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설마
아무리 내기를 좋아하고 아무리 나를
곯려먹고 싶어도 그렇지.
심지어 여장까지 한다는 녀석이 뱉은 말에
나는 적지 않게 경악스러워 하면서도
돈이 굳는 다는 생각에 좋아 마냥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유후유후_모델비 굳는 걸로 나는 이제 더 이상
혼나지 않아도 되구만요!!
그리고 당일,학교를 빼먹고 오라는 나의 황금 같은 말에
녀석은 생활인 것처럼, 태클을 걸지 않았고
9시 경에 으적으적 걸어왔던 녀석은
나의 손길에 몸을 내맡긴 채,
지금 열심히 분장중이다!허옇게 얼굴을 칠하고 마스카라로
눈깔을 뒤집어 까듯이 속눈썹을 팍팍 올려주고,
입술을 파랗게 칠하고,
회색 렌즈를 끼고 노란 머리에 빤짝이를 털어버리고.
“야 근데 너 쟤 어디서 구한 얘냐?”
같은 학과 소연이라는 년.
아주 잘생긴 남자만 보면 이쁘지도 않은 주제에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어 제끼며 알랑방구 껴대는 년.
“내 노예시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얼굴에 똥 펴바른 듯한 표정을
구사해가면서 뱉어내고,나의 진지한 표정에
조금 당황한 소연이 고년은 황당한 듯 뽈뽈 가버리고.
나는 쫑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한 후
탈의실로 데려갔다.
으흐흐 넌 조만간 드레스를 입을 몸이여.
파란색,아주 파란색깔의 구불구불한 르네상스풍
드레스.그리고 결코 평범하지 않게 수 놓아진 오색 비즈들.
중간중간의 하얀 레이스.얇은 동앗줄 같은 것들도 놓여져 있는
드레스는,그 원단도 실크라 최상급.
게다가 디자인은 우리 과 최고 유망주
똘끼 클럽 아이들이 했으니 얼마나 아릅답겠느냐!
(전 과목 D판정의 무적의 아이들.)
“쫑,드레스 처음 입어보지?”
왠지 모르게 야시시한 분위기의 탈의실.
단 둘이라 그런가?
이놈이 윗통을 벗어서 그런가?
살짝쿵 놈의 갑빠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뭔가 달콤한 최음제 같은 냄새가 나는데
그것 때문에 내 얼굴이 발그레 해지는 건가?
“그럼 처음 입어보지,내가 여자냐?”
“아니,꼭 여자라고 해서 드레스를 입는 건 아니잖아?”
“보통이라는 말 몰라?”
참.
참.고운 주둥이야 참 고와.
“벗기나 해.팬티.”
순간 굳어진 쫑의 표정.
“팬티를…왜..벗냐..?”
“왜냐니,니가 드레스 한번도 못 입어봐서 그런가 본데
드레스 입을 때는 무조건 노팬티야.그래야 드레스 라인이
죽이게 살아나지.”
나의 간사스러운 표정에 쫑 녀석은
무한 기관총으로 내 입을 쏴서 터트릴 것 같은
표정과 몸짓을 선보이며 낮게 그리고 무섭게 말했다.
“………………씨발 나 안해.”
“구란데.”
“씨발 나 안한다고 했어.”
“잘못했슴요.”
빌..빌었다.빌었어.젠장 빌었,..
사실 저것이 끝이 아니라 녀석에게 손이
배꼽이 되도록 미친 듯이 빈 것 같다.
왜냐니 왜냐니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난 행동한 것이다.
저놈이 뛰어 쳐나가면..모델은 어디서 구하며
우리과 똘끼 얘들은 다같이 사이좋게
F판정을 받아가면서 나를 자근자근 밟겠지.
그렇다면 나의 뷰티풀하고 아름다운 대학라이프가
완전히 찌그러져버리니까.
“아 팬티도 입고 쫄바지도 입어.
