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하여 고구려 발해사뿐만 아니라 고조선 부여사까지도 역사 강탈의 위협에 놓여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통일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논리인즉 신라와 백제는 삼한족이 주축이 되어 건립되었고 부여와 고구려는 예맥족의 의해 건립되었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민을 구성하는 주종족은 삼한족임으로 고구려는 한국사가 될 수 없다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것이 불완전한 결과로 빚어진 결과이다.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아우러고 그 통일체에서 분파되어 신라와 발해가 건국하게 되었다면 중국의 이러한 논리는 분명한 허망상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 최초의 왕조를 신라로 상정해서는 안될 것으로 본다. 잠시동안이긴 하지만 고구려 광개토태왕때를 한국사 최초의 통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광개토태왕은 부여와 숙신을 아우러고 아직 국가다운 국가를 건립하지 못한 당시 신라와 가야를 종속국으로 포함시키고 백제를 무릎꿇게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동방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광개토태왕조때를 통일고구려시대로 상정하고 그이후 백제와 신라의 나제동맹을 통한 고구려에 대한 반기를 재분열시대로 상정한다. 다시금 신라의 주도로 인한 고구려 백제의 멸망 당시를 제2의 통일왕조기 그리고 발해의 건국과 동시에 다시금 남북국 분립시대로 상정한다면 중국의 논리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를 안주게 될 것이다.
광개토 태왕이 통일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고구려를 여러 제후국을 거느리는 중심 국가로 만들기 원했던 고구려인들의 천하관 때문이었습니까? 고분고분한 부하들이 있어야 보스가 되듯이 주변 국가를 완전히 멸해버리면 제후국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오늘날의 남북처럼 통일이 절대 가치를 지니는 명제였다면 고구려는 무리를 해서라도 백제를 멸하고 통일하려고 했겠죠. 그러나 삼국 통일이라는 개념은 전혀 삼국인들의 머리 속에 없었고(물론, 김유신이나 김춘추 역시 삼국 통일에 대한 목표나 의지가 없었음은 물론입니다. 고-당 전쟁의 결과를 후세에 삼국 통일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을 뿐이죠.)백제나 신라는 국력을 소모하여 완전 정벌해봤자 큰 실익이 없었을 거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미나모토노님이 말씀하신 기회 비용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당이 발해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도 자국의 내부 사정, 국제 정세와 함께 발해가 고구려 만큼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여휘님은 백제가 그만큼 강국이었음을 강조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백제가 당시에 고구려로서 쉽게 멸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문화적 통일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을까요? <남쪽의 두 나라는...현실적으로 고구려의 위협이 되지 못했다. 고구려는 두 나라 병합보다는
보다 넓은 동아시이 국제 질서에서 확고한 독자 문명을 건설하는 것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인 것이다>(김용만, 고구려의 발견, P.279.>이 글을 보면 백제, 신라 정벌이 고구려에게 큰 실익이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관심은 삼국 통일이 아닌 고구려 중심의 천하 구현에 있었던 것이지요.
영토가 작다고 힘도 약하다고 보면 안됩니다. 광개토왕 이후를 보면 고구려의 힘은 백제나 신라 하나를 상대하기에는 월등하지만, 두 나라를 한꺼번에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만약 중원의 통일과 고구려의 강경노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삼국간의 힘의 균형은 지속되었으리라 봅니다.
첫댓글 광개토왕은 그때 큰 실수를 한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식의 통일도 아니고. 당대의 굴복이 얼마나 평화를 지속시킬수 있었을까요.... 얼마 안가 신라는 배반하고 나제 동맹으로 연결되어 고구려에 대한 경계를 세우는데..
지나간 역사는 돌이킬수가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이랬으면 이렇게 됬겟다.. 하고 아쉬워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독자적인 천하관을 제대로 자리매김한 광개토태왕때 명실공부 삼국통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광개토 태왕이 통일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고구려를 여러 제후국을 거느리는 중심 국가로 만들기 원했던 고구려인들의 천하관 때문이었습니까? 고분고분한 부하들이 있어야 보스가 되듯이 주변 국가를 완전히 멸해버리면 제후국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광개토 태왕으로 인해 고구려 문화가 백제와 신라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삼국의 문화가 동질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인데, 이는 광개토 태왕이 삼국을 문화적으로 통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왕의 문화 통일은 민족 공동체 의식 형성의 시발점이 됩니다.
오늘날의 남북처럼 통일이 절대 가치를 지니는 명제였다면 고구려는 무리를 해서라도 백제를 멸하고 통일하려고 했겠죠. 그러나 삼국 통일이라는 개념은 전혀 삼국인들의 머리 속에 없었고(물론, 김유신이나 김춘추 역시 삼국 통일에 대한 목표나 의지가 없었음은 물론입니다. 고-당 전쟁의 결과를 후세에 삼국 통일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을 뿐이죠.)백제나 신라는 국력을 소모하여 완전 정벌해봤자 큰 실익이 없었을 거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미나모토노님이 말씀하신 기회 비용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당이 발해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도 자국의 내부 사정, 국제 정세와 함께 발해가 고구려 만큼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여휘님은 백제가 그만큼 강국이었음을 강조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백제가 당시에 고구려로서 쉽게 멸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문화적 통일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을까요? <남쪽의 두 나라는...현실적으로 고구려의 위협이 되지 못했다. 고구려는 두 나라 병합보다는
보다 넓은 동아시이 국제 질서에서 확고한 독자 문명을 건설하는 것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인 것이다>(김용만, 고구려의 발견, P.279.>이 글을 보면 백제, 신라 정벌이 고구려에게 큰 실익이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관심은 삼국 통일이 아닌 고구려 중심의 천하 구현에 있었던 것이지요.
영토가 작다고 힘도 약하다고 보면 안됩니다. 광개토왕 이후를 보면 고구려의 힘은 백제나 신라 하나를 상대하기에는 월등하지만, 두 나라를 한꺼번에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습니다. 만약 중원의 통일과 고구려의 강경노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삼국간의 힘의 균형은 지속되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