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 가는 길
거제 고현은 바깥에서 들어가는 시외버스와 섬 안 곳곳으로 다니는 시내버스 터미널이 붙어 있다. 섬이기에 철도가 연결될 리 없는 거제인데 최근 KTX 종점 위치를 놓고 지역 내 갈등 조짐을 보인다. 경부선 KTX가 경북 김천에서 분기해 합천과 진주를 거쳐 통영에서 거제로 건너와 종점이 되는 남부내륙 KTX선이다. 고현 외곽 사등면에 둘 것인지, 도심 가까운 상동에 둘 것인지 논란이다.
남부내륙 KTX 거제 종점 역사가 지역민 사이 뜨거운 현안으로 묘하게도 도농 간 대결이다. 면 지역 주민들과 고현과 상동을 비롯한 옥포와 장승포 도시민 사이 문제로 번진다. 당초 사등면에 설치하기로 한 역사를 고현과 인접한 상동으로 당겨지면 옥포와 장승포 주민들도 가까워져 편리해지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으로 KTX역사 주변의 땅값 상승 기대 심리인가 보다.
거제는 거가대교 개통 전엔 부산과 통영 사이 카페리가 다녔던 해운으로도 바깥과 통하는데 한 몫 거들었다. 카페리가 드나들던 고현만은 매립이 되었지만 장승포에는 예전 여객선터미널이 흉물처럼 덩그렇게 있다. 진해 속천과 안골포에서 하청 실전과 장목으로 통하는 뱃길도 있었더랬다. 현재는 유람선을 제외한 여객선은 저구항에서 매물도로 운항하고 몇몇 유인도로 오가는 정도다.
거제와 연고가 전혀 없는 내가 지난날 거제를 다녀간 횟수는 손가락 꼽을 정도다. 언젠가 학생들 현장 학습으로 포로수용소 유적지를 둘러봤다. 어떤 기회 선후배와 함께 활동한 자생연구단체 거제 투어가 아슴푸레하다. 혼자 진해 속천에서 배를 타고 하청 실전으로 건너와 지심도로 가려던 적도 있었다. 동백꽃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장승포에서 유람선 시간 맞지 않아 이듬해 다시 찾았다.
재작년 거제로 임지가 정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창원에서 오가는 대중교통 편이었다. 내가 차를 소유하지도 않고 운전을 하지도 못하는지라 현지에 원룸을 정해 주말이면 창원으로 건너와야 해서다. 다행히 창원 팔룡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거가대교로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있었다. 남마산 월영동에서는 고성과 통영을 둘러 고현 가는 버스가 있으나 이동 시간이 많이 걸려 불편했다.
그해 봄 거제로 건너와 근무지 연초 연사에 원룸에 둥지를 틀었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면 시내버스로 고현 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 창원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거가대교를 건너 김해 장유를 거쳐 창원으로 복귀했다. 일요일 점심나절이면 창원 팔룡동으로 나가 고현으로 오고 가길 주말마다 반복했다. 용원 신항만을 지나 가덕도에서 거가대교를 건너면 거제 장목이고 연방 고현에 닿았다.
주중 퇴근을 하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연사 와실 주변 들녘 산책이나 산자락을 누비다 점차 반경을 넓혀갔다. 연사 시내버스 정류소로 나가 고현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거제 북동부 해안은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하청 칠천도로도 건너가고 장목 구영과 유호 해안으로 갔다. 외포와 덕포 일대는 물론 옥포도 가까웠다. 장승포와 능포 해안과 지세포와 구조라까지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봉수대나 성터에 올라 지난날 왜구의 노략질이 잦은 국토의 변방임을 알았다. 고려 말 유폐 당한 의종이 쫓겨왔고 조선 중기 노정객 송시열의 유배지기도 했다. 산마루를 넘으면서 지명에 서린 유래나 전설을 더듬어 봤다. 효자열녀 정려 비문을 읽어 보기도 했다. 마을을 지나다 유력 출향 인사가 누구인지, 고풍스러운 재실 앞에선 집성을 이룬 토박이 성씨가 어느 문중인지도 알게 되었다.
작년 봄부터 거제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주말에 오가는 교통편은 창원의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지기가 이웃 학교에 부임해 와 카풀로 다녀 편해졌다. 그런데 일과를 마친 퇴근 후가 문제다. 거제는 다른 곳보다 코로나 감염자가 끊이질 않고 발생하고 있다. 시내버스를 타야 바닷가로 나가는데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 길을 나서기 머뭇거려진다. 어제오늘은 황사까지 덮쳐 더 갑갑하다. 21.03.30