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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hods Employed
채택된 방법
This particular man had been very depressed and he was attracted
to the religion for a number of reasons. Of the first meeting he
attended, he relates:
이 특별한 남자는 매우 풀이 죽어 있었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종교에
매력을 갖게 되었다. 그가 참석한 첫 집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I enjoyed the stimulating conversation and energetic atmosphere at the meeting. These people related to each other as easily as brothers and sisters and clearly felt they were part of one global family. They seemed very happy with their lives. After my depression of the previous month, I was invigorated by all that positive energy. I went home that night feeling lucky to have met such nice people. . . . I was elated at the thought that . . . my life’s path was now on the only “true track” . . . the thought that God was actively working to bring about the Garden of Eden. No more war, no more poverty, no more ecological destruction. Just love, truth, beauty, and goodness. . . . We truly identified with the early Christians: the more people opposed us, the more committed we felt. It was as if we were God’s army in the middle of a spiritual war—the only ones who could go to the front lines and fight Satan each day. 고무적인 대화와 활기찬 분위기를 즐겼다. 집회에서 이 사람들은 형제 자매처럼 쉽게 서로 관계를 맺었고 그들은 하나의 세계적인 가족의 일부라고 분명히 느꼈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매우 만족했다. 이전 여러 달 동안 풀이 죽어 지냈지만 이후, 나는 그 모든 긍정적인 에너지로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날 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내 삶의 행로가 이제 유일하고 '참된 길'로 들어섰다는 생각에,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복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의기양양해졌다. 전쟁도, 가난도, 더 이상 생태학적 파괴도 없다. 사랑, 진실, 아름다움, 선량함만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진정으로 동일하다고 느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면 할수록 우리가 더 열성적이 된다고 느꼈으며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군대ㅡ매일 사탄과 싸우러 전선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ㅡ인 것 같았다. |
Very early he was encouraged to share with others what he had
learned. Of those who responded to his witness, he says:
아주 일찍 그는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도록 격려받았다.
그의 증거 활동에 응답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We saw believers as people searching for God, or looking for spiritual meaning in their lives. . . . It was always amazing to me to realize how many people in this category told us they had just been praying to God to show them what He wanted them to do with their lives. Many believed they were “spiritually” led to meet one of our members. 우리는, 신자들이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삶에서 영적인 의미를 찾는 사람들로 보았다. . . . 이 범주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방금 그들의 삶에서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지 알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었을 때, 그것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많은 신자들은 우리의 회원 중 한 명을 만나게 된 것은 "영적인" 인도였다고 믿었다. |
These words could easily be found on the lips of many of Jehovah’s Witnesses. They could as easily be found in an experience published in the Watchtower or Awake! magazines. Yet they are not the words of one of Jehovah’s Witnesses. They are the words of Steve Hassan, a former member of the Unification Church headed by Korean leader Reverend Moon, a movement often referred to as the “Moonies.”14 In his two and half years of association he became an ardent advocate and trusted leader of that movement, completely loyal and dedicated to its mission. 이런 말들은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한 말들은 <파수대>나 <깨어라!> 잡지에 실린 경험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인용된 말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한 말이 아니다. 그러한 말들은 바로 그 한국의 종교 지도자인 문 목사가 이끄는 통일교회 출신인 스티브 하산의 말이다. 그는 흔히 문이스(문 목사의 성이 문임을 나타내며 밀조 위스키를 풍자한 표현: 역자해설) 라 불리워지는 문 선명 목사와 2년 6개월간의 연합으로 그의 사명에 충실하고 헌신적으로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He resisted any effort by family members or others to take him away from what he was convinced was “the truth.” After an accident opened the way for a complete change of viewpoint, he determined to provide others with the benefit of his insight into the means by which humans can be led to give over their minds and consciences to a religious system. The book he subsequently wrote did not discuss Jehovah’s Witnesses. Admittedly, it dealt principally with movements that resort to obvious and extreme methods of indoctrination, including physical isolation, rituals and chants, and similar practices. Yet there are certain elements he describes as basic in mind control which surely merit serious thought. Consider the following: 그는 자신이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것에서 자신을 떼어 놓으려는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어떠한 노력에도 저항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 그의 관점의 변화가 극명하게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간이 종교 제도에 사람의 마음과 양심이 굴복하도록 이끌 수 있는 수단에 대한 자신의 통찰력을,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제공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시리즈로 쓴 책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논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것은 주로 신체적 고립, 의식과 구호, 그리고 유사한 관행을 포함한 명백하고 극단적인 세뇌 방법과 관련되는 운동을 다루었다. 그러나 그가 마인드 컨트롤의 기본이라고 묘사한 어떤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은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확실히 가치 있는 생각이다. 