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대좌에 결가부좌로 앉은 석불은 풍만함 몸매 위로 우견편단의 가사를 입고 있다. 연화대좌의 상대석은 앙련으로 되었는데 앙련의 오양이 두개의 고사리 뭄양을 마주하여 꽃잎 윤곽을 만들었고 그 안에 해무리 모양을 장식한 꽃잎 24겹으로 구며졌다. 사각형의 중대석에는 면마다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신장상을 새겼는데 사면에 새긴 것으로 보아 사천왕상으로 짐작된다.
이 불상은 800년대의 작품으로 보여된다. 대체로 신체의 볼륨감을 유지하면서 세부적으로는 조각솜씨가 서툴고 약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반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대좌는 팔각형인데 비하여 이곳의 대좌는 방형이다. 이불상의 대좌를 시작으로 방형의 대좌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주지역에는 이 불상을 비롯하여 남산 양조암골, 불국사 역앞의 삼층석탑 옆의 불상 대좌 그리고 용장계 절골 약사여래불의 대좌가 방형이다.
대좌에 신장상(神將像)이 등장하는 것은 대체로 700년대 말부터 800년대 초반에 시작되는 양식이다. 약수골 석조여래좌상은 얇은 옷을 입고 오른쪽 무릎 위에 왼쪽 발이 보이고 있는데 얇은 옷을 입은 불상은 인도 마투라 양식이며 왼발은 800년대 이후에는 점차 사라진다.
<2006. 5. 24>
첫댓글 통일신라시대 불상은 대부분 8각 연화대좌 형태를 취하지만, 이 불상은 사각형 모양의 방형대좌를 갖추고 있다. 이는 청와대 경내에 있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과 매우 유사한 양식적 쌍둥이 형태이다.
신체의 볼륨감과 양감이 어느 정도 유지되어 있으나, 통일신라 전성기(8세기)에 비해 선이 다소 간소화되고 정형화된 9세기 불상 특유의 미감을 보여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 방식으로 법의를 입고 있다.
양 다리를 교차하여 앉은 결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 손을 무릎 밑으로 내린 항마촉지인 자세를 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좌의 상대석에는 앙련(위로 향한 연꽃잎)이 새겨져 있으며, 꽃잎 내부의 덧꽃잎 표현 및 고사리·해무리 문양 등 9세기 장식화된 연꽃무늬 조각 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청와대 방형대좌 석불과 함께 신라 하대(9세기) 석불 대좌 양식의 변화 과정을 규명하는 데 핵심적인 학술적 가치를 지닌 유물이다.
많이 배움니다.
무심코 둘러 보기만 하였는데...
감사드립니다.
꼼꼼히 읽어봐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