿敢出一言(물감출일언).오연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줄줄 눈물 콧물을 쉴 새 없이 흘리고 입이 석 자나 튀어나와도 감히 한 마디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其祖父從門隔窺之(기조부종문격규지) 足躩如弗能入(족곽여불능입). 그의 조부가 문틈을 통해 엿보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客曰(객왈) 盍入(합입). 曰(왈) 氣方盛而奪之(기방성이탈지) 將結轖爲病(장결색위병). 객이 말하기를 “어찌 들어가지 않는가?”라고 하자, 말하기를 “기력이 한창이면 아이를 데려오겠지만 그러지 못해 마음이 응어리져 병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事定徐入抱之(사정서입포지) 親其頰(친기협) 拭其痕而出(식기흔이출). 일이 안정되자 김씨가 천천히 들어가 묘연을 안아주고 뺨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문지르고 나왔다.
人有問者曰(인유문자왈) 煢煢幼而孤(경경유이고) 何忍爲是(하인위시). 어떤 사람이 묻기를 “외롭게 어려서 아비 없는 자식이 되었는데 어떻게 차마 이렇게 하는가?”라고 하였다.
金曰然(김왈연) 誠有是也(성유시야). 김씨가 말하기를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
昔吾聞之(석오문지) 沈副提蚤孤(심부제학조고) 其母夫人(기모부인) 嚴令其二子(엄영기이자) 從師百里之外(종사백리지외). 예전에 내가 듣기로는 심 副提學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 어머니가 아들 둘에게 엄하게 명을 내리고 백리 바의 스승을 찾아가라고 하였다.
約曰(약왈) 不五年毋敢反者(불오년무감반자).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5년 안에는 돌아와서는 안 된다. 라고 하였다.
居歲作(거세작) 二兒戀而反坐(이아연이반좌) 其隣而告之(기인이고지). 연말이 되자 아들 둘이 어머니가 그리워 돌아오자 그 이웃이 이 사실을 알렸다.
夫人召老婢語之曰(부인소노비어지왈) 吾有一利刀在袵首(오유일리도재임수). 부인이 늙은 계집종을 불러서 말하기를 ‘날카로운 칼 한 자루가 옷섶에 있다.
如有入門者(여유입문자) 予其自戕(여기자장). 만약 문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스스로 상처를 낼 것이다.
善爲飯而饋之(선위반이궤지) 寢之于而家(침지우이가) 日黎明而遣之(일여명이견지). 밥을 맛있게 지어 먹이고 너희 집에서 재워 날이 밝으면 보내도록 하라.
如有否者(여유부자) 吾用刀矣(오용도의).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내가 이 칼을 사용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二子泣如雨(이자읍여우) 而如其言(이여기언). 아들 둘은 비처럼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의 말대로 하였다.
夜旣央(야기앙) 夫人密召老婢(부인밀소노비). 밤이 깊자 부인은 늙은 계집종을 은밀히 불렀다.
時其睡之熟而出焉(시기수지숙이출언). 아들 둘이 곤히 자고 있으므로 늙은 계집종은 밖으로 나왔다.
執燭而照之(집촉이조지) 見其二子焉(견기이자언). 부인은 촛불을 들어 비추어서 아들 둘의 얼굴을 보았다.
淚點點落于面(루점점낙우면) 其一驚而寤(기일경이오). 아들의 얼굴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夫人吹燭而滅之(부인취촉이멸지) 俟其復睡而反焉(사기복수이반언). 아들 한 명이 놀라서 잠에서 깨어나자 부인이 촛불을 불어서 끄고 다시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돌아왔다.
二子卒爲名臣(이자졸위명신) 斯固古人之所以育其孤之法(사고고인지소이육기고지법). 아들 둘은 끝내 名臣이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옛사람이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우는 방법이다.
吾雖寒家子(오수한가자) 獨不得聞其風而悅之乎(독부득문기풍이열지호). 내가 비록 한미한 집안의 자식이지만 어찌 심 부제학의 소문을 듣고서 기뻐하지 않겠는가.
豈必呴呴噣噣(필유구구주주) 嚼飴餳以哺之(작이당이포지) 藏腶鱐以待其索(장단숙이대기삭) 然後爲慈母哉(연후위자모재). 어찌 구구주주하면서 엿을 씹어 먹여주고 육포와 어포를 준비하였다가 아들의 반찬이 떨어지기를 기다린 연후에 자애로운 어머니라 할 수 있겠는가.
脫是子長益浮浪沈淹(탈시자장익부랑침엄) 狹邪爲馬弔江牌意攤之戱(협사위마조강패의탄지희) 以蕩其先業(이탕기선업), 가령 아들이 성장해서는 더욱 부랑한 짓에 빠져들고 내기 놀음을 하면서 선대의 기업을 탕진한다면,
當其時也(당기시야) 雖拊心被髮(수부신피발) 號天而愬無辜(호천이소무고) 不旣晩乎(불기만호). 그럴 때는 가슴을 두드리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늘에 호소하기를 죄가 없다고 하면 너무 늦은 것이 아니겠는가.
吾亦安能獨刓如木石(오역안능독완여목석) 曾不如鳥獸之能孶其子哉(증불여조수지능자기자재). 나 또한 어찌 유독 목석처럼 미련하여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금수만도 못하겠는가.
顧有聞而然耳(고유문이연이). 돌이켜보면 들은 것이 있어서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하였다.
金之舅鄭汝周爲余(김지구정여주위여) 言其婦語如是(언기부어여시). 김씨의 시아버지 鄭汝周가 나에게 자신의 며느리 말을 한 것이 이와 같으므로
余以書諸絹(여이서제견) 以遣午演(이견오연). 내가 비단에 써서 오연에게 주었다.
午演今年十四(오연금년십사) 卯演十二(묘연십이) 金之年三十有七(지년삼십유칠) 鄭之齒五十有八(정지치오십유팔). 오연은 금년에 14세이고, 묘연은 12세이고, 김씨는 37세이고, 정여주는 58세이다.
嘉慶甲戌天中之前二日(가경갑술천중지전이일) 紫霞山人丁若鏞書于茶山東庵(자하산인정약용서우다산동암). 嘉慶 갑술년(1814년) 天中節(5월 5일) 전 2일, 紫霞山人 丁若鏞이 茶山東庵에서 쓰다.
時聞臺啓已停(시문대계이정). 당시에 사헌부 탄핵이 이미 정지되었음을 들었다.
意歸田有期(의귀전유기) 留此爲別(유차위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때가 있으므로 이곳에 머물면서 작별하였다.
첫댓글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