다음 내용을 고려해 보자: Those who become candidates for mind control, as found in such groups as the “Moonies,” are not, in the majority, “strange” people. Of the thousands of persons he spoke with or counselled, Hassan stated: “The great majority were stable, intelligent, idealistic people,” “the sheer number of sincere, committed members whom a newcomer meets are probably far more attractive to a prospective convert than any doctrine or structure.”15 Why, then, did they allow others to dominate their thinking? 그러한 "문이스"와 같은 집단과 같이 마인드 컨트롤의 후보가 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낯선 형태의" 사람들은 아니다. 수천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상담한 사람들 중에서 하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지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만나는 매우 성실하고 헌신적인 회원들이, 어떤 교리나 구조보다도 개종자들에게 아마 훨씬 더 매력적일 것이다."15 그렇다면, 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허용했을까? The essence of mind control is that it encourages dependence and conformity, and discourages autonomy and individuality. . . . [it seeks] to undermine an individual’s integrity in making his own decisions.16 마인드 컨트롤의 본질은 조직에 대한 의존성과 순응을 조장하고, 그리고 자율성과 개성을 저해한다.…. [그것은] 자신의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개인의 완전한 개성을 침식시킨다.16 Watchtower training causes Jehovah’s Witnesses to view “independent thinking” as sinful, an indication of disloyalty to God and his appointed “channel.” Pointing to a further element of mind control, that of “control of information,” On the basis of his experience with the “Moonies,” Hassan states: 워치타워의 주입식 훈련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독립적 사고'를 가지면, 하나님과 그분이 임명한 "통로"에 대한 불충성의 표시로서 죄악시 취급된다 . 그리고 그것은 "정보 통제"라는 마인드 콘트롤의 또 다른 요소를 떠오르게 한다. "문이스"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하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 . the ideology is internalized as “the truth,” the only “map” of reality. All that is good is embodied in the group. . . . All that is bad is on the outside. . . there is never a legitimate reason for leaving . . . . Members are told that the only reasons why people leave are weakness, temptation, insanity, brainwashing, . . . pride, sin and so on.17 . . . 이데올로기는 현실의 유일한 '길 안내'인 '진리'로 내면화된다. 선한 것은 모두 그룹에 구현되어 있다…. 나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떠나야 할 정당한 이유는 결코 없다…. 회원들은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나약함, 유혹, 정신이상, 세뇌에 의할 뿐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17 |
I do not favor the loose application of the word “cult” that has become common today. As someone observed, for many the term is a label they attach to any religion they do not like. I do believe that a religion that is not a “cult” may nonetheless manifest many cultlike qualities. Of the elements presented above as fundamental features of religions exercising mind control, it is a fact that every single one of them is clearly present among Jehovah’s Witnesses. In the case of Jehovah’s Witnesses there is no physical isolation like that employed by some religious movements (as is also done by officials who take persons as political prisoners for indoctrination). Yet there is isolation of a very definite kind.18 나는 오늘날 보편화되어 있는 "컬트"라는 단어를 마구 적용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누군가 관찰한 바와 같이, 그 용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종교에 붙이는 꼬리표일 뿐이다. "컬트"가 아닌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컬트적 요소가 상당 부분 분명히 나타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인드 콘트롤을 행사하는 종교의 근본적 특징들로 위에서 제시한 요소들 가운데서, 여호와의 증인 종교 가운데서 적어도 한가지 요소는 분명히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일부 종교운동에 사용된 것과 같은 신체적 고립은 없다.(사상이 주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범을 고립시키는 공무원들과 같이 )그럼에도 매우 분명한 종류의 고립이 있다.18 The organization takes the Biblical exhortation ‘not to be part of the world’ and applies this as meaning that Jehovah’s Witnesses should restrict to the minimum their association with anyone not of their faith—which, in the final analysis, means anyone not embracing the current teachings of the organization.19 Such persons are “not in the Truth,” which is the same as saying that they are all “in the lie.” All non-Witnesses, no matter how fine their personal qualities, no matter how high their standards, no matter how deep their faith in God, Christ and the Bible may be, are “worldly.” Social contact is acceptable if it is done with a view to creating an opportunity to “witness” to the “worldly persons”; it is discouraged on any other basis. A Witness may, in conversation with a “worldly” neighbor or fellow employee or business associate, steer discussion into religious topics but, as I know from experience, the thought is always “how to give the person a witness.” There is concern that the direction of the conversation will be one way and one way only. 조직은, 세상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경의 권고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성경의 권고를 믿음으로 연합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최소한의 접촉으로 제한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적용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분석해 볼 때, 그 의미는 조직이 제공하는 현재의 가르침을 포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19 그러한 사람들은 "진리 안에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든 비증인들은, 아무리 그들의 개인적 자질이 훌륭해도, 그들의 수준이 아무리 높더라도, 하나님, 그리스도와 성경에 대한 믿음이 아무리 깊어도, '세상'의 일부로 본다. 사회적 접촉이 "세상적인 사람들"에게 "증인"이 될 수 있는 전도의 기회를 가질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사회적 접촉은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외의 사회적 접촉은 다른 어떤 근거로도 허용되지 않는다. 증인은 "세속적인" 이웃 또는 동료 직원이나 사업 친구와 대화할 때, 종교적인 화제로 토론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그의 생각은 항상"그 사람에게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화의 방향은 오직 일방적이며, 관심은 조직의 가르침을 전달하려는 것 뿐이다. |