뭘 쪼잔 하게 조크 한번 날린 거 가지고
상심하며 뛰쳐나가 뛰쳐나가길,넌 그런 여린
놈이 아니었잖니?”
나의 논리적인 설명에 녀석은 잠시 움찔거리더니
곧이어 반박하기 위해서 탈의실을 뛰쳐나가다가……….
바로 앞에 있던 크나큰 ….
크나큰 우리의 드레스를 밟고 ……..
녀석이 신었던 쪼리에 얽히면서
밑단의 부분이 좌악_하고 아름답게 찢어졌다.
“………………………….”
“………응?=_=?”
녀석은 어리벙벙한 눈으로 응이라고 외쳤고
자신이 찢어버린 드레스에 흠칫 놀라는 듯한 모션을 취하더니.
나의 엄청난 야림을 온몸으로 감지하고는
끝내 이렇게 뱉었다.
“해해해.입는다고!”
“얼렁 입어라.고치게…………..?”
참으로 사납게 찢어져 있는 드레스에
우리 똘끼파 아이들은 뭉크의 절규의 그림과 똑 같은
자세를 취하면서 뒤져나갔고,
이내 최초로 정신을 차린 스킨헤드를 한 민진이가
(남자놈임)투명실을 바늘에 꿰더니 말했다.
“얼른 얘 붙잡고 시작해야 돼.곧 있음 우리 타임이란
말이야!!”
찢어진 치마를 둥글 둥글 하게 대충 셔링을 조금씩 잡아 주면서
쫑의 허벅다리 위까지 틀어 올려주자,
어머……이거 꽤 괜찮 잖아?
아주 파란색깔의 드레스가 틀어 말려 올라간
우리의 드레스는,드레스의 재창조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쌔끈하셨다!!
“아..이거 꽤 괜찮은데!”
신이 난 민진이가 자지러지며 말하고,
드레스를 고치자 마자 다가온 시련의 시간.
드디어 우리 모델 쫑이 나설 차례다.
쫑은 약간 떨려 하는 귀여운 모습을
절대로 내게 보여주지 않고.
투박투박 걸어나갔다.
전혀…정말 전혀…..
모델 같지 않은 ..참 상스러운 폼.
“야 이자식아!그렇게 걸어 다니면
드레스의 간지가 죽어 나가잖아!”
“그럼 신자 네가 할래?”
아무래도 기분이 많이 안 좋으신 모양.
찌글어 터져있는 저 얼굴을 보니 기분이
심하게 안 좋으신 모양..-_-;
“넌 왕자다!!!넌 이제부터 왕자야 임마!!!!!!”
뚜벅뚜벅 나를 뒷산 사는 광년이처럼
쳐다보던 고놈은,
“난 원래부터 왕자야.”
라는 도도한 말을 한마디 뱉어냄으로써
우리를 경악의 바다에 풍덩 하고 쳐넣었던 것이다.
*12
“어디서 저런 놈을 줏어왔…”
“민진아 닥쳐라.”
나의 싸한 말.
그래 차라리 고분고분하신 파란이를 대령할 것을.
고놈이 죽어도 하기 싫다고 해서….
파란…..이 패션쇼 망치고
내 학점이 D에서 F로 추락하는 그 순간.
네 눈깔은 검은 눈깔에서 파란 개 눈깔로 바꿔버릴 것이다…
………….
불안한 마음으로 우리 팀원 모두들 무대를 바라보고
제발 제발 제발 D라도 내려주세요 제발!
사실 이 패션쇼가,
대학1학년 총 결산 학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아무리 성적이 개날라리 똥퍼라고 해도
이 패션쇼에서의 성공은….
우리의 모든 학점을 대변해 줬다.
그래서 몇 달은 준비한 건데.
다같이 한마음 되서..한마음 되서 준비한건데..
나 윤수하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나 윤수하가 데려온 저 망할 쫑이
저 망할 쫑이 우리 패션쇼 망치면
나 앞으로 3년 내내 따 되는데=_=..그리고
3년 내내 술값 내가 낼 거 같은데..
