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군바리인 제가 휴가 나왔다가 심심풀이 땅콩으로 써본 글입니다. 고구려 연구가이신 김용만 선생님의 4번째 책(음,,무슨 책선전 하는 듯한,,,ㅡㅡ;) 새로보는 연개소문전을 토대로 안시성 전투 바로 직전에 벌어진 주필산 전투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이 부분을 한번 소설로 각색해 보았습니다. 중간에 쓰다 만것이라 오늘 내일 내로 다시 수정해서 올리겠습니다. 따끔한 평가 부탁드립니다.
주필산 전투 (1)
1
요동성에서 당군은 안시성을 공격하기 위해 행군을 준비했다. 얼마간의 행군준비가 끝나자 장사귀가 이끄는 요동도행군 제 1군이 요동성을 나와 안시성을 공격하기 위한 선발대로 먼저 행군했다.
"얼마나 더 가야 안시성이 나오나?"
제 1군 사령관 장사귀가 부관에게 짜증을 내며 물었다. 부관은 그런 장사귀의 얼굴을 보며 하필이면 이딴 성깔 더러운 상관을 모시게 되었을까 하고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얼굴에 나타내는 건 어디까지나 하수라는 생각도 함께 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품에 있는 작은 지도를 꺼내 보며 대답했다.
"한 50리 정도 더 가면 성이 보일 듯 합니다. 조금만 더 참으시면 됩니다."
그 말에 장사귀는 더욱더 짜증을 내었다. 조금만 더 참으라는 말이 오늘 하루만 15번째다. 물론 그는 한 시진 동안 4~5번이나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봤던 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으이구,,,속 터져,,,저런 걸 부관이라고,,,지도를 잘못 보는 바람에 10리 길이나 지체되게 만들었으니,,,나 같이 속 좋은 상관 아니면 당장에 군법대로 처리했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장사귀는 부관에게 호통을 쳤다. 사실 처음 가보는 땅에 간자 한 명이 그린 지도 한 장 달랑 믿고서 이만큼 온 것만 해도 대단한 사실이건만 장사귀는 그런 상황에서도 용하게 길을 잃지 않고 길을 안내한 부관이 대단하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지도가 잘못되어 10리 길이 지체되었다고는 생각지 않고 부관의 무능력 때문에 지체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정보다 행군이 많이 늦어지지 않았나! 어서 서둘러야 할 판인데 행군 속도가 자꾸 더뎌지면 어찌 하나! 당장 행군속도를 높이라 하게!"
그 말에 부관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 방면에서 마작면상(포커페이스)이기로 유명한 그이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이미 세 시진 동안 200리를 단숨에 주파했다. 요동도행군 제 1군은 비록 선봉이기 때문에 병종 구성상 기병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는 하나 보병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시성에 도착하면서 있을 전투를 대비하여 본진이 도착하기까지 안시성 주변에서 임시 막사를 세우고 병력 시위를 하여 주변에 원군이 도착할 시 성으로 진입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교란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때문에 최대한 빨리 안시성에 도착해야 한다는 장사귀의 주장 때문에 임시 막사를 세우고 기병을 보조할 보병과 궁노수에 대한 배려 없이 막무가내로 행군하고 있는 것이다. 행군속도가 느리다며 중군에 있어야 할 장사귀 그가 직접 선두에 서며 병사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미 보병은 선발대 본진 기병과 40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기병이라도 먼저 도착하여 안시성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사이에 늦게 도착한 보병이 임시 막사를 세운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늦게 도착을 한다고 해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도착을 할 것 같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물론 부관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미 여러 차례 전투로 인해 상당히 피곤에 절은 병력이다. 그런 병력을 가지고 강행이라니,,,부관은 병사들을 생각지 않고 오직 공에만 매달려서 탁상공론 같은 생각을 해낸 자신의 상관에게 욕을 속으로만 해야 했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 이런 상태의 병력으로 무슨 싸움을 한다고,,,이러다가 싸워보기도 전에 지쳐서 다 쓰러지겠구먼. 고구려 군이 복병, 아니 정면으로 부딪힌다고 해도 우리가 상대가 못 돼. 죄다 죽일 셈인가?'