It is not to see if the Witness might learn something from the other person or to have any genuine interchange of thoughts and ideas. After all, that would be useless since the other person is “not in the Truth”! When the person conversed with proves not inclined to agree with the “witness” presented, whether a teaching such as the significance of 1914 or any other topic, the Witness generally feels that the conversation is unproductive and may as well stop. A mental barrier is raised toward any remarks heard that do not conform to the current teachings of the organization. Evidence that might disprove any of those teachings usually causes the Witness to respond in a programmed way—to quickly shut the door of his mind to that evidence. 증인은 상대방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지, 아니면 생각과 개념의 순수한 교류를 상호간에 시도해 보려는 것이 아니다. 결국 상대방은 "진리 안에 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1914년의 의미와 같은 가르침이든 다른 주제이든 간에, 제시된 "증거"에 동의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낼 때, 대다수 증인들은 대화가 비생산적이라고 느끼고, 중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현재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발언도 영적인 장벽이 가로막는다. 그러한 가르침들 중 잘못된 것임이 밝혀질 수 있는 증거는 주입된 프로그램으로 반응하게 된다. 즉, 증인은 그 증거에 대해 마음의 문을 재빨리 닫아버린다. Similarly with reading material. While the Watch Tower Society’s publications quote frequently, at times liberally, from all sorts of “worldly” publications, including sociological, psychological and religious works, the feeling is generated that only the organization can safely do this, and that, particularly as regards religious publications, including Bible commentaries, it is dangerous for the average Witness to read such sources of information. Not merely caution, but distrust and aversion are engendered. Evidently the faith developed by the organization is not viewed as sufficiently robust to resist the effects of such reading. Again, in this area one finds two separate messages offered in the Watch Tower publications, one directed to those outside the organization, the opposite toward those within it. Those outside are urged to question their religious beliefs, no matter how long they have held them. Articles titled “An Open or a Closed Mind— Which Do You Have?” and “An Open Mind Wins God’s Approval” appear in the November 22, 1984, Awake! and another titled “Are You Open to New Ideas?” in the January 15, 1989 Watchtower. These are all directed entirely to non-Witnesses. The first article, on page 3, gives a definition of prejudice as: 독서할 자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워치타워 협회의 출판물은 사회학, 심리학, 종교학 등 '세속적'인 각종 출판물에서 자주 인용되지만, 조직만이 안전하게 이런 선별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특히 성경 해설서를 비롯한 종교 출판물에 대해 자주 인용된다. 일반 증인이 그러한 정보의 출처를 읽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단순히 조심해야 한다고 할 뿐만 아니라 불신과 혐오를 부추긴다. 이 사실은 조직이 가르치는 믿음이 그러한 독서의 영향에 저항할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증거임에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점에 있어서 워치타워 출판물에 제공되는 두 개의 분리된 메시지를 찾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조직 외부의 메시지를 대상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조직 내부의 메시지를 대상으로 한다: |
A judgment or opinion, favorable or unfavorable, formed beforehand or without due examination; a mental decision based on other grounds than reason or justice; especially, a premature or adversely biased opinion. 호의적이든 아니든, 사전에 또는 정해진 심사 없이 형성된 판단이나 의견, 합리적이거나 정의로움이 아닌 다른 근거에 기초한 정신적 결정, 특히 성급하거나 부정적으로 편향된 의견. |
Recognizing that decisions made “without due examination” or judgments reached “on other grounds than reason or justice” are evidences of a closed mind, the article advocates an “open mind” which is “receptive to new information and ideas,” and “willing to examine and evaluate information without a biased attitude.” Farther along it states: '정해진 심사도 없이' 내린 결정이나 '합리적이거나 정의로움이 아닌 다른 근거에 기초하여 내려진 판단이 폐쇄적인 마음의 증거라는 점을 인식한 이 글은 '새로운 정보와 사상에 대해 수용적'이 되고 '편파적인 태도 없이 정보를 검토하고 평가하려는 의지'를 표방한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닫힌 마음은 지식의 부족을 나타낸다. 우리는 주제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왜곡되거나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올바른 결론에 도달될 수 있는 사실적 근거들이 부족함을 느낀다. . . 닫힌 마음은 주제에 대해 관심의 부족이라는 구실로 외면하게 되거나 문제를 조사하려는 태도를 회피하게 된다. 사실상 그것은 불확실성이나 의심의 표시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종교적 견해를 방어할 수 없다면, 우리의 믿음을 논리적 주장이 아니라 비방과 빈정거리는 어투로 공격하는 자들에 대해,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편견이나 어리석게도 닫힌 마음 . . .심지어 닫힌 마음을 가진 종교인들도 더러 있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에만 관심을 가질 뿐, 다른 사람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려는 자발성을 보이지 않는다. . . . 종교를 바로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완전한 고착에 달려있다. 자신의 종교가 이러한 기준에 충족되느냐 하는 것은 그 가르침을 열린 마음으로 성서와 비교해서 오직 결정될 수 있을 뿐이다. |