게다가 3년 내내 학교 돌 맞고 다닐 거 같은데..
불안한 마음으로 무대를 보고
천천히 조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처럼
무대 위로 나오는 쫑.
곱게 뻗은 허벅다리 라인에 치렁치렁 샤링이 돋보이고,
게다가..
내가 예상했던 거와는 달리,
정말로 왕자처럼.(물론 드레스 입은 변태)
왕가의 사람처럼 고품과 품격이 절절 묻어나오는
워킹.
수 많은 워킹을 봐온 나지만,
저렇게 느릿느릿 거북이마냥 걸어 나와서 욕을 안 먹는 사람은 처음이었고.
차가운 얼굴로 속눈썹만이 돋보이는 머리 짧은 한 남자가,
게다가 파란색 드레스와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은 노란머리의 남자가.
그렇게까지 파란색 우리의 초호화 러블리 드레스를
잘 소화 하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놀라움과 경악스러움에
사실은 조금 이 세계 사람이 아닌 듯한 쫑의 모습에
입이 헤 벌어진 채,
멍해진 심장사이로 미친 듯이 피가 올라와,
….아..뽕만 넣어줬으면 완벽했는데.
하지만 남자가 드레스를 멋드러지게 소화해냈다는 것이야 말로
이 세계 최고의 이변이 아닌가!!!!!
어느새 쫑이 턴을 해서 뒤 돌아 가고
무대에서 사라질 때,마지막으로 훗 하고 마치
‘봤냐 신자?’라는 듯한 얼굴.
자신감이 절절 넘치다 못해 흐르시는 그 분.
…….나 감동했다………
다들 넋이 나간 모양.
특히 우리 똘끼 팸.아주 혼이 빠졌음.
그런 무대는 처음 본 사람들의 박수 갈채 속에서 우리는 정신을 차렸고,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 드레스는 내가 디자인에 참여한 그 순간부터,
쫑을 위한 드레스 였다는 것을…..
무대 뒤편 드레스를 거칠게 벗고
웃통은 입이 않은 채 청바지를 입고 있던 그 녀석.
다른 아이들은 결과를 본다며 오지않았고,
나는 쫑의 메이크업을 지워주기 위해서 돌아왔다.
“어딜 봐.”
칭찬을 해주려다가도 저 놈의 입 나불거리는 모습만
보면 배알이 꼴려와서 원..
“-_-..됐다.얼굴 대.화장 지우게.”
스모킹 메이크업.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메이크업이다.
그런데 왜.이 놈을 위한 메이크업마냥 미친 듯이
잘 어울리는 거야!
쫑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고,
나는 대충 클로징 크림을 쫑의 얼굴에
펴다 발라주면서 아주 대충 문질러 주었다.
거친 손길.
아 근데 이자식 속눈썹이 왜 이렇게 긴 거야!
그렇게 암울해 보이는 화장을 해도 왜 멋져보이는 거야!
두근두근,
두근두근
아 젠장..미치겠네…..
나 진짜 쫑 생각하면서 드레스 만들었나?
나 ………..쫑 좋아하는 건가?
“야.”
화들짝_녀석의 야 라는 말에
흠칫 놀라 살짝 요동 쳤던 나의 손길.안돼 제길 안돼
2살이나 어린 놈한테 책잡힐 수 없어.
“왜 임마.”
“좀 정성스럽게 못 닦냐?”
“소원이나 말해.대충 들어주게.”
녀석은 피식 웃는다.
눈을 감은 채로 피식 웃는 게 멋진 거였구나.
“사람 살아가면서 돕는 거지.”
“그럼 소원 필요 없지?”
아싸!!쫑은 천사
라는 나의 외침이 미처 끝나지도 않았을 때.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도왔으면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한 거지.
넌 기초적인 상식도 모르냐?”
