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축구해설가인 신문선씨는 과거 축구감독의 유형을 논할 때 ‘기관차형’과 ‘로마전차형’으로 단순하게 구분한 적이 있다. ‘기관차형’ 감독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 그대로 “내가 앞장 설 터이니 너희 선수들은 나를 따르라!”며 감독의 절대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유형의 지도자다. 이는 그만큼 지도자가 자신의 전략-전술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강하기에 가능하다. 반면 ‘로마전차형’ 감독은 자신이 앞장서서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기 보다는 팀 구성원들과의 의논과 그로부터 도출된 합의로 유연하게 팀을 꾸려가는 유형의 지도자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유형의 감독이 ‘기관차형’ 감독보다 자신의 전략-전술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덜 한 사람이라 정의하는 건 아니다. 대신 열린 사고와 행동으로 ‘그라운드에서 보다 나은 것’을 찾겠다는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로마전차형’ 감독의 대표적인 경우로 많은 사람들은 과거 NBA에서 시카고 불스를 이끌며 팀을 수차례 챔피언으로 등극시킨 필 잭슨 감독을 꼽는다. 그는 경기 중간 중간 작전 타임 때 마이클 조던, 스코티 피펜 같은 선수들과 작전을 협의하고 그 상황에 맞는 카드를 꺼내들어 코트에 적용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반면 한국축구의 경우 대표팀이나 클럽 할 것 없이 심지어 2000년대 초반까지 ‘기관차형’ 감독들이 대세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약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스타일이 드라마틱하게 변한 국내파 지도자가 한 명 있었다. 다름 아닌 허정무 전(前)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이는 허감독의 두 가지 스타일을 모두 경험했던 김남일의 2008년 상반기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전 올림픽대표팀 시절엔 그라운드 안팎에서 선수들을 믿고 풀어주기보다는 직접 통제하시려는 경향이 강했다. 때문에 감독님 특유의 스타일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대표팀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 때와는 완전히 달라지셔서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실전이나 훈련 및 대표팀 소집 기간의 생활 등 전반에 걸쳐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등 산전수전 다 겪은 주축 멤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들과의 협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이런 허감독의 변신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의 성공과 함께 국내파 지도자들의 이미지에 ‘유연함’이라는 신선한 느낌의 단어를 첨가시켜줬다. 그런데 참으로 재밌게도(?) 그 후임으로 대표팀 감독직에 오른 조광래라는 사람은 전임 감독관 상반된 지도철학을 가졌다. 강성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런 패스워크와 쉴 새 없는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한 스페인식 기술축구에 대한 외고집, 자신을 향한 축구계 내-외부의 도전과 견제에 대한 단호한 대처 방법 등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다. 물론 조감독 본인은 나의 이런 평가에 억울해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 현재까지 그라운드 안에서 조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철학과 그 철학을 위해 선수들을 끼워 맞추는 것만 봐도 그는 전형적인 ‘기관차형’ 지도자다. “너무 급진적으로 대표팀의 색채를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축구계의 우려에도, 그리고 특히 공격형 측면 자원들의 윙백 배치로 축구팬들의 집중 포화를 받으면서도 이런 외부의 시선에 눈 하나 꿈쩍 않는 태도가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부러질지언정 절대 휘지 않을’것 같은 조광래 감독이 지난 주 경천동지할 결심을 했다. 노장 스트라이커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이 그것이다. 아예 자기 입으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내 축구와는 맞지 않는다!”라고까지 했었다. 그런데 1년이 조금 지나 극적으로 입장을 바꿨다. 휘겠다는 것일까?
분명한 건 이번엔 이동국이 더 양보했다는 거다!
