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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여호와의 말씀 - 1: 5 너희의 행위
제 1 장 : 책망과 명령 - 성전을 건축하라.
1. 성전을 건축하라는 여호와의 말씀 ( 1: 1-11 )
1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에스라서를 보면, 바벨론 포로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파사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고국에 돌아와 성전 건축을 시작했으나(주전 536년경. 스 3: 8) 그 땅에 거하던 대적자들의 방해로 그 일이 약 15년간 중단되었었다(주전 521년까지. 스 4: 24).
* 스 3: 8 -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 스 4: 24 -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중단 되니라.
사람들은 아마 마음이 위축되어 아직 성전을 건축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보다는 자기 집을,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일을 앞세우기 때문에 자신의 수고의 대가를 복으로 누리지 못하였으며 돈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은 것같이 되었다고 지적하시면서 먼저 하나님의 전을 세워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1: 1 여호와의 말씀 -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다리오 왕 2년 6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날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다리오 왕 이 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다리오 왕'은 B. C. 522(521) - 486년 까지 바사(Persia)를 다스렸던 히스타스페스(Hystaspes)를 가리킨다(H. G. Mitchell, R. L. Alden). 즉 '다리오 왕 이 년'은 B. C. 520년을 의미한다.
이 연대는, 고레스가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하여금 포로인 유대인을 귀환시킨 연대를 B. C. 538년으로 보았을 때, 무려 17년이 지났음을 암시한다. 스룹바벨을 위시하여 귀환한 유대인들은 15년이란 기간 동안 성전을 완공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다.
선지자 학개가 본 예언을 시작하면서 연대를 분명하게 밝힌 의도는 귀환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성전을 완공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기 위함인 듯하다.
한편 '유월'은 히브리 월력으로 '엘룰'(Ellul)이며 유다의 추수시기에 해당한다. 또한 '초하루'는 새로운 달을 나타내는 월삭으로서 거룩한 날이었으며 안식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날은 사람들이 모여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날이었다.(P. A. Verhoef).
* 민 28: 11-15 – 11 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12 매 수송아지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와 숫양 한 마리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13 매 어린 양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섞은 소제를 향기로운 번제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며 14 그 전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포도주 반힌이요, 숫양 한 마리에 삼분의 일힌이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힌이니, 이는 일 년 중 매월 초하루의 번제며 15 또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 겔 46: 1-6 - 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안 뜰 동향한 문을 일하는 육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에도 열고 2 왕은 바깥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3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4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 없는 수양 하나라. 5 그 소제는 수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 6 월삭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 양 여섯과 수양 하나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하나님은 이날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2]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로 말미암아'는 예언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문구 중 하나이다. 그것은 오직 본서 1: 1,3. 2: 1 그리고 말 1: 1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이 문구는 모세 오경과 역사서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로 하여금 자신의 말씀을 계시하셨음을 의미한다.
* 레 8: 36 - 아론과 그 아들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모든 일을 준행하니라.
* 레 10: 11 -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 민 4: 37,45 - 37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고핫인의 모든 가족 중 계수한 자니라. 45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대로 므라리 자손들의 가족 중 계수한 자니라.
* 수 14: 2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 삿 3: 4 - 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 왕상 12; 15 -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 왕상 16: 7 -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 임하사 바아사와 그 집을 꾸짖으심은 저가 여로보암의 집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악을 행하며 그 손의 소위로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며 또 그 집을 쳤음이더라.
3]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본 구절은 학개가 전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수신자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여기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이라는 표현은 약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대상 3: 16-19에 보면 스룹바벨의 아버지는 브다야이며 스알디엘은 아버지 브다야의 형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숙부인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의 아버지로 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스룹바벨이 아들이 없었던 스알디엘의 장자로 입양되었던 까닭인 듯하다(T. V. Moore). 동시에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에 속한 여호야긴의 자손이었다(Smith).
한편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스 3: 2,8에 기록된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이다. 여호수아의 아버지 여호사닥은 대제사장 스라야의 아들이었으며 바벨론 포로시에 끌려갔었다.
* 대상 6: 14-15 - 14 아사랴는 스라야를 낳고 스라야는 여호사닥을 낳았으며 15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여호사닥도 가니라.
여호수아는 분명히 대제사장 아론의 직계 손이었다.
1: 2 건축할 시기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
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만군의 여호와'(야훼 체바오트)는 하나님의 칭호이다.