그럼 왜 돕는다고 말해 썅놈아.
이건 그냥 알바일 뿐이 잖아 그렇게 치면.
하긴 어린 너를 상대로 열을 내다간
나의 고지능 머리통이 불타는 오징어가 되겠지.
됐어,됐어, 꺼져 꺼져.
조금은 어색한 침묵이 공기를 흐트려 놨을 때.
문 사이를 벌컥 비집고 흘러나온
엄청난 괴음.
“야!!!!!!!!!!!!!!윤수하!!!!!!!!!!!!!!!!!!!!!!!!!!!!!!”
“왜 똘끼들아.”
“우리 대상!!!!!!!!!!먹었어!!!!!!!!!!!!!!!!”
……..대….뭐?
대……상?
*13
“뭐?”
나의 어이없는 물음에.
“대상대상대상대상!!!!!
이제 우리 1년 장학생이야!!!!!!!!”
그렇다.
이놈의 대학이 또 좀 잘나 주신 대학이라,
학년마다 최우수를 먹는 팀에게는 1년 장학금을
지불하는 제도가 있다.
[아아_방송실.1학년 의상디자인과 윤수하 학생
윤수하 학생.지금당장 강당으로 나와주십시오.]
방송이 미친 듯이 나의 귀 언저리를 강타하고
나는 너무나 멍해서 얼굴이 벙쪄 있고.
“뭐해 대표!얼른 안 나갈 거야?”
“대표!얼른 가서 상장 타와!”
“윤수하 빨리 안 뛰어가?”
너무나 멍해서 메이크업을 지우던 손은
이미 멈춘 지 오래.
쫑은 눈을 떠서 나의 둥둥 떠다니는 혼을
힐끗 보더니 이내 이 한마디로 내 정신을 깨워놓는다.
“신자.나한테 고마워 해야겠어.”
젠장 뛰쳐나간다,저 놈을 무시하고
불타는 내 심장을 무시하고.
오로지 상상상!
이 개 비싼 대학 때문에 부모님 등골 팼던 못난 나의
죄를 조금이나마 씻어줄
최우수상을 타기 위해 미친 야생마처럼 달려나갔다.
-강당-
“허억..허억..허억..”
거친 숨소리.
그리고 풀어헤친 머리보다 더 추한
묶여서 삼발이 되 버린 삼순이 같은 내 머리.
나의 이런 등장에,특히 이사장의 표정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거렁뱅이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시선..훗..
“2학년 최우수상.정민진 외 그 일당들!”
저 맛이 간 사회자 같으니라고
뭐가 그 일당들이냐,
2학년의 시상식이 끝나고,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인
1학년 시상식.
뒤에서는 우리 똘끼팸들이 언제 올라왔는지
나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_=저 년 머리에서 쉰내 난다며.
“1학년 최우수상 윤수하 외 그 일당들!”
짝짝짝짝_박수의 물결.
쉰내가 풀풀 나는 머리로 상장을 받은 나는,
뒤 돌아 서서 또 쇼맨쉽에 취해 트로피처럼 상장에 미친 듯이
뽀뽀를 했다.
같은 과 학생들은 박수를 치면서
아니꼬운 표정을 선사했고
우리의 똘끼팸들은 얼굴을 돌려 버렸다.-_-^
상을 받고 내려와서
의상과 최고 원로 교수의 말이 내 마음에 꽂혔다!
“사실 이번 축제 때 가장마음에 드는 작품은
윤수하씨네 조 입니다.첫 째로,드레스에 남자모델을 썼다는 그 점.
둘째로 평범한 엔틱풍의 드레스가 아닌,모더니즘을 살짝 살렸음에도
경박하지 않고 우아한 미가 살아난다는 점.그 점에서 가장 높이
평가를 합니다.”
짝짝짝_터질듯한 박수세례.