"하지만 장군, 병사들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이대로 행군속도를 높이게 되면 병사들이 감당을 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도중에 고구려의 복병이라도 있으면,,,"
그 말에 장사귀의 이마에 있는 핏대가 올랐다. 가뜩이나 느려터진(자기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행군속도에 짜증이 나있는 판국에 부관이라고 하나 있는 건 자기 말에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는 것이다.
'이 놈,,,나중에 한번 두고보자,,,'
"부관! 지금 우리가 병사들 사정 봐줄 처지인가? 서둘러 안시성에 도착하지 않으면 언제 안시성으로 고구려의 대군이 원군으로 들이닥치게 될지 모르네! 한시가 급한 상황에 병사들이 뭐가 어째? 그리고 안시성에서 우리를 미리 요격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안시성에 병력이 얼마나 된다고, 수십 만이라도 되는 줄 아나? 코딱지 만한 병력으로 우리를 친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말게!"
자기 딴에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목소리를 낮춰서 얘기했지만 듣는 쪽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눈을 찡그리면서 괴로움을 참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부관은 속으로 계속 투덜거렸다. 어차피 말이 안 통하는 상대에게 조언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는 상관 말에 토 달면 성을 갈겠다는 맹세까지 하고는 뒤를 따르는 전령에게 화풀이하듯 외쳤다.
"뭘 하느냐! 장군께서 행군 속도를 높이라 하지 않느냐! 당장 후군에 전하렷다!"
2
6월 11일(음력)-안시성 외곽 북서쪽 20리 지점의 외딴 산
"음,,,그럼 당군의 위치는...?"
"현재 주력은 오늘 아침에 요동성에서 출발을 한다고 하며 선발대인 장사귀가 이끄는 요동도행군 제 1군은 이 지점에 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임시 막사 안에서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어내며 한 젊은 사람이 말을 했다. 맞은 편에서 또 약간은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간자의 첩보가 정확하겠지?"
그 말에 지도 한 부분에서 손가락을 떼며 그 사람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갑자기 막사 내로 급한 숨을 몰아쉬며 전령인 듯한 병사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기척도 없이 갑자기 들어와 소동을 일으키자 젊은 사람이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도 소란이냐?"
"헉,,,헉,,,크, 큰일났습니다. 장군!"
"큰일이라니?!"
"다, 당군이 지금 우리 진영 동북쪽 30리 부근에서 성으로 맹렬히 행군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막사에 있던 두 사람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특히 젊은 사람은 더 하였기에 전령에게 물었다.
"그럴 리가? 지금쯤이면 성 북쪽 150리 밖일텐데? 도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행군을 하길래 그리도 빨리 온단 말이냐?"
"으흠,,,이거 예상 외로군,,,생각보다 빨리 쳐들어 왔는 걸?"
"그러게 말입니다. 성주님, 적의 행군 속도를 너무 얕잡아 본 것 같습니다. 웬만한 진군 속도의 2배라니,,,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안시성주 양만춘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에 약간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군의 행군이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부관, 만약 자네가 당군의 한 병사라면 이런 행군을 어찌 생각하겠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젊은 장수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곧바로 대답했다.
"만약 제가 당군 입장이라면 이런 식의 행군에 엄청나게 피로한 상태일 것입니다. 대열도 상당히 흐트러져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막무가내로 강행을 했기 때문에 지휘관에 대한 불만으로 사기도 흐트러져 있겠지요."
부관의 답에 양만춘은 맞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한가지 덧붙였다.
"그렇겠지, 그리고 또 하나, 이런 진군 속도는 기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할 것일세. 헌데 놈들의 작전을 가만 생각해본다면 우리 안시성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선발대를 보내어 원군의 성내 진입을 막아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기병을 주력으로 삼기는 해야 하되 주력이 도착하기 전에 임시 막사 건설에 필요한 보병과 그걸 지킬 궁노수가 필요할 것이 분명 하겠지?"
"간자의 보고에도 보병과 궁노수가 상당 부분 포함되었다고 하더이다."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양만춘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구먼. 성 밖으로 나와 선발대를 공격해야 한다는 자네 생각이 옳았어. 놈들이 이 근방으로 와서 대열을 갖춰 군세를 추스르기 전에 요격해서 두 개로 갈라진 선발대를 각개 격파한다! 부관, 어서 영 내에 있는 병력에게 출격준비 해 두시게나."