It seems incredible that the organization’s writers cannot see the obvious inconsistency between these exhortations to open-mindedness given to “outsiders” and the exactly opposite admonition given to those within the organization. A “Question from Readers” in the May 1, 1984, Watchtower, page 31, argues that it is right that Jehovah’s Witnesses, going to people’s doors offering them Watch Tower literature, should refuse to accept religious literature the householders visited may in turn offer them. Among other things it states: 워치타워 조직의 집필진은 "외부인"에게 개방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제시하는 것과 조직 내 사람들에게 주어진 가르침 사이에서 정확히 반대되는명백한 모순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 같다. 파수대 1984년 5월 1일자 '독자의 질문' 31면은 '여호와의 증인'이 호별방문하여 사람들에게 워치타워 간행물을 제공하면서 집 주인들이 역으로 제공하는 종교문헌의 수용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밖의 다른 사항들 중에서 특히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
Witnesses do not go to people’s doors searching for truth or enlightenment. Rather, they already have devoted countless hours learning the truth from God’s Word . . . . Jehovah’s Witnesses are not ignorant of others’ beliefs. They have gained considerable basic knowledge of the doctrinal beliefs of religions common in their area. . . . So it would be foolhardy, as well as a waste of valuable time, for Jehovah’s Witnesses to accept and expose themselves to false religious literature that is designed to deceive . . . . As loyal Christians let us hold to God’s standards, feeding our minds on what is true and righteous, and holding appreciatively and loyally to the channel from which we first learned Bible truth. 증인들이, 진리나 계몽을 받으려고,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여러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배우는데 이미 바쳐왔습니다. . . 여호와의 증인들은 다른 사람의 신앙에 대하여 무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사는 지역의 흔한 종교의 교리적 신조에 대한 기본 지식을 꽤 알고 있습니다. . .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신을 속이기 위해 고안된 거짓된 종교문헌을 받아들이고 그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데 바쳐야 할 시간의 낭비일 것입니다….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표준을 지키고 진실하고 정의로운 것을 우리의 마음에 주입시킴으로써, 우리가 처음으로 성경의 진리를 배운 그 통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고착할 것입니다. |
The open-mindedness hoped for from non-Witness readers, causing them to examine literature that offers views contrary to their religious beliefs, is paradoxically discouraged among Witnesses. Watchtower and Awake! articles disparage closedmindedness and a “seclusionist attitude,” yet that attitude is nowhere more evident than among Jehovah’s Witnesses themselves. Witnesses may say they are ‘informed about other religions and their beliefs.’ But for the vast majority, the information they have is only what their own religious organization has seen fit to give them. It is prepackaged, carefully edited information, generally with the conclusions already spelled out for them.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견해를 제시하는 문헌을 조사하게 하는 것은, 비증인 독자들에게는 열린 마음으로 강조하면서 증인들에게는 역설적으로 격하시켜버린다. 파수대와 깨어라! 기사들은 닫힌 마음의 태도와 "은둔주의적 태도"를 폄하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여호와의 증인들 자신들 사이에서 보다 더 명백하다. 증인들은 그들이 '다른 종교와 그들의 신조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증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란 단지 조직이 그들에게 제공하기에 적합하다고 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미리 포장되어 있고, 세심하게 편집된 정보로, 일반적으로 그들을 위해 이미 결정된 결론들을 다루고 있다. |
일반 사람들에게는 워치타워 간행물에 대해 열린 마음을 촉구하면서 그가 가진 현재의 종교를 비판하지만, 증인들에게는 그들에게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종교적 간행물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보낼 것을 촉구한다(한 증인 여성이 받은 자료를 쳐다보지도 않고 버리는 장면에 주목) |
The writer of the article seems not to realize that, if the persons at whose homes Witnesses call to offer their literature are members of a religion in which they believe firmly and from which they have received whatever Bible knowledge they possess, those householders could use the identical argument in refusing Watch Tower literature, rejecting it as literature that is false and “designed to deceive,” something that it would be “a waste of valuable time” to read.20 They, too, may have read church publications about Jehovah’s Witnesses and therefore say they “are not ignorant” of their beliefs. They would, of course, then be viewed by Witnesses as “close-minded,” prejudiced. Surely the words of Jesus are applicable here, when he says: 이 기사의 집필자는 만약 증인들이 그들의 간행물을 제공하려고 방문하는 집 사람들이 확고하게 믿는 종교의 일원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적 지식을 모두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러한 집의 사람들은 워치타워 간행물을 거부하면서 그것은 거짓이고 "속이기 위해 고안된" 문헌으로서, 읽으면 "가치 있게 바쳐야 할 시간의 낭비"가 될 것으로 같은 주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20 그들 역시 여호와의 증인에 관한 교회 간행물을 읽었을 것이고 따라서 증인들의 신앙에 대해 "무식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은 증인들에 의해 "닫힌 마음"과 편견으로 간주될 것이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니, 예수의 말씀이 분명히 여기에 적용될 것이다: |
Why do you observe the splinter in your brother’s eye and never notice the plank in your own? How dare you say to your brother, “Let me take the splinter out of your eye,” when all the time there is a plank in your own? Hypocrite! Take the plank out of your own eye first, and then you will see clearly enough to take the splinter out of your brother’s eye.21 어째서 당신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합니까?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당신의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소’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위선자여! 먼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십시오. 그러면 형제의 눈에서 어떻게 티를 빼낼지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21 |