아이좋아잉.하며 뻔질나게 말하고 싶었으나,
정신이 조금은 몽롱해져,아니 바락바락 롹을 하듯
좋아서 악악 소리를 지르느라고,
나는 술을 마시려
이미 호프를 통째로 빌렸다는 아이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떠밀려 앉았다.
“오늘의 주인공!윤수하와 그의 남친 은도한님!’
아니,저기.
애인은 아니지만 친구는 맞구나.맞지 뭐
라고 생각하며 헤헤헤 바보같이 웃었더니.
“나 얘 애인아님.”
순간 시끌벅적 하고 축제였던 분위기가
잠시 싸해졌다.2살이나 어린 놈이 반말을 찍찍
뱉어 싸니까.
하지만 놈의 압도적인 눈빛.
그래-_-마치 한 마리 미친 이리 같아서
건들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쫑 이었기에,
다들 눈빛으로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씨발놈아!!!!!!’
“하하하..새끼 예의도 없이 반말을 찍찍..”
내가 쫑의 등을 탁탁 치면서 말하자
가뜩이나 싸했던 분위기가 더 싸해지고..=_=옘병..
“하하 얘들아 건배건배!”
내가 맥주병을 들고 입에 처박듯
박아넣고는 콸콸콸 들이 붑자,
그제서야 얼음 같던 그 분위기가 깨이면서
술판이 벌어졌다.
쫑은 관심 없다는 듯이
옆에 있던 소주잔만을 빙글빙글 돌리고,
차마 한 마리 버려진 들개 같은 요놈을 무시하고
다른 아이들과 술잔을 찬찬찬 부딪히며 놀기에는
양심이 조금 찔리기에 녀석의 옆에 나도 함께 앉았다.
“너 왜 안마시냐?”
“입이 고급이라서.”
아 정말 정이 안가는 놈이야.
어떻게 이런 성깔을 타고난 놈이 여태껏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교적인 나라에서 버텨왔을까?
대단한 놈이야.대단히 독종이구만.
“저기 너 그래선 사회생활 못할거 같은데.”
“그래도 너 같은 얼굴을 타고난 것보다는 잘할 것 같은데.”
여전히 놈은 빙글빙글 소주잔만 쳐 돌리고 있고,
하_어린 놈을 상대로 열 내기엔
나의 성격이 너무나 아깝기에 나는 다시금 라마즈 호흡법을
해가면서 참아냈다!
“그럼 오징어라도 뜯어 임마.
근데 너 정말 모델 잘하더라.그렇게 껄렁껄렁 걷다가도
어떻게 우아하고 멋지게 걸을 수가 있냐?신기의 극치더라.캬~”
“타고난 본성이 우아하시니.”
제발..제발….
제발 무표정으로 고 따위 말을 지껄일 거라면
제발 집에 가서 짜져 있어 응?
내 좋은 기분 다 망치지 말고.
“집에 안가냐 쫑?=_=”
나의 띠꺼운 표정을 본 채 만 채,
아니 이 녀석은 아까부터 내 얼굴을 보고 있지 않다.
망할 녀석,이젠 내 얼굴이 역겹다 이건가!!!
“갔으면 좋겠어?”
냐냐 거리는 말투가 아닌,
어라는 말에 나는 잠시 움찔.
이 자식 뭔가 고분고분해.
녀석은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봤고
뭔가 애수어린 얼굴에 나 조차도 놀라고,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아니 당황하기 이전에
그냥 나도 모르게 마치 녀석이 얼굴을 들기를 기다렸다는 것
처럼 심장이 뛰고.
또 생각이 나버린다.
너만을 위했던 드레스?
널 생각하면서 만들었을지 모르는 그 드레스.
대상을 먹은 그 드레스.
아 젠장.
정말 인생이 평탄할 날이 없구나.
*14
“지주연 있잖아.”
아직 화닥화닥 거리는 나의 얼굴에
남극의 빙산을 갈아 넣는듯한 녀석의 발언에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궁금함에 되물었다.
“뭐.”