'만군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오트'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임을 시사한다(P. A. Verhoef).
학개가 예언할 당시는 바사가 맹위를 떨치며 전 세계를 지배하였으며,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는 보잘것없는 작은 지방 국가에 불과했다.
그러나 선지자는 비록 유다가 외적으로는 보잘 것 없을지라도 '야훼 체바오트', 곧 바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을 강조한다.
에스라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파사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고국에 돌아와 성전 건축을 시작했으나 그 땅에 거하던 대적자들의 방해로 그 일이 15년간이나 중단되었었다.
사람들은 아마 마음이 위축되어 아직 성전을 건축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 때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였다.
2] 이 백성이 말하기를... 이르지 아니하였다.
'이 백성'은 '내 백성'과 다른 어조의 표현으로 질책과 경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사 6: 9,10 -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 호 1: 9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라)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한편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유다 거민들은 무려 17년이 지나도록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였으며 스스로 자족하기 위해서 건축할 시기가 아니라고 변명하였다.
바벨론의 유배 생활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에는 유다 백성들은 뜨거운 신앙으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주변의 심한 훼방에 부딪혀 크게 낙심하여 성전 건축을 중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성전 건축에 대한 관심은 점차 무관심으로 잊혀져 갔다.
그들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는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R. L. Alden).
(1) 지속적인 고난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서 성전건축을 귀찮아하는 태만이었다.
(2) 그들은 아직 예언된 포로 기간이 70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하였다.
만약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B. C. 586년부터 포로 기간을 계산한다면 학개가 예언할 당시는 66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바벨론이 유다 거민들을 포로로 잡아간 B. C. 605년부터 포로기간을 산출한다면 학개 당시는 이미 70년이 지난 상태였다.
어쩌면 귀환한 유다 거민들은 포로 기간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성전 건축을 귀찮아하던 자신들의 마음을 변명하였을지도 모른다.
(3)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주변의 정치적 여건이다.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기 이전 유다에는 사마리아인들이 이미 살고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새로운 총독인 스룹바벨과 더불어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방해하였다(T. V. Moore).
* 스 4: 12-21 - 12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13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14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왕의 수치 당함을 참아 보지 못하여 보내어 왕에게 고하오니 15 왕은 열조의 사기를 살피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찌라.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16 이제 감히 왕에게 고하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을 필역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서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17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한 저희 동료와 강 서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18 너희의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19 명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열왕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모반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20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주재하는 큰 군왕이 있어서 강 서편 모든 땅도 주재하매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저에게 다 바쳤도다. 21 이제 너희는 명을 전하여 그 사람들로 역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1: 3 선지자 학개 -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1] 여호와의 말씀이
본 절은 앞 절에서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변명한 것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이다.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것은 결코 경제적 궁핍이나 때가 아직 되지 않은 것, 혹은 주변의 정치적 여건 때문이 아니다.
2]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학개는 언제 활동했나?
유대인들이 바벨론 유배지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후에 활동한 전지자다. 즉 포로 귀환 이후의 선지자다. 같은 시대에 스가랴 선지자도 활동하였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마음에 합한 자를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로 사용하신다.
1: 4 판벽한 집 -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
1] 이 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즉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어 황무하게 되었으나 자신들의 집은 호화롭게 꾸미고 있었다.
'판벽한'(세푸님)은 지붕이 덮인 상태를 나타낸다. 또 호화스러운 사치품으로 치장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성전이 완전히 훼파된 반면 귀환한 유다 백성들의 집은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으며 호화로운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집을 치장하면서도 보기 흉할 정도로 훼파된 성전은 돌아보지 않았다.
1: 5 너희의 행위 -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
1] 그러므로
이것은 본 절이 앞서 언급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의 변명과 생활의 불일치를 고발하는 내용의 결론임을 시사한다.
2]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본 구절은 7절과 '이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이 동일하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는 선지자 학개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식(formula)으로 다음에 전해지는 내용의 계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어구이다(P. A. Verhoef).
한편 '소위'는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 혹은 살아온 과정'을 나타낸다(Von Orelli).
또한 '살필지니라.'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돌아보는 것을 가리킨다(T. V. Moore).
여호와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자신들의 말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변명인가를 스스로 돌아보아 깨달으라고 권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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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인생을 걸고, 움직일 시기는 지금 뿐입니다,
과거는 잊으세요, 결국은 현실이 가장 소중하고, 미래는 꿈이 랍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마음으로 좋은 꿈 그리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