The September 8, 1987, Awake! magazine contains articles directed primarily toward those of the Lutheran faith. One article is built around quotations from sermons of Dietrich Bonhoeffer, a Protestant theologian executed by the Nazis. Presumably, if a Witness at the door of a German householder were offered a pamphlet containing Bonhoeffer’s sermons, he or she would be expected to reject this out of loyalty as something that it would be “foolhardy” and “a waste of valuable time” to read. In his or her Awake! magazine, however, the sermon quotations from this Protestant pastor—according to Watch Tower definition, a member of “Babylon the Great”—now become acceptable, “sanctified” for reading by loyal Witnesses. The article makes several valid points as to the deprecating view of the Bible held by some Protestant theologians and other facets where many church members show themselves remiss. Consider, however, these points made on pages 8, 10 and 11 (the words in italics are those the Awake! writer is quoting from Bonhoeffer’s sermons): 1987년 9월 8일자 깨어라! 잡지는 주로 루터교 신앙을 다룬 기사를 싣고 있다. 한 기사는 나치에 의해 처형된 개신교 신학자 디트리히 본 회퍼의 설교에서 인용한 인용구를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아마도 독일의 한 집 주인의 문 앞에 있는 증인이 본 회퍼의 설교를 담은 팜플렛을 제공받았을 경우, 그 증인은 이것을 읽어야 할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가치 있게 보내야 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는 워치타워 해석에 따라 "큰 바빌론"에 속한 이 개신교 목사의 설교가 인용된 "깨어라!" 지의 내용은 이제 충실한 증인들에 의해 읽혀질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일부 개신교 신학자들이 갖고 있는 성경의 고등비평적인 견해와 대다수 교인들이 스스로 태만해지는 점들에 대해 몇 가지 타당한 논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8, 10, 11페이지에 나온 이러한 요점들을 생각해 보라. (이탤릭체로 된 단어들은 <깨어라!>필자가 본 회퍼의 설교에서 인용하고 있는 문장이다: |
Note the following excerpts from some of his sermons. Ask yourself: What would heeding his words mean for the Lutheran Church? for my church? “In religion only one thing is of essential importance, that it be true.” This agrees with what Jesus said: “God is a Spirit: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John 4:24; see also John 8:32; 14:6; 16:13 Are you sure that everything your church teaches is really true? 본 회퍼의 설교문 중에서 발췌한 다음 내용에 유의하면서, 이렇게 자문해 보라. 그의 말을 청종하는 것은 루터교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속한 교회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교에서 중요한 본질적인 것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일치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를 숭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해야 한다."-요한 4:24;요한 8:32; 14:6; 16:13 참조 If Your Church Fails to Act, Will You? 여러분의 교회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데 여러분이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 If, after making an honest investigation, you are less than pleased with what you see, do more than just complain. A journalist, while commenting on Karl Barth’s statement that a church is its members, logically concluded: “Church members . . . are responsible for what the church says and does.” So ask yourself: Am I willing to share responsibility for everything my church says and does? 정직하게 조사해 본 결과 알게 된 사실에 대하여 언짢기만 하다면, 그저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한 저널리스트는, 교회는 곧 교인들이라는 카를 바르트의 말을 논평하면서 “교인들은 ··· 교회가 말하고 행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논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문해 보라. 나는 내가 속한 교회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기꺼이 함께 책임을 질 것인가? You may sincerely believe that your church is no part of false religion that God says he will soon destroy. But your life depends upon being 100 percent sure. Are you? 당신은 당신이 속한 교회가 하나님께서 멀지 않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신 거짓 종교의 일부가 아니라고 진심으로 믿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당신의 생명은 100퍼센트 확실한 것에 달려 있지 추측에 의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그 정도로 확실한 것을 믿고 있는가? |
For those of other religions, absolute truth is set as the criterion—everything should be “really true.” They should be “100 percent sure” about their religion. And if they are “less than pleased” with what they see, they should “do more than just complain,” because they share responsibility for “everything [their] church says and does.” On the basis of all that has been presented thus far from Watch Tower publications about loyalty and submission to the Theocratic organization, just imagine what would happen if any Witness were to follow this exhortation in his religion! Instead, he must realize that these powerful words apply only to them, not to us. Many of the criticisms the Awake! article presents regarding Lutheranism have validity. But those wrongs do not make Witness positions right, their errors do not cancel out Watch Tower errors or make them less reprehensible. Notably, the Awake! writer can quote Protestant sources, including Lutherans, who level such criticisms themselves. These persons can do so without being excommunicated from their churches. One of Jehovah’s Witnesses could not do the same. When he sees clear evidence of error, of unscriptural policies, in his religion, he should not complain, and certainly not leave (as is implied that Lutherans should do regarding their religion). Instead, he should quietly ‘wait for Jehovah to straighten it out in his due time.’ What is right and needful on the part of Lutherans is at the same time wrong and unnecessary on the part of Witnesses. And the remarkable thing is that most Witnesses (including the writer of the Awake! article) see no double standard in all this, see nothing amiss in giving an exhortation to others that they cannot apply to themselves. 