참 아니꼬운 나의 말에
녀석은 얼굴을 푹 숙이고 애꿎은 소주잔만을 데굴데굴
굴려가면서 자폐아처럼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걔….아직도 많이 밉냐?”
……
언제부터 내 머리 속에 지주연이라는 놈이
싸악 사라져 버리고 쫑과 파란이가 가득 찼을까?
“아니.”
“음..그래.”
녀석의 볼도 발그레.
그리고 시선은 애꿎은 소주잔에 고정.
뭐냐 이런 사춘기 소녀 같은 분위기;
대놓고 와일드를 고수하는 요놈의 분이기가 이런걸 보니.
요녀석 꽤나 쑥스러운 모양.
하긴 그 허연 허벅다리를 그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였으니,아무리 네놈이라도 떨리겠지.
무분별한 침묵 속에 녀석은 견디기 힘들었던지
갑작스러운 질문을 나에게 건넨다.
“너 첫사랑이 누구였어?”
젠장.왜 그 얘길 꺼내 왜.
왜 꺼내서 또 내 마음에 다트를 꽂아버리냐.
“………………지주연………젠장.”
나도 모르게 또 소주를 들고.
이제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그 개놈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런 놈한테 잠시나마 반해서 정신의 퓨즈가 나가버린
내가 너무나 슬퍼서,
그랬던 내가 너무나 미워서
또 그런 개 같은 사랑을 만나게 될 까봐 조금은 두려운 마음에.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소주를 들어 입에 털어 버린다.
“너 영어로 첫 사랑이 뭔지 알어?”
“First Love?”
녀석은 여전히 소주잔과 시선을 마주한 채
조용히 입가에 조소를 띄워가며 속삭이듯 말했다.
“First Love.첫 사랑.처음의 사랑.”
“응 근데?”
빙글 빙글 돌리던 소주잔.
그리고 정신이 없는 나는 머리가 흔들 흔들.
그깟 소주 몇 모금에 취할 나는 아니지만
지금은 자책감에 취해.취해버려서 정신이 없다.
“원래 사람이 잊을 수 없는 건 First Love라고하잖아.
근데 난 그게 꼭 첫사랑이라고는 생각 안 해.
꼭 첫 사랑이 가장 순수하다고는 생각 안 해.”
뭐지,저 자식 저렇게 철학스러운 말을 뱉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녀석이 싱그럽게 웃어가며 철학스러운 말을 뱉어내자
그 이질감에 몸에 잠시 소름이 돋아 났다.
하지만 참고 들어줘야지.
오랜만에 옳은 소리 뱉는 다는데 또 내가 칭찬해 줘야지.
“사람이 오래 살다가 인생을 뒤 돌아 봤을 때,
가장 처음인 것처럼 느꼈던,처음이라고 그런 멋진 사랑
처음이었다고 몇 번을 되새겨도 아깝지 않은 사랑.
그게 First Love라고 생각해.”
“응?”
“그러니까
지주연은 윤수하의 First Love가 아니야.
윤수하의 First Love는 아직 진행 중이니까,
First Love 아까운 말 지주연에게 붙이지 마.”
와.
녀석 참 말 바르게 하는구나.
난 아직 진행 중이고 그건 잊을 잠시 미친 환각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근데 쫑 너 그거 알어?”
“…?……..’
“너 처음으로 내 이름 불러줬다.
난 순간 움찔 했어.너한테 이름 불리니까 이상하다.
그냥 신자라고 해라.”
녀석의 고운 눈길을 한 몸에 받아내던 소주잔을 배신하고
갑작스럽게 사나운 눈길로 나를 쏘아보는 두려운
녀석.
나는 순간 움찔해서 눈을 깔려다가,
어린 놈에게 지면 안되지!
라는 것을 주문으로 삼고서는 똑바로 눈을 떴다.
녀석은 입술을 조금 비틀면서 어이가
상실됐다는 듯이 웃고는,
“역시 너한테 철학은 안 통해.”