"예! 성주님."
부관이 서둘러 막사를 나가자 양만춘은 의자에 앉아 지도를 골똘히 들여다봤다.
"흠,,,이 지점이라,,,세부적인 전술을 어떻게 하면,,,내 생각이 맞다면,,,그렇지,,,이렇게 하면 선발대는 반드시 무너진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양만춘은 조용히 확신에 찬 웃음을 짓고 있었다.
3
6월 11일(음력) 안시성 북쪽 30리 지점 인근 야산
"장군, 조금만 더 가면 될 듯 싶습니다."
그 말에 장사귀는 은연중에 진저리를 쳤다. 이번이 오늘로 16번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질리지도 않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을 16번이나 할 수 있는지 장사귀는 저 놈의 면상을 한번 벗겨서 철판으로 된 게 아닌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만큼 장사귀는 이번 작전에 대하서 자기 생각만큼 빨리 진행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장사귀는 서로가 간자를 통해서 상대방 병력의 이동로를 확인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니 어차피 들통난 바에야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서 적 원군이 안시성을 돕는 것을 주력이 도착하기 전까지 최대한으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지 당군의 기본 전략이 혹시 있을 보급 문제로 인한 전략 장애를 최소화하기 위해 속전속결을 취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휘하는 장사귀 자신은 잘 모르지만 뒤따르는 병사들은 얼마나 고된지 잘 몰랐다. 원래 행군이라는 것이 앞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편히 갈 수 있지만 뒤에 처져있는 병력일수록 앞서가는 병력의 행군 속도에 따라 걸어도 될 것을 뛰어야하기도 하고 뛰어야 할 상황에 걷기도 한다. 때문에 선두 병력보다 후속 병력일수록 상대적으로 빨리 지치게 되고 제대별 간격이 벌어진다. 따라서 행군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대열이 흐트러지기 십상이며 전투시 힘의 집중력이 약화된다. 앞에서 전속력으로 갔다가 지형에 따라 속도를 늦추기도 하는 등 진군 속도를 변화하고 있던 선두의 장사귀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물론 부관은 장사귀가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강행을 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음? 그런데 저기 앞에 보이는 먼지 구름은 뭔가?"
갑자기 행군로 앞에서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구름을 찬찬히 살펴보던 부관이 놀라 소리쳤다.
"적군입니다. 아군을 요격하려고 나온 모양입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지기를 뱉으며 부관은 자신의 의견을 묵살한 장사귀에게 불만을 토했다.
"장군, 이것 보십시오. 적군은 이미 우리가 이곳으로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천천히 진군해서 병사들의 피로라도 덜 누적시켰어야 했습니다. 헌데,,,"
"할! 그만두지 못하겠는가? 오히려 더 빨리 왔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지금 상황으로 보건데 적의 소수 원군이 얼마 전에 안시성 부근으로 온 것이 틀림없다. 저들의 병력 전부가 경기병이지 않은가? 숫자도 많지 않으니 급히 온 병력이 틀림없네! 그렇다면 조금만 더 빨리 와서 적 원군이 오기 전에 진영을 갖추었다면 저들을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터! 이미 늦었지만 또 다른 적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앞의 소수의 적 기병을 궤멸시키고 안시성 주변을 교란 시켜야 해!"
부관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장사귀의 말이 논리적으로 크게 하자가 없는 듯 했고 또한 요격하려 온 병력이 소수인지라 그대로 짓밟아 버리면 큰 피해 없이 전투를 승리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까처럼 상관의 말에 괜히 토를 달아서 욕은 욕대로 먹고 자신의 맹세대로 성을 갈기는 싫었다.
"지금 나는 중군으로 물러나 있겠네. 그리고 중군에 있는 낭장 유군앙에게 일러 다시 선봉을 맡아 앞의 적을 궤멸시키라 하시게!"
마치 이 모든 상황이 부관의 잘못인 양 책임회피를 해버리고 전투에 겁을 먹었는지 중군으로 도망치듯 가버리는 장사귀를 보며 부관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상관은 상관이고 명령은 명령이다. 자신이 군인인 이상 말도 안 되는 명령이라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부관은 한숨을 푹푹 쉬며 임시로 선두에서 지휘하며 낭장 유군앙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