다른 종교의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진리가 적용 기준이 된다. 모든 것은 "진짜 사실"이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에 대해 "100퍼센트 확신"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보는 것에 대해 "기쁨이 없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교회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기 때문에, "단순히 불평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신권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복종에 관한 워치타워 출판물에서 제시된 것과는 거리가 먼 모든 것에 기초하여 볼 때, 만약 증인이 자신의 종교에서 이러한 권고를 따른다면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라. 그러한 권고를 받아들이는 대신 이 힘있는 말들이 우리에게가 아니라 그들에게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루터교와 관련하여 <깨어라!> 기사가 제시하는 상당수의 비판은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잘못이 증인들 자신의 입장을 옳게 만들지는 못하며, 그들의 잘못이 워치타워의 오류를 면책하거나 비난이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특히, 깨어라! 필자는 이 비평의 대상이 되는 루터교도를 포함하여 개신교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추방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 중의 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과 똑같이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종교에서 오류, 비성서적 방침들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보더라도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하며, 결코 거부해서는 안 된다(루터교도들이 자신의 종교와 대하여 하는 것으로 암시된 것처럼). 대신 조용히 '여호와께서 때가 되면 바로잡아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루터교도들 입장에서 옳고 필요한 것은 증인들 입장에서 틀리고 불필요하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은 대부분의 증인들(깨어라! 기사의 필자를 포함하여)은 이 모든 것에 이중 잣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하며, 그들은 자신들에게 적용할 수 없는 권고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데 있어서 그 모순성을 깨닫지 못 한다는 것이다. The earlier-quoted “Question from Readers” assures Watchtower readers that their refusal to read or even accept literature householders offer them is not being “narrow-minded,” that—far from this—it is “out of wisdom and respect for God’s counsel” that they take this course. But the reasoning never comes to grips with the real issue. While referring to Paul and his course in boldly speaking the truth, it never demonstrates that he refused to discuss opposing views or defend himself against criticism. To the contrary, Paul was willing to be “all things to all men.”22 Instead, the Watchtower relies on bias and prejudgment and the use of “unsavory labels” (“false religious literature” which is “designed to deceive,” “poisonous writings” distributed “for the sake of dishonest gain,” buying which would be to ‘finance wickedness’) to give force to its claims. But by this article loyal Witnesses have been told that they are not being narrow-minded when they urge others to look critically at their religion while refusing to do the same themselves—and they accept. God’s “channel” has spoken and that is enough. 앞서 인용한 "독자로부터의 질문"은 <파수대> 독자들에게 집주인이 제공하는 간행물을 읽거나 받아 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마음이 좁은" 것이 아니며ㅡ그와는 달리ㅡ "하나님의 조언에 대한 지혜와 존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확신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추리는 결코 진짜 쟁점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담대하게 진실을 말하는 점에 있어서 바울과 그의 행로를 언급하면서, 그가 반대되는 견해에 대해 토론하기를 거부하거나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를 거부했다는 사례는 결코 언급되지 않는다. 반대로, 바울은 "모든 부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기꺼이 되고자 하였다.22 대신에, 워치타워는 편향되며, 편견에 의존하고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부정적 수식어의 꼬리표" ("속이기 위해 고안된", "거짓 종교 출판물"이 "부정직한 이득을 위해" 배포된 "유해한 글")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 기사에 의하면 충실한 증인들은 자신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 되기를 거절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라고 촉구할 때 편협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며, 그들은 하나님의 통로에서 나오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였다. The sum of the evidence is, then, that although no extreme physical isolation occurs, a very effective mental isolation is produced by the organization’s interpretation placed on Jesus’ words about not being part of the world. The community of believers becomes quite insulated and intellectually sealed off from any source of Scriptural material other than that coming from the one voice, that of the organization. They are continually told that this is the only way to keep them from being misled. The apparent aim is to create a sterile atmosphere in which the views and interpretations of the organization can circulate freely without having to confront any challenge. 그 증거를 도합해서 볼 때, 비록 극단적인 신체적 고립은 일어나지 않지만, 세상의 일부가 되어서 안된다는 예수의 말에 대한 조직의 해석에 의해 정신적 고립이 매우 실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외부와 차단되며 조직의 획일화된 목소리 이외에는 어떤 성서 해석의 출처로부터도 지적으로 봉쇄된다. 그들은 이것이 그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주입시킨다. 조직의 목표는 그들의 견해와 해석이 어떠한 도전에도 직면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순환할 수 있도록 주위가 깨끗이 소독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으로 드러난다. As a rule the longer one is associated with the organization the more concentrated his or her social contacts are, the more restricted friendships are to those within the organization. Even “worldly” relatives, meaning non-Witness relatives, are often gradually shunted off to a rather cool and distant relationship. 일반적으로 한 증인이 조직과 더 오랜 기간 동안 연합하였을수록, 그 증인의 사회적 접촉이 조직 내에 더 집중되어 있을수록, 친구 관계는 그 조직 내의 사람들에게로 더욱 제한된다. 