“근데 너 어디서 영어 스탭 좀 밟아주다 왔냐?
발음이 좀 죽이는데?”
“응 좀 밟았다.형님이.”
-_-.아무튼 저 놈은 띄워주면 안돼.
녀석은 갑자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소주 뚜껑을
또르륵_하고 따 버리더니 입에 넣고는
쮸쮸바 빨듯이 놈의 위 속으로 쭈욱 부워 버렸다.
“야야!어린 놈이 무슨 미성년자가 술이야!”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술을 빼앗지 않는 나.
하하 그럼 그럼,이런 날은 좀 마셔 줘야지.
녀석은 나의 말을 무시하고는 술만 들이 부웠다.
아무렇지도 않게,안주 조차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2병 정도를 마시는 놈 앞에서
나도 홀짝 홀짝 소주를 조금씩 불어주고
녀석은 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분위기에 취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취하고 싶어서 행동을 그렇게 하는 건지,
조금은 풀려버린 목소리로
기운 없게 속삭인다.
“윤수하……’
“왜 임마.”
“미안해.”
“뭐가.-_-“
몇 분의 침묵 끝에
녀석은 조금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기운 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
………너랑 친구 할 자신이 없다.”
아마도 내가 잘 못 들은 모양.
너무나 시끄러운 분위기라서
내가 지금 이 녀석의 말을 틀림없이 잘 못 들은 모양이다.
*15
“수하야 얘 잘 데려다 주고,
너=_=제발 어린 것들을 간교한 술수로
꾀어내지 말아라.자꾸 타락해 가 잖아 순수한 청소년들이.”
“웃기네.야 김민진,머리나 새로 밀고 와 수염 같아
이눔아.그리고 요놈은 이미 타락하셔서
땅끝인 놈이시다.”
민진이는 택시를 잡아줬다.
쫑 녀석은 풀린 눈으로 내 어깨에 팔을 걸고
헤롱헤롱 거리고 있었고,
이렇게 꼴은 남자를 들쳐 엎는 것은
거의 일상생활이나 다름없어서
그래..나 힘 세다.
너무 세서 소 한 마리도 팔뚝 하나만 보여줘도
소가 쫄아서 빌빌거릴 거다 아마.
“야!김민진 나 택시비!!”
유일하게 안 꼴은 남자인 민진이는
(녀석은 술을 코로 마셔도 멀쩡할 정도로
굉장한 괴물인 녀석이었다.)
다른 아이들을 택시 태워주느라 나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짧게 욕을 읊조린 나는 이내 쫑의 뒷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뒤졌다.
어머_골드 카드네,살짝 나의
빈촐한 지갑에 골드카드를 쑤셔 박을까,하는
멋진 상상도 해 보았으나,어차피 머지 않아 걸릴 것 같아서,
녀석의 지갑에 있던 돈을 모조리 빼 내니,
무슨 고등학생이 돈이 이렇게 많은 건지=_=
다 가져주겠어!!!!!라고 하기에는 난 너무나 곱고
여린 심성의 소유자였다.
돈다발을 미친 듯이 흔들어 가며
택시를 부여잡았고,
쫑의 집 주소를 대충 불러주고서는 나도 살짝
뻗었다.
마른 줄 알았던 쫑의 몸은 더럽게 단단했고
(마치 마징가 제트의 윗통스러웠다.)
녀석을 널 부러진 빨래처럼 쳐넣었으나,
으음으음_이라는 요상한 소리를 내면서,
하필이면 나의 허벅지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야야야!아퍼 일어나 임마!”
하지만 녀석은 머리통을 내 허벅다리에
비비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드라마 같은 거나 영화 같은 거 보면
보통 여자가 남자 어깨에 기대는데,
왜 난 들소 같은 이자식의 머리통을 내 허벅다리위에
모셔놓고 저린 다리에 대해 괴로워하며 있어야만 하는 걸까?