이동국은 올 해 들어 언론과 가진 인터뷰서 혹 자신에게 대표팀 합류 제의가 와도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정중히 고사할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현실적으로 봐도 전북에 전념하는 게 그에겐 여러모로 이득이다. K리그 우승, ACL 우승, K리그 득점왕, ACL 득점왕, K리그 MVP, ACL MVP 그리고 세계 클럽선수권 출전 기회까지 현 시점에서 이 모든 것들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소속팀에 전념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유-무형의 이득을 생각하면 이젠 ‘그깟 대표팀 축구’라고 콧방귀 뀔 만하다. 더구나 대표팀에 소집돼 현재 리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펄펄 난다고 해도 엄연히 조광래호는 2014년을 보고 뛰는 팀이다. 지금 이동국의 나이에 3년 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이동국은 조광래 감독의 대표팀 합류 제의를 받아들였다. 결국 이것은 대표팀 최고참임에도 확실한 선발인 박주영을 제외한 지동원, 손흥민, 남태희, 서정진 등 자신보다 10~13년이나 어린 나머지 공격 자원들과 주전경쟁을 그리고 감독의 전술적 선택에 따라 교체멤버나 벤치신세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명백히 이동국에겐 손해다. 반면 조광래 감독은 지난 8월의 친선경기 한일전과 월드컵 3차예선 2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를 통해 적지 않은 비판에 직면해 다급해졌지만 설사 ‘이동국 카드’가 실패한다 해도 잃을 건 거의 없다. 무엇보다 쿠웨이트, UAE, 레바논으로 짜인 조 편성은 여유 있게 하고 싶은 실험 다 하면서 치러도 통과할 난이도다. 하지만 조감독이 이번에 이동국을 소집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동국 자신에 비해 잃을 게 없거나 적다고 해도 ‘조광래식 축구’에 대해 서서히 고조되는 외부의 불신과 불만을 아예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앞서 언급한 윙백 실험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정삼각형으로 배치하는 3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3톱 역시 움직임의 효율성 및 역할 분담의 적절성이 도마에 올랐다. 최전방 3톱을 구성하는 3명과 삼각형 중앙 미드필더의 꼭짓점에 서는 1명은 90분 내내 수시로 서로의 위치를 바꿔 침투하고 패스하며 슈팅 찬스를 만드는 것까지는 좋은데, 현재의 대표팀 축구는 ‘무브먼트를 위한 무브먼트’에 집착하는 느낌이고 무엇보다 쓸 데 없는 체력 소모만 가중시키는 단점도 엄연히 존재한다. 때문에 과거부터 조감독을 혹평하는 축구인들은 조감독의 축구를 두고,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정작 실속은 없는 축구”로 정의하는 것이다. 특히 경기인 출신인 차범근 해설위원이 조광래호 경기 해설할 때마다, “결정을 지어줘야 할 때 모두가 측면이나 박스 바깥으로 빠져 있고 정작 박스 안에서 위치를 잡고 한 방을 날릴 선수가 없는 상황이 잦다!”는 말은 분명 새겨들어야 할 진단이다.
바로 차감독이 언급한 “결정을 지어줘야 할 때 박스 안에서 위치를 잡고 한 방을 날릴” 선수들 가운데 현 시점에서의 기량과 컨디션 모두를 고려할 때 가장 무게감 있는 자원은 단연 이동국이다. 헌데 전북에서 이동국이 보여주는 무브먼트는 대표팀에서 요구하는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물론 전북에서도 이동국은 자주 양쪽 측면과 미드필드까지 내려와 볼을 받지만 그것은 자신의 빈자리로 동료들의 침투가 용의하게끔 1차적으로 수비를 끌어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2차적으론 2선의 동료들이 자신에게 접근할 때까지 볼을 키핑해주며 전체적인 틀을 잡아주는 것으로 한정돼 있다. 일단 이 두 가지가 원활히 되었다 판단되면 이후 이동국이 하는 동작은 단 하나, 바로 상대 PK박스 안으로의 무서운 쇄도다. 동료들의 마무리 패스는 결국 그 자리에 있을 자신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반면 대표팀의 3톱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1명은 90분 내내 스트라이커였다가 측면 미드필더여야 하고, 때론 중앙 미드필더여야 한다. 때문에 특정 시간, 특정 포지션에서 그 포지션이 요구하는 역할(슈팅이나 크로스 혹은 스루패스)을 맡았을 때 이 모두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 낼 줄 알아야 한다. 대신 골은 아무나 넣으면 장땡이다. 스트라이커가 꼭 팀 득점의 절대적인 몫을 담당할 필요가 없고 스트라이커인 내가 측면으로 나와 PK박스 중앙으로 볼이 투입할 때 그 자리를 동료들 중 누가 차지하고 찬스를 잡으면 그 뿐이다. 그런데 현재의 조광래호는 이게 원활하지 않다. 혹 원활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반이나 후반 초반까지만 유효할 뿐 이후 집중력, 체력 등의 문제가 겹치며 중앙에서 직접 해결하거나 최소 중앙에서의 위치 선정 싸움만으로도 상대 수비진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공격수는 없다.