심지어 비증인 친척이라는 뜻의 "세상적인" 친척들도 종종 다소 냉정하고 먼 관계로 점차 소원해진다. One’s thus becoming part of an exclusive community with only limited, “necessary” contact with anyone outside is the factor that gives such enormous power to any disfellowshiping decree established by the organization. One’s whole social life resides within the organization. If associated for many years, to be disfellowshiped means to be cut off from virtually every friendship one has. Particularly for those in their elderly years of life this can present a devastatingly depressing prospect. The situation parallels closely that of persons in apostolic times who were ‘cast out of the synagogue,’ since the synagogue was the center of all social contact in a Jewish community.23 그러므로 조직 외부의 사람과는 누구와도 제한적이고 "필요한" 접촉만 하는 배타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은 조직에 의해 제정된 제명처분에 이처럼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요인이다. 한 사람의 사회생활 전체가 조직 내에 있다. 여러 해 동안 연합하여 왔다면, 친분을 끊는 것은 사실상 모든 우정에서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노년기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끔찍할 정도로 우울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 유대교 사회에서 회당이 모든 사회적 접촉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회당에서 쫓겨난' 사도 시대의 사람들과 매우 병행하는 상황이 존재한다.23 I strongly doubt that most persons, in reading the Bible itself, would ever be led to view Jesus’ words about not being part of the world in the extreme way conveyed by the Watch Tower publications. Not that such an exclusivistic view is not found in the Bible. It is. But it is the viewpoint taken by the Pharisees, not that taught by Jesus Christ or his apostles. As already seen, the very name “Pharisee” means “separated” or “exclusive.” In their extreme views, this religious group sought to be separate from, and exclude from their association, all persons not holding to their particular traditional teachings and standards of holiness, viewing all such as “unclean.”24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서 그 자체를 읽고 이해함에 있어서, 워치타워 출판물들이 전달하는 극단적인 해석으로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배타적 견해가 성서에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취한 관점이지 예수 그리스도나 그의 사도들이 가르친 관점이 아니다.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바로 그 이름인 "바리새"는 "분리된" 또는 "배타적인"을 의미한다. 그들의 극단적인 견해에서처럼, 이 워치타워 종교 집단은 그들의 특정한 전통적 가르침과 거룩함의 기준을 지키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분리되기를 추구하고 그들과의 교제에서 제외되기를 원했으며 그들 모두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한다.24 |
Jesus Christ set a very different example from such extremists and this incensed them, caused them to condemn him and the way he associated with others. In reading his words, not only in the Sermon on the Mount but in all his teachings, one finds that Jesus’ primary focus was not on an elaborate set of doctrinal interpretations but on the real goal set out in the Scriptures, their true aim and thrust, namely love of God and love of neighbor. His words emphasize conduct and deeds that manifest this love, and his apostles urged the same in all their letters. When they deal with the need to be discriminatory as to association, it is with regard to essentials, not minor points of difference, and definitely not because of extra-Biblical policies, rulings, reasonings and interpretations, the product of sectarian thinking. In his letter to the Galatians the apostle Paul does bring in the matter of teachings, saying: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극단주의자들과는 매우 다른 본보기를 보여 주었고, 이것이 그들을 격분시켰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비난하게 만들었다. 그분의 말씀을 읽으면서, 산 위에서의 설교뿐만 아니라 모든 가르침에서 예수의 주된 초점은 교리학적 해석의 정교한 집합이 아니라, 성경에 제시된 실질적 목표는 참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지향하며 그를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말은 이 사랑을 나타내는 행동과 행위를 강조하는데, 그의 사도들도 모든 편지에서 같은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이 연합에 대해 차별적일 필요를 다룰 때, 그것은 사소한 차이점이 아니라 본질에 관한 것이지 종파적 사고의 산물인 성경 외적의 방침, 규정, 추리 및 해석 때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가르침의 문제를 제기한다: |
I am astonished at the promptness with which you have turned away from the one who called you and have decided to follow a different version of the Good News. Not that there can be more than one Good News; it is merely that some troublemakers among you want to change the Good News of Christ; and let me warn you that if anyone preaches a version of the Good News different from the one we have already preached to you, whether it be ourselves or an angel from heaven, he is to be condemned. I am only repeating what we have told you before: if anyone preaches a version of the Good News different from the one you have already heard, he is to be condemned.25 그리스도의 과분한 친절로 여러분을 부르신 분에게서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돌아서서 다른 좋은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사실 다른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단지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왜곡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든지 하늘에서 온 천사든지,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좋은 소식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우리가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지금 다시 말합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좋은 소식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25 |