나의 괴로운 표정에 택시기사 아저씨는
조금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밤늦게 힘들죠?장정하나 엎으려고 하니,허허.”
왠지 즐거워 보이십니다.아저씨.
=_=.
나는 가볍게 아저씨의 말을 먹어주고,
아저씨도 기분이 상하셨는지 침묵이 택시 안을 점령하고,
그 침묵을 이상하게 그리고 화가 나게 깨버리는 쫑의 한마디.
“…..신자아…뽕 그만차아……”
………나도 모르게 녀석의 대갈통을 쾅
하고 내리치고,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얼굴을 찰싹_
몇 번 때려주고.
여전히 깰 조짐이 보이지 않는 녀석.
그리고 내 머리 속 안에 가득 차버린 녀석의 한마디.
친구 할 수가 없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 일까?
설마 쫑…..
날 여자로 보고 있다고 하면 …
나 도끼병이지=_=?
그래 그런 게 아니라면
나한테 이런 나한테 질리고 혐오감을 느껴서..;
머리를 굴릴수록 집히는 사건이 많아서
녀석에게 저지를 어이없는 행각이 많아서
고마운 일들이 가득 차서.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 둔다.
생각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두 눈을 감아버린다.
……
…………….
“아가씨!아가씨!
…..아 정말 이 아가씨 정신이 없네..
일어나봐요!택시요금 내야지!”
으음……=_=
조금만 더 늦게 깨어났다면 라이타로 내 머리를 지져버릴
것 같은 표정의 택시기사 아저씨.놀란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정신없이 돈을 내고
“아저씨 잔돈은 필요 없어요.”
멋드러지게,후훗.사실 정말 해보고 싶었지만
늘 택시만 타면 몇 백원이 떨어지는 것을 고이 받들곤 했다.
뭐 내돈 아니니까,데려다 주니 이 정도의 사치를
부려도 쫑 이놈 뭐라고 안 하겠지!캬캬
“아가씨.”
“아저씨 괜찮아요.그냥 넣어두시라니까요.”
“돈 모자라다니까.2만 3천원 더 줘야 돼.-_-”
이런 젠장 무슨 놈의 택시비가 저렇게 비싸?
하긴 뭐 내돈 아니니까,
나는 다시 쫑의 지갑을 열어서 삼만원을 아저씨 손에
붙들려 주고는 쫑을 끌어내면서 외쳤다.
“아저씨 거스름돈은 필요없어요.”
분명히 나는 간지나 게 말한 것 같은데
왜 아저씨는 왜 아저씨는..
나를 불쌍한 눈길로 쳐다보며 쯧쯧이라는 대사를 내뱉으시는
걸까?
하아..윤수하 인생 간지내기 어렵구나,어려워.
녀석을 들처 업고
벨을 누를 정도의 여유가 없어서 미친 듯이 대문을 차댔다.
“자파란!!!!!자파란!!!!!
야!문 열어!!!!!!”
를 몇 번 반복하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부시시한 모습의
파란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잠긴 목소리로
“넌 벨 누를 줄 모르는 저지능이냐?”
“아 얼른 얘나 엎어봐!!”
파란이가 쫑을 들처 업고,
그제서야 자유의 몸이 된 나는 너무도 가뿐한 마음에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다.
“-_-어떻게 그러니 넌.”
“야 누나라고 부르랬잖아.”
“나이만 많으면 뭘 하니 넌.
이렇게 어린 아가한테 술 먹여서
덮치려고 하는데.”
저기..
넌 가끔 나를 뭘로 보는지 참 알고 싶을 때가 있거든?
저기..나 아직 그렇게 범죄자처럼 쟤 덮칠 마음이 없는데.
왜 네 멋대로 해석하는 건지.
네 대갈통을 병따개로 한번 따 보고 싶구나.
완결을 보시려면-> http://cafe.daum.net/E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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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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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롱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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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0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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