조광래 감독이 현재 대표팀의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동국에게서 해결의 열쇠를 찾으려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동국이 측면이나 중앙으로 빠져나와 볼을 잡은 후 보여주는 플레이의 질이 떨어지는 선수는 절대 아니다.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이동국을 지켜 본 축구팬들이라면 그가 측면이나 미드필드로 빠져나와 박스 안으로 침투한 동료들에게 넣어주는 크로스나 스루패스의 질이 꽤 높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킥에 대한 센스가 남다른데다 동료들의 움직임을 보는 눈이 뛰어나기에 가능한 플레이다. 하지만 엄연히 이것은 이동국의 부차적인 장점일 뿐 최대 장점은 박스 안에서의 해결 능력과 상대 수비수들과의 싸움인 만큼 대표팀에선 이런 장점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그를 개조한답시고 90분 내내 좌-우-중앙에서 온갖 미션을 다 수행하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이동국 개인에게는 물론 대표팀에게도 커다란 마이너스다.
다행히 조광래 감독은 이동국을 오는 폴란드와의 친선경기 및 UAE와의 월드컵 3차예선 3차전 홈경기를 앞두고 추가 소집한 후 가진 인터뷰서 이동국의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전술을 구상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이동국을 쓸 경우 투톱 체제로의 전환과 더불어 손흥민 같은 보다 전형적인 윙 포워드 스타일의 선수를 기용할 뜻도 내비쳤다. 스페인대표팀이나 바르샤식의 ‘무한 스위칭 3톱+1’의 공격전술이 아니면 다른 건 거들떠도 안 볼 것 같은 사람이 조금씩 유연함을 보이려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 현 시점에서 가장 좋은 기량과 가장 좋은 컨디션을 지닌 선수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꼭 써보고 싶은 사람은 대표팀 감독이다. 더구나 성적이라는 준엄한 심판대에 올라선 사람이기에 아쉬운 사람은 더더욱 감독이지 선수는 아니다.
특히 이번 같은 경우 이동국은 조감독의 제안을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음에도 그리고 소속팀이 한 시즌을 치르면서 주전 스트라이커인 자기 컨디션에 따라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는 시기에 처했음에도 그 나이에 대표팀에서의 주전경쟁이라는 가시밭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런 만큼 이번 소집에선 조감독이 이동국을 전술적으로 배려해야 할 듯싶다. 무조건 대우하라는 게 아니라 선수와의 충분한 교감을 통해 전술적으로 최선의 합의점을 찾으란 얘기다. 이동국이 조감독의 합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건 전북에서와는 다른 감독의 전술적 요구 역시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이젠 조감독이 반응할 차례다.
첫댓글 후반종료5분남겨놓고 출전시키거나 그럼 혼나요
간만의 개념기사-_-)b
싸월시절부터 느꼈지만 홍승범씨 글은 공감이 안가요..나만 그런가..
좀 결론에 논리를 끼워맞추는 경향이 보이네요
글이 좀 억지스러운면이 있어요.
홍승범씨 대표적인 동국선수 싫어하시는 분
어쩜 저랑 생각하는게 비슷한 글이네요.. 이동국 측면에서의 크로스나 스루패스도 예술인데
어느정도 스위칭을해도 잘해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