Incredible as it may seem, those words are today applied by the Watch Tower Society to any who fail to agree and who express their disagreement—not with the first-century apostolic message that Paul preached—but with its own current teachings. Thus after having earlier quoted these very words of Paul in a “Question from Readers” reply, the April 1, 1986, Watchtower goes on to say (page 31):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인용된 본문은 오늘날 협회에 의해 바울이 설교한 1세기의 사도의 메시지가 아니라, 조직의 현재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고 조직과의 의견 차이를 표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따라서 1986년 4월 1일 "독자로부터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바울의 바로 이 말을 인용한 후, <파수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31면): |
Approved association with Jehovah’s Witnesses requires accepting the entire range of the true teachings of the Bible, including those Scriptural beliefs that are unique to Jehovah’s Witnesses. ‘여호와의 증인’과의 연합을 승인받기 위하여는, ‘여호와의 증인’만 받아들이는 독특한 성경적 교리들을 포함하여, 성서에 관한 참된 가르침 전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
The article argues that those who do not are rightfully excommunicated. This means forcing Paul’s words out of context, actually turning them around to mean exactly the opposite of what they say. For Paul shows that there is only ONE good news and that is the good news as preached in the first century, not something appearing for the first time in some twentieth-century publication or magazine. It is the good news that any person can find in any Bible without being dependent on some modern-day publication to convey it to him, not something that is incomprehensible without such a publication. It is not some “special message” of post-apostolic development which has the effect of making the Bible alone insufficient, as implied by the Watch Tower president’s morning remarks to the headquarters family, quoted earlier.26 이 기사는 추방 당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추방하고서 그들이 정당하게 추방당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바울의 말의 뜻을 문맥에서 벗어나 해석하는 것을 의미하며, 실제로는 파수대가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좋은 소식이 하나뿐이고 그것은 1세기에 이미 전파된 좋은 소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지,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떤 종교 간행물이나 잡지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종의 현대 출판물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소식이지, 그런 출판물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좋은 소식이 아니다. 앞서 워치타워 협회장이 본부 가족들에게 한 아침 발언인 성경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암시를 했지만, 그러나 좋은 소식이란 사도 후기에 진전된 특별한 메세지가 아니다.26 According to the apostle, there is one and only one message to deliver, the one already preached by him and others at that time and recorded by inspired Bible writers, and no one, angel or man, has the right to bring in some other message than that already given, which Paul calls the “good news about the Christ.”27 It is the “everlasting good news,” the “faith that was once for all time delivered to the holy ones,” and it therefore needs no adjusting, no modernizing or updating by uninspired men in our time.28 사도의 말에 따르면 전해야 할 메시지는 하나뿐이며, 이미 그 당시 그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었으며, 필자에 의해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며, 바울이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이라고 부른, 이미 주어진 이 메시지 외에 천사나 인간이 어떤 다른 메시지를 가져올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27 그것은 "영원한 좋은 소식"이며, "거룩한 사람들에게 영원토록 전해진 것"이어서, 그 좋은 소식은 우리 시대에 조정할 필요나, 현대화하거나, 업데이트 할 필요가 없다.28 |
14 Quotations are from Steve Hassan’s book Combatting Cult Mind Control (Park Street
Press, 1988), first edition, pages 13, 19, 24, 42.
15 Combatting Cult Mind Control, first edition, pages 42, 76.
16 Ibid., page 55. An article in Awake!, August 8, 1965, page 18, similarly said: “Contrary to common belief, it is the
‘normal,’ ‘average’ person that is the most easily indoctrinated. Such a person is ‘normal’ because he has been
influenced to such an extent by the community that he conforms to all its social standards and behaves only in an
‘acceptable’ way. His held opinions are often borrowed and usually do not come from
independent, intellectual thinking.” The article claims that Jehovah’s Witnesses are different
in these areas. Yet in most cases they exemplify the very kind of person described.
17 Combatting Cult Mind Control, pages 61, 62, 84.
18 As regards “brainwashing,” I also question the correctness of applying the term to
the Witnesses. See the essay on this subject on the Commentary Press web site:
19 John 17:14-16.
20 The Awake! magazine article on having an open mind carries an illustration of a man expressing, by face and hand,
determined rejection. The picture could be that of a Catholic or Protestant rejecting literature of Jehovah’s Witnesses
that differs with his beliefs. It could just as well be one of Jehovah’s Witnesses adamantly rejecting literature that differs
with his beliefs.
20 열린 마음을 갖는 것에 관한 깨어라! 잡지의 기사는 얼굴과 손으로 단호한 거절을 표현하는 한 남자의 삽화를 담고 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자신의 신념과 다른 여호와의증인의 문헌을 거부하는 그림일 수 있다. 또는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들
중 한 사람이 그의 신념과 다른 문학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는 그림이 될 수도 있다.
21 Matthew 7:3-5, JB.
21 마태 7:3-5 신세계역.
22 1 Corinthians 9:19-23.
22 고전 9:19-23
23 Compare John 12:42.
23 요한 12:42 비교
24 Matthew 15:1-9; John 9:16; see also “Pharisees” in the Watch Tower publication Insight on the Scriptures.
24 마태 15:1-3; 요한 9:16; 또한 "바리새"에 대해 워치타워 출판물인 '통찰' 책을 참고하라.
25 Galatians 1:6-9, JB.
25 갈라디아 1:6-9, 신세계역.
26 See Chapter 2, pages 32, 33.
26 참고 2장, 32, 33면.
27 2 Corinthians 2:12; 4:4; 9:13.
27 고후 2:12; 4:4; 9:13
28 Revelation 14:6; Jude 3.
28 계시록 14:6; 유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